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김유신의 대당 결전 의지가 오늘의 한국 만들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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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庾信의 大唐 결전 의지가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 - 특별인터뷰 金大中 亞太재단 이사장
  
  한국 現代史의 성취와 그늘 新羅의 대업에서 배울 것 民主와 自主의 문제
  『고구려 中心의 정통성 주장은 허구… 3국 시대를 지금의 민족주의 재단하면 안 된다』
  
  ● 『金九의 反託·反단독정부 정책은 정치인으로선 실책』
  ● 『李承晩은 친일파 비호했으나 對美외교에서 성공』
  ● 『朴正熙는 성장에서 성공했으나 분배에서 실패』
  ● 『앞으로는 정치적 발언까지도 자제할 것』
  ● 『민선 서울시장은 정치인 출신이 더 잘 할 것』
  ● 『나는 중도우파 정도의 보수주의자』
  
  <1995년 1월 월간조선>
  
  
  
  해방 50년의 정통성 문제
  
  ―올해가 바로 해방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조국의 선진화와 통일입니다. 이것을 이룩하기 위해서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하는 교훈 문제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1995년은 해방 50년이 되는 해, 북한에서 부르짖는 통일이 되는 해, 한일 국교 정상화 30년이 되는 해 등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가 겹쳐있습니다. 이러한 해를 맞아 金이사장님은 지난 해방 50년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어떻게 보십니까.
  
  『저는 우선 우리 민족이 가능성을 보였다는 걸 높이 사고 싶습니다. 민주주의, 경제발전, 세계 진출 등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한국이 GNP에 있어서 세계 1백80개국 중 13위, 무역량 세계 12∼13위, 인구로도 세계 25위입니다. 이것은 우리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저력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력은 크게 보였으나 내실 있는 업적에 있어서는 별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민족 정통성을 내세우는 데 있어서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해방된 조국이 해방을 위해 투쟁한 사람, 日帝에 희생된 국민들에 의해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日帝에 협력한 사람들에 의해 경찰·사법부·검찰·행정기관, 문화·교육기관이 지배당했습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 독립운동을 하면 3代가 망하고 친일 하면 3代가 흥한다는 말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잘살아 보세 잘살아 보세」하면서 신나게 일했던 결과가 돌아오지 않으니 무엇 때문에 일하겠느냐는 생각이 팽배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 피흘리는 자가 따로 있고 권세 누리는 사람이 따로 있는 모순의 역사가 생겨난 것이 바로 해방 50년의 산물입니다. 여기에는 美군정의 과오가 큽니다. 군정 3년을 친일파 수중에 맡기다시피 하여 그들이 계속 힘을 유지하게 만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李承晩대통령이 민족정기를 세우는 일에 역행했습니다.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친일파가 지배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일제에 가장 충성하던 군인인 朴正熙가 정권을 잡았습니다. 이러한 것이 민족 정통성을 세우는 데 실패한 원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민주정통성을 세우는 데도 실패했습니다. 이 둘은 서로 연관이 있습니다. 냉전대결에서 오는 긴장과 민주주의를 사갈시 하는 친일세력의 세포와 군사통치가 민주주의 싹을 막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공산당의 파괴와 잘못된 진보세력들의 과격한 투쟁 등도 반민주 세력에게 독재를 자행하는 절호의 구실을 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해방 50년 동안 역사 속에서 일관되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의 보수성은 이 나라를 지키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으나 개혁하는 데는 큰 장애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사를 통해 개혁하려던 사람은 거의 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법적 정통성은 부인 못해』
  
  ―한국 50년을 요약해서 말씀을 잘 해주신 것 같습니다. 우선 정통성 문제인데, 한 국가의 정통성 문제는 종합적이고 큰 덩어리이기 때문에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말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그래서 친일파가 국정의 요소요소에 박혀서 정국을 이끌어갔다는 것에 앞서서 저는 본질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유엔의 승인하에 자유선거를 통해서 출발한 정부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것을 덮을 만큼, 더 본질적인 정통성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법적 정통성이고 내가 말한 것은 정신적·도덕적 정통성을 말하는 것이지요. 사람은 법률의 지배를 받지만 양심의 지배도 받지요』
  
  ―그러나 정통성이 없다고 말하기보다는 정통성의 정도가 떨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도덕적으로는 제대로 안 섰다고 보아야 하지만 법적 정통성을 부인해서는 안되지요』
  
  ―우리나라에서는 개혁을 한 사람들은 목숨을 잃었다는 말씀을 金이사장님께서 자주 하시는데 그렇다면 朴대통령이 한 조국근대화는 개혁 중에서 가장 큰 개혁 아닙니까. 그 개혁을 성공한 개혁으로 보시지는 않습니까.
  
  朴正熙의 공과(功過)
  
  『역사를 전진시키는 개혁을 한 것이 아닙니다. 민주정부를 뒤엎은 군사 쿠데타를 한 사람이 어떻게 개혁자라고 불릴 수 있겠습니까. 그는 경제적 성장면에 있어서 근대화의 개혁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국민의 민주적 권리의 보장, 성장에 참여한 노동자·농민·중산층에 대한 공정한 분배, 약자를 위한 사회보장 등의 진정한 개혁의 실현에는 실패한 것입니다. 노동조합을 사실상 금지하고 농민운동을 탄압하며, 수많은 민주인사와 통일세력을 용공으로 조작한 정치가 개혁으로 불릴 수는 없습니다. 현재의 김영삼 대통령이나 제가 바로 독재정치의 희생이 아니었습니까. 개혁에 있어서 경제까지 포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방자치였습니다. 지방자치를 했더라면 지방이 약화되고 대립이 생기는 일이 줄어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지역만 지원해 편파적인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결국 집중투자를 한 곳이나 그렇지 않은 곳이나 다 시름을 앓고 있어요. 집중투자를 한 곳은 공해와 교통문제를 겪고 있으며 대중생활도 더 나을 것이 없습니다. 부가 편중되기 때문입니다. TK시대 때 대구가 6대 도시 중에 국민소득이 제일 낮았어요. 또 어음 부도율이 가장 높았고요. 지금은 부산이 그래요. 전신에 피가 흘러야지 한쪽만 피가 흘러서는 안됩니다. 朴대통령의 공로 중 가장 큰 것은 우리도 하면 된다, 우리도 일어설 수 있다는 의지를 심어준 것이지요. 그래서 전국민이 잘살아 보자는 새마을 노래에 고무되어 열심히 일했습니다. 의지에 불타 경제가 외적 상태로는 성공했지만 공정분배에 실패함으로써 기대 속에서 신명이 났던 국민을 배신감과 절망 속으로 몰아 넣은 것입니다. 국민 전체가 참여한 만큼 국민 모두가 그 대가를 받고 그래서 이 사회에 희망을 갖고 정을 붙이고 살 수 있도록 하여 일체감을 조성했어야 하는 데 그게 안 됐지요』
  
  ―朴대통령의 일에 대한 우선 순위는 빵 다음에 자유가 온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요. 역사에 욕을 먹더라도, 자신의 무덤에 침을 뱉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것을 각오하고 자기 임기중의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아니었을까요. 그러다 보니 경제가 안정되면서 소득이 늘어 자연히 중산층이 50%를 넘어서게 되고, 그 중산층이 민주와 자유를 요구해 민주화 운동이 폭발되어 그 자신의 죽음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朴대통령에 대해 「자기 성공의 희생자」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朴正熙 시대를 딱 잘라놓고 볼 때 경제는 성공을 했지만 민주주의는 탄압을 받았다는 말이 성립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는 朴正熙 시대가 만들어 놓은 중산층의 육성과 경제의 안정을 바탕으로 된 것 아닙니까. 넓게 보면 朴正熙의 민주화에 대한 역할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함께 출발한 대만과 한국을 비교해 봅시다. 두 나라는 똑같이 일제의 식민지였고 대만도 우리 못지 않게 엄청난 국방비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대만은 중앙집권이 아닌 지방자치를 실시했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주춧돌이 됐습니다. 또 농업 발전 기초 위에서 공업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농촌이 튼튼합니다. 중소기업과 중산층 육성에 주력하다 보니 대기업이 취약한 점도 있지만 사실 아시아 사람들이 선진국을 상대할 때는 중소기업이 훨씬 유리합니다. 대만은 9백억 달러라는 세계 최고의 외환 보유고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대북시장에 야당이 당선되었다는 것은 기초가 튼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정반대입니다. 하고 있던 지방자치를 없애고 농민을 완전히 파멸시켰습니다. 우리나라의 대기업은 다른 선진국과는 달리 중소기업과 튼튼하게 연결되어 있지는 못합니다. 일본이나 독일은 재벌들이 중소기업에게 자금·기술·판로까지 알선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일체감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중소기업에 어음을 주고 안 팔리는 물건만 맡깁니다. 기술지원은커녕 잘되는 품목은 일가친척 시켜서 하고 잘되는 중소기업 있으면 주식을 사 흡수해 버립니다. 朴대통령이 분명히 경제성장에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빈부격차, 都·農 격차, 대기업·중소기업 격차, 지역 격차를 만들어 결구 한을 품은 사람만 양산됐습니다. 이러한 성장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 국민도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은 것은 대단합니다. 그러나 일으켜 세운 사람들이 실망하게 만들어 오늘날까지 신명을 회복하지 못하게 한 것은 대단히 큰 과오입니다』
  
  한국은 분배가 잘 된 나라
  
  ―朴대통령이 농촌의 근대화보다 공업화를 먼저 한 후 새마을 운동을 통해 농촌으로 번지도록 한 것은 공업화를 통해 富를 축적하고 그 富를 근거로 농촌에 투자한다는 전략을 내세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축적이 없었던 한국으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일본이나 대만은 농촌부터 일으켜 세우고 성공을 했어요』
  
  ―우리나라가 농촌이 도시보다 좀 못한 것 같지만 사실 농촌소득이나 도시소득이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중소기업을 먼저 육성하느냐 대기업을 먼저 육성하느냐 하는 점에 있어서도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중화학 공업을 만들었고 이것이 지금 우리 산업을 주도하여 年 8% 성장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또 GNP 랭킹 13위에 올라선 것도 중화학 공업 덕분입니다. 그에 비해 중소기업이 떨어지기는 하나 단숨에 시간을 줄여 압축성장을 하다 보니 그런 결과가 나온 것 아닐까요. 대기업이 잘 되면 중소기업이나 샐러리맨이 잘 되고 전략적으로 중화학 공업 우선정책을 쓴 결과, 그 소득이 넘쳐서 사회로 흘러나오는 거지 대기업에서 돈 번 것이 대기업에만 남아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소득격차를 말씀하셨는데 통계상으로는 지니계수를 보면 거의 일본에 육박할 정도로 분배가 잘 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분배 격차 문제라든지 도시와 농촌의 문제가 10대 5 정도라면 분명 문제가 되지만 10대 9정도 밖에 안됩니다. 이런 걸 가지고 朴正熙 대통령의 국가 근대화와 경제 성장 전체를 악평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런 문제가 10∼20% 차지하지만 전체평점은 70∼80점 정도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복수노조 허용해야』
  
  『경제발전을 하는 데 중화학 공업에 치중한 건 문제가 있습니다. 중화학 공업이 중소기업을 바탕으로 발전을 했다면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중소기업을 육성하지 않았습니다. 농촌을 보세요. 50세 이하인 사람이 없어요. 몇 년 안 가 농사가 없어집니다. 식량 자급도 겨우 40%입니다. 전쟁났을 때 대한해협 막아버리면 미국에서 식량을 못 갖고 옵니다. 식량 자급 못하면 장래에 큰 일이 일어납니다. 노동자 중에서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무조건 옹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자가 사측에게 대등하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복수노조 못하게 하는 이유가 뭡니까. 어용 노조가 생기면 진짜 노조가 들어설 수 없어요.
  
  기업가는 전경련 만들면서 노동자가 조합 만들면 처벌합니다. 세계 어디에 노동조합이 정당 지지하는 것을 막는 나라가 있습니까. 우리나라 노동자의 근로시간이 세계에서 제일 많습니다. 노동자는 생산성 향상 범위 내에서 요구하고 기업가는 자발적으로 분배해야 합니다. 양쪽이 무리한 요구를 하면 국민이 심판할 것입니다. 국민이 관심 있게 보기 때문에 노동자가 무리한 요구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3∼4년 전에 지하철 노조가 임금투쟁을 하려 할 때 지하철 직원들의 임금이 많다는 신문광고가 나가자 국민들의 여론이 뜨거워 파업을 못했습니다. 모든 것은 국민과 함께 해야 합니다.
  
  일본 나리타공항은 주민들의 반대로 10년이나 개항 못했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인내심 발휘해서 참아줬습니다. 그러다가 언제 경제발전 하나 했지만 지금 세계 최고입니다. 개항 한 것은 국민들의 여론이 뜨거워져서입니다. 동경대에서 적군파가 난동을 부릴 때 1년간 대학이 문을 안 열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이 대학 내에 난입하지 않았고 결국 대학과 국민의 여론이 이를 해결했습니다』
  
  『국민의 부담이 되지 않고 이득을 주는 기업이 돼야』
  
  ―우리 현대사의 功過를 농민·중소기업·노동자 위주로만 보시는데 이것은 야당 지도자로서의 시각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야당적인 시각도 필요하지만 대기업·기업인 쪽에서도 봐서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농민·중소기업인이 우리 국민의 90%입니다. 그러니 이 기반을 안볼 수 없지요. 기업가의 역할을 무시한 것은 아닙니다. 기업가가 국가발전에 공헌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권력과 결탁한 기업은 발전하고 권력에 소외된 사람은 망했습니다. 국제그룹을 보십시오. 독재체제 아래서는 기업들이 노예적인 취급을 받아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가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10대 그룹에 들어간 기업을 집권자 마음대로 파멸시킨 일이 어디 있습니까. 민주주의 안 하면 독재자와 영합한 특혜 받은 사람만 성공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한번 잘못하면 곧 망합니다』
  
  ―그러나 큰 기업을 정부에서 없앤다던가 하는 문제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양적으로는 세계 10∼15위이고 조선공업 수주량은 세계 1위, 자동차 공업은 5위, 반도체 분야에서 메모리 분야 수출은 세계 1위입니다. 金이사장님의 시각과 논리대로라면 우리 국가 지도자는 잘못했지만 결과는 잘 나왔습니다. 지도자도 잘하고 국민도 잘했다는 화해의 공식으로 업적이 설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도자는 나라를 망치려고 했는데 다행히 국민이 잘해서 성공했다는 이상한 논리가 성립되지 않습니까.
  
  『지도자나 재벌들이 성장해서 성공한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성공한 과실을 적정하게 배분을 안 시킨 점과 중소기업·노동자·농민과 더불어 성장하지 않아 부작용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성장한 것은 우리 국민이 역량·근면·능력이 받침이 되었습니다. 기업이나 국가가 성장과정에서 보인 역할은 높이 평가합니다. 다만 경제 전반을 조화롭고 건전하게 발전시키는데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양적인 발전을 우선 하면 나중에 자연스럽게 질적인 성장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양적인 성장이 성공했다면 80% 이상 성공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양적인 성장을 한 사람들은 문어발식 확장만 했지 공정 분배를 하진 않는 것은 물론, 국제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만드는 데는 거의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국민의 희생 위에 부의 축적만 했지, 세계시장 속에서 승리해서 국가에게 이익을 가져오는 데는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기업들은 온갖 특혜를 독점적으로 누려서 오늘의 부를 이룩한 것입니다. 국민의 부담이 되는 기업이 아니라, 국민에게 이득을 주는 기업이 되도록 편달하고 감시해야 합니다. 경제발전의 목적은 다수 국민의 행복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은 보수적인가
  
  ―金이사장님은 우리 국민들이 보수적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건 해방 전까지는 해당됐습니다. 그러나 해방이후에 우리 국민은 혁명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증거로 철저히 주자학적인 국가에서 인구 4분의 1이 기독교를 받아들었으며 1962년부터 실시한 가족계획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을 거두었어요. 통계를 보면 낙태비율이 기독교 신자, 특히 구교에서도 非신자와 비슷할 정도로 실용적인 나라가 됐어요. 왜 해방을 기점으로 우리 국민들이 개혁적으로 바뀌었나 따져 보니 첫째 분단으로 남한이 섬이 되면서 해외로 나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해양정신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전쟁과 함께 과거의 기존 관습이 폐허화가 되었고 나라를 지키려다 보니 군사문화 중에서 효율성·획일성·생산성이 우리 사회에 유입되었습니다. 이제 민족성의 정의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어느 시대든지 보수와 개혁은 공존했습니다. 가족계획의 성공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크게 보면 보수적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기독교의 예를 보더라도 보수교단이 압도적으로 우세합니다. 정권을 주는 일에 있어서도 과거에 일본군이었던 朴대통령을 정통성이 없는데도 대통령을 시켰습니다. 다른 군 출신도 계속 대통령을 시켰습니다. 강제로 한 면도 있지만 투표로 한 면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보수성이 너무도 강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통일문제에 관여하기를 주저하고 외면합니다. 또 사상적으로 의심받기를 두려워 할 뿐 아니라 현상타파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지방자치를 30년 동안 방치해두고 있습니다. 지금도 지방자치를 낭비로 생각합니다. 아프리카에서도 하는데 우리만 안 하다니 말이 됩니까』
  
  탑 다운 식 民主化의 공과
  
  ―지방자치가 절대善이다 하는 것도 도그마 아닙니까. 대만이 지방자치부터 시작하여 우리나라보다 민주화에 성공했다고 하셨는데 저는 반대 입장입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직선제를 통해서 먼저 민주화를 하고 지방자치로 가는 탑 다운(top-down)식인데 이런 민주화도 한국 모델로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이것이 대만보다 못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대만은 계엄령에서 해제된 지 10년도 못됐고 정권 교체가 선거로 이루어진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가 대만보다 민주화에 있어서 뒤떨어졌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대만보다 뒤져 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민주발전이 제대로 되어 있다고도 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도 선거해서 정권이 여당에서 야당으로 넘어간 예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건 대만도 있습니다. 미국도 지방자치부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나라든 지방자치는 기본이 되고 있습니다.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풀뿌리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입니다. 위에서부터 내려가는 민주주의는 안됩니다. 더구나 우리는 하던 지방자치를 말살했습니다. 朴대통령이 지방자치를 없앤 것은 절대로 잘한 일이 아닙니다. 지방자치를 안한 결과 지방의 재정자립도가 떨어지고 특색 있는 발전도 못하고 비호 받은 지역만 비대해지고 비호 못 받은 지역은 쇠퇴하고…. 고르게 발전하고 말단에 있은 사람가지 고루고루 혜택받으려면 지방자치를 해야 합니다. 임명하면 일 안 합니다. 선거해서 군수가 되고 시장이 되면 골목골목 다니며 일하게 됩니다. 부천 인천 같은 도세(盜稅)사건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국민의 고른 발전을 위해 반드시 지방자치를 해야 합니다.
  
  나는 朴정권 전기간을 통해서 지자제를 위해서 싸웠습니다. 盧정권하에서도 싸웠습니다. 5공 청산의 대가로서 이를 쟁취했었습니다. 그러나 3당합당 이후 盧정권은 실정법을 안 지키면서 지자제선거를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12일간의 단식을 하면서도 싸웠습니다. 결국 정부가 굴복해서 91년과 92년에 각기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하기로 법을 재개정했습니다. 그런데 겨우 의회선거만 하고 자치단체장 선거는 다시 위법적으로 사보타지 한 것입니다. 만일 지방자치가 계속 실시가 되었다면 역대의 대통령 선거가 언제나 여당의 승리로 귀착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밑으로는 통반장까지 임명하는데, 야당이 어떻게 집권을 합니까. 그것은 미국에서도 불가능하고 영국에서도 불가능합니다. 일부에서 다시 지자제를 하지 않으려는데 대해서 큰 경각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방 자치에 대해 金이사장계서 집념을 갖고 연구를 많이 하셔서 오늘날 지방자치가 가능하도록 커다란 역할을 하신 것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91년 초 단식 직후의 초췌하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저는, 우리가 현재에는 엄격하고 미래에는 정열을 가지고 과거의 문제에는 가능하면 애정을 갖고 봐야 하는데 과거의 정권이 잘못했다는 시각으로만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약간의 문제가 있었더라도 당시는 당시대로 대안이 없지 않았을까요.
  
  『朴대통령의 개발정책이 잘못 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장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신명나게 일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이 나라가 나의 권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朴대통령이 우리가 열등감에서 벗어나게 한 것은 대단히 훌륭합니다. 그러나 그 후속조치가 병행되지 않았습니다. 다 나쁘다는 건 결코 아닙니다』
출처 : 월조
[ 2003-07-11, 18:3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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