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 보낸 글
“박근혜님, 침묵은 거짓을 진실로 만들기도 합니다. 왜 한마디를 그렇게 아끼십니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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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옥에 있는 박근혜에게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에 천통씩 편지가 들어간다는 소리가 들렸다. 보지 않을 확률도 컸다. 그는 동생들의 면회도 거부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뜻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글 밖에 없었다. 나는 하얀 모니터를 앞에 놓고 영혼이 시키는 대로 키보드를 치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박근혜님께


먼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정한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좁은 감옥 안에서 우는 마음, 허탈에 빠진 마음, 어둠에 잠긴 마음일 것이라고 짐작을 합니다. 그 마음에 빛이 비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지난 30년간을 도심의 뒷골목에서 작은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면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온 엄상익 변호사입니다. 박근혜님과 비슷한 육십대 중반의 나이로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지금은 부자가 된 나라에서 안정된 일상을 누리는 노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에는 박정희대통령의 지도력과 헌신이 있다는 점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지금 박근혜님의 고통에 절망에 공감하며 어떤 말도 위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힘드신 상황을 알지만 편지를 보내게 된 사연을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전 국정원장 이병호씨의 변호를 맡고 있습니다. 이병호씨는 저의 아파트 이웃집으로 또 같은 교회를 다니던 교우로 소박하게 살던 분이었습니다. 저는 퇴직금을 사기당한 그의 소송을 대리해 준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는 변호비도 지급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제 사무실 앞에서 하늘을 향해 망연한 시선을 던지던 그의 뒷모습은 세상을 힘겨워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그가 칠십대 중반에 갑자기 국정원장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은 그의 인생에서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보기도 했었습니다. 일본작가 소노아야코 여사는 늙어가는 법을 가르치는 책에서 육십이 넘으면 관직을 맡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평생 정보기관에서 근무한 전문가였습니다. 그의 임명은 국정원을 순수한 정보기관으로 다시 탄생시키기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선한 의지로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랫동안 이병호씨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는 정치적 야심도 물질적 탐욕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국정원장을 마친 그가 가진 전 재산은 소박한 연립주택 한 채와 통장에 든 약간의 현금이었습니다. 그게 노부부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그는 국정원장으로서 남은 특활비도 전부 반납하고 나온 청렴한 성품입니다. 그런 이병호씨가 지금 국정원 특수 활동비를 횡령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로 바친 국고손실범이 되어 감옥에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병호 국정원장이 공범이라는 것입니다. 이병호씨뿐만 아니라 법정에는 박근혜 정권의 다른 국정원장과 청와대 비서실장들이 함께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시대의 격류 속에서 이 사건은 그냥 유죄 쪽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언론에 선동된 분노한 대중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그 휘하의 국정원장들을 죽이라고 소리쳐 댑니다.


평범한 시민 변호사인 저는 이 사건의 본질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발전에 올인 하기 위해 중앙정보부를 창설했습니다.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는 순수정보기관이라기 보다는 때로는 정적을 제압하는 몽둥이를 쥔 손과 발의 역할까지 수행한 것으로 압니다. 돈도 그렇습니다. 국가정보기관 내에 돈의 저수지를 구축해 두고 그 돈이 정치권등 여러 곳에 흘러가게 한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후 전두환은 중정부장서리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그가 정보기관의 돈을 배경으로 정치권을 장악하고 당을 만들었다고 해석합니다. 정보기관의 돈이 정치판의 쌈지 돈이 되기도 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국민의 세금인 그 돈이 남용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정보기관은 탄생부터 그런 기형적인 구조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정권은 그동안 관행같이 사용해 온 특활비 문제를 박근혜정권의 적폐로 만들어 도덕성에 타격을 가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적폐청산의 명분이 그럴 듯해도 한정된 몇 명만 골라 처벌하는 것이 정의인가에 의문을 가집니다. 목적이 정당해도 방법과 대상선정에 독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치와 무관한 개인변호사로서 법정에서 원칙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법부가 정치나 혁명의 도구가 되지 말고 법대로 재판을 해야 합니다. 정치권력이 시스템화한 제도에 의해 제한되는 게 법치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입니다.


이 사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맡은 이병호 국정원장이 국고 손실죄가 되려면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돈을 어떻게 썼느냐가 확인되어야 합니다. 그게 불명확한 데도 대통령의 국고손실을 추정하면서 일심 재판부는 이병호 전 국정원장에게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검찰 측은 박근혜 님의 진술서 한 장을 달랑 법정에 내놓았습니다. 내용은 정말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비서관이 괜찮다고 해서 대통령이 그 돈을 받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그 진술서를 보면서 대통령이라는 분이 그렇게 밖에 쓸 수 없었던 것인지 의문이었습니다. 국정수행의 총책임자인 대통령이 비서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유치한 문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사회는 이상한 최면에 걸려있는 것 같습니다. 분노한 대중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난폭한 주장이 정의와 법이 되어 있습니다. 법원마저 그런 분위기에 위축되어 있습니다. 대통령이 국고를 손실했다는 증명이 없는데도 유죄판결이 선고된 것은 그런 배경에서 나온 소신 없는 결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돈을 어떻게 인식했고 어디에다 어떻게 썼느냐 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 한마디에 국정원장들과 청와대 비서실장들의 운명이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님의 그런 진술이 지금까지 기록의 어디에도 없습니다. 재판정의 판사나 검사 그리고 변호사들까지 박근혜님은 말을 할 리가 없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변호사인 저는 매주 팔십 노인으로 정신마저 혼미해져 가는 이병호씨를 감옥에서 봅니다. 이병호 전 국정원장은 남과 북 사이 정보전쟁의 마지막 사령관으로 김정은으로부터 죽음을 통고받은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북에서는 죽여야 할 남측의 테러리스트가 되어있고 남에서는 대통령에게 뇌물을 상납한 파렴치범이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노인인 그는 감옥 안에서 곧 죽을 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듭니다. 박근혜님 께서는 정년퇴직을 하고 평화롭게 살던 그를 왜 국정원장으로 임명하셨습니까?

죄인을 만들고 죽게 하려고 그러지는 않으셨겠죠. 제가 보기에는 나이든 다른 국정원장들이나 비서실장들의 모습도 비슷해 보입니다. 백발의 노인인 이원종 비서실장은 젊은 판사들 앞에서의 장시간 재판에 오줌이 마려워 피고인석에서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합니다.


이 사건 재판은 법이 아니고 정치라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병호 전 국정원장에게 당신은 촛불혁명의 제단에 바쳐진 제물인 것 같다고 직접 말해주었습니다. 법의 밥을 먹은 지 40년이 됩니다. 법의 해석은 정치상황에 따라 교활할 정도로 변하는 걸 봤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권력에 굴복한 사법부의 정치재판이 많았습니다. 전두환 정권에서도 대법원장이 되고 싶어 정치권력과 야합한 대법관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그 대법관이 한강다리에서 떨어져 인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광주에서 벌어진 시위대가 폭도에서 시위군중으로 또다시 나중에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헌법기관으로 변하는 법해석도 보았습니다. 시위가 전두환 정권에서는 내란으로 노태우 정권에서는 민주화 운동으로 변하는 사법부의 이중성도 보았습니다. 저의 시각에서는 박근혜님의 정권도 검찰권력과 법을 이용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3년 전 자유 총연맹회장에 출마한 전직 경찰청장이 있었습니다. 청와대의 현직 비서관과 경합이 됐습니다. 선거 전날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었고 그는 구속이 됐습니다. 변호하러 간 저에게 담당검사가 뭐라고 말한 지 아십니까? 검사인 그가 하는 건 ‘정무’지 ‘수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매일저녁 상황을 청와대에 보고하고 그 지침을 받는다고 그 검사는 변호인인 제게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평범한 서민 변호사인 저는 분노했습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의 잘못은 곧 박근혜님의 책임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실을 몇 차례 칼럼을 통해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일도 있었습니다. 박근혜님의 정권 초에 KBS재단의 비리를 따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박근혜 대통령께 직접 진정을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다 이상한 소리를 듣고 포기했습니다. 유력 일간지의 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호소하려면 문고리를 잡은 비서관에게 돈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을 되면 성공보수도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믿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서민 변호사인 저에게 대통령은 깊은 궁궐 속에 들어있는 여왕 같은 존재였습니다. 이 사건 수사기록을 통해 비서관들의 행태를 일부 보았습니다. 비서관 중에는 사업가에게서 법인카드를 받아 사용한 사람도 있습니다. 고위 공무원 중에는 문고리 비서관을 만날 때 마다 돈을 준 사람도 있었습니다. 박근혜님을 오랫동안 수행한 비서관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제가 들었던 소문이 허황된 것 만은 아닐 수도 있다고 짐작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당시 저는 박근혜님도 역시 검찰 권력을 이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은 법을 이용해서 정치보복을 하기도 하고 미운 사람을 누르기도 합니다. 박근혜님은 힘없는 사람들이 교만한 법에 의해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 아시는지요? 변호사를 하면서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만들어지는 걸인을 보기도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 고문을 당하고 죽어서 야산에 묻혀버린 사람도 보았습니다. 사법의 제단에 올려 진 것은 박근혜님이 처음이고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은 그래왔습니다. 다만 필요한 것은 소크라테스의 독배나 예수님의 십자가같이 역사 앞에 남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뒷골목 개인 변호사인 저는 시대의 격류나 정치적 힘에 맞설 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벌거벗은 임금님이라는 동화에 나오는 소년같이 진실을 말하려고 애는 씁니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돈에 있어서는 치사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나랏돈을 개인을 위해 착복할 분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변호를 맡고 있는 이병호 전 국정원장도 국고를 손실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박근혜 님의 이런 한마디가 법정에서 꼭 필요합니다.

“나는 돈에 대한 탐욕으로 공과 사를 구별 못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국정수행은 했어도 국고를 손실하게 한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쉬운 한마디가 없습니다. 박근혜님 본인에 대한 재판을 거부하는 것은 자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충성하고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병호 전 국정원장에 대한 재판은 별개라는 생각입니다. 박근혜님은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그 침묵이나 증언거부는 거짓을 진실로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국정원장과 비서실장들도 죽이고 있습니다. 왜 무의미한 동반자살을 원하시는 겁니까?


박근혜님은 절대 증언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재판장은 말합니다. 변호사로서는 입증이 가장 중요합니다. 차선책으로 문고리 3인방의 대표인 비서관을 신문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그가 “박근혜 대통령은 돈에 대해 그런 치사한 인간이 아닙니다. 올곧은 분입니다. 지금 절망 속에서 엄청나게 아파하고 있어요 도와주세요”라고 한마디만 해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실망스러웠습니다. 저는 박근혜님의 심복이던 비서관에게 대통령이 개인 계좌에서 인출한 월급을 어디에 썼느냐고 물었습니다. 대통령이 사적으로 필요한 비용을 공금이 아닌 자신의 월급으로 사용한 사실을 입증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온 수행비서를 통해 대통령의 인간성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몽둥이를 본 개처럼 그는 겁을 먹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나머지 비서관 두 사람은 증언을 거부했습니다. 비서관들 모두 배경에 겁먹고 말못할 사유를 짐작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선거를 함께 거치면서 이십년 세월의 주종관계가 이런 것인지 박근혜님께 되묻고 싶습니다.


저는 법정에서 역대 국정원장들이나 청와대 비서실장의 절실한 표정도 읽었습니다. 그들은 박근혜님이 “저는 국고를 손실하지 않았습니다. 제 밑에서 수고하던 국정원장들이 보낸 돈은 뇌물이 아닙니다. 모두가 제 책임입니다”라고 한마디 해 주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관료주의에 길들여진 그들은 감히 그 런 요구를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변호사인 저는 박근혜님이 법정에 나와 진실을 말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이 거짓으로 거짓이 진실이 되는 세상입니다. 침묵은 거짓을 진실로 만들기도 합니다. 왜 한마디를 그렇게 아끼십니까. 그 한마디만 있으면 감옥에서 죽어가고 있는 노인 이병호가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핵심증인은 박근혜님입니다. 그러나 일심부터 항소심이 마쳐지는 지금까지 누구도 박근혜님을 증인으로 신청한 사실이 없습니다. 알맹이를 일부러 빠뜨린 듯한 재판입니다. 저는 뒤늦지만 박근혜님을 증인으로 정식으로 신청했습니다. 그에 대한 재판장의 말은 이랬습니다.

“이 법원의 다른 재판부에서도 박근혜가 증인으로 채택되었는데 안 나왔어요. 실효성이 없을 걸요.”

옆에 앉았던 변호사는 저에게 귓속말로 “박근혜 증인을 재판부에서 채택할 리가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랜 세월 법정을 드나들면서 이런 경험을 종종 했습니다. 변호사는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해 증인신청하는 게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받아들이고 아니고는 판사의 책임입니다. 결정적인 증인을 거부하고 왜곡된 판결을 만든 법관이 있다면 그 가 그 불법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법정에 나와 진실을 말할 의무는 증인에게 있습니다. 그걸 회피해서 억울한 희생이 나오게 된다면 그건 증인의 양심이 담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재판장은 저의 고집을 받아들여 박근혜님을 증인으로 채택했습니다. 검찰도 체면을 의식했는지 이제야 공동증인으로 신청한다는 의사를 피력했습니다. 변호사가 신청을 하는데 입증책임을 진 검찰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던 겁니다. 그렇게 해서 2018년10월19일 오후2시 증인신문일정이 잡혔습니다. 촉박한 일정입니다.


변호사인 저는 박근혜님이 법정에 나와 주실 것을 정중하게 말씀드립니다. 이건 부탁이 아닙니다. 박근혜님은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의 헌법과 안보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던 분입니다. 법정에 나와서 진실을 말하셔야 합니다. 박근혜님께 충성하고 대한민국을 위해 김정은과 목숨을 걸고 싸운 이병호를 살리기 위해서 나오셔야 합니다.


박근혜님 자신을 위해서도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철학과 의지를 분명히 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신 1979년 무렵 저는 법무장교로 서울지역의 군사법원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죄로 군사법원에 끌려와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내란죄로 꾸민 정치적 모략이었습니다. 재판관들은 모두 허수아비였고 권력의 실세가 뒷방에서 그들을 원격조종하고 있었습니다. 모니터로 법정을 보면서 마네킹 같은 재판관들에게 수시로 쪽지를 보내 지시 하는 걸 저는 목격했습니다. 재판은 껍데기에 불과했습니다. 저는 김대중이라는 분이 군 검사가 작성한 조서의 끝에 쓴 글을 보고 놀랐습니다. 조서의 끝에 군 검사가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나요?”라고 한 형식적인 질문에 예언 같은 말들을 또박또박한 글씨로 남겨놓은 걸 봤습니다. 저의 희미한 기억이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쓴 내용은 이렇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인정받지 못하겠지만 이십년이 흐르고 삼십년이 흐른 후 민주화가 오면 군사법원의 음침한 사무실에서 했던 나의 말들은 새로운 의미로 빛이 날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쓰레기 같은 모략조서라도 한자 한자 오탈자까지 직접 확인하고 자신의 손도장을 찍어두는 걸 보았습니다. 그 때 느꼈던 마음속의 울림이 육십대 중반이 넘은 지금도 저의 가슴속에서 파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수사나 법정에서의 말이나 글은 판사들만 보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관대하게 봐달라는 비굴한 호소도 아닙니다. 역사 앞에 영원히 살아있는 생생한 목소리입니다. 일제시대 악질 검사들이 독립 운동가를 조사한 수사기록은 지금 국립중앙도서관에 귀중한 자료로 남아있습니다. 당시 변호인들의 변론서는 역사적 유물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남긴 말이 세월이 흐르면 가장 귀한 보석이 됩니다. 5.16혁명재판소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신현확 장관도 가족이 오게 하여 자신의 말을 철저히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정치재판에서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재판장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역사 앞에서 더 큰 죄인이 되는 걸 저는 보았습니다.


저는 검찰에서 증거로 제출한 자료 하나를 봤습니다. 2017년4월8일 한웅재 검사가 박근혜 전대통령을 조사하면서 작성한 조서입니다. 대부분의 질문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은 몰랐다거나 기억이 없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라는 애매한 표현을 합니다. 검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현금을 최순실 에게 주어 의상비로 지급했다는 진술을 조서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현금이 대통령의 월급을 인출한 것인지 국정원의 공금을 사용한 것인지가 불분명합니다. 검찰은 이재만 비서관한테서 국정원에서 올라온 돈을 현찰로 대통령의 서재에 가져다 놓곤 했다는 진술을 확보해서 법정에 제출했습니다. 검찰의 조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의 세금으로 옷이나 해 입는 부패한 인물로 만든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조서의 끝부분에 검사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없나요?”라고 묻자 박근혜님은 “없습니다”라고 간단하게 자필로 기재한 부분이 보였습니다. 정말 할 말이 없으셨습니까? 시대의 광풍이 불었습니다. 여성 대통령에 대한 더러운 소문이 황사처럼 세상을 덮었습니다. 그 소문은 시민들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었습니다. 정말 할 말이 없으셨습니까? 누군가 신하가 대신 해줄 것 같습니까? 너희들과는 대화를 안 해, 라는 신분이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건 아닙니까?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박근혜님을 증인으로 신청한 저는 변호사로서 신문할 권리가 있고 박근혜님은 출석해서 답변할 공적인 의무가 있습니다.

저는 변호사로서 내가 맡은 한 노인의 누명을 벗겨줄 소명이 있고 박근혜님은 자신의 부하를 지켜줄 지도자로서의 의무가 있습니다. 증언에 응해 주셔야 합니다. 저는 박근혜님께 진실과 정의가 무엇인지를 물을 것입니다.

힘든 분에게 너무 말이 많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에 대해 조금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가난한 집 아들이었던 저는 칠십년 대 초 고교시절 교련복을 입고 학생중대를 이끌고 학교 부근이었던 청와대 앞을 지나곤 했습니다. 청와대의 아치식 철문의 흰 창살 안쪽으로 파란 잔디가 보이곤 했습니다. 궁궐 같은 그 안에는 공주님이 살겠구나 상상하곤 했습니다. 그게 당시 여고에 다니던 박근혜님이었을 겁니다. 대학초년 시절 육영수여사가 불행을 맞이하셨습니다. 고지식하고 가난한 시민이었던 어머니는 국모가 돌아가셨다면서 청와대 앞으로 가서 대성통곡을 하셨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저 세상으로 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어머니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임금님이셨고 박근혜님은 신분이 다른 공주님이었습니다. 박근혜님이 대통령으로 된 이면에는 우리 어머니 같은 분들의 뒷받침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6.25전쟁 중 폐허에서 태어난 저는 판자 집들이 굴 껍질 같이 붙은 낙산 아래 살면서 미국에서 건너온 헌 옷과 옥수수가루로 만든 빵을 얻어먹고 자란 세대입니다. 대학졸업까지도 저의 숟가락은 미군야전병원에서 쓰던 것이었습니다. 방글라대시의 소년들을 소개한 영화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자라던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세월저쪽의 비 오는 날 까만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 소년이 교실 창가에서 ‘마이카’시대가 온다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경악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당시로서 저는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세월의 강물이 흐르고 대한민국은 부자나라가 됐습니다. 잘살아 보자면서 국민들을 한마음으로 묶어 번영을 이룬 박정희대통령의 공입니다. 수많은 국민들과 함께 저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서민의 아들인 저는 고시라는 관문을 통과해 변호사자격을 얻었습니다. 저는 작은 법률사무소를 차리고 영화속 주인공 빠삐용같이 절망 속에 빠진 사람을 다섯 명 정도 자유의 땅으로 인도하는 뱃사공이 됐으면 좋겠다고 소망했습니다. 변호사를 천직으로 알고 예순다섯살인 지금까지 세월을 흘러왔습니다. 금년에 나의 생업을 그만두기로 예정했었고 마지막손님이 이병호 전 국정원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소시민인 저의 일생이었습니다. 저는 정치권력을 바란 적도 없고 부자가 되기를 꿈꾸지도 않았습니다. 서민의 아들로 타고난 작은 그릇대로 운명에 순응하고 주어진 직업에 충실하려고 노력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비슷한 나이인 박근혜님이 궁금해졌습니다.


박근혜님은 왜 정치에 발을 들여놓으셨습니까?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었습니까? 저는 박근혜님에게 훌륭한 아버지가 남겨준 정신적 유산과 미처 다 못 이룬 청사진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남긴 그 청사진 속에는 국민 한 사람 한사람이 억울한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는 따뜻한 민주주의가 있을 것이라고 소망했습니다. 시대조류가 강하게 소용돌이 치고 그 속에서 박근혜님은 지금 시대의 악으로까지 매도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시대의 책임이 한 사람의 지도자나 한 계급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박근혜님은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었습니까? 이제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몸이 아프시거나 다른 사정이 있으셔서 도저히 증언을 할 수 없으시다면 간단한 진술서를 보내 주십시오. 그 몇 자를 쓰실 기운은 있을 것으로 봅니다. 기일이 촉박합니다. 거창한 정치적 수사보다는 진실이 담긴 작은 한마디가 정의를 이룰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박근혜님이 이 시대의 불시험을 통과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캄캄한 밤을 지새우는 인내를 가지셨으면 합니다. 그래야 푸른 새벽의 여명을 보실 수 있을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10월 일


변호사 엄 상 익

[ 2019-02-25, 12:3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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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포터    2019-02-26 오후 4:41
상익이 횽은 좌로 좀 기울어진 사람이네.
실제로는 더 기울어졌겠지만.
변호를 위해서는 박언니 말이 필요하긴 헌디...
무튼, 횽은 나이가 먹어도 아직 철이 덜 들었네 그려.
   stronger    2019-02-26 오후 4:03
<비서관이 괞찬다고 해서> 라는 증언 보다 더 진솔한 말이 어디있냐. 한글자도 더하지도 빼지 않고 있었던 진실 그대로 한 말로 보인다. 그런데 법치라는 이름으로 불법재판을 하고 있는데, 누구를 위하여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으며, 한다고 들어줄 좌파라고 생각할 수 있겠나. 그래서 재판을 거부한 것이며, 그것은 즉 재판을 포기한 것과 동일한 것 아닌가? 그거은 다른 말로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전쟁 중에 무슨 변명을 한단 말인가..

   自由韓國    2019-02-26 오후 12:36
다 좋은데 예로든게 하필 김대중인것이 아쉽네요
   골든타임즈    2019-02-26 오전 10:58
박대통령 탄핵은 원천무효이다. 즉각 원직복직 시켜야 한다.
   황야의 함성    2019-02-26 오전 2:41
전 기무사령관 고 이재수 장군은 '공은 부하에게 책임은 자신에게'라는 인생 모토하에  유서에서도 "내가 모든 것을 안고 가는 거로 하고 모두에게 관대한 처분을 바란다. 군 검찰 및 재판부에 간곡히 부탁한다"고 하고 장렬히 자결했다.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박근혜는 얼마전에 그 지지자들에게 조차 그 정체성에 대해 의혹을 사고 있는 유일한 면담 상대자인 유영하 변호사를 통해서 수감된 지 678일 만에 최초로 하는 발언이 정확한 전언인지는 모르나 국민과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말은 별로 없이 감방 내의 책상 의자, 수인(囚人) 번호 등과 관련하여 특정 정치인들을  힐난하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박근혜의 극도의 무능을 아래에서 지적했다.
 대통령의 무능은 절대로 헌법상의 법리로 대통령  탄핵요건이  못된다.

그러나 박근혜의 무능이 탄핵의 단초를 불러오고 좌파를  중심으로한 선전 선동  궂장단에 무당춤 추는 데 빠져든 개돼지 수준의 촛불광란떼 에  대해 무슨 역사의 정의의 신이라도 있느냥 진실은 밝혀진다는 헛소리만하며 극단적으로 무능했던 박근혜!!

그 결과 그 자신은 몰락하고 보수 우파는 철저히 괴멸되고 현재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핵을 가진 북의 살인귀 전체주의 집단 앞에 내외적으로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다!

옛날  소설가 김성한은 그의 소설 '임진왜란'에서 "무능한 통치자는 만참으로도 부족한 역사의 범죄자다"라고 했다!

일국의 대통령을 지냈던 이로서 국민과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는 기본적 자세로 이제라도  책임있는 진정한 정치인으로 거듭 나지 않는 한, 보수 우파에게 박근혜나 탄핵문제의 집착은  지금처럼 계속 보수우파의 분열과 지리멸렬만을 고착시킬 발목을 잡는 문제일 수밖에 없으니 박근혜 개인에게 맡겨 놓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stargate    2019-02-26 오전 2:15
글쎄요 저는 오히려 엄 변호사님을 이해 하기 힘듭니다.
정말로 이 편지를 박근혜 대통령 앞으로 보냈다면 아마도 답장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박대통령이라면 철없고 속좁은 사람으로 묘사하고 하고 있는 이 편지를 받은면 대단히 모욕적인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편지의 내용이 보다 자세한 진술서를 다시 보내 달라는 의도 보다는 뭐 이따위 무성의한 진술서를 보냈느냐는 비난과 야유이지 정말로 제대로된 진술서를 다시 보내달라는 취지는 아니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이 제출한 진술서라는 것이 어떤 상황에서 작성 되었는지 이병호 원장 재판에 재출된다는 사실을 박 대통령이 인지하고서 진술한 내용인지 모르지 않습니까?
이병호 원장님의 재판관련으로 현재 상황을 말씀드리고 박대통령의 보다 자세한 진술이 필요하면 그 사유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협조를 부탁한다고 얘기하면 있었던 일을 그대로 진술서를 써 줄 것으로 봅니다.
일전에 다른 재판 관련으로 박 대통령이 진술서를 보낸 일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편지는 예의에 어긋난 무례하기 이를데 없는 내용이 너무나 많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야    2019-02-25 오후 9:17
두서없이 제 느낌을 적어봅니다.
사건을 맡은 변호사 입장에서 쓰신 서한문이지만, 받는 사람의 가슴을 찌르는 비수같은 표현이 간혹 보입니다.
이를테면 "박정희대통령이 시해된 후" 라는 표현은 "시해" 대신 "서거"라는 표현을 쓰시는게 당사자의 따님에 대한 도리가 아닌가요?
또한, 박정희 대통령의 평생의 정적이었던 김대중씨의 일화가 팩트일지언정 진심으로 들리지 않는 느껴졌습니다. 그는 사형수로 전두환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목숨을 구걸하면서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 희대의 거짓말장이었죠. 글의 무게추가 조금은 기울어진 것 같아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주저리 주저리 넋두리를 해서 죄송합니다.
   單騎匹馬    2019-02-25 오후 3:54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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