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에 칼을 댄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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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동안 사고 3백7건
  
  나는 이번 취재중 KAL의 자체 사고 분석 자료를 입수했다. 안전관리실에서 지난 82년10월에 펴낸 이 자료에는 1967∼1982년 6월까지의 사고가 정리·분석되어 있다. 일반인들이 모르고 넘어간 사례도 많다. KAL에선 사고를 중사고(Accident)와 준사고(Incident)로 나누고 있다. 중사고는 사람이 다치거나 죽은 사고, 준사고는 활주로 이탈이나 엔진 마비와 같은 인명 피해가 없는 사고다. 중사고는 이 기간중 14건이 발생했다. 사고 원인은 조종과실이 64·3%로 가장 많고 구조 결함(14·3%) 정비결함(7·1%) 납치 및 납치미수(각 7·1%)차례였다. 중사고와 준사고를 합쳐 16년 동안 발생한 총사고건수는 3백7건. KAL항공기 보유대수의 증가와 비례하여 사고빈도는 늘었다.
  
  사고가 가장 많았던 해는 80년(39건) 79년(37건) 78년(30건) 76년(30건) 차례였다. (이 통계에 포함 안된 83년엔 2건의 중사고, 20건의 준사고가 났다.)분석이 가능한 1백44건의 준사고 원인별 통계를 보면 조종 과실이 42.4%로 으뜸이었다. 다음이 정비 결함(20.8%). 비행단계별 사고 발생률은 착륙 및 활주로 접근 때가 37.5%로 가장 높았다. 다음은 순항중일 때로 21.5%, 이어서 비행장에서의 誘導 때 20.1%, 이륙 및 상승 17.4% 차례였다. 세계 항공 사고 통계를 봐도 착륙 때 56%, 이륙27%, 순항 때 8.3%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종사들은 이륙 후 3분, 착륙 전 8분, 합쳐서 11분을「위험한 11분간」이라고 부르고 있다.
  
  항공기가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이란 것은 통계로 입증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비행기 여행이 자동차 여행보다도 30배나 안전하다고 한다. 비행기 사고로 죽는 사람보다 벌에 쏘여 죽는 사람이 더 많다고도 한다. 비행기 타고 죽을 확률보다는 그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죽을 확률이 더 높다고도 한다. 1960∼75년 사이 세계에서는 한 해 평균 1천5백 명이 비행기 사고로 죽었는데 미국에선 매년 3만 명이 육상교통 사고로 죽는다고 한다. 이런 통계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약 3분의 1이 비행 공포증을 갖고 있다는 것은 땅에 발을 붙이며 살도록 만들어진 인간의 고칠 수 없는 고소공포 본능 때문인 듯하다.
  
  한국에선 지난 70년 이후 수많은 항공기 사고가 일어나 5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군인 포함)이 죽었다. 80년엔 1백6명의 군인들이 두 차례에 걸쳐 목숨을 잃었고 지난해엔 2백69명이 한꺼번에 죽었다. 비행기는 안전하다는 통계와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잦은 사고 사이에는 감각적인 괴리가 있다. 이제부터 KAL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의 하늘, 그리고 KAL 주변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 요인들을 하나씩 따져 보자.
  
  가장 우려되는 건 공중 충돌
  
  한국에서 가장 우려되는 항공 사고는「공중 충돌」이다. 金浦 관제소의 어느 베테랑 관제사는『「니어 미스」를 자주 대하다가 보면 비행기 타기가 불안하다』고 했다. 가장 위험한 곳은 水原근방에 있는 경부선 고속도로 신갈인터체인지 상공이다. 金浦공항에 내리기 위해 이곳을 지나가는 여객기들은 가끔 비명을 지른다.『어, 어, 전투기가 갑자기 솟아 올랐어요!』워낙 다급하니 의무적으로 써야 할 영어(항공 용어)를 무시하고 우리말로 金浦 관제소에 보고한다. 이 신갈 상공은 관악산에 가려져 金浦의 접근 관제 레이다에는 잡히지 않는 死角이다. 따라서 접근중인 항공기에게 경고를 할 수 없다. 金浦공항 접근 항로와 군용기 이착륙 루트가 교차하고 있는 이 지역에는 스무 대 이상의 항공기들이 몰려 바글댈 때도 있다. 정해진 항로를 따라 계기 비행을 하는 여객기들은 지상 레이다 관제를 받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 시계 비행을 하는 군용기는 직접 통제를 받지 않으므로 가끔「니어 미스」를 유발한다.
  
  「니어 미스」는 비행기끼리 위험하게 접근, 우연히 또는 조종사에 의해 충돌이 회피된 경우를 뜻한다. KAL 조종사들이 교통부에 보고한 니어 미스는 71∼82년 사이 49건(88%가 한국 상공) 인데 보고 안한 것이 몇 배나 더 많으리라고 관제사들은 말하고 있다. 이들 니어 미스 가운데 23%는 양쪽 비행기가 80m 이내로 접근한 사건이었다. 80m면 0.1∼0.2 초의 비행거리다. 조종사가 상대 비행기를 발견, 대처하는 데는 적어도 15초가 필요하다. KAL의 니어 미스는 조종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운수에 의해서 대참사로 발전하지 않았을 뿐이다. 니어 미스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서울∼오산 사이의 상공으로 17건(약 35%)이나 된다. 그 밖에 大邱상공에서 6건, 金海에서 5건 등이고 상대 비행기는 거의가 군용기였다.
  
  한국은 국토 면적에 비하면 항공기 대수도 많고(1천대 이상) 비행도 빈번하여 어느 나라보다도 공중 충돌 위험이 높다. 공중충돌은 거의가 계기 비행중인 여객기와 시계 비행중인 군용기나 경비행기 사이에서 발생한다. 1971년 6월30일 일본 모리오카 상공에서 훈련 비행중인 자위대의 F86전투기가 일본의 보잉 727여객기를 들이 받아 두 비행기가 추락한 사건이 그런 예다. 이 사고로 여객기 탑승객 1백62명이 숨졌다. F86 조종사는 비상 탈출에 성공했다.
  
  서울大 행정대학원 金恢東씨의 석사 논문「비행 안전 관리에 관한 연구」(1980년)에 따르면 미국 공군에선 65∼75년 사이 2백 68건의 충돌 사고가 일어나 1백89대의 비행기가 파괴됐다. 군용기 충돌 사고는 같은 편대의 비행기끼리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 공군의 경우, 90%가 그런 사고였다. 이런 통계는 광활한 공중에서도 충돌 사고가 가능하다는 걸 보여 주고 있다. 하늘은 넓지만 비행기는 빠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간이 그만큼 좁아진다. 두 비행기가 1Km 거리를 사이에 두고 접근, 충돌하는데는 3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더구나 비행기들은 공항 상공에 집중되므로 관제사나 조종사들의 사소한 실수가 엄청난 참사를 빚을 수 있는 것이다. 군용기 관제소와 민간 관제소간의 긴밀한 협조와 군용 관제소 직원들의 자질 향상을 많은 KAL조종사들이 바라고 있었다.
  
  金海 공항에서 잦은 새 충돌 사고
  
  1969∼82년 사이 KAL 여객기가 경험한 새와의 충돌 사고는 38건이나 된다. 80년 6월11일 濟州 공항에 착륙한 A300기의 엔진을 들여다보니 스크류가 박살나 있었다. 원인은 엔진 속으로 들어간 꿩이었다. 꿩은 分당 7천 번씩 돌아가는 스크류에 감겨 가루가 되면서 스크류날개를 깼다. 날개 파편은 또 다른 날개들을 깼던 것이다. 고속 엔진 속으로 들어간 이물질은, 그것이 눈덩이라도 이처럼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속을 망가뜨린다. 濟州 공항의 꿩 사고로 KAL은 약 1백30만 달러의 손해를 봤다. 한국에서 새 충돌의 위험이 가장 높은 곳은 金海 공항이다.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가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KAL이 경험한 새 사고의 절반이 金海 상공에서 일어났다. 金浦와 金海 공항에선 한 달에 한 번씩 새 사냥을 하지만 새 충돌에 대해선 세계적으로 아직 묘안이 없는 실정이다. 엔진의 공기 흡입구 앞에 방충망 같은 것을 쳐 두는 방안도 실험되었으나 고공에서 결빙 현상이 일어나 쓸모가 없음이 밝혀졌다.
  
  1960년 미국 보스턴 항공사의 비행기가 엔진이 막히면서 바다에 추락, 62명이 죽은 적도 있다. KAL이 보고한 새 충돌 사고의 90%는 이착륙 때 일어났다. 고도 3백60m아래가 위험지대이기 때문이다. 세계 항공사에선 매년 1만여 건의 새 충돌사고를 기록, 1억 달러씩의 손해를 보고 있다. KAL에선 새떼가 많은 공항에서 이착륙할 때는 상승·하강각도를 높여 저고도에서의 체공 시간을 줄이도록 지시하고 있다. 새 이외에도 동물들이 KAL의 안전을 가끔 위협한다. 82년 6월9일 앵커리지를 이륙한 보잉747 화물기에는 소들이 실려 있었다. 화물창고의 우리에 있던 한 마리가 우리를 뛰쳐나와 기체 뒷 부분의 바닥에 구멍을 냈다. 갑자기 기체 압력이 낮아져 KAL기는 공항으로 돌아갔다. 金浦 활주로에도 더러 소나 개가 들어와 순간적으로 활주로가 폐쇄되기도 한다. 관제소에선 차를 내보내 쫓도록 하는데 소, 개는 추격을 당하면 더 좋아라 하고 툭 트인 활주로 쪽으로만 달아난다고 한다. 화가 난 운전자가 몇 백만 원짜리 셰퍼트를 깔아죽인 적도 있었다.
  
  영어 회화 능력?안전과 직결
  
  조종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으로 ATC(Air Traffic Control) 위반이란 게 있다. 공항 또는 항로 관제소의 지시를 조종사가 어기는 일이다. KAL 조종사들은 국내외에서 80년에 8건, 81년에 1건, 82년에 4건, 83년에 6건의 ATC 위반을 기록했다. 가장 큰 원인은 언어 소통 능력의 결함이다. 항공기와 관제소간의 대화는 어느 나라이든 영어로 하게 돼 있다. 용어나 대화의 틀은 일정하다. 한국에서는 급할 땐 우리말로 할 수 있어 별 문제가 없다. 외국에선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데 특히「포어」(For)를「포르르」식으로 R발음을 이상하게 하는 중동에서 한국 조종사들이 잘못 알아듣는 경우가 흔히 발생한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新젯다 공항에 내리란 얘기를 잘못 듣고 舊제다에 내린 예, 82년 4월27일에 바레인 공항으로 착륙하던 보잉747이 관제사 명령을 잘못 들어 지시 고도보다 5백 피트나 낮게 비행한 일 등등이 그런 사고였다. 지시 고도를 잘못 알아들으면 공중 충돌사고를 빚을 위험이 있다.
  
  KAL 조종사들은 대부분 40대 후반, 50대 초반이다. 영어 실력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실력이 아니라 태도다. 어느 金浦 관제사의 말이다. 『못 알아들으면 반드시 되물어야 한다. 관제사와의 통화를 담당하는 부조종사는 기장이 옆에 있으니까, 또는 그 채널로 다른 조종사들이 듣고 있으니까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무조건「라저」(알았다) 하는 경향이 있다. 고도, 속도, 방향 등 중요지시 사항은 반드시 조종사가 복창해야 정확히 알아들었는가를 관제사가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을 소홀히 하는 사람도 있다. 영어 못 하기는 JAL 조종사들이 으뜸이지만 그들은 꼭꼭 확인을 한다』
  
  조종사가 거짓보고하는 예도 있었다고 한다. 『金浦 관제 레이다가 컴퓨터화되어 항적이 잡히면 고도, 속도, 방향이 동시에 스코프에 게시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날이었다. 金浦를 이륙, 오산쪽으로 나가는 KAL기에 6천피트로 고도를 유지하라고 지시했다. 레이다 스코프에는 6천7백 피트로 나오는 게 아닌가? 조종사에게 고도를 물으니 6천 피트라는 답이었다. 그 비행기를 우리와 동시에 잡고 있었던 오산 관제소에 물어 보았다. 고도가 6천7백 피트라는 답이었다. 그 조종사는 불러서 혼을 냈다』
  
  「조종실의 民主化」가 사고 막아
  
  KAL의 경우, 안전을 위협하는 더욱 심각한「미스 커뮤니케이션」은 조종실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여객기의 조종실 안 사방 벽은 온통 스위치와 계기판으로 도배되어 있다. 기장과 부기장 앞에 약 5백개의 계기, 뒷자리의 항공 기관사 앞엔 약 8백 개의 계기가 있다. 이착륙 때 기장은 조종간을 잡고 부조종사는 이들 계기를 보고 속도, 고도, 방향 등을 큰 소리로 불러주며 기관사는 기체의 갖가지 계기와 기관의 작동 상황을 감지한다. 이런 三位一體의 팀웍은 세 사람 사이의 인간적 신뢰감에서만 우러나올 수 있다. 지난 82년 2월9일 JAL의 DC8 여객기가 하네다 공항을 이륙하자마자 바다로 처박혀 승객 24명이 죽었다. 기장이 정신분열증 발작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장은 사고 바로 전날에도 하네다 이륙 직후 이상한 조종으로 비행기를 급강하시켜 추락 직전까지 몰고 갔었다. 이 사건을 부기장은 회사에 보고하지도 않았다.
  
  일본 운수성 항공 사고 조사 위원회는 승무원들끼리의 이런 무관심을 주요 사고 원인으로 지적했었다. 사고 뒤 JAL의 승원조합(乘員組合)은 기장을 관리직으로 대우하고 부기장과 기관사만 승원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한 인사 제도가 조종실 내부의 인간관계를 서먹하게 만들어 대화를 차단하고 있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최근 들어 항공 사고의 원인을 조종실 근무자의 인간 관계에서 찾으려는 접근 방법이 외국에선 확립되고 있다. 기장의 실수가 얼핏 직접 사고원인으로 보이지만 부기장이 기장의 실수를 알고도 방치한 것이 진짜 원인이 라고 보는 태도다.「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없는 조종실은 사고를 내기 쉽다는 얘기다.
  
  KAL의 조종사들은 이런 대화 문제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출신별로 보면 空士, 공군 조종간부, 육군, 항공대학 등으로 갈라지고 기능별로는 정비사 출신의 기관사와 조종사로 나눠져 서로 융합이 잘 되지 않을 소지가 많다. 운항부장, 소장, 기종별 실장 등 관리직 조종사와 일반조종사들의 친소(親疎) 관계는 인맥을 만들 수도 있다. 더구나 최근의 강등, 문책 인사는 하극상의 여지를 남겨 주었다. 어느 조종사는『경영층과 조종사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할 조종사 출신 관리직 사람들이 조종사 사정을 더 몰라준다. 문책·승진 등 인사에 도대체 원칙이 없는 것 같다. 최근의 문책에서 빠진 사람들 가운데도 얼마나 많은 사고자가 있는가? 조종사들도 반성할 점이 많다. 너무 이기적이다. 불평만 많을 뿐이지 단결이 안 된다. 이런 인화 문제가 KAL 안전의 근본적 취약점이다』고 했다.
  
  거의가 군 출신인 KAL의 기장, 부기장의 서열의식은 굉장히 엄격하다. 부기장의 기장 승진 여부에 대해선 선임기장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비행 때 기장이 배려해야 부기장은 조종간을 잡고 실습할 수 있다. 딱딱한 분위기에서 비행중 기장의 조작 잘못을 부기장이 감히 지적할 수 없다면 안전은 위협받는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저마다의 死角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조종실에 세 사람이 타는 것도 서로의 死角을 보완하도록 한 것이 아닌가? KAL의 경우, 안전 관리를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조종실의 민주화다. 조종실의 민주화를 위해선 KAL이란 조직의 민주화, 즉 조종사와 경영자 관계의 민주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조종사들이 스스로 회사에 예속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우울한 분위기 속에선 문책과 지시만으로는 사고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조종실의 협동은 실력이 아니라 성실에서 나온다. 조종사가 비행기 타는 것이 두렵거나 짜증날 때 사고는 나기 마련이다. 지금 KAL분위기가 극히 우려된다』고 어느 고참기장은 말했다.
  
  요철 심한 金浦 활주로
  
  비행기는 섬세하면서 억세다. 지상의 비행기는 약간만 긁혀도 뜰 수가 없을 만큼 허약하다. 날개에 눈이 쌓이거나 얼음이 얇게 불어도 이륙은 어림도 없다. 날개의 앞면엔 揚力(양력)을 줄이는 페인트칠을 하지 못할 만큼 가냘픈 균형감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일단 창공을 날 땐 완강하기 짝이 없다. 태풍이나 몇 배나 빠른 2백 노트의 제트 기류 속에서도 끄떡 없다. 난기류 속에서 수백m씩 떨어져도 견딘다. 이런 항공기의 보금자리인 활주로 또한 섬세하고 억세지 않으면 안된다. 金浦 활주로는 섬세하지도 억세지도 않다. 지난 1월13일 金浦에 착륙한 KAL의 보잉747기가 정지하면서 엔진을 역추진시켰다. 날개 밑에서 소용돌이 바람이 치솟으면서 바닥에 있던 얼음 조각을 엔진 속으로 집어 넣었다.『와장창!』이 얼음조각은 엔진 속의 회전 날개들을 와르르 부수어놓고 말았다. 한 대 4백만 달러 하는 점보 엔진 속에는 46개의 회전 날개가 있다. 팔뚝만한 날개 하나가 약 5백만 원짜리다. 이 엔진 사고의 피해액은 약 1백만 달러. 외국 항공사 같으면 공항 관리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을 것이다.
  
  이 사고는 金浦 공항의 제설 작업수준을 보여 준 것이다. 외국에서처럼 눈을 녹여버리는 제설이 아니라 8대의 제설차가 눈을 쓸어내 옆에 쌓아두는 작업이 고작이다. 쌓아 둔 눈더미에서 눈가루가 날려 대기중인 비행기 날개에 달라붙고 이것이 얼어버린다면 이륙 불능이 된다. 金浦 활주로의 표면은 울퉁불퉁 요철이 심하다. 어느 조종사는『고속도로보다 못하다』고 과장된 악평을 했다. 점보나 DC10 등 대형기가 최대 이륙 중량으로 뜰 때 특히 요동이 심하다.『대여섯 번 바운드를 하고 뜨는데 그 진동으로 바퀴나 엔진이 다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DC10 기장 M씨는 말했다.『1백40도 방향활주로로 착륙할 때는 바퀴가 꼭 요철 부분의 턱에 걸려 덜컹하게 된다』고 점보 기장 P씨는 말했다. 교통부쪽에 알아보았더니 단속적인 재포장으로 곳곳에 이음새가 생겨 그것이 요철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급하게 조금씩 재포장을 한 탓이라 한다. 활주로가 하나밖에 없어 공항을 폐쇄하지 않는 한 깨끗한 마무리 공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루에 약 1백30대가 뜨고 내리는 金浦 공항은「케터고리 I」공항이다. 일본 나리타는 Ⅱ, 유럽에는 Ⅲ급 공항이 많다.Ⅰ급에서 Ⅱ급이 되려면 우선 활주로 중앙선 표지등(濟州공항에는 있다)과 착륙 지점 표시등이 설치되어야 하고 여러 항법 보조 시설이 신설, 또는 개선되어야 한다. Ⅱ급 공항이 되면 이륙 한계는 지금의 시정 4백m에서 6백m로 개선된다. 金浦나 金海 공항은 착륙이 힘든 공항이다. 金浦는 안개가 많이 끼이는데다가 강북 비행이 금지된 관계로 정밀계기 착륙 때 전파유도로를 따라 내리며 활주로를 겨냥할 수 있는 여유거리가 8마일밖에 안된다. 눈과 안개가 많았던 지난 1월엔 12번이나 활주로가 폐쇄되기도 했다. 金海는 주위에 산이 많아 신경이 쓰인다고 한다. JAL에선 조종사들의 기능 시험을 金浦나 金海 이착륙 때 할 만큼 두 곳은 난관이다.
  
  濟州 공항은 근처의 한라산 때문에 난기류가 자주 발생한다. 지난 77년 8월4일 착륙을 시도하던 KAL A300이 고도 1천m에서 난기류에 걸려 상하로 크게 요동했다. 어찌나 그 폭이 컸던지 일부 승객들은 천장에 머리를 부딪쳤고 변기통에서 물이 튀어올라 복도를 적셨다. 이 충격으로 16명이 다쳤다. 만약 이 비행기가 활주로 접근 직전의 저고도에서 난기류를 만났다면 추락했을 것이다. 난기류는 풍향이 서로 다른 기류의 경계선이 만나는 일종의 구김새다. 기상도에 잘 안 나타나 예보가 어렵고 늘 유동적이다. 비행기가 여기에 걸리면 수십m나 뚝 떨어지거나 치솟는다. 고공에선 괜찮지만 저고도로 이륙하는 비행기가 여기에 걸려 추락한 사고는 외국에선 여러 번 있었다. 활주로 주변에 풍향 풍속측정 장치를 촘촘이 세워 난기류 예보를 하는 공항이 외국에는 많다. 한국에선 조종사의 난기류 보고를 유일한 예보 자료로 삼고 있다. 濟州 공항에서부터 난기류 경보 시설을 할 때가 온 것 같다.
  
  모자라는 부품, 무리한 비행
  
  KAL처럼 비행기를 많이 돌리는 항공사에선 정비 능력이 이를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가동률이 높을수록 정비할 데는 많고 수리 시간은 짧다. KAL 정비사 1천8백여 명의 기술은 세계적이다. 82년말 현재 1천40명이 교통부 발행 면장을 갖고 있다. 52명은 미국연방항공국(FAA) 면장을 딴 사람들이다. 10년 이상 경력자가 34%나 된다. 부족함이 있다면 인재가 아니라 조직과 물자, 그리고 설비에 있다. 지난 2월 말에 金浦 공항에 가 본 사람이면 KAL의 정비 시설이 가진 한계점을 실감했을 것이다. KAL이 사우디 항공사에 빌어 주었다가 돌려받은 점보기의 도색 작업을 하는데 기체가 격납고에 다 들어가지 않아 꼬리는 바깥에 나와 있었다. KAL 조종사들이 가장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부품 부족이다.
  
  『조종실에 가보면「작동불능」이란 딱지가 붙은 계기가 너무 많다』『정비사가 사정을 할 때도 있다. 지금 수리을 하면 비행편이 취소될 판이다, 부속품이 없어 수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목적 공항에 연락을 해 놓았으니 그곳에 일단 가서 고치도록 하자, 이렇게 애원하면 가능한 날아보려고 한다. 목적지에 가면 고칠 수 있는 게 대부분이지만 간혹 거기 가도 부속이 없는 수도 있었다』외국 항공사에선 기장이 못 가겠다면 어느 누구도 반대를 못 한다. 기장이 누구보다 비행기를 잘 알고 승객과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KAL 기장은 그럴 처지가 못 된다. 적당주의가 통해서는 안 되는 분야이건만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에 그들은 놓여 있다.
  
  KAL의 83년 말 현재 재산 목록에 따르면 정비 지원 기기 약42억, 富川의 엔진 시험 장치 31억7천만, 항공기 부속품 약1백90억, 정비 공구 약1백48억원 등 정비 관계 기자재는 총4백20억원어치다. 이 정도가 적정 수준인지 아닌지 나는 판단할 능력이 없다. 다만 金浦정비 공장을 둘러 본 나는 굉장히 좁다는 인상을 우선 받았다. 1층의 엔진 수리부는 철공소처럼 복잡했다. 엔진 해체 수리에 공간이 좁아 곤란을 겪고 있다고 어느 정비사는 말했다. 겨울에는 옥외 작업을 할 때가 많아 큰 고생이란 얘기도 있었다. 정비 공장측에선『부품재고가 많을수록 좋긴 한데 그만큼 자본이 사장된다. 우리는 13만 품목을 보유하고 있는데 서비스 레벨은 90%다』고 했다. 서비스 레벨 90%란, 바꿔넣어야 할 부품이 필요하게 됐을 때 자체 부품 창고에서 조달할 수 있는 확률이 90%란 뜻이다. 10%의 부족분은 긴급 수입으로 조달해야 하니 시간이 걸릴 터이다.
  
  정비에 문외한인 나의 상식으로 판단해도 서비스 레벨 90%는 완전 무결의 안전성을 지향하는 항공업계의 관습에 비춰 퍽 낮은 것 같다. 엔진 하나의 부품만 해도 14만 개인고 부품이 4백50만 개인 점보의 정상 가동률이 99.9%라 해도 4천5백 개는 고장이란 얘기가 아닌가? 그래도 정비 능력의 지표인 定時性에서 KAL은 약98%의 양호한 定時 출발률(정비 문제로 여객기 출발 시간이 15분 이상 늦어지지 않는 비율)을 보이고 있다. 99.6%의 定時性을 보이는 항공사도 외국엔 있지만. 이 98%안에는 조종사들이 봐 준「무리한 출발」도 물론 있었을 것이다. 항공기 정비도 예방 정비 개념에 입각해 있다. 고장이 났을 때 부품을 바꾸는 사후 정비가 아니라 부품마다 일정한 기간을 정해 놓고 그 기간이 지나면 일단 떼내어 점검, 수리, 또는 바꾸도록 하고 있다. 점보의 수명은 비행시간 6만 시간으로 잡고 있는데 20년은 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엔진의 정비 기한을 KAL에선 6천 시간으로 잡고 있다. 항공기 부품 중에서 가장 소모율이 높은 착륙 바퀴는 일정한 이착률 회수 뒤에는 꼭 바꿔 끼워야 한다. KAL의 67∼82년 6월 사이 사고 3백7건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바퀴 펑크」로 67건이나 된다. 이것은 제대로 타이어를 교환해 주지 않았거나 브레이크를 급하게 밟아 하중(荷重)을 갑자기 증가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점보가 1백60노트쯤의 접지속도로 착륙하면 바퀴에 걸리는 무게는 실중량의 약3배인 1천2백t. 이것을 18개의 바퀴가 감당하려면 비퀴 한 개당 약70t을 견뎌야 된다. KAL의 기종은 일곱 가지다. 보잉747(11대), 747SP형(2대), DC10(4대), A300B(8대), 보잉707(6대), 보잉727(5대), 포카27(2대). 38대의 일곱 빛깔 항공기를 정비하자니 부품이 복잡하게 많이 필요하고 정비사도 기종별 자격을 별도로 취득해야 한다. 이것도 KAL 정비 체제의 취약점이 되고 있다.
  
  비행기 부품을 자꾸 바꿔치다가 보면 원래의 껍데기만 남고 내장 기관은 완전히 새것으로 돼버린다. 끊임없이 항공기를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 항공사의 정비 분야다. 항공기 운영이나 안전문제의 하부 구조가 이곳이다. KAL 정비사들은 모자라는 시설, 부품, 그리고 수리 시간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특유의 집념과 손재주로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 KAL 준사고 원인의 20.8%가 정비 결함으로 나타나 있지만 비판받아야 할 것은 인간이 아니고 조직일 것이다.
  
  제발 잘 해 주기를
  
  지금까지 나는 비판적인 입장에서 KAL의 안전문제를 기술했다. 인명이 관계된 문제에 대해선 아무리 비판적이라도 충분하지 않다. 그 동안 KAL이 누려 온 여러 가지 특혜를 감안할 때 이런 비판적 접근은 사실 파악에서 평형을 잡는 역할도 할 것이다. 나는 조종사를 통한 접근법을 택했다. 내가 상상한 조종사와 내가 만난 조종사는 너무나 달랐다. 선장들의 느긋한 자신감이나 패기를 KAL 조종사들로부터는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자조적(自潮的)인 한탄과 불평을 했다. 물론 朴○○ 부기장(38)처럼 회사에 불리한 말은 한 마디도 않고『돈을 벌기 위해서만 조종을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면서 비행의 즐거움과 보람을 자랑하는 사람도 있긴 했으나 예외적인 경우였다. KAL을 그만두고 경비행기를 모는 조종사를 대했을 때 나는 회사 택시 운전사를 만나다가 개인 택시 운전사를 만난 것 같은 차이를 느꼈다.
  
  주눅이 든 것처럼 철저하게 샐러리맨화 된 KAL 조종사가「회사 택시 운전사」라면 기업체 경비행기 조종사들은 창공을 나는 보람을 만끽하고 있는「개인 택시 운전사」였다. 개인 택시에 탔을 때 왜 승객은 안도감을 느끼는가? 최근 KAL에서 정년 퇴직한 비행 경력 30여년, 비행 시간 1만7천 시간의 박호균(朴鎬均) 기장(55)은 나와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어렵게 입을 뗐다.『내가 이래도 비행기 하나는 잘 몹니다. 기업체 경비행기 조종사로 어디 취직할 수 없을까요? 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건강을 위해서 계속 조종간을 잡고 싶습니다』너무나 솔직한 취직 부탁에서 나는 날개 잃은 조종사의 비애를 보았다. 운전사는 퇴직해도 차만 사면 계속 핸들을 잡을 수 있다. 기자는 퇴직해도 원고지만 있으면 계속 기자다.
  
  그러나 퇴직기장이 수천만 달러짜리의「날개」를 살 수는 없다. 조종간을 놓칠 때의 철저한 무력감, 그것을 약점으로 이용하는 차가운 계산, 이 틈바구니에서 손해보는 것은 승객의 안전일 뿐이다. KAL은 007사건 이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INS 교육강화, 조종사 능력 평가, 로고 조명등 다시 켜기 등등. 교통부에서도 올해 안에 KAL에 대한 안전도 평가를 할 계획이라 한다. 이미 영국의 AIU 보험 조사팀은 지난 1월 한국에와 KAL의 안전도를 조사하고 갔다. 007사건은 KAL의 안전도 향상을 위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기사도 그런 도움을 KAL에 주었으면 한다. KAL만 타는 나 자신을 위해서,「우리의 날개」를 계속 애용할 나의 아내와 두 딸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이웃을 위해서 KAL이 제발 잘 해 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출처 : 월조
[ 2003-07-09, 18:1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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