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형제와 南사장의 자살 관계
盧대통령은 「인격 살인적」 독설로써, 그의 兄 盧健平은 뇌물을 받음으로써 南사장의 자살사건에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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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武鉉 一家의, 南相國 사장 자살에 대한 공동 책임 문제
   (월간조선 2004년5월호)
  
  
  
  盧대통령은 「인격 살인적」 독설로써, 그의 兄 盧健平은 뇌물을 받음으로써, 健平씨의 처남 閔경찬과 그 주변 인물들은 南사장과 健平씨를 연결시킴으로써 이 자살사건에 끼어들었다
  
  
  
   ●『閔경찬(盧健平씨 처남)씨 주변 인물들이 南相國 사장 연임 로비제의를 먼저 大宇건설 朴昌圭 전무에게 했다』(검찰 관계자)
  ● 朴昌圭 전무가 閔경찬씨 통해 盧健平씨에게 南사장의 연임 청탁을 했고, 健平씨는 동생인 盧대통령에게 다시 청탁
  ●『검찰은 마땅히 청탁명목으로 3000만원을 받은 盧健平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어야 했다』(법조계 한 인사)
  ●『盧대통령의 발언이 조카를 죽였다』(南相國씨 외삼촌)
  
  宋承鎬 月刊朝鮮 차장 (soonj@chosun.com)
  
  억측이 무성한 南相國 사장의 죽음
  
  
   南相國(남상국) 前 大宇건설 사장은 왜 漢江(한강)에 뛰어내려 자살을 했는가? 무엇이, 어떤 상황이 南 前 사장으로 하여금 漢江으로 뛰어내리지 않으면 안 되게 등을 떠민 것일까? 南 前 사장이 지난 3월11일 자살한 지 1개월이 지났으나, 그의 투신이유에 대해 항간에서는 억측이 무성하다.
  
   南相國씨의 大宇건설 사장 연임 로비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에 대해서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검찰은 연임 로비 명목의 돈을 받은 盧武鉉(노무현) 대통령 친형 健平(건평)씨에 대해 구속을 하지 않고 불구속 기소를 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로비명목으로 거액을 받은 사람을 불구속 기소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南相國씨의 죽음과 관련, 제기되고 있는 의문은 ▲南씨의 직접적인 자살동기 ▲연임로비를 南씨 측에서 健平씨 측에게 먼저 한 것인지, 아니면 健平씨 측에서 南씨 측에 먼저 접근을 했는지 여부 ▲健平씨에 대한 검찰의 사법처리 적정성 ▲南씨 측과 健平씨 측 간에 누가 연결고리 역할을 했는지 등이다.
  
   이 같은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선 南相國씨의 大宇건설 사장직 연임 로비 과정과 자살 당시 정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검찰의 발표와 大宇건설 관계자 등의 설명에 의하면, 南相國씨 측에서, 2003년 12월로 임기가 끝나는 南씨의 大宇건설 사장직 연임을 위해 盧健平씨 측에게 로비를 시작한 시기는 2003년 7월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朴昌圭 전무가 盧·南씨 간 연결
  
   이 당시 南相國씨와 盧健平씨를 연결시켜 준 사람들은 健平씨의 처남인 閔경찬(44)씨 주변 인물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閔경찬씨의 동업자는 부동산 투자회사인 조선리츠 대표 박세진(49ㆍ구속)씨와 이 회사 이사인 방재선(60ㆍ구속)씨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閔경찬씨가 박세진, 방재선씨를 처음 만났던 것은 2003년 6월경이었다고 한다. 朴씨와 方씨는 자신들이 고소된 사건 해결을 위해 知人을 통해 閔경찬씨를 처음 소개받았다는 것. 이후 朴씨 등은 잇단 사업 실패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져 있던 閔경찬씨를 직간접적으로 도와주며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朴씨 등은 閔씨가 운영하던 회사 직원들의 밀린 임금을 지원해 주기도 했다고 한다.
  
   閔경찬씨와 박세진씨 등은 이 당시 閔씨가 구상 중이던 이천 중앙병원 설립사업을 비롯해 부산 문현동 재개발사업, 서울 동대문주차장 부지內 상가 임대분양사업, 인터넷사업 등을 추진하며 자주 접촉했던 것으로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드러났다.
  
   閔경찬씨의 동업자 방재선씨의 경우 閔씨에게 개인사무실을 구해 주려고 했던 사실도 검찰에 의해 확인됐다. 方씨는 서울 서초동 S빌라에 마련한 「강남 사무실」 이외에 B그룹 李모(54·구속) 회장에게 부탁해 서울시청 부근 B그룹 입주 건물에 「강북 사무실」까지 만들어 주려 했다는 것이다.
  
   盧健平씨와 南相國씨를 연결해 준 인사는 現 大宇건설 토목사업본부장인 朴昌圭(박창규·53) 전무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朴전무는 방씨 등이 부동산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들과 알게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 투자회사 대표인 박세진씨 등이 추진하던 부산 문현동 재개발사업과 관련해 박세진씨 등과 朴昌圭 전무가 처음 만나게 됐고, 朴전무는 朴씨 등의 소개로 閔경찬씨를 만났으며, 閔씨의 소개로 盧健平씨를 만나 南相國씨의 사장직 연임 로비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大宇건설 한 관계자는 『南사장이 사장으로 취임한 1999년 이후 회사 안팎에서 南사장을 흔들려는 「어둠의 세력」들 때문에 연임 로비를 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朴昌圭 전무는 2003년 8월18일 閔경찬씨의 소개로 盧健平씨를 처음 만나게 된다. 이 과정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盧健平씨를 불구속 기소하면서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에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공소장에 따르면, 盧健平씨는 2003년 8월18일 경남 김해 진영읍 자택을 찾아온 처남 閔경찬씨의 주변 인물인 방재선씨와 大宇건설 전무 朴昌圭씨를 만났다. 方씨는 이미 같은 달 1일 閔씨 소개로 健平씨와 인사를 나눈 상태였다. 健平씨와 朴昌圭 전무, 閔씨 등은 이 자리에서 朴전무가 선물로 가져간 고급 양주 「발렌타인 30년산」을 나눠 마셨다. 朴昌圭 전무는 이 자리에서 盧健平씨에게 『南相國 사장이 연임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청탁을 했다는 것.
  
  
   盧健平씨와 南相國 사장의 첫 만남
  
   盧健平씨와 南相國 당시 大宇건설 사장이 처음 만난 것은 朴昌圭 전무가 健平씨를 만난 11일 뒤인 8월29일 저녁 때였고, 식사를 같이 했다. 장소는 서울 하얏트호텔 일식당. 이 자리에는 健平씨의 처남인 閔경찬씨와 閔씨의 주변 인물인 조선리츠 대표 박세진씨, 조선리츠 이사 방재선씨, 그리고 大宇건설 朴昌圭 전무가 동석했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盧健平씨에게 南相國씨의 사장직 연임 청탁을 주로 한 사람은 방재선씨였다고 한다. 方씨는 『워크아웃에 들어간 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 南사장이다. 훌륭한 사람이다』며 연임 청탁을 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盧健平씨가 수사과정에서 「잇단 사업 실패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처남에게 경제적 도움을 준 方씨와 朴씨의 청탁을 거절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고 말했다.
  
   며칠 뒤 盧健平씨는 방재선씨로부터 南相國 당시 사장의 연임 청탁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盧健平씨는 서울에서 南相國 사장을 만난 지 일주일 뒤인 9월5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자택에서 처남 閔경찬씨와 방재선·박세진씨의 방문을 받았다. 추석(9월10일)을 5일 앞둔 시점이었다. 이 자리에서 方씨는 『大宇건설에서 드리는 선물』이라며 현금 3000만원이 든 쇼핑백을 健平씨에게 건넸다는 게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盧健平씨는 南相國씨의 연임과 관련해, 2003년 11월 서울에서 처남 閔경찬씨의 주변 인물들인 방재선씨와 박세진씨를 다시 만났다. 이 자리에서 方씨와 朴씨는 南相國씨 측으로부터 받은 현금 1억원을 盧健平씨에게 건네려고 했으나, 健平씨는 받지 않았다고 한다.
  
  
   健平씨, 盧대통령에게 南사장 연임 부탁
  
   그렇다면, 왜 민간기업 사장인 南相國씨 측에서 사장직 연임을 위해 盧健平씨에게 로비를 했을까? 그 이유는 大宇건설이 민간기업이기는 하지만 이 회사의 사장 임명권은 실질적으로 정부(대통령)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 大宇그룹이 해체되면서 大宇그룹 계열사였던 大宇건설도 심한 자금난을 겪게 됐고, 끝내 자금난을 극복하지 못해 워크아웃(기업구조조정 절차)에 들어갔다. 정부는 이후 大宇건설 회생을 위해 공적자금 1조6000억원을 투입했고, 투입된 공적자금 중 일부를 이 회사의 자본금으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산하 기관으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회사를 관리하는 자산관리공사가 이 회사의 최대 주주가 됐다. 자산관리공사 사장의 임명권은 정부에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大宇건설 사장 임명 과정에서 자산관리공사 사장은 정부(대통령)의 의중에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大宇건설 사장 임명권은 정부(대통령)가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南相國씨 측에서 健平씨에게 大宇건설 사장직 연임 로비를 한 이유도 健平씨가 정권핵심 인사 또는 자산관리공사 측에 입김을 넣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찰 조사과정에서 실제 健平씨가 盧武鉉 대통령에게 南相國씨의 大宇건설 사장직 연임 부탁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盧武鉉 대통령도 健平씨가 자신에게 南씨의 사장직 연임 부탁을 했다는 사실을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盧대통령은 2004년 3월11일 對국민 기자회견 冒頭(모두)발언을 통해 『(형님이) 大宇건설 사장으로부터 유임을 청탁한다는 뜻으로 3000만원을 받았으나 그 일은 성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친형인 健平씨의 청탁과 관련, 盧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내용 중 일부다.
  
   『지금까지 제 형님 盧健平씨는 저에게 세 번의 청탁을 했습니다. 결과는 모두 성사되지 않았습니다/…中略…/이번 南相國 사장 건은 청탁했다는 이유로 해서 민정(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인사(인사보좌관실)에 지시해서 직접 청와대의 인사사항은 아니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데까지 행사해서 연임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고 뒤에 확인까지했습니다』
  
   한편, 閔경찬씨 주변 인물인 조선리츠 박세진 대표와 방재선 이사는 지난 2월22일 알선수재 및 사기 혐의로 검찰에 의해 구속기소됐다. 이들은 2003년 8월 법정관리 중인 건설업체를 인수하려는 D기계기술 대표 金모씨에게 『친분이 있는 수출입은행장과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에게 청탁해 150억원을 대출받아 주고, 우선인수 협상 대상자가 되도록 법원 파산부에 힘을 써 줄 테니 경비로 10억원을 달라』고 요구해 金씨가 朴씨에게 건넨 10억원 가운데 1억2000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또 2003년 2~11월 D건설이 재개발을 추진하던 중 인허가를 받지 못해 건축을 중단한 동대문주차장 부지內 상가를 사전 분양해 주겠다며 정모씨 등으로부터 36차례에 걸쳐 51억여 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南사장, 가족과 기자회견 시청
  
   南相國 前 大宇건설 사장은 왜 「漢江 투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을까?
  
   南씨는 지난 3월11일 오전 10시부터 부인·아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통해 盧武鉉 대통령의 對국민 기자회견을 지켜본 뒤 오전 11시30분경 곧바로 부인 金모씨(53)씨 소유의 레간자 승용차를 몰고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을 나섰다. 南씨가 이후 漢江에 투신한 시간은 이날 낮 12시25분경으로 검찰은 추정하고 있다. 盧武鉉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1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盧武鉉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南相國씨의 사장직 연임 로비와 관련, 실명을 거론해 가며 南씨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盧대통령은 기자회견 冒頭발언 말미에서 『大宇건설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경찰의 휴대폰 위치추적 결과, 南씨는 자신의 집을 나온 뒤 오전 11시54분경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 잠시 들렀던 것으로 확인됐다. 南씨는 이곳에서 大宇건설 법무팀 辛모 팀장을 만나 연임 로비사건과 관련해 협의를 한 뒤 곧바로 헤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南씨는 잠시 뒤인 이날 낮 12시경 辛팀장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모든 것은 내가 안고 가겠다. 한강 남단에 차를 세워 놓았으니, 가져가라』고 했다는 것.
  
   南相國씨가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生을 마감한 직접적인 이유로 ▲검찰의 大宇건설 비자금 사건 및 南씨 자신의 사장직 연임 로비사건 수사에 따른 중압감을 이기지 못했거나 ▲盧武鉉 대통령이 자신을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모멸감을 느꼈고, 이를 참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南相國씨가 검찰의 大宇건설 비자금 사건 및 자신의 연임 로비사건 수사에 대한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검찰 및 大宇건설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南相國씨가 大宇건설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서 마지막 수사를 받은 시기는 지난 1월27일이다. 이후 南씨는 大宇건설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를 받지 않았다. 南씨가 자신의 사장직 연임 로비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조사를 마지막으로 받은 시점은 자살 5일 전인 3월6일이다. 南씨는 그 이후 검찰에서 어떠한 조사도 받지 않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大宇건설 한 관계자는 『南사장이 자살하기 전에 연임 로비사건에 대해 검찰에서는 이미 南사장을 불구속 기소하는 방향으로 수사의 가닥을 잡았었다』면서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南사장이 자살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盧武鉉 대통령이 南相國씨를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이 南씨 자살의 중요한 동기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大宇건설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大宇건설의 한 전직 임원은 『南사장은 자존심이 무척 센 성격의 소유자』라면서 『대통령이 텔레비전으로 全국민들을 대상으로 생중계되고 있는 자리에서 南사장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를 비판한 데 대해 심한 충격과 함께 모멸감을 느껴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盧대통령의 발언이 조카를 죽였다』(南사장 외삼촌)
  
   南相國씨가 자살한 당일 오후 소식을 듣고 서울 강남구 논현동 南씨 집을 찾은 南씨 외삼촌은 『盧대통령의 발언이 조카를 죽였다』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野黨도 南씨의 자살 당일 이뤄진 盧武鉉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南씨를 자살로 내몰았다는 입장을 보였다.
  
   崔秉烈(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南씨의 자살소식을 듣고 『南相國 前 大宇건설 사장은 盧武鉉 대통령 기자회견에 모욕감을 느끼고 자살했다고 한다』며 『盧대통령이 南사장의 자살에 법적인 책임은 없을지 모르지만 도덕적인 책임은 분명히 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도 南씨 자살사건과 관련해 논평을 내고, 『鄭夢憲(정몽헌) 現代아산 회장, 安相英(안상영) 前 부산시장에 이어 南相國 사장이 자살했다』며 『이는 자신의 친형을 감싸기 위해 한 사람의 전문경영인을 국민 앞에서 모욕적인 언사로 깎아 내린 盧武鉉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南相國씨는 자살하기 전날까지 大宇건설 사무실로 출근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南씨는 사장직에서 물러난 뒤 사장 상담역을 맡아 大宇건설과 계속 인연을 맺고 있었으며, 별도로 사무실도 大宇빌딩 25층에 마련돼 있었다.
  
   南씨의 비서로 6년간 근무한 安모(32)씨는 언론과의 접촉에서 『南 前 사장은 투신하기 하루 전인 3월10일 오전에도 출근해 「회사는 잘 돌아갑니까」하고 다른 간부들과 안부인사를 건네기도 했다』고 말했다. 南씨는 투신 이틀 전인 3월9일에도 오후 5시경 회사에 들러 임원들에게 『새로 취임한 사장을 잘 도와라. 열심히 해주기 바란다』고 당부를 했다고 한다.
  
  
   南사장의 연임 로비는 어떻게 시작됐나?
  
   南相國씨의 연임 로비를 위해 어느 쪽에서 먼저 접근을 했을까? 南씨 측에서 먼저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통해 盧健平씨에게 연임 로비를 했나, 아니면 健平씨 처남 閔경찬씨와 閔씨 주변 인물들이 南씨 측에 먼저 접근을 했던 것인가. 검찰은 南씨 연임 로비사건과 관련,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발표를 하지 않았다.
  
   南씨의 사장직 연임 로비 과정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南씨 측에서는 朴昌圭 大宇건설 전무다. 盧健平씨 측에서는 閔씨의 주변 인물들인 조선리츠 대표 박세진씨와 이 회사 이사 방재선씨다.
  
   기자는 지난 4월8일과 9일 朴昌圭 大宇건설 전무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기자는 4월8일 오후 朴전무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비서가 전화를 받았다. 비서는 『朴전무가 외출 중이라 통화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기자는 朴전무 비서에게 휴대폰 번호를 알려준 뒤 朴전무와의 통화를 부탁했다. 그러나 朴전무는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
  
   다음날인 4월9일 오후 기자는 또다시 朴전무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朴전무 비서는 『어제 전화 왔었다는 보고를 朴전무에게 했으나, 朴전무가 「통화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閔경찬씨의 주변 인물들인 방재선씨와 박세진씨가 南씨의 측근이라고 할 수 있던 朴昌圭 大宇건설 전무에게 먼저 접근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각종 건설관련 개발사업을 하려던 이들은 자본과 기술력이 튼튼한 大宇건설의 도움을 필요로 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閔경찬씨를 앞세워 南씨의 사장직 연임 로비를 제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南相國씨 측에서 盧健平씨에게 3000만원을 전달한 경위에 대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閔경찬씨와 방재선·박세진씨 세 명이 南씨의 사장직 연임 로비를 목적으로 盧健平씨를 만나기 위해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健平씨 집을 찾아갔던 시기는 2003년 9월5일이었다. 方씨는 9월5일 이전에 大宇건설 朴昌圭 전무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方씨는 朴전무에게 盧健平씨를 만나러 간다는 얘기를 전하며 『추석도 며칠 남지 않았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고, 方씨의 얘기를 들은 朴昌圭 전무는 조성해 두고 있던 大宇건설 비자금에서 3000만원을 빼내 方씨에게 건네 주었다는 것. 朴昌圭 전무가 2003년 11월에 盧健平씨에게 건네 주려던 돈 1억원도 大宇건설 비자금 중 일부였던 것으로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다.
  
   大宇건설 한 관계자는 『南相國씨의 평소 성격으로 미뤄 볼 때, 자신의 연임 로비를 朴昌圭 전무에게 먼저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리츠의 대표 박세진씨와 방재선 이사가 朴전무에게 한 로비제안을 朴전무가 南씨에게 전했고, 南씨는 그냥, 『알았다. 알아서 하라』는 정도의 지시를 했을 것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추정이다.
  
  
   盧健平씨의 도덕 불감증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盧健平씨가 南相國 前 大宇건설 사장의 연임 로비와 관련해 돈을 받은 시점은 2003년 8∼11월 사이였다. 健平씨는 이미 2003년 초 인사 개입설이 나돌면서 野黨으로부터 「봉하大君」이란 비난까지 들었다.
  
   健平씨가 돈을 받은 시점은 盧武鉉 대통령 측근들이 각종 불법행위를 저지른 혐의로 사법처리되거나, 검찰의 수사를 받던 때였다. 健平씨가 南씨 측의 로비를 받아 서울과 김해를 오르내리던 2003년 9월에는 梁吉承(양길승) 前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향응파문으로 청와대가 시끄러울 때였고, 盧武鉉 대통령이 健平씨 소유 거제 한려해상국립공원內 별장 건축 특혜의혹 건으로 한나라당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시점이기도 하다.
  
   盧健平씨는 南씨 측의 연임 로비사건과 관련, 3000만원을 받은 데 대해 검찰 수사과정에서 『추석 선물인 양주 정도로 생각하고 받았지만, 돈이 들어 있어서 곧바로 돌려주려 했으나 어쩌다 보니 2003년 11월경 돌려주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健平씨가 3000만원을 돌려준 시점은 2003년 11월이 아니라, 12월3일 이후인 것으로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다. 大宇건설의 후임 사장이 확정된 시기는 12월2일이다. 즉 健平씨는 南相國씨의 사장직 연임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 다음날 3000만원을 되돌려 주었던 것이다.
  
   盧健平씨는 3000만원 수수사실에 대해서도 『쇼핑백에 담겨져 있는 물건이 돈(3000만원)이 아니라, 추석선물인 양주인 것으로 생각해 받았다』고 검찰 수사과정에서 주장했다.
  
  
   盧武鉉 대통령의 형제와 사돈 껴안기
  
   盧健平씨 처 閔美迎(민미영ㆍ48)씨도 盧武鉉 대통령이 對국민 기자회견을 한 당일 뉴시스통신과의 전화통화에서 『지난해 추석 며칠 전 大宇건설 南 前 사장의 부탁을 받은 조선리츠 박세진 대표와 남동생(閔경찬씨), 방재선 이사가 집으로 찾아온 뒤 두고 간 쇼핑백을 당시에는 양주인 줄 알았다』고 했다. 閔씨는 『쇼핑백에 양주 2병이 담겨 있는 줄로 알았기 때문에 부엌 창고에 놓아 뒀고 20여 일 뒤 부엌 정리를 하다가 쇼핑백에 돈이 있는 것을 내가 직접 확인했다』면서 『당시 동생과 박 대표는 大宇건설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고 쇼핑백도 대문을 나가면서 방 안에 두고 갔었기 때문에 돈이 있을지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閔씨는 이어 『거액을 발견하고 곧바로 동생에게 전화를 해 가져가라고 말했고 그 뒤 찾아온 (조선리츠) 朴대표에게 돈을 그대로 돌려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盧健平씨 부부의 이 같은 해명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쇼핑백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이 양주였다고 해도, 건네준 사람들이 돌아가고 난 뒤 무슨 종류의 양주인지 궁금해서라도 포장을 열어 보는 게 보편적인 사람들의 행동』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또 『閔美迎씨는 쇼핑백에 양주가 들어 있는 줄 알고 이 쇼핑백을 부엌 창고에 뒀다면, 도대체 그 집에는 양주가 얼마나 많기에 부엌에 양주를 놓아 두느냐』며 『盧健平씨 부부의 해명에는 설득력이 없다』고 말했다.
  
   盧武鉉 대통령은 지난 3월11일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각종 비리로 구속된 측근 및 친인척들과 불법 大選자금 모금에 관여했던 측근 정치인들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를 했다. 그러나 盧대통령은 이날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 한 번 신뢰를 보낸다』, 『너그러운 평가가 있길 바란다』, 『善意(선의)』 등 다양한 표현들을 사용해 가며 친인척과 측근들을 감싸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盧武鉉 대통령은 친형인 健平씨의 돈 수수사실과 관련, 『어떻든 그 일은 성사되지 않았다. 돈은 이미 돌려주었다고 한다.아울러서 1억원을 주는 것을 받지 않고 거절했다는 사실도 있다』고 했다.
  
   盧대통령은 사돈인 閔경찬씨에 대해서도 『(금융권을 통한) 융자 부탁을 했지만 거절했으며, 600억원 펀드 사건에도 사전에 청와대와 조율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盧대통령은 또 『뒷조사를 하니 불편을 느껴 우리 민정팀(청와대 민정수석실)과 아주 갈등이 많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盧武鉉 대통령의 측근들에 대한 기자회견 내용(변론)은 변호사 출신답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盧대통령은 健平씨가 돈을 돌려줬고 청탁이 이뤄지지 않아 너그럽게 봐달라고 했지만, 돈의 반환이나 청탁의 성사 여부는 알선수재죄 성립에 영향이 없다는 게 법조계 한 인사의 설명이다. 알선수재죄는 「청탁과 함께 돈을 받는 순간」 성립되며, 하루 만에 돈을 돌려줘도 유죄를 인정한 판례도 있다는 것. 그런데도, 盧대통령의 이날 기자회견 내용을 보면, 돈을 준 사람이 더 문제라는 취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형법상 알선수재죄의 경우 돈을 준 사람에 대한 처벌조항은 없다. 따라서 盧대통령은 돈을 받은 쪽에 훨씬 무거운 책임을 묻는 입법 취지와도 반대의 주장을 편 셈이다.
  
  
   사법기관들의 盧健平씨 봐주기(?)
  
   南相國씨의 사장직 연임 로비사건에 대한 검찰 및 법원의 태도 또한 형평성과 관례에 어긋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3월10일 南씨 측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은 盧健平씨를 변호사법 위반 및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健平씨를 불구속 기소한 이유에 대해 비록 돈을 받은 뒤 몇 개월이 지나기는 했지만, 받은 돈을 돌려주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결과, 健平씨는 돈을 받기 한 달 전인 2003년 8월 서울로 올라와 호텔에서 南씨를 직접 만나는 등 소극적으로 인사 청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健平씨는 동생인 盧武鉉 대통령에게 南相國씨의 사장직 연임 부탁을 했던 것으로 盧대통령의 기자회견을 통해 확인됐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이런 점들을 감안할 경우 검찰은 마땅히 盧健平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盧健平씨가 南씨 측으로부터 받은 3000만원을 되돌려준 시점도 모호하다. 健平씨는 南씨 측으로부터 받은 3000만원을 수개월 동안 보관하고 있다가 南 前 사장의 교체 결정이 내려진 직후인 12월3일 되돌려 주었던 것으로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다. 健平씨가 돈을 되돌려 준 시점을 고려해 볼 때에도, 健平씨는 적극적으로 로비자금을 받을 의사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법원이 불구속 기소된 盧健平씨 사건을 창원으로 이송시켜 준 것도 일종의 「봐주기」라는 지적이 있다.
  
   盧健平씨 사건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는 지난 3월19일 健平씨 변호인의 요청에 따라 이 사건을 健平씨 관할 법원인 창원지법으로 이송했다. 서울중앙지법 측은 이에 대해 『형사소송법에 따라 盧씨 측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해명했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8조는 「피고인이 관할 구역內에 거주하지 않을 경우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법원의 결정으로 사건을 피고인의 현 거주지 관할 법원으로 이송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의 이 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형사사건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라는 의견이 법조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서울지역 한 변호사는 『사건을 거주지 관할 법원으로 이송한 것 자체가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을지 모르지만 상당수 형사사건 피고인이 주거지역과 관계없는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불필요한 오해를 살 만한 조치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사건 이송 반대해
  
   검찰도 健平씨 사건의 이송에 반대의견을 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 金泰熙(김태희)씨는 사건 이송 직후 언론 브리핑을 통해 『법원이 健平씨 측 요청에 따라 사건 이송에 대한 견해를 물어와 「수사팀이 공소유지를 계속 맡아야 한다」는 취지로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검찰은 조선리츠 대표 박세진씨 등 다른 공범들에 대한 재판이 서울중앙지법에서 계속 진행 중인데다 사건을 이송할 경우 健平씨 한 명의 재판을 위해 공범 등 다수가 경남 창원으로 내려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는 점 등을 반대이유로 들었다는 것.
  
   검찰은 南相國씨의 大宇건설 사장직 연임 로비사건 수사과정에서 南씨 측이 健平씨에게 건네주었거나, 건네려고 한 돈이 大宇건설의 비자금 중 일부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이 사건과 관련된 또 다른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유난히 도덕성을 강조하며 역대 정권과의 차별성 부각에 功을 들여 온 盧武鉉 대통령이지만, 취임 1년 만에 野黨의 탄핵안 발의로 취임 이후 최대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데다, 이번엔 자신의 친형과 사돈이 나란히 법정에 서는 수모까지 겪게 됐다. 여기에다 南相國씨의 자살사건까지 겹쳐 盧武鉉 대통령은 당분간 이래저래 힘든 상황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2006-01-08, 12:3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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