50년 高試 낭인의 천국 고시

​지하철 교대역에서였다. 하얀 불빛이 쏟아지는 구석에 창백한 얼굴의 노인이 시선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혼자 앉아 있었다. 노인의 옆에는 노숙자들이 흔히 가지고 다니는 작은 카트가 놓여 있고 손에는 싸구려 칫솔 세트가 쥐어져 있었다. 지하철에서 행상을 마치고 둥지로 돌아가는 길인 것 같았다. 두꺼운 렌즈에 지적 분위기를 풍기는 낯익은 노인이었다. 그를 당장 알아보았다. 그저께 밤 텔레비전의 ‘50년 고시 낭인’이라는 제목으로 본 타큐멘터리의 주인공이었다. 악취가 진동하는 더러운 쪽방에서 혼자 산다는 영감이었다. 그가 지하철 구석에 고독하게 앉아 있는 것이다. 순간 그에게 다가가라는 내면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저 서울법대 66학번인 김기두씨죠?”
“어떻게 저를 아시죠?”
노인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텔레비젼에서 봤어요.”
“텔레비젼요?”

그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프로 자체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로서는 우연히 찾아온 피디가 묻는 말에 몇 마디 대답한 정도가 고작일 것 같았다. 그가 손에 든 칫솔 세트를 내게 들어 보이면서 사정했다.

“이거나 하나 사 주이소. 하나에 오백 원.”
칫솔 네 개가 들어있는 세트가 오백 원 동전 하나면 너무 싸다. 그가 장사를 하는 것인지 모양만 그런 것인지 의아했다.

“살게요. 두 개 줘요.”
내가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주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거스름돈을 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방송을 보니까 아침마다 일어나서 하버드대학 경제교과서를 영어원서로 공부하시데요?”
“제가 전공을 바꿨어요.”
그가 덤덤한 어조로 대답했다. 70대 노인인 그의 영혼은 아직도 광막한 시간의 벌판 저쪽 젊은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그가 계속했다.

“제가 사법고시를 다섯 번 봤는데 다 떨어졌어요. 그리고 결혼을 했죠. 쉽게 붙으려고 행정고시를 봤어요. 거기도 두 번이나 떨어졌어요. 그래서 다시 외무고시에 도전했어요. 거기도 떨어졌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의 손가락에는 방송의 카메라가 클로즈업 시켰던 두꺼운 싸구려 왕반지가 보였다. 그에게 반지는 자신이 왕이라는 신분을 알려주는 표지였다. 그는 아직도 대통령이나 왕이 되는 꿈을 꾸고 있었다. 방송에서 그는 민심을 알기 위해 행상을 하면서 지하철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했다. 방송화면 속의 그는 매일 공중전화에서 40년 전 이혼한 아내를 상대로 혼자 대화를 하고 있었다. 전화기는 ‘띠이’ 하고 메마른 기계음만 내고 있었다.

“요즈음도 매일 부인하고 연락을 하세요?”
내가 그에게 물었다.

“그럼요, 매일 전화를 하죠.”
그는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그의 머리 속은 현실과 관념이 혼재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방송화면 속에서 그가 법조인이라고 소개한 친구들의 이름이 떠올라 물었다.

“양삼승이나 강대석 그리고 서울중앙지검장을 하던 김진환을 아세요?”
“양삼승은 서울법대 동기인데 고시에 수석을 하고 판사를 지내다가 로펌의 대표로 있어요. 강대석이는 서울법대 후배인데 검사를 하다가 지금 변호사죠. 서울중앙지검장을 한 김진환이는 내가 직접은 모르는데 같은 집안인 경주 김씨죠. 고시라는 게 뭔가 하늘에서 도와주는 게 있어야지 나 혼자서는 안되더라구요.”

그의 늙은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가 문득 의문이 드는지 나를 보면서 되물었다.

“어떻게 그 친구들을 아세요?”
“저도 변호사예요.”
그가 아, 그렇구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어느 법대 나왔어요?”
“고대 법대 나왔어요.”

순간 그의 얼굴에 묘한 표정이 스쳤다. 최고 명문인 서울법대를 나온 자기는 왜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을까 하는 감정 같았다. 그의 의문을 풀어줘야 할 것 같아 말했다.

“저는 서울법대를 가고 싶었지만 실력이 부족해서 못갔어요. 저도 고시공부를 오래 했지만 머리가 둔하고 능력이 없어 합격할 수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걸 모르고 세월만 보냈죠. 그러다가 정말 어떤 분의 도움으로 벼랑 끝에서 간신히 살았어요.”

“나도 힘깨나 쓰는 사람들을 알아요. 부총리도 잘 알고.”
그는 장차관을 지낸 지인들의 족보를 내놓았다. 그의 의식 속에 어떤 것들이 들어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 말 끝에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내 부탁을 들어준 분은 그 사람들보다 좀더 윗선에 계신 높고 힘이 좋은 분이었죠. 어떤 일이든 다 해줄 수 있는 힘을 가진 분이죠. 전에 알던 사이도 아닌데 제가 간절히 부탁하니까 불쌍하다고 생각했는지 고시에 붙여주더라구요.”

“그게 누구였어요?”
그의 얼굴에 호기심이 어리는 것 같았다.

“처음 생각한 하나님에게 간절히 빌었죠.”
그가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덧붙였다.

“지금 전공을 경제로 바꾸고 하버드 교과서를 원서로 읽는 것 같던데 다시 전공을 바꿀 생각 없어요?”
“어떤 걸로요?”
그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성경을 한번 열심히 공부해 보세요. 저하고 나이가 비슷하신 것 같은데 진짜 우리가 합격해야 할 건 천국 고시예요. 이 세상 아무것도 아니예요. 부러워하시는 서울법대 동창들 거의 다 판검사와 변호사도 그만두고 집에서 놀고 있어요. 병들어 죽은 사람들도 많아요. 인생 마지막에는 별 거 없어요. 다 똑같아요. 고시공부 하듯 성경을 읽으면 분명히 합격할 거예요. 손에 낀 그 반지보다 하늘에 있는 면류관이라는 걸 쓰게 될지도 모르죠. 저 역시 지금도 천국고시 준비 중이죠.”

“그래요? 나도 영어성경을 가지고 있는데.”
그의 대답이었다. 거룩함은 인간이 만든 바벨탑 꼭대기에 있지 않고 병든 노숙자가 무릎 꿇은 땅바닥에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쪽방이지만 혼자 성경을 잡는 순간 병든 그의 영혼에서 날개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서 빛이 환하게 내려와 그의 영혼을 덮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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