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晩의 당당한 원조 요구
"미국이 제 나라에서 치러야 했을 전쟁을 우리 땅에서 했으니 우리로서는 할 말이 있지 않나. 원조를 좀더 많이 달라고 해봐"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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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 9월 宋仁相 부흥부장관은 金泰東 조정국장과 재무부의 李漢彬 예산국장을 데리고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미국의 對韓원조를 많이 얻어내고 이를 한국의 실정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교섭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경무대로 李承晩 대통령을 예방했다. 李 대통령은 '송 장관이 간다니 잘 해가지고 올 것으로 알아. 그러나 한 마디 꼭 해두고싶은 이야기가 있어'라고 했다.
  
  '원래 우리 한국인은 남에게 돈 달라는 이야기를 잘 하지 못해. 속담에 '우는 아이 젖 준다'고 그러지 않나. 우리의 어려운 사정과 억울한 이야기를 미국의 朝野에 널리 알리게. 38선 얘기는 필요 없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제 나라에서 치러야 했을 전쟁을 우리 땅에서 했으니 우리로서는 할 말이 있지 않나. 원조를 좀더 많이 달라고 해봐. 그리고 '조그만 일에까지 너무 간섭하지 말아달라'고 그렇게 이야기하게. 그렇지만 사람이 너무 잘게 굴면 위신이 서지 않아. 하물며 나라 일을 맡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나라의 위신이라는 것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되네. 정정당당히 조리 있게 이야기해봐. 큰 성공이 있기를 바라네'
  
  李대통령은 외교하는 데 보태 쓰라고 흰 봉투를 하나 주었다. 미화 1000 달러가 들어 있었다. 100 달러 사용도 주저하는 李대통령으로서는 큰 돈이었다. 애국이란 무엇인가? 태평양을 날아가는 노스웨스트 항공기 속에서 宋장관 일행 세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한 잠도 못잤다.
  <宋仁相 회고록 '復興과 成長'에 실려 있는 이야기임>
  
  
  어려운 시절 李承晩이 세운 나라를 朴正熙가 온갖 욕을 먹으면서 强兵富國으로 만들었다. 두 위대한 대통령이 만들어낸 그 國力으로써 민족반역집단에게 퍼주기를 하면서도 李承晩, 朴正熙에게 감사는커녕 온갖 저주와 경멸을 보내고 있는 자가 지금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고 한다. 며칠 전 그 자가 한 말이 '우리는 그동안 미국에 기대어 살아왔다'는 모함이었다. 위의 李대통령 이야기처럼 그 가난한 시절에도 우리 정부는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애썼고 지도자는 우리가 미국에 기대는 것만큼 미국도 우리에게 기대고 있다는 논리로써 부하들에게 당당한 對美 자세를 주문하였다. 민족반역자에게 굴종하면서 그를 국내정치에 끌어들여 私益을 도모하려는 자가 천하에 부끄럼 없이 당당했던 李承晩의 자주적 對美외교를 모독했다. 전형적인 좌파식 거짓선동이었다. 盧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 다음날 좌익무장폭동이 평택에서 일어났고, 군인들은 얻어맞고 도망다녔다.
  
  좌익이 군인을 팼다. 우리 아들들을 팼다. 대한민국을 팼다. 국민과 軍人과 대한민국이 일어나 이 좌익폭동을 진압해야 우리가 살 수 있다.
[ 2006-05-13, 11:1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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