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民戰 관련 자료모음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꾀했던 대규모 反국가단체가 경찰에 의해 적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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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가기관인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북한과 연계된 공산폭력혁명조직인 南民戰의 활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하였다. 좌파인사가 다수 포진해 있는 이 위원회의 황당한 결정은 사법부의 판단을 무시한 것일 뿐 아니라 사실과도 맞지 않는 反헌법적, 反국가적, 反민주적 행패이다. 아래 관련자료들을 첨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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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10월 10일 조선일보 1면 기사
  
  대규모 반국가 지하조직 적발
  
  내무부 발표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 결성
  74명 중 20명 검거 54명 수배
  총책 李在汶 사제 폭탄 ·총기 등 1300점 압수
  
  잠실 시영 아파트 11동 408호 거점
  
  북괴의 적화통일혁명노선에 따라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를 조직,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사회주의 국가건설을 꾀했던 대규모 반국가단체가 경찰에 의해 적발됐다. 具滋春 내무부 장관은 9일 이 반국가 단체의 총책 李在汶(45·前언론인·서울 강동구 잠실 시영아파트 11동 408호) 등 일당 20명을 지난 4일 검거하고 나머지 54명을 수배했다고 발표했다. 검거된 일당은 ▲전직 교수 및 현직 교사 5명 ▲전직 언론인 2명 ▲대학생(제적자 포함) 7명 ▲회사원 1명 ▲기타 5명이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사제폭탄, 소총 및 실탄, 도검류, 통신문, 공작장비, 金日成 육성 녹음테이프 3개 등 1374점을 압수했다.
  
  
  학생 등 포섭…都市게릴라 手法 사용
  
  발표에 따르면 총책 李在汶은 74년 4월 民靑學聯 사건 배후조종 혐의로 수배중인 자로 76년 2월 29일 대한민국을 전복하기 위해 학생, 교직자 등을 포섭, 이른바 南朝鮮民族解放戰線준비위를 조직, 10대 강령, 9대 규약, 10대 생활규범, 4대 임무, 3대 의무 등을 만든 뒤 北傀旗를 모방한 「南朝鮮解放戰線旗」까지 제작, 지하조직을 이용하여 對政府 투쟁을 선동조종하고 불온전단을 뿌리며 都市게릴라 방법에 의한 강도 등을 자행하고, 민중봉기에 의한 국가변란을 획책해 왔다.
  이들 일당은 모두 가명을 사용, 5~12명으로 「彗星隊」라는 행동대를 조직, 「烽火 작전」 「땅벌 작전」등 암호를 사용하면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 강남구 D건설 C회장집과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K사장집 및 寶金藏 등에 침입, 3회에 걸쳐 50여만 원의 금품을 털었고 추적하는 수위를 칼로 찔러 중상을 입혔다.
  이들은 또 지난 8월 28일에는 서울 청량리에 있는 靑山학원 옥상에 「政權 타도」플래카드를 내걸고 50여 종의 불온문서를 학원가와 시중에 살포하면서 반정부 선동과 유언비어를 조작유포시켜 왔다.
  경찰은 靑山학원 불온전단 살포사건 용의자로 추적 중이던 전 서울大생 김富燮(24)의 검거로 일당이 잠실 시영아파트 11동 408호를 근거지로 활동 중임을 밝혀내고 관련자들을 잇달아 잡았다.
  
  
  資金위해 强盜 두 차례, 1회 미수
  작년 11월-금년 4월 社長집 털어
  
  총책 李在汶 및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의 주요 범죄사실은 다음과 같다.
  ◇資金조달을 위한 강도=민족해방전선의 총책 李在汶은 산하 행동대원인 金南柱, 車成煥 등과 자금조달을 위해 작년 11월부터 지난 4월까지 사이에 돈 많은 사장집이나 금은방을 골라 「작전」명의까지 붙이고 대낮에만 침입, 금품을 털거나 강도모의를 했다.
  ▲봉화산 작전=78년 11월 5일 오전 11시쯤 李在汶 등 3명은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모 사장(55) 집에 식칼을 들고 침입, 금반지 등 시가 50만 원어치를 털어 달아났다. 이들은 『선거 운동원인데 선물을 가져왔다』고 가족 2명과 가정부를 속이고 들어가 칼로 위협한 뒤 나일론 끈으로 손발을 묶고 범행을 저질렀다.
  ▲땅벌 작전=지난 4월 27일 오전 10시 30분쯤 李在汶의 지시로 金南柱, 車成煥, 朴錫律, 李學永 등 4명이 서울 강남구 반포동 D건설 C모씨(37)집에 침입, 경비원 金永喆씨(26)를 길이 20㎝ 과도로 가슴 어깨 등을 찌르고 비서 李光植씨(25)를 나일론끈으로 묶은 뒤 집안을 뒤지다 金씨가 피를 흘리며 집 밖으로 나가 소리치는 바람에 그냥 달아나다 李學永만 주민들에게 붙잡혔다.
  ▲寶金藏 금은방 강도모의=지난 3월 25일 오전 10시쯤 李在汶을 총책으로 車成煥 등 12명이 4개 반으로 나눠 서울 종로1가 寶金藏에 침입, 금반지와 귀금속을 털기로 모의했다가 1명이 범행 직전에 이탈, 미수로 끝났다.
  이들 12명은 주인을 협박하는 행동 1반, 왼쪽 진열대를 터는 2반, 시계류를 터는 3반, 금은 세공 종업원을 협박하는 4반으로 임무를 각각 분담키고 했었다.
  ◇民靑學聯 배후조종=총책 李在汶은 慶大 法政大를 졸업, 60년 용공신문으로 폐간된 民族日報기자로 근무했으며, 64년 7월 「人革黨중앙상위조직부책」으로 정부전복을 꾀하다가 검거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그뒤 다시 民靑學聯사건 주모자 呂正男을 배후조종했고 李晩星, 金耕人 등과 「南朝鮮民族解放戰線준비위」를 조직, 위원장에 취임하고 點組織 방법에 의해 학생, 교직자 등 동조자 74명을 포섭했다.
  ◇解放戰線 조직=위원장 李在汶은 중앙위원회에 총무조직, 교양선전선동, 출판, 통일전선, 무력, 대외연락, 정보, 재정 등 9개 부와 검열위원회 署記 및 地域責(서울, 慶北, 湖南)을 두고 그 산하에 「民主鬪爭國民위원회」(위원장 韓民聲)라는 전위조직을 설치, 청년, 학생, 농민, 노동, 연합, 교양 등 6개部와 지도요원 및 221隊(특수행동대)를 편성, 암약하면서 北傀 金日成에게 「피로써 충성을 맹세」하는 서신을 보냈다.
  ◇統革黨 재건 기도 관련=일당은 통혁당 재건기도사건에 관련,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林東圭(46·高大노동문제연구소)를 조종했고 서울大, 고려大등 각 학교 구내와 시내에 불온전단 수만 장을 살포했고 지하요원으로 반정부선동을 일삼았다.
  ◇金日成에게 충성서신=「남조선 혁명가들은 首領의 혁명이론과 방법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있다」는 등 서신을 보내고 사업보고서를 통해 한국민주투쟁 국민위원회를 조직, 서울시내 일원에 1만 장의 삐라를 뿌리는 등 宣傳투쟁을 했다고 보고했다.
  
  
  [해설]「反體制 운동」과 성격 달라
  
  「南朝鮮民族解放戰線」은 학원가와 시내 중심가에 불온전단을 살포하고, 플래카드를 내거는 외에 자금조달을 위해 재벌집에 침입, 강도까지 자행하면서 도시게릴라 수법으로 사회불안을 조성하고, 金日成에게 피로써 충성을 맹세하기까지 한 조직임이 드러났다.
  더구나 解放戰線 조직은 統一戰線部, 武力部, 221隊 등 北傀가 상용하는 조직명을 쓰고 「鬪士」「戰士」등으로 조직원을 철저한 點組織으로 엮어 강도행위에도 「烽火山 작전」「땅벌 작전」등 듣기에도 섬뜩한 용어를 써왔다.
  경찰은 당초 불온전단의 살포가 불온분자의 산발적인 행동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가 이같이 赤化혁명을 기도하고 있는 解放戰線의 전모를 밝혀낸 것이다.
  이들 일당은 속칭 反體制 운동과 그 성격을 전혀 달리하면서도 「民主化」와「反政府 투쟁」을 구실로 선전활동을 펴면서 私製폭탄을 만들고 무기를 불법입수하는 등 北傀가 노리는 「人民解放軍」으로의 성장을 꾀하고, 북괴의 지령을 받은 사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궁극적으로 赤化통일노선을 지향해 왔다.
  이들의 검거로 일단 수시로 불온전단이 학원가 등에서 나돌던 일은 해소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으나, 反體制 운동의 틈바귀에 끼여 공산주의 또는 공산주의 찬양조직이 自生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하나의 自省의 계기가 되었다고 할수 있다 하겠다.
  
  
  관련자는 自首를…具 內務 당부
  
  具滋春 내무부장관은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과 관련, 아직도 검거되지 않은 불순분자가 전국에서 암약하고 있다고 지적, 정부는 최단시간 내에 이 사건을 발본색원하겠다고 다짐하고 국민들중 자신이 부지불식간에 이러한 조직에 관련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수해줄 것을 당부했다. 또 수상한 자를 발견하면 인근 경찰관서에 신고해주고 학생 및 근로자들은 이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본의 아닌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말했다.
  
  
  
  
  1979년 10월 10일 조선일보 7면 기사
  
  덮치고 보니 「不穩 아지트」
  「解放戰線」검거 詳報 李在汶, 잠긴 방문 밀치자 自害
  “反政府 삐라” 용의자 金의 愛人이 자백
  「재벌强盜」共犯도 잡아
  
  불온전단 살포 용의자를 끈질기게 추격한 끝에 낚은 대어(大魚)였다. 경찰이 불온전단 살포혐의자 2명을 체포한 뒤 그 연루자가 있다는 서울 강동구 잠실4동 시영아파트 11동 408호를 덮치자, 그곳은 뜻밖에도 소위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의 아지트였다.
  
  경찰이 불온전단 살포자로 金富變(24)을 쫓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 말-. 8월 28일 서울 시내 靑山학원과 중심가에 뿌려진 극렬한 반정부 불온전단 살포자사건 수사에 나선 경찰은 그 내용과 수법이 77년 서울大 불온전단사건과 유사한데 착안, 그때의 주모자로 도피중이던 金을 주목했다.
  경찰은 서울 용두동에 있는 金의 집 주변에 잠복근무하면서 金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던중 그의 동생이 어디론가 하숙비를 가져다주고 있음을 알아냈다.
  金의 동생이 월 6만 원의 하숙비를 서울 망원동에 있는 金의 애인 朴美玉(24·외국어대 불어과 4년)에게 전달하는 것을 확인, 3일 낮 12시 朴의 집주변에 잠복하다 金富變이 애인과 함께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을 붙잡았다.
  경찰이 朴의 집을 수색하자 서울 청량리에 뿌려진 불온전단을 등사한 등사철판과 원지가 나타났다. 金은 자기도 모르는 일이라고 끝까지 잡아뗐으나 애인 朴이 J여중 교사 李銖日등과 함께 일했다고 자백했다.
  경찰은 朴을 데리고 李銖日의 집이 서울시영 잠실아파트 11동 408(그곳에 李在汶, 李文熙 등 동거)호임을 확인했다.
  경찰은 4일을 D데이로 잡았다. 기습작전에는 대공경찰관 8명이 참가했다. 4일 오전 1시30분 순찰백차 2대에 분승한 이들은 현장에 도착,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이라며 13평짜리 李의 집 문을 노크했다.
  李在汶의 내연의 처인 李文熙가 『무슨 일인데 한밤중에 찾아오느냐』며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丁형사가 『급한 연락이 있어 찾아왔다』고 대꾸했다. 그러자 李銖日이 나와 문을 열었다.
  丁형사는 덤벼들어 단박에 수갑을 채웠다. 그순간 李文熙는 안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옆방에 있던 金南柱(戰士)가 밖의 소란에 문을 열고 나왔다. 金은 D건설회장집 등의 강도상해사건의 용의자로 수배중인 자였다. 잠시 수갑을 채우려는 경찰과 격투가 벌어졌다. 이 사이 金과 같이 있던 車成煥(鬪士)이 유리창을 깨고 베란다를 통해 밖으로 달아났다.
  형사들은 우선 李文熙가 들어간 안방문을 열려고 했으나 열리지 않았다.
  형사들은 발로 문을 걷어차고 방안으로 뛰어들어갔다.
  李在汶는 불온문서를 싼 보따리를 밖으로 내던지고 길이 10㎝의 등산용칼로 앞가슴 2곳을 찔러 피가 낭자한 채 방바닥에 앉아 있었다.
  경찰은 구급차를 급히 불러 李를 서울大 병원으로 옮겼다. 李는 오른쪽 가슴에 길이 7㎝, 깊이 5㎝, 왼쪽 가슴에 길이 7㎝, 길이 2㎝, 깊이 3㎝의 자상을 입고 있었다. 자살을 기도한 것이다.
  경찰이 李를 수송하느라 법석을 떠는 동안 李文熙는 식칼을 든 채 밖으로 달아나 아파트옆 쓰레기통 뒤에 숨어있었다. 이 검거 소동에 놀란 주민들이 인근파출소에 신고, 달려온 파출소 순경이 李文熙를 잡으려 하자 칼을 휘두르며 반항했다.
  한 형사가 권총을 빼어들고 『반항하면 쏜다』고 위협하는 사이 파출소 순경이 경찰봉으로 칼을 든 李의 손을 후리쳐 칼을 떨어뜨리는 순간 붙잡았다.
  창문을 깨고 달아난 車는 밖에 있던 L형사가 300m나 추적 끝에 잡았다. 일당 5명은 15분 만에 모두 검거됐다.
  방안을 뒤지자 포도넥타 캔에 폭약을 넣고 3㎝길이의 도화선을 붙여 만든 사제폭탄 1개와 다이너마이트 1개가 나왔다. 또 총신만 빼낸 카빈 1정과 실탄 105발, 가발 2개, 장갑, 도끼, 각종 칼 20자루, 색안경 및 金日成교양강좌와 교시를 육성 녹음한 소형 카세트테이프 3개 등이 나왔다. 카빈은 총신을 잘라 권총처럼 휴대하기 편하게 만들어 놓았다. 형사들은 李在汶이 창밖에 내던진 보따리를 끌러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북괴기와 비슷한 기가 나오고 불온책자, 불온전단 등이 쏟아졌고 예기치도 않았던 「해방전선」의 조직망 도표와 명단이 나왔기 때문이다.
  경찰은 李在汶을 덮쳤을 때 『내 보따리, 내 보따리』라고 중얼대던 의미를 뒤늦게야 알고 심야작전의 수확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경찰은 이 조직망 도표를 통해 관련자들을 잇달아 검거한 것이다.
  
  
  이웃에 「성실夫婦」 행세
  李在汶 일당 잡히자 住民들 놀라
  
  사건전모가 발표된 9일 낮 李在汶 등이 아지트로 삼은 잠실 시영아파트 11동 408호엔 이웃 주민들이 몰려와 『감쪽같이 속았다』며 놀라와 했다.
  이 아파트는 K경찰서 교통계 모 순경의 소유로, 李在汶 등은 작년 12월 李銖日의 명의로 220만 원의 전세금을 주고 빌었다가 전세 계약이 만료된 지난 7월부터는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4만 원씩을 주고 사용해왔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李銖日은 입주 당시 李在汶의 내연의 처 李文熙를 자신의 처라고 이웃 사람들에게 소개했고, 반상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했으며, 주위 사람들을 만나면 상냥하게 인사를 건네는 등 누구에게서도 성실한 부부라고 인정받을 만큼 완벽하게 위장을 해왔다. 李文熙는 남들 앞에서는 李在汶을 시삼촌이라고 불렀고, 가끔 드나드는 朴美玉은 시누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 2006-05-17, 23:2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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