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판단을 할 수 없는 지하음

지하세계의 소리에 관한 한 아마추어들은 섣부른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취재팀은 그 동안 「소리」에 대한 추적을 하며 짜릿한 전율과 흥분을 느꼈던 때도 있었고 풀리지 않는 의문 속에 자포자기한 적도 있었다. 『이거다』며 가졌던 확신이 얼마 후 전문가의 몇 마디 설명에 힘없이 무너져 버리는 순간이 적지 않았다. 그만큼 지하세계의 소리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다양하다. 그 때문에 노련한 경험자나 전문가들도 화끈한 결론을 결코 말하지 않는다. 우리 나라에선 지하세계의 소리에 관해서는 군 측이 가장 노하우 축적이 많다. 북한측이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 내려오는 상황에서 그에 대응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연구해 온 결과인 것이다. 그 때문에 월간조선 측은 군 측의 의견을 경청하려는 자세를 견지해 왔다. 그래서 군 측의 입장을 잘 설명해 줄 수 있으면서도 비교적 객관적인 자세를 보여줄 것으로 생각된 ?李)모 목사를 4월1일 서울 도봉구 삼양동 소재 모 교회에서 만났다.

李목사는 땅굴탐지에만 13년간 종사한 군 최고의 처음 전문가로 지난 88년 준위로 예편했다. 취재팀은 그에게 경기도 연천군 구미리 테이프(91년 8월29일 녹음)와 편집 테이프 소리를 들려줬다.
-무슨 소리 같은가. 『구미리 테이프는 시추공 근처에서 고압전류가 흐를 때 생기는 전기 유도음 같고 편집한 테이프에는 지상음, 녹음기 및 마이크 자체의 소리가 복합적으로 들어 있는 것 같다. 처음 들어본 사람들에겐 진짜 굴착음을 연상케 하는 충격적인 소리겠지만 내겐 이미 귀에 너무나도 익은 소리다』

-군에서 잡은 소리 가운데에도 이와 비슷한 음향이 많다는 말인가. 『그렇다. 군에서도 이런 소리 때문에 처음엔 골탕을 많이 먹었다. 땅굴 예상 축선에 수백·수천 개의 시추공을 박고 청음활동을 시켰더니 한 두 군데가 틈?전 전선에서 굴착음이나 다이너마이트 폭발음 같은 이상음이 들린다는 보고가 쇄도했다. 내가 근무하는 동안 제출된 이상음 녹음 테이프만도 1천 개는 될 것이다. 이런 보고를 받았던 초기엔 땅굴 찾기에 열의를 보였던 황(黃)모 장군과 현장에 출동해 밤을 새워가면서 같이 청음활동을 하곤 했다. 소리만으로 「이건 1백% 땅굴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하고 그 근처에 1m 간격으로 시추공을 박아 「벌집」을 만들었지만 결국 땅굴을 못 찾았다. 7, 8년의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야 감이 생겨 녹음 당시의 상황을 들으면 이 소리는 어떤 경우의 소리구나 하는 추정을 할 수 있게 됐다』

지하음은 과학이 아직 규명 못해

-왜 땅속에서 그런 소리가 녹음됐다고 생각하는가. 『실제로는 땅굴 굴착이 없는데 왜 그런 것처럼 녹음이 됐는지 아직 과학적으로 명쾌히 규명된 바는 없다. 다만 분석 결과 땅속에는 굴착음으로 착각하기 쉬운 많은 소리가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것은 시추 직후 시추공 속으로 떨어지는 돌조각 소리, 지하수의 흐름 등이다. 군 청음기는 예민하기 때문에 지상의 소리, 예컨대 개미 기어가는 소리, 사람 발자국 소리까지 녹음되는 경우가 많았다. 시추공을 뚫은 뒤 48시간 이내에 청음기를 시추공 안에 넣고 있으면 모래나 암석 부스러기가 시추공 안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드르륵―드르륵―」하는 착암기음과 아주 비슷하다. 때문에 시추공을 뚫은 뒤 24―48시간이 지나 시추공 안이 평정을 찾은 후에 청음기를 집어넣어야 한다』

-정(鄭)씨 테이프를 주파수 분석기로 분석한 결과 기계음 반응이 나타났다. 또한 지난 2월9일 구미리에서 실험 결과 鄭씨 녹음방식은 지상음을 잡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됐다 한다. 매우 민감한 군 청음기라면 몰라도 보통 마이크로폰을 쓴 鄭씨 방식에 조그마한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가 그렇게 선명한 기계음으로 잡힐지 의심스러우며 김포 지역에서 월간조선 기자가 실험한 결과도 그의 방식이 잡음을 잘 잡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한 가지를 더 실험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땅굴 징후가 나타나는 곳이 아닌, 땅굴과 전연 연관지을 수 없는 후방지역에서 같은 방식으로 녹음을 해 보라. 그러면 비슷한 소리가 잡힐 것임을 확신한다』

-전후방 가릴 것 없이 아무 곳에서나 다 굴착음이 들릴 수 있다는 말인가. 『13년 전의 일로 기억하는데 그곳까지 땅굴을 파 왔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OOO지역에서 중요한 실험을 했었다. 인공적인 소음을 전혀 들을 수 없는 남부 지방의 큰 산 계곡에 시추공을 박고 청음을 해봤더니 다이너마이트 폭발음 같은 소리가 많이 들렸다. 보통 녹음기로도 녹음이 됐다. 굴착음으로 혼동할 수 있는 땅속의 소리는 이렇게 많다』
-군 청음테이프 중 지하음이 기계음으로 분석된 것이 있었나. 『물론이다. 鄭씨 테이프보다 더 선명한 굴착음에다, 기계분석 결과도 분명한 기계음으로 나왔던 적이 있다. 한미 양국군을 한달 가량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밤잠을 못 자게 만들었던 국군 X사단 지역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의 소리는 「타타타―」하는 선명한 착암기 소리로 鄭씨 것보다 훨씬 분명했으며 4천만 국민이 이 소리를 들었으면 4천만 모두 착암기음이라 단정했을 그런 소리였다. 모두들 흥분했지만 주위 정황 얘기를 들은 나만 「땅굴이 아니다」라고 가능성을 부정했다. 시추공을 뚫은 뒤 시추공 안이 평정되기 전에 청음을 시작했기 때문에 들린 소리였을 것이다. 한미군이 그 지역에 「벌집」을 만들었지만 끝내 찾지를 못했다』

태평양에서 바늘 하나 찾기

-결론적으로 진짜 땅굴 굴착음은 하나도 없었다는 얘긴데 그러면 어떻게 제보 음들을 굴착음인지 아닌지 판단하나.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는 표본 음을 만드는 데 주력했었다. 초기엔 탄광 갱도에 내려가 착암기를 가동해 보거나 다이너마이트를 폭발시켜 그 음을 녹음해 보기도 했었고 제O땅굴에서 각종 상황을 상정해 놓고 그때마다의 반응 음을 표본으로 녹음해 뒀다. 이 표본 음을 기준으로 진위 여부를 판단했는데 내가 현역에 있었을 때 이 표본 음과 같은 반응이 나오는 보고사례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

-현역 시절 표본 음과 같은 보고사례가 한번도 없었다지만 북한이 땅굴 공사를 하지 않았거나, 군의 포본 음이 잘못돼 있을 가능성은 없나. 군이 표본 음을 만들 때 사용한 착암기는 북한이 사용하고 있는 그것과 다르기 때문에 다른 소리가 나지 않겠는가. 『군이 시험할 때 사용한 착암기는 북한의 그것과 다른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반응이 나타나리라 예상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유형의 기계이기 때문에 비슷한 기계음 반응이 나타나리라 판단한다』
-그렇다면 군이 본격적으로 청음을 시작한 후 북한의 땅굴 공사는 없었다는 얘기인가. 땅굴 공사가 있었다면 군 청음망에 탐지가 안됐을 리가 없지 않은가. 『…글세. 그 사항에 대해선 자신 있고 권위있게 얘기를 못하겠다』

-오랜 땅굴탐지 활동을 하면서 일종의 철학이나 감이 생겼을 것 같은데…. 『땅 속의 소리에 대해선 완전히 두 손을 들어버렸다. 내 나름대로 지하음 분석체계 정립을 위해 노력했었지만 6, 7년이 지난 뒤 이것이 엄청난 시간 낭비임을 깨닫고 행정적인 분석에만 매달렸었다. 땅 속에는 정말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잡음이 있으며 이를 이론적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땅굴 찾기가 태평양에 빠진 바늘 하나 찾아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도 그 때문이다』

李목사의 견해에도 의문점이 많다. 李목사는 지하 기계음으로 분석된 소리가 있었다고 했는데 그런 「명백한 증거」를 땅굴을 못 찾았다고 해서 자연적인 소리라고 치부해 버리려는 자세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범인을 못 잡았다고 해서 범행(이 경우 소리)자체가 없었다고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취재반이 만나본 일부 군 관계자들은 아무리 그럴듯한 징후가 있어도 시추를 해서 땅굴을 못 찾으면 그 징후는 믿을 수 없다는 식의 자기 방어적 논리를 구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군 당국이 특정한 표본 음을 만들어 놓고 이것과 일치하지 않는 소리를 무시해 버리는 방법도 변화무쌍한 소리의 전달·녹음과정을 감안한다면 편의에 따라 상황을 너무 단순화시킨 방법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땅굴을 찾는 방법에는 작업·굴착음을 탐지하는 소극적인 방법 외에 작업을 하지 않더라도 극초단파를 써서 지하의 빈 공간을 찾아내는 방법이 있다. 이른바 전자기파(電磁氣波) 방법으로 알려진 이 탐지법은 4땅굴을 찾는 데 사용돼 널리 알려지게 됐다.

군을 흥분시켰던 굴착기 소리

이 방법을 써서 4땅굴 탐색 실무자로 깊이 관여했던 ㄱ박사를 만나봤다. 그는 『나는 소리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소리에 대해선 묻지 말아달라』고 주문하고 『다만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소리에 의한 탐지 방법보다 체계가 어느 정도 서 있는 전자기파에 의한 탐지방법이 땅굴을 찾는 데 훨씬 효과적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왜 전자기파로 땅굴을 찾는 것이 더 효과적인가. 『내가 소리전문가는 아니지만 소리로 땅굴을 찾는 데 한계가 많다. 실제 착암기음이 아니면서도 이 음과 유사하게 소리 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 대한 원인 규명이 안 된다. 대표적인 게 X사단 지역에서 있었던 일인데 군 청음기로 「타타타, 드르르륵」하는 너무나도 선명한 착암기음이 다수 잡힌 적이 있다. 당시 한미군은 땅굴 굴착음으로 확신하고 흥분된 상태로 밤을 새워가면서 그 지역을 집중 시추했다. 결국 찾지 못했는데 아직도 당시 왜 그런 소리가 났는지 원인규명이 안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밖에도 소리(굴착 유사음)에 속아 시행착오를 범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반면 전자기파를 이용하는 방법은 소리를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체계가 잡힌 것이다. 이는 20m쯤 간격으로 시추공을 파 송신기와 수신기를 집어넣은 다음 송신기에서 30∼50MHZ의 극초단파를 쏘아 수신기에 나타나는 반응을 보고 지하에 공동(空洞)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지하의 공동이 땅굴인지 자연동굴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점도 있으나 시추공을 나란히 여러 개 뚫고 조사해 보면 지하 공동의 축선과 구배를 추정할 수 있어 땅굴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북한이 작업을 중단해 소리가 나지 않더라도 땅굴을 찾아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북한이 땅굴을 버럭으로 채워놓는다면 찾기 어렵지 않은가. 『전자기파도 지하의 복잡한 상황, 즉 수맥·지질·크랙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여러 경우에 대해 시험을 통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땅굴을 버럭으로 채웠다면 빈 공간일 때보다 찾기가 쉽지 않겠지만 어떤 암석으로 채워 쓸 때 전자기파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대한 데이터가 축적돼 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4땅굴도 못 찾을 뻔했다』

-전자기파 탐지방법이 효과적이라고 하지만 4땅굴을 찾을 때 여러 차례 실패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땅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쉽게 표현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 전자기파를 쏘아 달 표면 아래 1m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 수는 있어도 바로 이 자리 밑 지하 1백m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내기는 훨씬 어렵다. 4땅굴도 잘못하면 찾지 못할 뻔했다. 땅굴 굴착이 끝난 지점에서 남쪽으로 20m 떨어진 곳까지만 집중적으로 찾았으니 땅굴 반응이 나올 리가 있나. 결국 조금만 더 북쪽으로 전진해 해보자고 해 찾은 것이다. 북한이 역 대책을 세울 우려 때문에 자세히 얘기할 수는 없지만 내가 땅굴로 오판하고 잘못 짚어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전자기파 탐지법의 성공률은 어느 정도인가. 『글세, 1천 분의 1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몇 개월 동안 군과 함께 활동하면서 본 군의 땅굴 탐지 작전에 임하는 태도는 어떠했나. 『민간인의 입장에서 보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의욕적이었다. 4땅굴도 발견 후 불과 2개월 여 만에 그 무거운 TBM을 동부전선으로 끌고 가 밤샘작업을 하며 역 갱도를 뚫었던 것이다. 땅굴 하나를 발견하면 그 당사자는 물론 지휘관도 진급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군인이 땅굴 탐색에 소극적일 수가 없다. 때문에 정(鄭)씨 제보에 대해 군이 소극적이라는 게 선뜻 이해가 안 된다』

-지금까지의 땅굴 탐색 비용은 오히려 미군이 한국군보다 훨씬 많이 지출했는데 왜 그랬다고 보나. 『땅굴 찾기는 미국 군부는 물론 과학계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게임이다. 미국 측은 전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지하 1백∼2백m 깊이 땅굴을 찾는 확실한 방법이 만들어지면 이를 잠수함 찾는 데 잘 이용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같다』
-전자기파 탐지법의 한계나 약점은 무엇인가. 『우선 시추공이 뚫려야 작업을 할 수 있고 탐지거리가 짧다는 약점이 있다. 또한 땅굴이 송신기와 수신기 사이를 지나가야만 잡을 수 있다』

「소리」 하나로 확신은 곤란

군 시절 청음 전문가로 활동했던 李목사나 민간인으로 땅굴시추작업에 깊숙이 개입했던 ㄱ박사나 땅굴 탐사의 어려움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소리」 하나 가지고 땅굴의 존재를 확신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를 누누이 설명하고 있다. 취재 초기에 정지용(鄭址龍)씨의 활동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졌던 군 담당 부서를 비판적으로 대했던 취재팀은 오랜 기간의 취재와 증언을 통해 군 당국의 고초를 이해하며 마음을 누그러뜨린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월간조선 측이 기사를 쓰는 데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던 군 담당 부서도 월간조선 측이 최소한 센세이셔널리즘을 추구하지 않고 집요하게 진실에 접근하려는 자세를 보이자 호의는 아니지만 적대감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모두 한반도의 남쪽이라는 좁은 땅덩어리에서 같이 살아가는 동류(同類)의 인간들이라는 연대의식, 그리고 피해의식이 서로간에 교감되고 있었다. 민간인이든 군인이든 누군가가 땅굴을 찾아낸다면 좋은 일이 아니냐는 소위 「흑묘백묘론」(黑描白描論)이 오간 것도 사실이다. 쥐 잡는 데 검정고양이, 흰 고양이 가릴 게 없다는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