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핵 게임 - 북한 원전개발과 남한의 대응전략(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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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재처리에의 집념
  
  「비 분리 처리」란 묘안
  
  1982년에 에너지 연구소와 한전은 사용 후 핵연료 관리의 문제점을 보고서로 만들어 한미 원자력공동 상설 위원회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 측은 재처리 시설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서기 2020년에 가면 한국의 원전은 25기(시설 용량 6천만㎾)로서 더 이상 늘어날 수 없을 것이다. 우라늄 원광 확보의 가능성을 분석해 볼 때 2000년대에 고속 증식로의 도입은 불가피하다. 고속증식로의 도입이 지연될 경우 우라늄 자원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해서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가 필요하다
  
  사용 후 핵연료의 저장시설이 1990년대에 부족해 질 것이다. 1991년부터는 사용 후 핵연료가 한 해에 3백 60t씩 생기며 92년부터는 고리 1호기의 저장조가 한계에 달해 고리 2호기의 저장조로 옮겨 보관하면 95년까지 임시 조치가 가능하다
  
  1992년부터 연 처리능력 2백50t 규모의 재처리 시설을 가동시키고 이를 단계적으로 늘려 95년에 5백t, 2천년에 1천t 규모로 확장한다면 한국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이 공장을 미국 측과 기술 제휴로 운영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한국 측은 2천 년대에 가면 고속 증식로의 도입이 불가피하고 고속 증식로의 핵연료는 재처리 시설에서만 생산되므로 어차피 장기적으로는 재처리 시설을 갖출 수 밖에 없다는 전제하에서 중·단기 전략으로서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묘안을 찾고 있었다. 이 보고서에서 한국 측은 비 분리 처리(Coprocessing)라는 아이디어를 미국 측에 던졌다.
  
  비 분리 처리란 아이디어는 1977∼80년까지 한시적으로 가동했던 국제 핵 주기 평가위원회(INFCE)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카터 미국 대통령은 재처리 농축 등 민감 기술의 도입에 핵 보유국이 심한 제동을 거는데 개발도상국들이 반발하자 정치성을 배제한 과학 기술자 중심의 국제회의체를 만들어 대안을 연구하도록 했던 것이다.
  
  비 분리 처리는 경수로의 사용 후 핵연료에 함유돼 있는 플루토늄을 분리하지 않고 중수로의 핵연료로 재 사용하는 방법을 말한다. 경수로에 들어가는 핵연료에는 우라늄 235가3.3%이다. 이것이 타고 나오면 우라늄 235는 0.9%로 줄어들고 플루토늄이 0.6% 생긴다. 미국이 이 플루토늄의 분리에 의한 핵무기 개발을 자꾸 의심하니 아예 결백 증명으로서 이 플루토늄을 분리하지 않는 상태에서 처리하여 우라늄 235농도를 0.7%로 줄이면 중수로 연료로 재사용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에는 경수로와 중수로가 공존하고 있고 이런 비 분리 처리를 하면 경수로 4기의 사용 후 핵연료에서 중수로 1기의 핵연료를 만들어 낼 수 있으므로 중수로 연료는 따로 사올 필요 없이 자체적으로 해결된다는 얘기다.
  
  미국, 한·캐나다 협력 방해
  
  우리는 핵 공단 시절에 이미 이 아이디어를 개발, 미국의 바텔 연구소에 공동 개발을 제의했으나 진전이 없었다. 82년에 다시 미국에 공동 연구를 제의한 것이었다. 미국이 신통치 않는 반응을 하고 있는 사이 한전과 에너지 연구소는 캐나다의 원자력공사(AECL)와 협의하기 시작했다. 캐나다로서는 이 기술이 개발되면 캐나다의 중수로의 국제 판매에 도움을 될 것이므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에너지 연구소 기술자들이 AECL산하 연구소를 방문, 이 문제를 협의하는 단계에서 미국 쪽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미국제 경수로에서 태운 사용 후 핵연료의 이동, 변형저장에 대해 사전 동의권을 갖고 있는 미국은 한국과 캐나다 정부 양쪽에 압력을 넣어 이 공동 연구 계획을 무산시켰다. 한국과 캐나다는 밀회를 꾀하다가 질투심 많은 옛 애인의 훼방을 만난 격이었다. 미국은 캐나다에 대해서 한국이 비분리 처리 연구를 통해서 플루토늄 재처리 기술을 얻으려하고 있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한국의 원자력 기술자들은 미국 측의 반대 이유는 멀쩡한 거짓이라고 흥분하고 있다. 한국은 이미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 하에 있고 플루토늄 생산용 시험로도 없는데 완전한 재처리기술도 아니고 비 분리 처리 기술 도입까지 봉쇄하려는 것은 미국 측이 캐나다 측의 원전 판매 전략에 쐐기를 박고 한국에 대한 핵연료 공급 루트를 계속 틀어잡아 두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한국 측은 그 뒤에서 6년간이 비 분리 처리 문제를 가지고 미국 국무성, 에너지성, 군축위원회 등을 끈질기게 설득해 왔다. 한국, 미국, 캐나다의 세 당사국이 공동 연구하되 그래도 관련 연구 시설을 한국에 들여오는 것이 미덥지 못하다면 미국 연구 시설을 이용할 수도 있다고 애걸하다시피 하였다.
  
  지난해 경우 미국 측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국 측은 이 문제를 오는 10월의 한미 원자력 상설 공동위원회에 제의 결말을 지을 방침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질만한 국가적 모욕을 한국은 원자력부문에서 당하고 있는 것이다. 원자력기술을 발전시키는데는 여러 가지 시험을 할 수 있는 연구로가 반드시 있어야한다.
  
  개발도상국에서 연구로 설치는 연구 목적이외에 핵 폭탄용 플루토늄 생산을 목적으로 한다는 의심을 사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는 1962년부터 가동한 2백 50㎾급 미국제 트리가 마크(TRIGA MARK)2, 72년부터 가동한 2천㎾급 트리가 마크 3호기를 갖고 있었다. 이 두 개는 출력이 너무 낮아 연구수준도 낮을 수밖에 없었다.
  
  원자력연구소는 1970년대 초에 캐나다로부터 NRX연구로를 도입하려다가 미국의 압력으로 포기했었다. 70년대 후반에는 자체 설계를 꾀하다가 역시 미국의 압력을 받고 유보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 이 계획은 다시 추진된다. 연구로 건설에는 많은 돈이드는 대신에 뚜렷한 생산품이 없어 예산 관료들을 설득시키는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원자력연구소는 월성 1호기 중수로 핵연료 국산화 계획을 추진하던 1982년 시제품의 성능을 검사하기 위하여 캐나다까지 가져다 40만 달러의 시험료를 지불하면서 NRU연구로에 집어넣어 갖가지 항목의 체크를 한 적이 있어 국산 연구로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고 있었다. 더구나 연구소가 서울에서 대덕으로 옮기면 트리가 마크 연구로는 서울에 두고 가 연구로 없는 연구소가 될 판이었다.
  
  국산 연구로 건설 급진전
  
  원자력연구소는 과학기술처의 검토를 거쳐 1984년 4월의 제207차 원자력 위원회에 다목적 연구로 사업계획을 상정했으나 심의조차 받지 못하였다. 희미했던 이 연구로 사업은 1984년 9월경 경제기획원이 83년에 에너지 연구소가 타당성연구에서 제안했던 추진계획을 일부 수정하여 사업예산을 확정하였으니 85년부터 사업에 착수하라고 과기처에 통보함으로써 급히 추진되기에 이르렀다. 확정된 건설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위로부터의 결정에 의하여 추진되게 된 것은 정부 고위층이 그때 진행되고 있던 북한의 연구로 건설에 대응하겠단 전략적 의도로 밀어붙였던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압력으로 취소되었던 1970년대 후반기 연구로 건설계획에 참여하였던 기술진은 에너지 연구소에 남아 있었다.
  
  김동훈(金東勳)박사가 실장으로 있던 원자로 계통 연구실의 연구원 20여명은 이 다목적 원자로의 모델을 캐나다의 메이플X 연구로로 정했다. 캐나다 원자력 공사는 NRX를 폐쇄하고 메이플X 라는 새 연구로를 설계하고 있었다. 1985년 1∼2월 에너지 연구소 설계팀은 캐나다 원자력공사 팀과 공동으로 K-MRR로 이름이 붙여진 연구로의 개념 설계를 했다. 설계를 한국 측이 주도하였기 때문에 이 연구로를 국산으로 부르는 것인데 부품은 캐나다 차관에 의해 주로 캐나다 원자력 공사로부터 수입하였다.
  
  한국-캐나다에 의해 K-MRR건설 계획이 급진전되자 그 동안 두 번이나 연구로 건설 계획을 저지했던 미국 정부는 이번에는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기본 설계가 시작되는 86년부터 매년 20명씩을 연구소에 파견하여 설계 내용을 검토해 주겠다는 제의였다.
  
  한국 측에서는 미국 정부의 이 제안이 K-MRR연구로 건설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겠다는 의도로 파악했던 것 같다. 혹시 군사용 의도가 숨어있는지 아닌지를 설계 검토 단계에서 탐지하여 설계변경 요구를 하는 식으로 귀찮게 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연구소에는 오해를 막기 위해 핵연료를 20% 농축 우라늄으로 못박아 놓고 있었다. 북한처럼 천연 우라늄을 핵연료로 쓰면 군사용 플루토늄을 생성시킬 수 있지만 20%농축 우라늄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K-MRR은 동위원소 생산, 원전건설에 쓰이는 각종재료의 성능시험, 핵연료의 건전성확인 등등의 다목적 용도인 것이다. 그러나 이 K-MRR을 설계 건설 운영하는 과정에서 핵 폭탄 제조나 재처리에 원용될 수 있는 기술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비상시에 구조를 변경하면 플루토늄을 생성시킬 수도 있으나 이런 것까지 의심하고 막으려는 것은 『화약고에 불을 지를지 모르니 성냥을 긋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과기처의 한 간부는 말했다.
  
  조사후(照射後) 시험시설의 역할
  
  한국 측은 미국의 지원제의에 대해서 설계가 완성된 후에야 검토가 가능할 것이니 검토가 요구되는 분야를 연구소가 필요로 할 때 지원 요청하겠다고 대답하였다. 실제로는 1년에 4명 정도의 미국 기술자를 불러 검토를 시켰고 미국 측도 이를 통해서 K-MRR의 성격을 파악한 것이다. 당초 5백억 원 예산으로 출발하였던 K-MRR 건설사업은 7백억 원으로 늘었다.
  
  1989년 3월 25일에 대덕 원자력 연구소 내에서 기공식이 있었다. 2만3천 평의 대지에 연건평 6천3백22평의 건물들이 세워지고 있는데 92년부터 연구로는 가동된다. 연구로 자체는 품에안을 정도이지만 갖가지 부대시설이 붙어 원자로 건물은 높이가 33m, 건평은 1천8백이다. 연구소는 이 원자로 건물에 덧붙여 기존 시설보다 확대된 조사재(照射材) 시험시설 (건평 1천1백37평)을 짓고 있다. 이 시설에 약 4백억원이 들어 K-MRR건설은 부대시설까지 합치면 약 1천 2백억원 공사이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1976년에 재처리공장 건설계획이 취소된 뒤 핵연료개발 공단이 대체 사업으로 추진한 것 가운데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은 조사후(照射後)시험시설이었다. 지금 원자력연구소 안에 있는 이 시설이 제대로 운영되기 시작한 것은 87년부터였다. 과기처의 한 간부는 『미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이 시설이다』고 했다. 국제 원자력 기구의 사찰 팀은 세 달에 한 번씩 이 시험시설을 찾아와 조사를 벌이고, 주한 미국 대사관, 미국 에너지성, 미국의 군축위원회사람들도 수시로 들린다. 우리나라에서 비록 미량이지만 플루토늄이 취급되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 시험실은 고리 1호기에서 나온 사용 후 핵연료를 갖고 와서 연소상태, 연료의 변형, 설계성능과 실제 연소성 등을 검사하고 비교함으로써 원자로와 핵연료의 건강도를 진단하는 일을 한다.
  
  핵연료 병원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한국의 원전에서 나온 사용 후 핵연료가 바깥으로 반출되는 경우는 이 시험실이 유일하다. 한미 원자력 협정에 따르면 미국제 원자로에서 쓰인 핵연료나 미국이 공급한 핵연료의 사후처리는 반드시 미국정부의 허락을 받아 하도록 돼 있다. 고리 1호기의 사용 후 핵연료 중 극히 일부를 이 시험실로 가져오는데는 한미간에 몇 년에 걸친 협의가 있어야 했다.
  
  1985년 5월 24일에 서명된 한미 합의서에 따라 원자력 연구소는 고리 1호기의 사용 후 핵연료를 12개 다발까지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한 다발에는 길이 4m의 연료봉 1백79개가 들어있다. 이 합의서는 한 다발 당 20개 이하의 연료봉만 꺼내 검사할 수 있고 검사시는 4m짜리를 15㎝이하로 잘라야 하며 이 15㎝짜리를 다시 3㎝씩 5개로 잘라 시료로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시료로 각종 시험과 검사를 한 뒤에는 파편 등을 다시 모아 중간 유출이 없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재처리에도 원용될 기술
  
  사용 후 핵연료 다발이 이 시험실에 들어오면 세 개의 수조를 거치면서 수중 원격 조종 작업에 의해 해체, 절단된다. 작은 시료로 잘려진 것은 핫셀(Hotcell)이라고 불리는 여섯 개의 차폐시설 속을 거치면서 갖가지 검사를 받는다. 핫셀은 두께 85㎝의 방사능 차폐벽으로 격리돼 있다. 바깥에는 원격 조종용 손잡이가 달려 있다. 이 손을 써서 핫셀 안에 있는 기계 손을 움직여 작업을 한다. 기계손이 느끼는 중량감이 이 조종용 손을 타고 조작자도 그 무게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하여 작동에 실수가 없도록 하고 있다. 이 핫셀은 재처리 공장에 있는 것과 비슷한 설계로 돼 있다. 이 조사 후 시험시설은 2백억원 짜리다. 프랑스 차관에 의하여 SGN사로부터 도입한 시설·기재가90억 원어치고 나머지는 국내외에서 조달한 것이다. 고압수 제염(除染)장치 등 국내에서 설계, 제작한 것도 많다.
  
  사용 후 핵연료 시료는 용매 추출 방식으로 처리하여 PPb((10분의 1)정도의 극 미량플루토늄을 정략 분석하기도 한다. 액체 속에 용해된 이 플루토늄을 분리, 회수하지는 않으므로 군사용 목적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시험용 사용 후 핵연료는 국제 기구의 엄격한 감시하에서 시험시설 수조 속에 저장된다. 이런 조사 후 시험시설의 건설 운용은 핵무기 제조 기술개발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지만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의 건설운용에 도움이 될 만한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 미국이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는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하면서 재처리 시설을 짜집기 식으로 만들려고 그 주요 부품인 핫셀을 조사 후 시험시설용 핫셀로 대용(代用)하려고 이탈리아의 SNIA사로부터 수입했었다. 1980년에 SNIA사 건물은 이스라엘 정보 기관의 소행으로 보이는 폭탄 테러를 당했었다.
  
  원자로 설계기술 국산화 임박
  
  1백만㎾짜리 원자력 발전소의 1년간 출력을 일순간으로 모아 폭발시키면 사십 개의 원자폭탄과 맞먹는 파괴력이 생긴다. 원전은 이런 원자 폭탄의 폭발적 에너지를 장기간에 걸쳐 인간의 통제하에서 안전하게 빼 쓰도록 고안한 장치다. 즉 핵분열이 빨리 일어나면 원폭이 되고 서서히 일어나면 원전이 된다. 따라서 공학 기술상 상업용 원자로 설계가 원폭 설계보다 수십 배나 어렵다. 힘을 폭파시키는 것보다 그 힘을 제어하는 장치가 더 정교할 수밖에 없고 인간을 죽이는 기술보다는 인간을 이롭게 하는 기술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보다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더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원자력 기술의 최고봉은 원자로 설계 기술이다.
  
  설계된 원자로의 제작이나 그것을 담을 건물의 건설은 개발 도상국에서도 할 수 있지만 원자로 설계를 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 소련, 영국, 캐나다, 프랑스, 서독, 일본뿐이다, 영광 3, 4호기 건설이 미국의 CE(Combustion Engineering)사에 낙찰되었다고 할 때 그것은 CE가 원자로 설계의 주 계약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원자로를 만든다는 것은 원자로를 설계한다는 의미다. 한국 전력은 올해 발주된 울진 3호기의 원자로 설계자로 원자력연구소를 선택하게 돼 있다. 즉 한국이 원자로를 만들 수 있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 정부는 영광 3, 4호기의 원자로설계자로 CE사를 선택한 다음 원자로설계(원자로설계란 기술용어로는 핵 증기 공급계통의 설계라고 불린다)에 원자력 연구소가 1대1의 관계로 공동 참여하도록 했다. 공동 설계인 셈인데 작품의 질에 대해서는 CE가 책임을 진다.
  
  원자력 연구소의 전략은 공동 설계를 진행하면서 CE사로부터 극비자료와 기술을 이전받아 자체 설계기술을 확립하고 그 바탕에서 1백만㎾짜리 한국형 표준 원자로(KSN1000)의 설계 개념을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울진 3호기 건설 때는 원자력 연구소가 93%의 원자로 설계 자립율을 바탕으로 하여 독자설계를 하고 그 제작을 한국중공업이 맡게 된다. 이 공동설계 작업의 실무 책임자는 원자력 연구소 발전로 계통 사업부장 김병구(金炳九)박사이다.
  
  金박사는 『이런 큰일은 과학기술자로서 평생에 단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기회다』고 말했다. 金박사는 미쉬간 대학을 졸업한 뒤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박사 학위(기계공학 전공)을 받았다. 1972년부터 미국 우주항공국(NASA)산하의 제트기관 연구소(Zet Propulsion Laboratories)에서 화성 탐색선 바이킹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金박사는 미국시민권까지 포기하고 75년에 귀국, 원자력연구소에서 일해오고 있다. 지금 그는 1백97명의 연구원 인력을 지휘, CE와의 공동설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설계된 부분은 창원의 한국중공업으로 넘겨져 동시 제작되고 있다. 전체적인 최종설계는 오는 92년에 완성된다. 金박사는 지난 86년12월에 92명의 기술전수 팀을 조직 1백여 명의 가족과 함께 CE본사가 있는 미국의 코네티컷주 원저로 보냈다. 그들은 이 작은 마을에 한국인 집단촌을 이루고 CE기술진과 한 덩어리가 돼 공동설계 작업을 벌렸던 것이다. 설계의 절정기가 일단 지나 지금은 30명의 기술자가 윈저에 남아있다.
  
  이 공동설계를 통해서 원자력 연구소는 4천3백8점의 설계도면, 특허자료 등과 2백1개의 극비 전산프로그램을 입수할 수 있었다. 원자로의 가장 중요한 컴퓨터코드는 핵연료와 원자로 심계통에 관한 것이다. 원자력 연구소는 중수로 및 경수로 핵연료 설계·제작·사업을 통해서 또 영광 3, 4호기 원자로공동 설계를 통해서 이 중요한 코드를 확보하였다. 한 핵 공학 전문가는 『그런 코드는 핵 폭탄의 설계 및 실험 제작에도 원용될 수 있다』고 했다.
출처 : 월조
[ 2003-07-04, 17: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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