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혁당 판결문의 총리 부부 행적 추적
『「어버이 수령 김일성…」 하는 북괴의 어린이가 김일성을 찬양하는 북괴방송을 들었다』(한명숙 판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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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現 사회는 정치경제적으로 외세의 지배下에 있다. 자본주의 체제의 악순환을 제거하기 위해 사회주의 경제체제로 개혁해야 한다』(박성준 판결문)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이 기사는 월간조선 2006년 5월호에 실려있습니다.)
  
  
  37년 만에 공개된 통일혁명당의 전모
  
  37년 만에 세상에 공개된 통일혁명당 사건의 법원 판결문은 당시의 사건 규모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A4 용지 1000여 쪽에 달하는 판결문은 통혁당 사건이 한국전쟁 이후 최대 간첩단 사건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사건으로 158명이 검거됐고, 73명이 검찰에 송치됐으며, 30명이 중형을 받았고, 주모자 5명은 사형당했다.
  
  피고인 명단에는 이른바 「진보지식인」이라 불리는 인사들이 적잖게 포함돼 있다. 한명숙(한명숙) 총리지명자의 남편 박성준(박성준) 성공회大 교수도 그중 한 명이다. 판결문은 박성준씨와 한명숙씨의 행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현대史의 한 단면을 머금은 「세월의 먼지」를 조심스레 털며 판결문을 한 장 한 장 넘겨 봤다.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 판결문에 적힌 당시의 용어를 그대로 인용했다. 기록은 통혁당 사건을 이렇게 규정했다.
  
  <통일혁명당이 북괴의 무력남침에 대비한 사전 공작으로 조직된 단체로서 유격전을 기도하여 무력행사를 준비하였으며, 과거의 남로당 조직을 부활시킨 조직체일 뿐만 아니라 지식층의 청년을 포섭하였으며, 잡지 반포, 당소조의 조직, 당원에의 적색사상 교양, 데모 조정, 해안선 답사, 유격전술요원 입북, 간부진의 빈번한 입북과 국가기밀 누설, 거액의 공작금 지원 등이 있은 사실을 감안하여…>
  
  문건의 첫 머리는 통혁당 사건의 주범 김종태(북괴노동당 대남공작원), 김질락(북괴노동당 대남공작원 가명 백두오), 이문규(북괴노동당 대남공작원 가명 백두육), 이관학(괴뢰 군인), 김승환(괴뢰 군인) 등 5명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금종태-금질락-신영복-박성준」
  
  1968년 검거 당시 박성준은 서울大 경제학과 4학년이었다. 그는 1968년 1심에서 징역 15년,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고 이듬해 대법원에서 刑(형)이 확정됐다. 박성준은 대학 선배였던 신영복(신영복ㆍ現 성공회大 교수)으로부터 포섭돼 사상교육과 학습을 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박성준은 신영복으로, 신영복은 금질락으로, 금질락은 핵심 주범인 김종태로 이어지는 인맥 조직도를 그리고 있다.
  
  <1966년 11월 김질락은 자신의 집에서 북괴의 이익이 되는 정을 알면서 신영복과 만나 북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할 목적으로 신영복으로부터 철학 노트 1권을 받고, 육사생도 9명에 대한 교양상황과 「박성준을 포섭하였다」는 보고를 받았다>
  
  <1967년 오후 3시 김질락은 잔디다방에서 신영복으로부터 「경제복지회 내에 있는 성원인 박성준을 조정하여 시내 각 대학생 100여 명을 규합, 7월2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명동에 집결시켜 6·8 부정선거 규탄구호를 외치면서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앞 노상까지 데모 행진을 감행했다」는 보고를 받고 신영복을 격려했다>
  
  통혁당 사건 당시 신영복은 서울大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육사 교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이 사건의 주범들과 직접적으로 연루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복역했다. 신영복은 김질락 등 사건의 핵심 인물들과 자주 만나 지시를 받고, 사업 진행상황을 보고했다. 서울大 출신으로 북한과 직접적으로 연결됐던 김질락은 신영복 등 젊은 청년을 포섭하는 일을 했다. 다음은 판결문의 일부이다.
  
  <1966년 중순경 김질락은 서울 중구 무교동 소재의 한 다방에서 북괴의 이익이 되는 情을 알면서 김종태를 만나 그에게 「신영복을 포섭하였다」고 보고했고, 김종태로부터 「신영복에게 교양을 주어 하부조직을 하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아 反국가단체인 북괴를 이롭게 했다. 1966년 8월 서울 서대문구 갈현동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신영복에게 「육사교관과 생도를 포섭할 것」, 「월 2~3회씩 집에서 회합할 것」, 「각자의 활동상황을 정기 회합時 보고할 것」 등을 지시하고, 「청춘의 노래」라는 불온서적을 제공하여 反국가단체를 이롭게 했다>
  
  검찰은 박성준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음모, 반공법 위반죄를 적용했다.
  
  
  「민족적, 사회민주적, 사회대중적 사회」
  
  당시의 검찰 공소장에는 「박성준이 사회주의·공산주의·유물론 등 사회과학 서적은 물론 北이 발행한 불온서적도 열심히 학습했다」고 적시되어 있다. 박성준은 이같은 책을 열심히 읽은 후 주변 인물에게 사상을 전파한 걸로 돼 있다. 그가 공부했던 책은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 자본론」, 「사회사상전집」, 「불란서 유물론」, 「레닌의 성과적 유물론」, 「레닌주의란 무엇인가」, 「너는 누구의 아들이냐」, 「청년의 노래」(북괴 발행), 「중국혁명과 중국공산당」, 「공상에서 과학으로」,「 새벽길」(북괴 발행)>
  
  법적 판단을 떠나, 당시의 박성준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판결문에 나타난 박성준의 발언이다.
  
  <우리가 現 사회주의를 이상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회적으로 허용될 수 없고 후배들도 따라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선 合法을 가장해서 동지규합단체를 확대, 現 정부에 대항하고 외세에 항거, 現 사회제도를 타파하고 사회주의 사회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방향으로 「민족적, 사회민주적, 사회대중적 사회」라는 구호 밑에 외견상 합법적으로 보일 수 있는 단체를 조직하고 동지를 규합하자. 사회주의 사회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이러한 조직은 민족해방전선(엔,이,엘)이라고 호칭하자.
  
  現 사회는 정치경제적으로 외세의 지배下에 있고, 경제적으로 불평등하여 대단히 모순이 많은 사회다. 자본주의 체제의 악순환을 제거하기 위하여는 사회주의 경제체제로 개혁하여야 한다>
  
  통혁당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종태는 재판 과정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대부분 시인했다. 그러나 김종태 등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됐던 「청맥」의 주요 인물들은 자신들이 행위가 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1심 판결에 불복한 박성준은 항소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민족해방전선」을 구성한 바 없으며, 4·19 묘지에서 북괴를 이롭게 하는 행위를 한 사실도 없고, 그 밖에 이 사건 책자를 구입하거나 빌려 보거나, 빌려 주고, 필기시키고 한 모든 행위가 북괴를 이롭게 한 것이 아니며, 신영복을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경솔한 소행을 하기에 이른 것이니 기독교인으로서 깊이 반성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박성준이 「現 사회는 사회주의 제도로 개혁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反국가 단체의 활동에 동조했다』고 판단, 원심을 확정했다.
  
  박성준이 수형생활을 하는 동안 부인 한명숙도 이 사건에 연루돼 1973년 반공법 위반으로 실형(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형)을 받았다.
  
  <피고인 한명숙 등은 북괴는 정부를 참칭하고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조직된 反국가단체로서, 북괴가 간행하는 표현물이나 기타 사회주의 서적을 반포하는 행위는 북괴가 시도하는 행위에 동조하는 행위로서 북괴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피고인은 박성준으로부터 북괴 간행 「청춘의 노래」를 빌려 받고, 박성준의 부탁으로 엥겔스가 쓴 「사회사상총설」 1권을 받아 그 책에 있는 「공산당 선언」을 노트에 필기하고, 박성준의 지시로 이○○, 최○○와 같이 읽고 反국가단체의 활동에 동조하는 한편 찬양고무하는 표현물을 취득 복사, 보관, 반포하여 북괴를 이롭게 했다>
  
  
  북한방송 청취
  
  한명숙은 1979년 이른바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건에 연루돼 또다시 처벌받는다. 「크리스챤 아카데미」는 1970년대 초반 한국 사회구조의 병폐를 없애기 위해 강원룡 목사가 만든 단체이다. 한명숙은 당시 여성 교육을 담당하는 여성부분 간사로 일했다.
  한명숙은 이우재, 장상환, 황한식, 신인령, 김세균과 만나 모스크바방송·북경방송·평양방송·통혁당목소리방송 등을 들었던 것으로 기록은 전한다.
  
  <써클회원 6명이 모인 자리에서 회의를 속개하기에 앞서 그 집에 있던 라디오를 조작하여 「어버이 수령 김일성…」하는 북괴의 어린이가 김일성을 찬양하는 북괴방송을 함께 들은 후 나머지 피고인들에게 「스웨덴의 탁아소 등 어린이 복지시설이 잘 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잘 되어 있는 곳은 이북이라고 하더라」는 요지의 말을 하여 反국가단체인 북괴 또는 국외 공산계열의 활동에 동조 또는 찬양하여 이를 이롭게 했다>
  
  판결문은 한명숙의 여성사회에 관한 활동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피고인 한명숙은 다른 피고인들에게 「여성문제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 것이니 읽어 보라」면서 「조선여성독본」 복사판을 제공하였다>
  
  한명숙 총리지명자는 「크리스챤 아카데미」과 관련해 2001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아 명예를 회복했다. 이 조치는 1973년 통혁당 사건과는 무관하다.
[ 2006-04-25, 13:5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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