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晩과 미국의 결투로 만든 韓美동맹
“전쟁터에서 쟁취 못한 것을 회담의 탁자 위에서 당신네에게 양보해 주리라고 어떻게 공산당에게 기대를 걸 수가 있소?”

올리버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李承晩과 덜레스의 대결
  
   李承晩 건국 대통령의 평생 친구이자 고문이었던 미국인 로버트 T 올리버씨가 쓴 「건국의 내막」(啓明社. 朴日泳 번역)이란 책의 원명은 「Syngman Rhee and American Involvement in Korea(1942-1960)-A Personal Narrative」이다. 이 책은 李承晩과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친구 관계로서 지켜본 이 巨人에 대한 생생한 증언으로서 가치가 있다. 이 책 가운데 흥미 있는 것은 1953년 7월27일 이후 韓美 상호방위조약을 둘러싸고 李承晩과 미국이 벌이던 외교전에 관한 것이다. 그 일부를 인용한다.
   ---------------------------------------------------
   국무 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는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의 세부 사항을 작성하기 위해 한국 관리들과 같이 일하게 될 상당수의 고문단을 대동하고 (1953년) 8월 5일 한국에 도착하였다. 이 문제에 관하여는 대단치 않은 의견 차이가 더러 있을 뿐 심각한 것은 없었고 교섭 분위기는 정중하고 명랑하기까지 하였다. 주로 統韓 문제에 대한 미국 공약의 성격에 관해서 리승만(李承晩)과 덜레스 간에 중대한 회담이 거듭되었다. 이에 관해서 나는 비망록에 자세히 적어 놓았다.
  
   <여기서 나의 입장은 “애매하다.” 한국 정부에 고용된 미국인으로서 나는 대표단의 구성원이 아니다. 그런 고로 나일즈 본드나 기타 “하위급” 인사들이 회의에 임하게 될 때에도 나는 그 회합에 참석하지 않음은 물론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어야 한다. 어제 저녁 수석 대표들을 위한 경무대(景武台) 만찬이 있었으나 나는 물론 초대되지 않았다. …오늘 아침 리 대통령과 잠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으나 미국 대표단이 들어서므로 나는 슬쩍 물러 나왔다. 그보다 앞서 한 시간 가량 나는 조약 원문을 검토하며 몇 가지 제안도 제시하며 보냈다. 대표단 전원이 오전 10시에서 11시까지 만나고 나서 산회하였기 때문에 리 박사와 덜레스는 단둘이 잠시 이야기할 수 있었다. ...나는 정문에 있는 경잘 초소에 내려와서 짚차를 타고 막 떠나려는데 사람 하나가 뛰어 내려와 경무대(景武臺)에서 나를 찾는다고 일러주었다.
  
   내가 그리로 갔더니 리 박사와 덜레스가 나를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리 박사가 나를 소개했고 덜레스는 매우 정중하게 대해 주었다. 그는 호의적이라고만 볼 수 없는 기묘한 눈빛을 보내며 나의 이름은 오래 전부터 상당히 많이 들어 왔노라고 하면서 만나게 되어 대단히 반갑다고 말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내가 리 박사와 함께 여기서 일을 하고 있다니 기쁘고 리 박사가 나를 깊이 신임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로 생각한다고 말하였다. 내가 앞으로 있을 정치 회담에 참석하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하고 그 일로 나에게 휴직을 허가하도록 “밀톤”에게 이야기해 주겠노라고도 하였다. 내가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쳤었느냐고 묻고 “수사학”이라고 대답하였더니 그는 웃었다.…
   리 대통령과 덜레스와의 대화는 한 5분 정도 계속되었다. 덜레스는 능청스러운 웃음을 띄우며 리 박사에게 “내가 최근 당신의 친구 네에루씨를 방문한 사실을 알고 계시지요?”하였다.
   “친구라니요?”하고 리 박사는 엷은 웃음 속에 천만의 말씀이라는 몸짓으로 대꾸하였다.
   “그 때 네에루가 저더러 ‘당신은 리 대통령을 붙들어 매둘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을 거요’라고 하더군요.”
   덜레스는 “당신은 내가 그렇게 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있지 않소”하고 대답하였노라고 했다. 그랬더니 네에루의 날카로운 반응은 “말도 안되는 소리 마시오! 그 사람이야 당신이 하라는 대로 무엇이든 할 것 아니오?”하는 것이었소. “당신은 리 박사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구료.”라고 덜레스는 자기가 대답하였노라고 하며 그와 리 박사가 웃었다.
  
   그때 다시 덜레스는 자기가 네에루에게 아주 정색을 하고 “자 그렇다면 솔직한 말씀인데 우리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을 어떻게 다루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오? 꼭두각시처럼 할까요?하고 물었다는 것이다.
   나는 “네에루가 무어라고 대답합디까?”하고 덜레스에게 물었다. “그 사람은 화제를 슬쩍 바꿔 버리던데요.”라고 덜레스는 대답하였다.
  
   그 다음 덜레스는 매우 심각한 어조로 나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지금 한국과 세계의 여타 국가와의 관계를 새로운 토대 위에 정립시키려고 하고 있소.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는 이제까지 항상 다른 강대국 몇몇과 만나서 한국에 대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그 다음에 그 결정된 사항을 한국에 통치하는 데 그쳐왔소. 그러나 앞으로 우리는 이런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으려는 것이오. 나 자신이 직접 이곳으로 온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소. 강대국의 국무 장관이 약소 국가 대통령을 만나 자기들의 정책을 약소국의 정책과 합치되도록 노력하기 위하여 멀리 바다 거넌 찾아 온다는 것은 이런 일이 역사를 통해 한 번도 없었던 전무 후무한 최초의 사건이오. 이런 여러가지 문제들을 결정짓는 일은 그것이 어떤 것이 되든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오. 중대한 것은 우리가 왔다는 이 사실이오.”
  
   리 대통령은 “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오.”하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나는 덜레스에 찬성하며 그의 말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오.”라고 바로 잡았다. 그리고 나는 덜레스를 향하여 “당신과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정말 아시아 문제를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 혁명을 일으키고 있으며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효과를 가져올 것이오.”라고 말하였다.
  
   “그렇소. 우리는 새로운 혁명을 일으키려 하는 것이오.”하고 그는 대답하였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많은 나라들이 이것을 좋게 보고 있지 않아요. 아시겠소? 그들은 이 회담을 두려워하며 열리지 못하도록 반대까지 하였소.”라고 했다.
   오늘 아침에는 방금 “어떤 공식적인 영국 소식통”으로부터 리승만(李承晩)·덜레스 회담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었다.
   나는 재빨리 “나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 인민들은 그것을 환영하고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게 될 것이오.”라고 말하였다.
   리승만(李承晩)과 덜레스는 그후 잔디밭에 있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내 곁을 떠났고 나도 기분이 좋아가지고 점심 식사를 하려고 자리를 떴다.
  
   나의 “유쾌한 기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사실은 그저 한 30분 좋았을 뿐이다. 내가 반도 호텔에 있는 내 방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자기 도취에서 깨어 났다.
   리 대통령이 절망적인 기분이 되어 나를 전화로 불러 회담은 모두가 “완전 실패”이므로 자기는 “혼자서 다 해나가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가 말하는 이유는 공산당을 한국에서 몰아내기 위하여 미국이(공산당을 몰아낼) 공동의 싸움을 속개할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고 다른 나머지 조항들은 “겉치레”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나더러 상호 방위 조약의 원문을 작성하는 회의에 들어가 앉아 있으라고 당부하였다.
  
   미국 대표단이 가지고 온 초안에는 리승만(李承晩)이 요구한 것 다시 말해서 미국 군대의 한국내 또는 한국 주변 지역 주둔을 규정하는, 미·일 안보 조약 1조의 내용과 같은 것이 편입되어 있다. 이 규정은 한국에 대한 공격은 미국에 대한 공격이며 전쟁은 “자동적이고 즉각적으로” 시작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리 박사는 조약 초안에도 역시 즉각적이고 자동적인 전쟁 공약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 대표들은 그의 주장이 국회만이 전쟁을 선포할 수 있다는 헌법 규정을 위반하게 되므로 그것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변영태(卞榮泰), 임병직(林炳稷), 김용식(金溶植), 그리고 나는 이것을 놓고 2시간을 논의하였으나 결국 그들의 말이 옳다는 데 의견이 맞았다.
  
   우리는 미국의 공약을 강화시키는 두 개의 단어를 삽입시키도록 하였으며 그것으로 만족하였다. 그리고 나서 리승만(李承晩)과 덜레스가 그 초안에 서명하도록 하기로 합의를 보아 국회 인준 전이라 할지라도 어떤 즉각적인 효력이 있도록 하였고 그것 역시 우리에게 만족스럽게 생각되었다.
   우리는 경무대(景武台)로 돌아와서 나는 이 사람들에 의해 대변인격으로 뽑혔기 때문에 리 박사에게 우리의 노력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고 계속해서 조약이 보장하는 바의 것에 대하여 그를 확신시키려고 하였다. 그는 매우 냉철하게 듣더니 “그러면 그것이 공산당을 북한에서 몰아내는 미국의 군사 행동을 보장하는 것인가?”고 물었다. 우리는 아니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라고 말하였다. 그는 화를 내며 우리는 모두 실패했다고 하면서 그것이 빠지면 모든 것이 아무 가치가 없다고 말하였다.
  
   변영태(卞榮泰)는 조선 호텔 칵테일 파티의 주최자이기 때문에 그 자리를 뜨지 않을 수 없었다. 김용식(金溶植)과 나는 리 박사를 설득시키려고 최선을 다하였으나 듣지를 않으므로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임병직(林炳稷)은 리 대통령과 완전히 뜻을 같이 하며 이러한 조약을 체결하려고 우리가 노력해 온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하면서 그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결국 리 박사는 우리가 회합을 다시 열어 자기가 원하는 조항을 집어 넣으라고 요구하였다. 덜레스가 그것을 수락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하고 여하간에 위원회는 그것을 집어 넣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리 대통령과의 나의 두통거리는 (미 국무자 차관보)월터 로버트슨과의 추가적인 문제에까지 바로 이어졌다. 우리가 리 대통령에게서 물러나와 나는 칵테일 파티 장소로 갔는데 그곳은 그저 유쾌하게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였다.
   우리가 도착하자 마자 나는 로버트슨에게 잠깐 함께 자리를 하자고 말하고 조용한 구석을 찾았다. 나는 먼저 만일 미국이 한국 통일 노력에 대하여 아무런 원조도 할 수 없고 오히려 공공연히 비난을 하게 될 것이라고 고집하는 한 모든 공약은 세상 사람들을 조롱하는 한낱 속임수에 지나지 않다는 생각을 리 박사가 하고 있소 라고 말문을 열었다. 로버트슨은 자기는 그 말을 찬성할 수 없다고 퉁명스럽게 받았다.
  
   그리고 그는 그 문제는 제쳐놓고 루카스와 레스턴의 회견 기사와 미국 신문들이 “리승만(李承晩)은 로버트슨이 자기와의 모든 공약을 깼다”고 한 머리 기사에 대하여 굉장히 장황하게 그리고 감정을 나타내며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나는 리 박사가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가로 막았다. 그리고 오히려 나는 7월 27일 휴전 협정 서명에 앞서 미국의 최종적인 입장을 설명한 해리슨 제독의 7월 19일 판문점 회담에서의 발표문이 참으로 리승만(李承晩)·로버트슨 합의 사항의 위반이라고 지적해 주엇다. 로버트슨은 그 일 때문에 난처하게 된 데 대해서 리 박사를 비난하지는 않지만 자기가 공약한 약속을 깼다고 공개적으로 낙인을 찍는 바람에 상당히 화가 났었노라고 말하였다. 자기는 리 박사를 비난하는 강경한 성명서를 썼었지만 덜레스가 발표하지 말도록 설득하였노라고도 했다.
   이런 성명들이 조금이라도 다시 발표된다면 자기는 정말 자리를 물러나면서 그것을 반박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겠노라고 말하였다.
  
   그는 말을 이어 자기는 리 박사에 대한 순수한 존경심과 호의를 품게 되었고 미국으로 돌아가면 어떤 미국 관리도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일이지만 한국을 위해 싸울 용의가 있노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짐 루카스의 신문 기사가 “자기를 망쳤고” 자기는 골병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상당한 시간이 흘렀으나 리 박사가 결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그에게 납득시키려는 나의 노력은 별로 효과가 없었다. 로버트슨은 다시 “미국은 리 박사로부터의 처사를 모두 의도적으로 참아왔소. 만일 리 박사가 ‘단독으로 해나가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그의 특권이오. 그는 이 세상에 친구도 없고 완전히 외톨이가 될 것이며 그것이 그가 원하는 바라면 어떤 형태로든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도움은 바랄 수 없을 것이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불합리한 요구들을 중지해야 할 것이오.”라고 역설하였다. 그는 나에게 매우 우호적이고 나의 문제를 이해하겠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발 가능한 일이라면 리 박사에게 좀 이성으로 돌아오도록 설득해 보시오.”라고 덧붙였다.>
  
   다음날 오후 나는 리 박사와 덜레스가 발표할 공동 성명을 작성하여 리 박사의 검토를 받고자 경무대(景武台)로 가지고 들어갔다. 그는 아침 회의 때와 같은 기분으로 나를 반기며 “올리버 박사, 얼마나 내가 되풀이하며 여러 번 참을성 있게 우리는 통일을 성취시켜야 한다는 말을 자꾸만 하고 있는지 당신은 아직 이해를 못하고 있소. 이 다른 모든 내용들은 조금도 뜻이 없소.”하였다. 그러자 나는 공동 성명 원본으로 준비해 간 문안을 그에게 보였다. 이 일이 있은 직후에 내가 적어둔 비망록에 의하면-.
  
   <그 문안을 읽어 본 뒤 그의 눈빛은 빛났다. “이것은 훌륭하오. 그런데 덜레스가 여기에 동의를 할까?”하고 말하였다. 글쎄요? 그러나 적어도 이 문안 속에는 덜레스와 로버트슨이 이미 동의한 바 없는 사항은 하나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라고 여쭈었다. 나는 덜레스가 전략적인 이유 때문에 그것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일에 동의하지 않을런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였다. 리 박사는 덜레스가 여기에 서명만 한다면 공개가 되든 말든 자기는 상관 않겠다고 대답하였다.>
  
   8월 7일 같은 날 오후 리승만(李承晩)과 덜레스는 제3차이자 마지막이 될 회담을 열었다.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이 마지막 노력을 위하여 나도 두 사람 옆에 참석하도록 조치되었다. 나의 비망록에 따르면 나는 “거의 예상 못했던 정신적 허탈감에 빠져들 지경이었다.” 합의를 본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어 보였다. 나의 생각은 사표를 내고 다음 비행기로 귀국 길에 오를까 하는 것이었다. 이 회담은 전쟁의 기본적인 성격에 대한 전체적인 한·미 간의 불화를 두드러지게 보이는 하나의 극적 장면이었다.
  
   전 세계의 모든 정치인들 중에서 이 두 정치가는 공산주의 위협의 성격과 이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하여 가장 강하게 기본적으로 뜻을 함께 한 까닭에 이 장면에는 슬픔과 기구함이 짙게 깔려 있었다. 두 사람은 덜레스의 표현대로 전쟁 없이 소련으로부터 얻어 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얻기 위한 “절묘한 부전승(不戰勝)의 전략”을 쓸 줄 아는 도박사의 소질을 가진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기질에 있어서도 이 사람들은 닮은 데가 많았다.
  
   양자는 지금 자기들이 숙명적으로 맡아야 했던 역할에 심한 긴장감을 보이고 있었다. 덜레스의 왼쪽 눈은 자주 경련을 일으켰고 자신이 완전히 수락하기 곤란한 정책을 정당하다고 주장해야 하는 책임 때문에 그의 얼굴은 더욱 지쳐 있었다. 멀리 워싱턴에서는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 17개국이 모여 회담이 열리고 있었다. 덜레스는 그들이 채택하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지지한 정책을 강요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식의 타협은 덜레스의 구미에도 안맞는 일일 뿐더러 리 박사에게도 취미 없는 일이었다. 아무도 자신들이 처한 입장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회담이 시작되자 덜레스는 “대통령 각하. 우리가 합의본 바 결론에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하고 운을 뗐다.
   “당신은 나의 생각을 알고 있지 않소? 의논해 봅시다.”하고 리 대통령이 대답하였다.
   “의논할 것이 없습니다.”하면서 덜레스는 “국제연합 국가들이 이미 우리가 천명해야 할 입장을 결정지어 놓았습니다. 이것은 변경시킬 수가 없습니다.”하고 못박았다.
  
   리 대통령은 벌떡 일어서며 노기띤 어조로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 때문에 왔소? 당신이 나와 함게 조건들을 의논할 의사가 없다면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오. 그 조건들을 내게 전문으로 통보할 수도 있었을 것 아니오?”라고 말했다.
  
   덜레스는 달래듯이 이렇게 누그러뜨렸다. “우리는 각하를 무시할 뜻이 없습니다. 우리는 각하의 휴전 승인을 원합니다. 각하의 승낙을 얻으려고 제가 온 것이 아닙니까?”
  
   잠시의 침묵이 흐른 뒤 덜레스는 말을 이어 미국뿐 아니라 국제 연합도 한국이 자신의 민주 독립 정부 아래 통일이 되는 목표를 완전 지지해 왔다고 설명하였다. “우리의 목표가 바로 각하의 목표와 똑 같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각하는 전쟁에 의하여 목표를 달성하려고 원하고 있고 우리는 평화적 방법으로 달성하려는 것뿐인 것입니다. 각하는 왜 우리가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고 고집 하십니까?”하고 그는 물었다.
   리 대통령은 정색을 하고 대답하였다. “나는 당신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소. 어느 나라도 이번 전쟁에 한국 만큼 커다란 피해를 본 일이 없으며 우리의 목표가 평화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면 우리 보다 더 다행한 국민은 없을 것이오. 내가 묻고 싶은 단 한 가지 질문은 이것이오. 만일에 당신네들이 평화적인 교섭을 통하여 우리의 공동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에는 어떻게 하겠소?”
  
   “그때에 가서는 어떻게?”라고 하는 이 질문이 쌍방이 모두 피할 수 없고 그렇다고 가능한 해결책도 뚜렷하지 않은 요점이며 두 사람이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핵심이었다. 국제연합과 미국은 한국에서 공산당을 몰아내기 위하여 그저 싸움만을 계속하고 있을 처지가 못되었다. 자기네들끼리 합의를 본 해결책이라는 것이 고작 이 목표 달성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시도해 보기 위하여 공산측과 정치 회담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하여 리 박사는 공개적으로 멸시하였다. “전쟁터에서 쟁취 못한 것을 회담의 탁자 위에서 당신네에게 양보해 주리라고 어떻게 공산당에게 기대를 걸 수가 있소?”하고 그는 물었다. 이것은 덜레스가 답할 수 없는 물음이었다.
  
   리 박사는 다음으로 마지막 안간힘을 써서 “90일 이내에 우리의 공동 목표를 달성시키는 데 있어서 정치적 방법이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에는 미국이 다시 전투를 재개한다는 점에 동의하겠소?”하고 물었다.
   이에 대하여 덜레스는 자기는 동의할 권한이 없다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정치 회담이 실패한다고 가정할 때 당신네들은 어떻게 하려는 심산이오?”하고 리 박사는 물었다.
   “우리는 실패할 생각이 없소.”하고 덜레스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실패는 미국의 방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목표가 성취될 때까지 평화적 방법을 가지고 계속 밀고 나갈 것입니다.”
  
   이 회담은 한 시간을 훨씬 넘기며 계속되었다. 오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때로는 둘 중의 한 사람이 더 할 말도 없다는 것을 느끼고 창가로 가서 밖을 내다 보기도 하였다. 두 사람에 대한 나의 존경심은 높았다. 두 사람은 자기들이 피할 수 없는 역할을 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퇴로가 없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두 사람은 실패를 자기네가 안고 살아야 하는 숙명임을 깨닫고 있었다. 합의를 본다는 것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공동 성명을 발표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리승만(李承晩)은 휴전 협정에 서명할 수 없었으나 이를 “방해하지 않기로” 합의하였다. 이들은 우정과 상호 존경 속에 이별을 고하였다.
   8월 10일 리 대통령은 휴전에 관하여 자기 자신의 성명서 원문을 발표하였다.
   <휴전 협정은 전쟁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전쟁의 준비 행위이고 더 많은 고난과 파괴를 의미하며, 전쟁과 내란에 의한 공산당의 더 많은 침략 행위의 서막이 된다는 나의 확신 때문에 나는 휴전 협정 서명에 반대하여 왔습니다.
   이제 휴전이 서명된 이 마당에 나는 그 결과에 대한 나의 판단이 틀렸던 것으로 나타나기만 기원할 뿐입니다. 정치 회담이 한국의 해방과 통일의 문제를 평화적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동안 우리는 휴전을 방해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미국과 우리가 양해한 사항은 우리 상호간의 이해가 얽힌 이 지역의 안보를 유지함에 있어 우리 양국 간의 효과적인 협력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남한의 재건 사업은 신속하고도 효과적으로 진척될 것입니다. 공산당도 북한에서 우리 만큼의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공산학정 속에 당분간 그대로 남아있게 되는 우리의 불쌍한 동포들에게 나는 “절망하지 마시오. 우리는 결코 당신들을 잊지 않을 것이며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잃어버린 이북 5도와 북한의 우리 동포들을 다시 찾고 구출하려는 한국 국민의 근본 목표는 과거와 같이 장차에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바입니다.>
  
   그는 절대적으로 휴양이 필요하였고 진해(鎭海)로 혼자 내려가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나 역시 휴식을 얻고 싶어서 펜실베이니아 중부의 소위 “행복의 게곡”으로 돌아 왔다. 전쟁은 끝이 났다. 이제는 외교적 수단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 2006-05-12, 23:1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