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 시작되었다.

며칠전 사전투표가 끝난 주말, 새벽 산책을 마치고 아파트 단지 쉼터에서 스트레칭 하는데 귀가 열린다.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정치 얘기를 하고 계셨다. 

“사전투표 했어?”

“아이구… 사전투표를 왜 해? 날을 받아놨으면 그날 해야지”

“사전투표 하면 모조리 이재명 표가 된다잖아. 그럼 안되지”

어르신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사람들 사이에 깊숙이 파고든 부정선거 음모론에 다시 한숨이 나왔다.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진 보수 대통령의 무모한 계엄으로 탄핵까지 당했는데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다니…

오랜 사회생활 덕분에 모임이 많았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좋아하는 나는 모임이 즐거웠다. 일 얘기부터 시작해 유명 연예인의 가십거리까지 대화의 소재는 많았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이 정치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어느 순간부터 부정선거 음모론이 화제가 될 때가 많았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지 않는 나는 선거 시즌이 되면 무슨 몸살을 앓듯이 그들의 얘기를 들어야했다. 단체 대화방에선 그냥 조용히 알림을 끄기도 했다. 그들은 마치 사이비종교와 같이 부정선거 음모론을 전파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12월 3일 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느닷없는 계엄령 선포로 단체 대화방이 뜨거웠다.

“왜 저래?”

“이유 있는 계엄이지만 지지받을지는…”

“이재명하고 뒷거래 있는 거 아냐?”

“김용현, 계엄 안 한다더니 윤통 꼬드겼나?”

“와~ 언행역치”

“석열이 형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는 거야?”

“석열이 형 내년에 탄핵 될지도 모르겠네요”

“이재명 테마주 사야 하나?”

모두 의아했고, 안타까웠고, 실망했다. 그때만 해도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윤석열의 무모한 계엄에 대한 비판을 나열하고 단체 대화방이 잠잠해졌다. 그러나 다음날은 달랐다. 

“역시 이유가 있었어!”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제 진실이 드러난다!”

“우파는 윤통을 이해하고 이번에 무너지면 안됨”

“검사 탄핵하고 감사원장 탄핵하고 예산을 제로로 만드는 저놈들이 진정 내란죄지”

나라가 온통 혼란스러웠다.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의 신음소리를 담은 기사들이 올라오고 국민의 일상도 엉망이 되었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좋아하는 유튜브에는 ‘충격’ ‘긴급’ ‘폭로’ 등의 썸네일을 품은 영상들이 쏟아졌다. 도대체 그 유튜버들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단체 대화방에는 음모론 유튜버들이 뱉어낸 말들과 기사를 실어날으며 한 마디씩 한다.

“한동훈 머리 굴리는 게 다 보이는 상황”

“이제는 이재명하고 한동훈하고 누가 더 사심이 없는가 승부”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의결정족수 미달로 무산되자 그들은 “정치권이 선거 조작 세력에 포섭되었다”며 또 그들만의 논리를 내세웠다. 

이틀 뒤 윤 대통령의 출국 금지가 되자 “진실을 말하려는 대통령이 탄압을 받고 있다”며 “감히 대통령의 입을 막으려 한다”고 격분했다. 그러더니 윤 대통령의 침묵에 대해서는 갑자기 “말하지 않는 것도 메시지다!”라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뱉어내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이란 말인가? 그들은 윤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었을 때도 ‘조작’이란 말을 외쳤고 어김없이 탄핵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계엄으로 또다시 광화문은 시끄러워졌다. 주말마다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탄핵반대 집회가 열렸으며 사람들은 태극기를 들고 모여들었다. 부천에서 광화문까지 출퇴근하는 선배는 주말에도 광화문에 나와 집회에 참석하고 헌금까지 낸다는 얘기를 자랑스럽게 하곤 했다. 그는 “지금은 사법부까지 민주당에 넘어간 상태라 공정한 재판은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이렇게 움직여야만 한다. 집회만이 윤석열 대통령을 구해낼 수 있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윤 대통령이 탄핵이 될 수밖에 없단다. 그들이 판을 이미 짜 놓았기 때문이란다. 

또 다른 단체방 구성원 중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진 분은 선관위 서버를 들고 나왔으니 금방 모든 게 밝혀질 거라며 계엄을 두둔, 모든 것이 완전히 조작된 사건인데 움직이지 않는 보수 우파들이 문제란다. 윤석열의 무모한 계엄을 비판하는 보수를 향해선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의 욕설을 쏟아냈다. 보기도 싫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글을 썼다. “지금 ○○님도 움직이지 않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요? 부정선거가 있었으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뭔가 움직였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소 잃고 외양간도 못 고치면서 매번 부정선거 때문에 졌다고 말만 하는 사람들이 우파라고 외치는 게 전 더 이상합니다” 

이후 주말에 개인적 문자가 왔다. 내 말을 듣고 움직이는 사람이 되려고 광화문 집회에 나가서 ‘Stop the Steal’ 스티커도 사고, ‘이재명 구속’ 전단지도 받았단다. 심지어 광화문 집회에 나가게 해줘서 고맙단다. 어이가 없었다. 마치 이미 심각한 전염병에 감염된 사람 같았다. 단체 대화방에서 감정을 참지 못하고 드러낸 나의 손놀림이 그를 광화문까지 내보낸 꼴이 되었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중국 서버를 통해 투표 결과가 조작됐다”는 주장과 다수의 중국인이 동원되었다는 주장으로 객관적 증거 없는 음모론도 퍼날랐다. 미국에서 트럼프 지지자들 일부가 중국 개입설을 제기한 것과 결을 같이한다. 그러면서도 “트럼프가 취임을 하면 이 모든 게 해결된다”며 중국을 추종하는 ‘친중파’ 정치세력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를 거침없이 드러내기도 했다.

그렇게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들의 음모론은 날개를 달고 부풀려지며 퍼져갔다. 그는 음모론자들이 신봉하는 한 인터넷 언론의 “선거연수원 체포 중국인 99명 주일미군기지 압송됐다”는 가짜뉴스에 흥분하며 관련 유튜브 영상으로 단체 대화방을 도배했다. 더 이상 단체 대화방에 있을 수 없어 조용히 대화방을 나왔다. 하지만 또 다른 모임의 단체 대화방에선 수위가 낮을 뿐 여전히 부정선거 음모론과 계엄찬성, 탄핵반대에 대한 글이 뿌려지고 있었다. 

이번엔 “헌법재판소에 중국 국적의 연구관이 있다”는 주장으로 옮겨졌다. 헌재 연구관의 성이 조금만 특이하면 중국 출신이란다. 단순히 생각해도 대한민국의 법을 다스리는 판사, 검사, 변호사에 외국 국적자 임용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도대체 이런 말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검증도 없이 스스로 짐작하고, 말하고,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분노했다. 사실보다는 감정, 분석보다는 느낌이 먼저였다. 그들은 항상 “뭔가 이상하다”로 시작해서 ‘조작’으로 끝을 맺는다. 그들에게 선거란 모두 조작이고, 모든 선거에서 우리는 질 수 없고, 상대방은 이길 수 없다는 궤변만 늘어놓는다.

그들에게 왜 증거가 없냐고 물으면 안된다. 

“증거는 차고 넘치는데 어떻게 된 건지 우리가 믿는 언론사 빼고는 보도를 안해” 

“내가 본 유튜브에서 다 말해줬어” 

“믿을 건 유튜브뿐이야. 조선일보도 좌파야”

윤석열 대통령이 헌재에서 8:0 만장일치로 파면된 이후에도 극우세력과 부정선거론자들은 강한 반발을 보였다. 오히려 민주당이 ‘내란당’이라며 헌재의 판결을 부정했다. 윤 대통령도 탄핵 심판 과정에서 계엄의 원인으로 부정선거 음모론을 변론 전략으로 삼았다. 대통령이 부정선거론자들에게 농락당한건지 부정선거론자들이 대통령의 부정선거 음모론에 넘어간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한덩어리가 되었다.

처음엔 정치에 대한 관심과 의심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순간 세상을 조작과 음모로 바라보며 결국 자신들도 음모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끊임없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면서도 계속되는 부정선거에 대한 대책이나 방지책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감시와 몰카 얘기만 한다. 물었다. 왜 매번 당하면서 방지책은 없냐고. 그렇게 통계에 밝고 증거를 잘 찾아내면서 당하기만 하냐고. 

‘신의 영역’이란다. 스스로 ‘신의 영역’이라면 그들은 그야말로 개, 돼지처럼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대선이 끝난 오늘 아침엔 단체 대화방이 조용하다. 이상하다고 느낄 때쯤 많은 말들이 날라오기 시작한다.

“윤통 때는 조작에 실패해서 아슬아슬하게 지더니 이번에는 완벽하게 조작했다”

“너무 명백한 부정이라 말도 안 나온다”

“이제는 일상이 된 민주당의 부정선거!”

“이제 트럼프가 한국에 대한 큰 결단을 내려줄 것이다”

“부정선거 신고는 개인도 할 수 있다. 지금 바로 신고하자!”

사무실 전화가 울린다. 

“나는 이해가 안 가요. 본투표는 김문수가 이겼는데 사전 투표에서는 왜 이재명이 그렇게 많은 표 차이로 이길 수 있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가요”

“선생님, 사전 투표 하셨어요? 아니면 본 투표 하셨어요?”

“난 당연히 본투표 했지”

“선생님이 사전 투표를 하셨어야 표 차이가 안 나죠. 사전 투표도 안 하고 표 차이만 많이 난다고 하시면 말이 안되죠”

“아니, 통계상으로 안 맞는단 말야. 우리 가족은 네 명인데 나 빼고 모두 사전투표 했어!”

“가족이 여섯 명인 사람들은 모두 사전 투표 해서 이재명 찍었다면 그게 통계로 말할 수 있는 셈법인가요? 김문수 후보도 사전 투표 하라고 했는데 선생님이 안 하셔놓고 사전 투표 득표수가 적다고 하신다는 게 전 이해가 안 가는데요?”

“하~ 이 사람, 부정선거에 대해 도통 모르니 말이 안 통하네. 정신 차리고 유튜브를 좀 봐요!!”

툭 끊는 전화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끝을 모르는 음모론자들의 말과 글은 짜증을 넘어 이제 하품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