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에 깊숙이 들어왔다북한의 장거리 땅굴 굴착 가능성에 대해서 회의적인 군인들까지도 땅굴침투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 곳이 한 군데 있다. 그곳은 김포반도다. 지난 5월호 기사와 이번 기사에서도 소개되어 있지만 이 지역과 관련된 징후나 첩보도 유달리 많다. ①귀순자 이영우, 김남준씨의 화곡광산에 대한 증언 ②해병사단 청취병의 지하 폭파음에 관한 증언 ③정지용(鄭址龍)씨가 김포군의 여러 시추공에서 녹음한 굴착음이 기계음으로 분석된 사례들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5월호 기사를 읽고 모 군사학교에선 장교들끼리 토론이 벌어졌는데 김포반도를 지키는 해병부대 출신 장교들은 땅굴이 김포 등 서울근교로 들어왔다는 견해를 보이더라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3군사령관을 지낸 한 예비역 장군은 『제4땅굴이 발견되는 것을 보고서 김포에 땅굴이 들어와 있다는 심증을 더욱 굳혔다』고 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별로 전략적 가치가 없는 곳에 제4땅굴을 뚫었다면 서울과 가장 가까운 김포 반도에 안 뚫었을 리가 없지요. 지금까지 발견된 1, 2, 3, 4땅굴이 전 전선에 걸쳐 거의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는 것은 북한측이 사단별로 2개 이상씩 의무적으로 뚫었기 때문인데 김포에선 발견이 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군 전략 부서에 근무하는 한 장성은 이렇게 말했다. 『김포 방어가 잘못되면 한국의 아르덴느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프랑스 육군은 독일과의 국경선을 따라 주력을 배치했는데 오른쪽의 마지노 선과 왼쪽의 베네룩스 3국 국경선에 중점을 두었고 그 사이에 있는 프랑스 아르덴느 지방은 숲 지대로서 독일 기갑부대가 통과할 수 없으리라는 안이한 판단 하에서 방비를 소홀히 하였습니다. 독일은 이 아르덴느 지역에 기갑부대를 집중 塚? 순식간에 전선을 돌파한 뒤 무서운 속도로 도버해협 쪽으로 진격, 그 오른쪽의 프랑스 육군 주력(베네룩스 방어를 위해 북상)을 파리와 차단, 고립시켜버렸습니다. 프랑스는 파리주변에는 예비병력을 갖고 있지 못했고 진격하는 독일 기갑부대를 막을 수가 없어 대병력을 북쪽에 고스란히 두고도 손을 들어버린 것입니다.
만약 북한 인민군이 김포반도 깊숙이 장거리 땅굴을 파 놓고 있다가 기습을 벌이면 우리가 프랑스처럼 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땅굴을 통해 나온 경 보병 여단 병력이 주 저항선(한강 하류)의 배후를 치고 한강 남쪽으로 돌진하는 사이에 적 주력이 한강 하류를 도하, 혼란에 빠진 우리의 방어선을 돌파한 뒤 김포반도로 쏟아져 들어온다면 이것은 파국입니다. 이 작전에서 적은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 남진할 때를 기준으로 하면 오른쪽은 서해안, 왼쪽은 한강으로서 측면 방어가 쉽습니다. 평야지대로서 기동에도 유리하지요. 단기간의 전격작전으로서 김포공항, 인천항을 무력화시키고 한강 남쪽을 점령, 서울을 배후로부터 고립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전세를 결정지을 치명적인 타격입니다. 김포로 장거리 땅굴이 뚫려 있다면 그것은 심장을 향해 꽂히는 비수입니다』
홍성태(洪晟太)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소장은 김포반도로 땅굴이 들어왔을 경우 우리가 받을 타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포반도에 땅굴이 뚫렸다면 북한군은 이 땅굴로 침투, 경인고속도로→1번 국도(서울―부산)→경부고속도로의 순서로 차단을 시도할 것입니다. 한·미군은 북한의 주공(主攻)이 문산 철원 방면으로 향할 것으로 보고 이 지역에 몇 겹의 방어선을 구축해 놓았는데 이렇게 김포 쪽으로 침투한다면 완전히 뒤통수를 얻어맞는 꼴입니다. 결국 김포지역 땅굴로 북한군이 침투한다면 서울은 3면에서 포위되는 셈입니다』
서울 고립, 전방부대 협공
김포반도로 쏟아져 들어올 북한의 대부대는 서울로 들어오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전략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서울로 들어오면 시가전이 벌어질 것이고, 나치 독일군이 소련의 스탈린그라드에서 당했듯이 건물 하나 하나를 빼앗고 빼앗기는 끝없는 전투의 늪에 빠져버리라는 것을 북한측도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경인국도를 가로지르며 안양, 수원 쪽으로 남진했다가 좌회전하여 서울을 서해안과 남쪽으로부터 완전히 차단해버리면 서울 포위망이 성립되고 한국군의 70∼80%는 한강 휴전선을 돌파하여 남진하는 인민군 사이에 끼여 버린다. 이럴 때 우리 전방야전군이 할 수 있는 조치는 평양 쪽으로 북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배후에서 서울 포위망이 먼저 완성돼버리면 보급로가 끊긴 상태에서, 더구나 사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그런 사생결단의 역습이 성공할 수 있을까? 한 예비역 장군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원폭을 쓰는 수밖에 없으리라고 했다.
전세가 불리해지는 상황에 직면하여 미국이 그런 결정을 수일 내 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종심(縱深)이 얕은 한국은 서울의 위치 때문에 적의 기습에 대처할 만한 공간과 시간을 갖고 있지 않다. 소련이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기습을 당하고도 재기 할 수 있었던 것은 드넓은 국토공간 덕분이었다. 한국이 재기하려면 길어야 며칠, 짧으면 몇 시간의 여유밖에 없는데 심장이 일격을 당한 상태에서 과연 그런 회복이 가능할 것인가. 서울이 함락되고 그 북쪽의 병력이 궤멸돼버리면 부산까지는 거의 「무병(無兵)지경」이 돼 전쟁은 끝나버린다. 즉 통일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김일성(金日成)이 악마적 지도자라고 해도 한 민족이 통일돼버리면 미국이 다국적군을 상륙시켜 다시 분단시킬 명분이 없어진다. 1백만 인민군을 제압하기 위해선 2백만 명 이상의 다국적군이 조직돼야 한다. 어느 세월에 어디에서 그런 병력을 끌어 모을 수 있겠는가. 우리 국민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위대한 근대화의 업적은 고스란히 金日成의 밥이 되는 것이다. 국민이 아무리 위대해도 정치적 지도층이 지리멸렬하면 나라는 결단날 수 있다. 전쟁에는 1백 명의 병정보다 한 명의 장수가 더 중요한 법이다.
가장 안전한 파이프라인
전쟁의 매력은 외교가 수십, 수백 년을 걸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단숨에 해결한다는 데 있다. 남한의 어떤 정치지도자보다도 金日成은 군사력과 전쟁의 결정적인 중요성을 꿰뚫어볼 수 있는 경험을 축적해온 지도자이다. 그는 북한이 비록 외교력과 경제력에서 남한에 비해서 열세이지만 군사력을 대등하게 유지하고 있기만 한다면, 그리하여 결정적 시기와 결정적 장소를 선택하여 전략적 기습을 감행할 수만 있다면 일거에 남한을 석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을 터이다. 金日成은 기습에 의한 전격전으로써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10만 특수부대는 그런 기습의 주역이다. 이들이 남한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공중, 해상, 지상, 지하이다. 이 가운데 최대의 안전, 최다의 병력이동, 최岵?공격로 선택이 가능한 것은 장거리 땅굴을 통한 기습이다.
1만 명의 특수부대를 비행기로 낙하시키려면 3백대가 동시에 떠야 한다. 비행기는 격추되고, 낙하한 군인들은 분산되고 하여 효과적인 기습은 어려울 것이지만 땅굴에 의한 기습은 거의 1백% 초기 성공이 보장된다. 북한은 지하 10m 이내에 있는 암반 층까지만 뚫어 놓고 있다가 개전과 동시에 얇은 지표 층을 헤치고 나올 것이기 때문에 출구를 들킬 염려는 거의 없다. 일단 대부대가 지하에서 지상으로 「상륙」하기만 한다면 출구를 지켜 교두보로 만들기란 쉬운 일이다. 이 교두보가 하루만 지켜진다면 북한은 수만 병력을 서울 근교로 쏟아 부을 수 있다. 더구나 땅굴 굴착작업은 안전한 투자다. 적어도 작업군인들이 포로로 잡힐 염려가 없다. 두께 수십m 이상의 바위 층이 갑옷 역할을 하여 한국 측이 땅굴을 발견하고도 역갱을 뚫어 관통하는 데는 수개월이 걸리므로 대피는 물론이고 증거인멸을 끝내고 북으로 달아나버릴 시간적 여유가 충분한 것이다. 정명환(鄭名煥) 장군은 『북한이 뚫은 땅굴 중 최후의 하나만 발견 당하지 않아도 그들이 이길 수 있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김정일(金正日)이 그들의 측근들과 함께 벌이는 변태적인 심야파티에 여러 번 참석하였던 신상옥(申相玉)씨는 기자에게 이런 인상을 전해주었다. 『꼭 어떤 마을을 점령한 마적단의 축제 같습니다』 점령당한 마을이란 북한을 가리킨다. 김일성(金日成) 집단이 북한과 북한 인민을 하나의 노획물로 생각한다는 것은 민중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그들의 호화방탕이 잘 말해주고 있다. 그들이 진정한 공산주의자라면 심야파티에서 한국의 최신 유행가를 부르고 한국 텔레비젼 드라마를 열심히 시청하는 따위의 행동은 할 수 없는 것이다. 申감독에게 그들이 한국 유행가를 즐겨 부르는 심리를 물어본 적이 이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동경심 때문이었습니까? 『천만에 말씀입니다. 오히려 한국사회를 얕잡아 보는 심리에서 그런 노래를 눈치 안 보고 부를 수 있다고 봐야지요. 언젠가는 우리 수중에 들어올 약탈 대상물이니 그쪽 노래를 못 부를까 보냐 하는 식의 배짱을 느꼈습니다』
전쟁을 원하는 북한군과 주민들
최근에 金日成을 면담했던 대우그룹 경협대표단의 한 인사는 『金日成이 1995년엔 꼭 통일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고 말했다. 다른 인사는 『실무협상에서 우리가 깐깐하게 나오니 북측 인사가 무심코 하는 말이 「뭘 그렇게 꼼꼼하게 합니까. 확 치고 내려가면 다 우리 것 되는 건데…」였다.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의 표현 같았다』고 했다. 金日成 부자는 남한의 발전상을 인정하면서도 『잘 차린 밥상을 우리가 무력으로 차지해 버리면 되는 건데 뭘…』 하는 마적단식의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金日成뿐 아니라 대부분의 북한 주민과 인민군인들은 통일을 위한 전쟁은 불가피하며 통일준비 때문에 이렇게 고생할 바에야 빨리 전쟁을 해서 이 고생에서 벗어나 버리고 싶다는 심리를 갖고 있다. 그들은 못 사는 원인을 통일준비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이기적 이유에서도 통일과 통일전쟁을 열망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인민군이 초기의 기습에 성공한다면 통일 열정에 사무친 그들의 사기는 엄청날 것이다.
기습당한 한국군의 사기는 어떨 것인가. 수도권 부대에서 최근에 전역한 하사관 출신의 50대 택시 운전기사는 이렇게 말했다. 『수도권에 근무하면 대도시의 분위기에 흡수되어 군인들도 해이해집니다. 전방 군인들과는 달라지지요. 그런 상황에서 적의 정예 특수부대에 의해 기습당하면 목숨 걸고 싸우기가 힘들 겁니다. 북의 기습 부대원들은 손톱 깎고 머리카락 잘라 놓고, 유서를 써놓은 뒤 죽을 각오로 덤비는데 막는 쪽에선 겁을 집어먹고 있을 겁니다』 허화평(許和平)씨(육사 17기 출신·포항지역 국회의원 당선자)는 『기습의 진짜 효력은 심리적인 것이다. 기습당한 쪽이 당혹·공포에 휩싸여 버리면 기습부대보다 월등한 장비를 갖고서도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우리 군의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고 있는 가능성은 김포반도 깊숙이 북한의 땅굴이 침투했으리라는 점이다. 정지용(鄭址龍)씨가 김포공항 바로 앞의 지하 시추공에서 녹음한 테이프에서도 지하 기계음이 들리고 있다. 월간조선 취재반도 많은 군 지휘관들과 함께 김포에 북한 장거리 땅굴이 들어 왔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다. 이제 우리 군은 잇단 땅굴탐사 실패에 따른 무력감에서 털고 일어나 이 문제를 전 국민 앞에서 공개하고 범국가적인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이다. 배 밑창에서 물이 새고 있는 것을 발견한 선원은 혼자서 그것을 막을 실력이 없다면 승객들을 깨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법이다. 북한의 장거리 땅굴굴착에 대한 우리 정부의 확고한 시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개되는 통일정책과 남북협상은 남한을 위험한 덫으로 이끌고 갈 위험이 있다. 북한이 우리의 등뒤에 비수를 들이대고 있는지 꽃송이를 들고 있는지를 확실히 알아야 포옹을 하든지 어퍼컷을 날리든지 할 것이 아닌가.
軍은 무엇을 할 것인가
군의 입장
월간조선 취재반은 지난 한달 동안 수십 명의 한국군 고위 관계자들을 만났다. 전·현직 육군 수뇌부 인사들을 비롯, 땅굴 탐사의 경험자들, 그리고 사병, 하사관 출신들까지 두루 면담하였다. 우리는 이들에게 정지용(鄭址龍)씨가 지하 시추공 내에서 녹음한 굴착음 소리와 갱차음 테이프를 들려주곤 했다. 鄭씨에 대해서 부정적인 정보를 갖고 있던 이들도 너무나 생생한 기계음에,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도저히 지하 자연음이라고 볼 수 없는 그 소리에 충격을 받고 우리의 질문에 대체로 진지하게 답변하였다. 땅굴탐사에 직접 관계한 적이 있는 전·현직 군 인사들은 거의 전부가 북한이 장거리 땅굴을 서울 근교까지 뚫었을 가능성에 동의하고 있었다. 현직 군 고위 인사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대강 이런 하소연이 된다.
『우리도 그런 의심을 갖고 있으니 계속 땅굴을 찾는 시추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못 찾으니 미칠 지경이다. 북한의 굴착음으로 판단되는 소리를 우리 군도 여러 차례 녹음하였다. 그러나 그곳을 벌집 만들 듯 쑤셔도 발견이 되지 않고 있다. 우리는 땅굴을 찾아내야 큰 소리를 칠 수 있는데 기자들은 지하기계음 만으로도 문제를 제기할 수가 있으니 입장의 차이가 크다. 땅굴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서울 근교에 장거리 땅굴이 진출했다고 발표하면 군에 대한 불신이 생기고 국민들은 불안해할 것이고 그렇다고 쉽게 찾아지는 것도 아니고…』 물론 군의 땅굴 탐지 부서는 기자들에게 「북한이 장거리 굴착을 할 능력이 없으며 1980년대 초반에 땅굴굴착을 중단한 것으로 판단한다」견해를 제시하고 있으나 이것은 결코 군 전체의 합의된 견해가 아니다. 그렇다고 군이 내부적으로「북한은 현재 장거리 땅굴 굴착 중」이란 판단을 내려놓고 체계적인 탐사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보상금은 없다
북한이 장거리 굴착을 하지 않고 있기를 은근히 바라면서도 계속 나타나고 있는 후방지역의 징후들을 부인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이 징후들을 정직하고 용기 있게 받아들여 「장거리 땅굴이 서울 근교로 들어오고 있다」는 판단 하에서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고 그 바탕 위에서 대책을 세울, 그런 결단을 내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에 북한 땅굴은 계속 뻗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 군은 변명의 논리에 유혹되고 있다. 군 담당 부서에서는 지난 4월에 「서울 근교의 지하기계음」이 보도되자 「북한의 경제적, 기술적 수준으로 미루어 장거리 굴착은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힌 것으로 신문에 인용되었다. 10∼20km 정도의 장거리 땅굴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거창한 지하 터널공사나 해저 가스저장고 공사가 한국 내에선 예사로 이뤄지고 있는데 북한만이 그런 공사를 못하리라고 보는 것은 너무나 안일한 사고방식이다. 군 담당 부서의 그런 견해 표명은 위험하기도 하다. 만약 장거리 땅굴이 서울 근교에서 발견되었다고 해도 북한이 우리 군 측의 그런 견해를 인용하면서 그 발견을 조작이라고 덮어씌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군에선 또「민간 시추자들이 3억원의 보상금을 노리고 있다」는 요지의 해명을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민간인이 땅굴을 발견해도 현행 법규로써는 어떤 보상을 해줄 수가 없게 돼 있다. 민간 시추자들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 군의 냉소적이고도 명예 훼손적인 코멘트는 민간인을 대하는 군의 관료적이고도 자기 방어적인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심지어 책임 있는 한 군 고위 참모는 『민간 시추자들은 온천을 찾기 위해 그런다』는 보고를 상부로 올리고 있었다. 온천을 찾으려면 비밀리에 (찾으면 땅값이 오르므로)해야 하고 지하 수백m를 뚫어야지 이들처럼 1백m 이내를 뚫어선 냉수만 나온다. 군 담당 부서에선 민간인들이 녹음한 지하음이 기계음으로 분석되자 『조작된 것』이라는 말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 조작이라면 민간인들을 형사처벌 해야 할 문제인데도 아무런 근거 없이 마치 땅굴 찾는 이들을 적으로 생각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일부 고위 국방관계자들은 그런 보고를 받아서인지 순진한 민간인들을 사기꾼처럼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러한 선입감이 북한의 장거리 땅굴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눈을 흐려놓고 있었다.
우리 군은 지하음을 듣고 시추를 하여 땅굴을 발견하지 못하면 자신의 탐사기술과 의지의 부족을 탓해야 할텐데 그 지하음 자체를 부인해 버리는 자기합리화적인 유혹에 빠져 있다. 아무리 기계음으로 분석되고 육청(肉廳)된 것이라고 해도 그 부근을 시추하여 땅굴이 안 나타나면 「자연음으로 본다」는 식이다. 그 동안 우리 군이 그런 식으로 넘겨버린 수많은 지하음이 실제로는 땅굴 작업음 이었음이 밝혀질 날이 올 것이다. 군은 지난 86년 강원도 화천 지역(남방한계선에서 10여km 남쪽으로 떨어진 위치)에서는 그런 지하음이 들리는 곳을 집중적으로 시추하였고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곳을 집중적으로 시추하였고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을 선택, 수직 갱 굴착까지 시도했었다. 이 작업에 참여했던 군인들은 지금도 『그때 들었던 갱차음이나 착암기 유사음은 틀림없이 북한 땅굴 작업음 이었음을 의심치 않는다. 다만 발견을 못했을 뿐이다』고 말하고 있다. 땅굴 출구 예상지역이 평화의 댐 공사로 수몰될 예정지역에 있었으므로 우리 군에서는 「땅굴을 발견 못해도 어차피 물 속에 들어갈 터이니…」하는 생각에서인지 결말을 내지 못한 상태에서 탐사를 중단하였다. 그 뒤 평화의 댐 공사가 중단되는 바람에 출구 예상지역은 수몰되지 않은 상태로 드러나 있다.
대북(對北) 경계심의 무장해제
우리 군에선 「장거리 땅굴 문제」가 아직도 잠복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장거리땅굴의 전략적 가치는 전세를 결정지을 만한 것이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또 서울 근교에까지 침투했을 가능성을 확신하는 지휘관들이 많은데도, 한국군은 이 문제와 정면으로 대결하여 분명한 판단을 내리려 하지 않고 있다. 그 원인은 대강 이러한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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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제 6공화국 출범 이후의 통일정책은 북한에 대한 민족애와 포용성과 근거 없는 낙관론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군인들의 마음속에서 대북(對北) 경계심을 크게 약화시켰다. 1백만의 적을 눈앞에 두고서도 일부 한국군 장교들은 『이제는 가상적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할 정도가 되었다. 우리 군은 민주화 과정에서 더욱 확실하게 사회 속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사회의 분위기를 그대로 흡수하고 사회와 맞물려 돌면서 어느새 북한에 대한 경계심이 무디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번 취재를 통해서 4년만에 다시 한국군의 주요 인사들과 접촉해 본 기자가 받은 가장 강력한 인상은 심리적 이완의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 아래에서 많은 군인들은 『세상이 어느 때인데 북한이 장거리 땅굴을 파겠느냐』고 태연히 말하고 있었다. 대북(對北) 유화정책에 치명적 타격을 줄 북한의 장거리 땅굴에 대해서, 우리 군의 지휘부가 과연 「땅굴 발견」이전에 본격적인 문제의식을 갖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 본격적인 문제 제기에 따른 토론과 연구와 국민의 협조가 없이는 군에 의한 땅굴 발견엔 이를 수가 없을 것이다.
군의 문제에서 국가적 문제로
둘째, 우리 군은 북한 땅굴 문제에 민간인이 관계하려는 것을 싫어한다. 장거리 땅굴의 가능성을 인정하면 『왜 못 찾느냐』는 압력이 가중될 것이므로 일단 가능성을 부인해 놓고 땅굴 탐사작업을 계속하긴 하는데 땅굴을 찾으면 좋고 못 찾아도 본전이라는 안일한 자세, 그것이 유지되려면 민간인이 땅굴 가능성을 제기하지 않아야 한다. 일부 형사들은 관내에서 범죄가 발생하면 기자들에게 이 사실을 감춰놓고 은밀히 수사하기를 원한다. 언론이 떠들지 않으니 여유 있게, 그러나 적당히 수사하게 된다. 범죄사실이 보도되면 형사들은 상관의 독촉과 여론의 비판을 의식하여 기자를 원망하면서도 열심히 뛰어다닌다. 그러다가 범인을 잡게 되면 그때쯤 해서야 기자에게 보도해주어서 고맙다고 한다. 군 땅굴탐사 부원들이 편한 만큼 국가의 안전은 위협을 받는다. 더구나 장거리 땅굴 탐사는 학계와 기업이 군과 함께 공동으로 고민하면 의외로 쉽게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는 종합과학의 영역이다. 군보다 훨씬 선진 된 민간부문의 과학·기술·모험정신이 군의 책임회피 의식에 의해 땅굴탐사로부터 배제되고 있다면 이것은 또 다른 국력낭비다.
우리 군 지휘부에선 한때 땅굴 탐사작업을 민간인에게 용역 주는 방법을 검토했다고 한다. 기업이 땅굴 발견에 성공하면 그때까지 들어간 경비를 다 보상해주는 성공부조건의 용역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 군이 전방에서 북한의 장거리 땅굴을 막지 못해 그 땅굴이 민간인 거주지역인 후방으로 진출했을 가능성이 확실해진 지금, 그 대응방식도 범국가적 차원으로 강화되면서 민간인의 협조를 구하는 쪽으로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간첩이 후방에 잠입했을 때 간첩 잡는 일을 군인들이 계속 독점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 군이 발견한 네 개의 땅굴 중 제1호 땅굴은 우연히 발견된 것이고 지휘관의 의지에 의해 발견된 것은 세 개다. 2호 땅굴 발견자 정명환(鄭名煥) 당시 6사단장, 3호 땅굴 발견자 전두환(全斗煥) 제1사단장, 4호 땅굴 발견의 결정적인 공로자 이진삼(李鎭三) 장관(발견당시 1군사령관)은 공통점이 있다.
확신자만이 발견
땅굴 징후에 대한 회의론자들의 간섭과 견제를 무시하고, 또 부하들의 편의적인 탐사방식을 혁파한 뒤 확신으로써 밀어붙여 땅굴을 찾아낸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공명심에 눈이 어두웠다든지, 정신이 돌았다는 식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는 점에서도 비슷한 경험자들이다. 이진삼(李鎭三) 장관의 경우, 제4땅굴이 나온 지역의 사단장으로 있을 때 시추기를 북쪽으로 70m쯤 추진시켰던 것이 그 뒤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탐사반은 그 동안 땅굴막장에서 남쪽으로 20m 떨어진 지점의 남쪽에서만 몇 년간 시추를 해왔었다. 시추기를 북상시키려면 야산 위로 올려야 하는데 길을 새로 내야 하는 등 어려운 공사였다. 李사단장은 부하들의 불평을 무시한 채 산을 깎고 길을 내어 시추기를, 지하음이 들리는 야산 위로 북상시켜 뚫게 했고 이것이 제4땅굴 발견의 계기가 됐던 것이다. 땅굴은 그러한 확신자에 의해서 발견되는 것이지 회의론자나 관료주의자 또는 적당주의자에 의해서는 결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존재인 것이다. 상대방의 수도를 향해 뚫는 전략적인 장거리 땅굴은 일종의 전쟁행위다. 그런 행위를 저지하는 행위도 전투적이어야 할 것이다.
점명환(鄭名煥)씨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장거리 땅굴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알면 굴속을 막고 도망치지 않고 이번엔 결전을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후방지역에 출구를 많이 만들어두었다면 우리가 적의 장거리 땅굴을 발견한 그 순간이 매우 위험한 때입니다』 어쨌든 鄭址龍씨 등의 문제제기와 언론의 보도로 북한의 장거리 땅굴 굴착문제는 우리 사회의 공론으로 부각되었다. 앞으로 우리 군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것도 어차피 백일하에 드러나고 기록되게끔 되었다. 어떤 선택이든 군 지휘부는 거기에 따른 책임이나 공로를 면할 수 없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