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7월 47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국군포로 허재석씨가 자신이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포로가 된 다음 아오지 탄광 등에서 보낸 세월을 수기로 썼습니다. 오는 18일 서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수기를 출판하는 기념회를 갖는데요. 전라남도에서 살고 있는 올해 77세인 허재석씨와 전화통화를 해 봤습니다. 허재석씨는 귀가 좀 어두워져서 전화통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중간중간 편집했음을 알려드립니다.

허재석 선생님 안녕하세요. (네) 먼저 이번에 쓰신 책 제목이 “내 이름은 똥간나 새끼였다”인데요. 많은 의미를 갖고 있을 거 같은데요. 먼저 어떤 책인지 소개부터 부탁드리겠습니다.

허재석: 포로가 됐을 때…전투과정에서 중공군의 기습작전에 의해서 포로가 됐거든요. 포로가 돼서…심한 부상을 당하고…중공군에서 북한정부로 이관되고. 북한 정부에서 우리를 탄광에 포로수용소를 만들어 놓고 여기 배치해 두고 일을 시켰거든요. 너무 생활환경이 너무 험악했기 때문에, 내가 죽기 전에 모든 사람들이 다 알아야 되지 않겠는가…그래서 이 초보적이나마 책을 만들게 됐습니다.

허재석씨는 1953년 6월10일부터 같은 해 7월27일까지 휴전협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한국군 7개 사단과 중공군 12개 사단이 화천과 철원, 김천 등지에서 벌였던 이른바 금성지구 전투에서 잡힌 수많은 포로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당시 허재석씨는 팔이 부러지고 걷지 못할 정도로 다리 부상까지 당했었지만 아오지 탄광으로 보내졌습니다. 북한은 탄광을 <내무성 건설대>라고 불렀고, 허재석씨가 있던 탄광은 1701부대로 불렸다고 말했습니다.

허재석씨는 북한이 국군포로가 없다는 말을 하는 것도 이처럼 포로수용소가 아니라 내무성 건설대 같은 중화된 이름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허재석: 그러니까 그게 원인이 포로수용소라고 부르지 않고 내무성 건설대라고 명칭을 바꿔놨거든. 그러니까 북한 정부가 우리 북한에는 포로가 없다고 우리 정부에다가 말할 때, 우리 정부는 이걸 (사실로) 받아들였단 말이야.

허재석씨는 1956년, 북한이 국군포로들에게 공민증을 내 주고 사회인으로 환원시켰지만 그러나 그 뒤에도 여전히 북한 내 최하위 계급으로, 강제노역에 동원됐다고 말했습니다. 사회적 통제 역시 더욱 강화됐다고 허재석씨는 말합니다.

허재석: 그때부터는…이전에는 포로 수용소 안에서 북한 내무원들의 감시만 받았지만, 나와서부터는 북한의 안전부, 보위부, 그리고 마을 단위 인민반 감시까지 받게 됐단 말이에요. 북한에서 그때부터 나와서 공민증만 받아서 나왔다 뿐이지 차별은 엄청났어요. 일부 사람들은(국군포로들은) 공민증 필요없으니 고향으로 보내 달라면서 일부 탄광에서는 그런 게 막 있어서, 보위부에서 다 끌고 갔어요. 보위부에서 끌고 가면 끝장이 나는 거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데가 보위부 수용소란 말입니다.

국군포로 자식들은 대학도 못가고 군대를 가더라도 장교가 되는 건 꿈도 못꾸는 그런 차별을 받으며 생활하던 허재석씨에게 도움의 손길이 찾아온 건 1997년.

사상 두 번째로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들어온 양순용씨가 귀환 직후 50~60명의 생존 국군포로를 포함해 100명 가량의 국군포로 명단을 증언했는데, 그 중에 허재석씨의 이름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사망한 걸로 생각해 제사까지 지내던 가족들은 양순용씨를 통해 허재석씨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허재석: 내 이름이 나오니까 조카들이 그걸 듣고, 양순용씨를 찾아가서 알게됐죠. 98년도 12월 중국에서 막내 동생을 만나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 나는 북으로 돌아가고. 그 후에 사람을 2000년 7월에 동생이 다시 보내서, 그때 오게 됐죠.

허재석씨는 한국에 온 다음 관계당국에 생존한 국군포로 명단 70여명을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허재석: 이제는 살아 있는 사람도 얼마 되지 않을 겁니다. 내가 와서 아는 사람들 70명 정도…사망한 사람들 합쳐서 100명 가량 이름을 알려줬는데. 내가 여기와서 연락을 취해서 온 사람들이 여기 그저 몇사람 있습니다. 아오지에서 여기 온 사람이 한 10여명 되는데…절대다수가 내가 그 사람들 위치, 집도 알려주고, 어떻게 데려와야 된다는 거 알려주고…대부분 그렇습니다.

허재석씨는 남은 희망이 하나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포로들을 데려와야 한다는 점입니다.

허재석: 장기수 63명이 갈 때는 이미 북한에 국군포로가 있다는 거 알면서 그 사람들 하나도 데려올 생각은 아니하고 장기수를 다 올려 보냈단 말입니다. 지금도 그렇단 말입니다. 북한 포로는 공개적으로 판문점 통해 보내고…우리 정부가 이렇게 국군 포로에 대해서 무심하다…이걸 알게되면 누가 앞으로 국가를 지키겠다고 총을 들고 나와 전투를 하겠는가…

국군포로를 국가가 챙겨주지 않으면 누가 앞으로 총을 들고 나라를 위해 싸우겠는가… 이 말을 이명박 정부는 새겨 들을 것으로 허재석씨는 기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