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李昌鏞)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이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의 전국민 대상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현금 살포를 주장하는 정치인을 국민들이 선호한다면 한국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을 것이란 걱정이었다. 그는 한국이 국제통화를 찍어내는 선진국이 아니므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명확히 정해야 하며, 재정 여력이 있는 무작정 선진국 대책을 따라가는 건 경제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 국장은 정부와 국제금융기구에서 근무했고 경제경책을 잘 이해하는 경제학자로, 중앙일보는 두 차례의 전화 통화, 이메일로 인터뷰를 가졌다.

4월 초 IMF 연차총회에서 2020년 성장률을 세계 –3%, 아시아 0%, 한국은 –1.2%로 전망한 데 대해 이 국장은 “당시엔 너무 비관적이란 이야기를 들었지만, 4월 말까지 발표된 1분기 자료와 4월 미국 실업률이 14.7% 급증한 것을 보면 그 전망이 오히려 낙관적이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설사 한국 상황이 개선되더라도 해외 경기 침체가 악화될 것이 확실하므로 경제성장률이 더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예상보다 미국·유럽 상황이 심각해졌고 코로나19 확산과 그로 인한 봉쇄정책도 아직 완화될 전망이 불확실하다. 각국이 전례 없는 통화·재정정책으로 위기를 막고 있지만 백신이나 치료약이 개발되기 전까지 심리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돼 사람들의 이동이 제한될 것이다. 재정·통화정책만으로 실물경제, 특히 소비의 침체를 막기 어려울 거다.”

이렇게 경제 전망이 비관적인데도 주가와 금리 등은 상당히 회복된 데 대해서는 “주요국이 전례 없는 규모의 통화재정 정책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G20 재정정책 규모는 GDP 대비 2.1%였는데, 4월 초까지 G20이 발표한 수치는 3.5%며 계속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대출, 자본확충, 보증 등을 더하면 GDP 대비 부양정책 규모가 미국 15%, 일본 18%, 독일 34%에 달하며 한국은 12% 수준이다.

“정부의 과도한 재정·통화정책, 미래세대 부담으로 귀결… 경제 위기 부를 수도”

이창용 IMF 아태국장은 각국 정부의 이런 과도한 재정·통화정책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팽창적 통화·재정정책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어 전세계 국채 이자율이 0% 수준이나 그 이하로 내려갔고 코로나19로 인해 이 추세가 수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낮은 이자율로 인해 각국 부채비율과 기업·가계 부채가 크게 증가했다. 향후 이를 줄이는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고, 늘어난 부채는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귀결되거나 화폐 발행을 통해 막을 수밖에 없다.”

그는 화폐 발행을 통해서 부채비율을 줄이게 될 경우 유발되는 인플레이션도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의 과도한 재정·통화정책은 재정 여력이 있고 달러·유로·엔화와 같이 국제통화를 발행할 수 있는 선진국들이 주도하고 있는데, 한국처럼 국제통화를 갖지 못한 국가들이 이를 모방해 과도하게 통화 팽창이나 재정 확대로 대응하면 환율 급등, 이자율 상승으로 바이러스 위기가 경제 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과감히 하자’는 여론에 대해서는 “안타깝고 불공평할지 모르나, 달러·유로·엔화 등 국제통화를 쉽게 발행할 수 있는 선진국들은 과감하게 부양정책을 추진할 여력이 있다. 그러나 개도국은 부작용을 고려해 최적의 조합과 규모를 찾아야 하는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여당의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60%가 돼도 괜찮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지금) 재정 여력이 있으니 당장 지출을 더 늘리자는 건 미래를 고려하지 않은 무책임한 견해”라고 경고했다. 한국의 급격한 고령화는 현 수준의 복지정책을 유지하더라도 세수 비율이 크게 늘어나지 않으면 국가부채 비율이 2040년 60%를 넘고, 2050년에는 100%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다만 이 국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복지 수준은 고령화 등을 고려할 때 더욱 확대돼야 한다”며 복지 지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저소득층과 고령자에 대한 복지 지출에 선별적으로 미리 사용하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세수를 늘리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재난지원금’ 말고 대량실업 막는 데 썼어야…”

전국민에 지급하는 ‘재난지원금’에는 “그 돈을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파산으로 인한 대량실업을 막는 데 쓰면 더 효율적”이라며 정책에 의문을 표했다. 재난지원금은 일회성이라 직접 피해를 본 계층에 한해 지원해야 효과가 있지, 과거 일본의 경험에서 보아도 전체에게 일회성으로 주는 현금 살포는 상대적으로 효과가 작다는 것이다. 기존 기획재정부가 국민 전체가 아닌 70%에 지원금을 줘야한다는 견해에도 반대 의견을 냈다. 이 국장은 30~40%로 한정, 취약계층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같은 이유로 2012년 반값 등록금에 대해서도 반대했었다.

그는 이어서 성장률이 둔화하고 소득분배가 악화될수록 현금 지원에 대한 국민들의 선호가 커질 것인데, “이럴 때마다 현금 살포를 주장하는 정치인을 선호한다면 우리나라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코로나19로 디지털 이코노미와 재택근무가 확산된 데 대해서는 “4차 산업혁명에서 말하는 일자리의 미래논쟁이 바로 오늘의 일이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비대면 인프라를 구축한 기업들이 예전 수준의 고용을 유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다.

“코로나19는 서비스업, 자영업자, 재택근무가 어렵거나 그럴 여유가 없는 계층, 비정규직, 일용직, 저학력 노동자들에게 더 피해를 줬다. 단기적으로 초고학력층을 제외한 일반 근로자층에 구조적 실업을 유발하고, 이는 소득 불평등을 악화시켜 사회 통합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것이다.”

고용보험 대상 확대에 대해서는 정부와 의견을 같이했지만 재원 논의를 반드시 같이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고용보험 확대에 필요한 재원을 ‘부자 증세’만으로 해결하지는 못할 것이므로, 결국 부가가치세(소비세)를 인상하게 될 것이라고 봤다.

또 미중(美中) 무역갈등이 격화하면 중국과 국제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부정적 영향이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 성장산업은 과거 한국이 잘해왔던 수출 중심이 제조업은 더이상 아닐 것이며,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은 (코로나 사태로) 세계에서 잘 팔리는 텔레워크(원격근무) 소프트웨어 등의 기술 혁신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이 발전하도록 규제를 풀고 기업가가 새 산업에 위험 투자를 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세계경제 부침에 일희일비하는 과거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기 증산(增産) 없이 집안에 콘센트만 늘린다고 전기를 더 쓸 수 있나?”

이 국장은 동질의 유능한 제조업 노동자를 대량 생산했던 우리 교육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한편, “대부분의 대학생이 공무원이 되기를 원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며 청년층에 일침을 가했다.

“정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국민 인식도 문제다. 경제는 민간이 주도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면 안 된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은 사회복지 차원의 해결책은 될 수 있어도 국가 경제 성장의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쉽게 말해 전기 증산(增産) 없이 집안에 콘센트만 늘린다고 전기를 더 쓸 수 있는 게 아니듯, 축구 시합을 해야 하는데 선수 육성에 투자하지는 않고 모두 감독이나 협회 직원만 되기를 원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이다.

이창용 국장은 한국이 받을 코로나19의 충격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크다고 봤는데, 세계 경제가 글로벌 위기 때보다 더 나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만 해도 IMF는 세계 189개국 중 160개국이 플러스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지금은 170개국이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단다. 한국이 방역에 성공적이라고는 하나 주요 교역국의 성장률이 대폭 낮아졌으며, 2008년 당시처럼 중국 경제가 아시아를 구할 것으로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

IMF는 한국 경제가 올해 -1.2%의 경기침체 이후 내년에는 3.4%로 성장률이 올라가고, 세계경제도 -3.3%에서 5.8%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이는 ▲전세계 확진자 수가 올해 2분기에 정점을 찍고 ▲3분기부터 봉쇄정책이 완화된다는 가정에 근거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 국장은 “경제 전망이라기보다는 전염병 확산 곡선을 예측하는 것이므로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이 끝나기 전까지, 어느 국가도 확산이 끝났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정리: 李知映(조갑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