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권력을 박해한다면 좋은 일이다

조갑제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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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일 盧武鉉 대통령의 국회 연설문 중에는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글과 불안하게 하는 글들이 섞여 있었다. 예컨대 이런 귀절은 안심시키는 글이다.
  <많은 투자자들을 만나본 결과 그들은 제 생각과 달랐습니다. 전쟁의 위험에 대한 현실적 가능성보다는 한미관계의 갈등 요소를 더 큰 불안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파병 결정은 이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핵심을 찌른 이야기이다. 북한정권의 對南테러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김일성 정권은, 1968년1월21일 밤에는 특공대를 청와대 문앞까지 침투시켰었고 그해 가을엔 100명이 넘는 무장 게릴라들을 동해안에 상륙시켰다. 재일교포 청년 문세광을 포섭하여 대통령을 저격해서 실패하자 영부인을 사살했다. 미얀마를 시찰중인 대통령을 죽이려다가 참모 17명을 폭살했다. 이때보다도 지금이 더 불안한 것은 그때는 한미동맹관계가 굳건했지만 지금은 (김정일의 對南공작이 성공하여)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盧대통령은 언론개혁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언론개혁을 이야기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언론과의 부당한 유착관계를 끊는 일뿐이다]라는 요지의 이야기도 했다. 이 말도 흠 잡을 데 없다.
  
  언론과의 유착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방송에 대한 권력의 개입이다. 정권이 방송을 장악하려는 것을 포기하면 우리나라 언론의 개혁, 그 90%는 이뤄진다. 하는 개혁과 하지 않음으로써 이뤄지는 개혁중 아무래도 後者가 하기 쉽지 않겠는가.
  
  盧武鉉대통령이 한 말중 실수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보였다.
  <언론은 또 하나의 권력입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입니다. 몇몇 언론사가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언론은 권력인가. 권력의 진정한 속성은 군통수권, 인사권, 재정권, 수사권, 정보능력 등으로 표현된다.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 언론은 그런 힘이 없다. 다만 권력을 견제하는 힘은 있다. 굳이 권력이라고 한다면 對抗권력, 견제권력이다. 권력에 대항하고 견제하다가 보니까 영향력이 생긴 것이다.
  
  언론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라고?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먹히는 어용언론은 그럴 것이다. 특히 kbs와 mbc가 그러하다. 시장의 독과점이 문제라고? 어용방송에는 해당되는 말이다. 3대 방송이 모두 권력의 영향권안에 있고 시장을 3分하고 있으니까.
  
  만약 盧대통령이 위의 발언을 조선일보 등 주요 신문을 염두에 두고 했다면 사실과 틀린 이야기가 된다. 언론은 매일 매일 견제를 받는다. 독자들의 항의, 이견 표시가 매일 매일 들어온다. 고소, 고발, 제소, 중재신청도 잇따르고 있다. 김대중 정권하에선 이런 법적 대응을 정권측이 모범적으로 했다. 신문을, 잡지를 잘못 만들면 시장에서 외면당한다. 모든 견제중 가장 무서운 시장의 견제가 매일 매일 진행중이다. 정부가 뒷받침해주는 시청료가 아니라 독자의 자율적인 선택에 의존하여 생존해야 하는 신문의 입장에선 시장의 견제가 死活을 좌우한다. 견제가 먹히지 않는 곳은 어용방송 등이지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아니다.
  
  시장의 독과점이 문제라면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자율적으로 읽고 있는 다수 국민들이 문제란 이야기이다. 盧대통령은 지금 국민들을 비판하고 있다. 조선, 동아일보가 언제 강제로, 물리력을 동원해서 구독을 강요한 적이 있는가. 자율적 독자가 많은 것이 죄인가.
  
  그는 또 이런 말을 했다.
  <족벌언론들의 횡포를 다시 말씀드리지 않겠다. 일제시대와 군사정권 시대의 언론행태를 거듭 들추지 않겠다. 몇몇 족벌언론은 군사정권이 끝난 이후에도 김대중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를 끊임없이 박해했다. 나 또한 부당한 공격을 당했다. 그 피해는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그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선, 동아가 족벌언론이라면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도 족벌언론이다. 포드 자동차는 족벌기업이다. 삼성도 족벌기업이 된다. 즉 족벌과 선악은 무관하다. 代를 이은 기업소유 그 자체를 부정한다든지 비판한다면 이는 시장경제의 원리는 물론이고 자유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사유재산제도를 부정, 비판하는 것이 된다. 이는 헌법정신에도 반한다.
  
  족벌언론이 김대중 정부를 박해했다? 무엇으로 했을까. 총으로? 誤報로? 선동으로? 불법으로? 루머로? 신문은 기관총도 수류탄도 최루탄도 없다. 매출액 기준으로는 중소기업 수준이다. 무슨 수로 제왕적 대통령의 철옹성 같은 정권을 박해할 것인가.
  
  말이 너무 심하다. 私談, 雜談으로서도 심하고 대통령이 국회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다. 노사모 등 친여 단체가 할 수준의 단어 선택이다. 과장이 심하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회장 부인은 세무조사로 인한 정신적인 압박 때문에 자살했다. 그 뒤 김대중 정권은 노구의 그 회장을 구속으로 몰고갔다. 그 회장이 도주, 증거인멸의 위험이 있어서였던가. 이것이 정권에 의한 박해가 아니고 무엇인가. 김대중 정권이 신문의 오보나 과장에 의한 박해를 받고도 고통을 감내하면서 침묵할 정권이었던가. 정권이 앞장선 언론사 상대의 고소 고발 사태를 모르는가. 이 기간에 盧대통령은 화성에 가 있다가 온 것인가.
  
  조선, 동아일보가 김대중 정권을 다른 언론보다 더 비판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김대중 정권의 반역적 對北정책과 민족반역자 김정일에 대한 굴종을 많이 비판했다. 김대중 정부가 신문의 비판을 받았다면 바로 이 부분을 일컬은 말일 것이다.
  
  대한민국과 헌법의 입장에 서서, 민족반역 세력에게 비겁하게 굽히고 나아가 국익과 국부를 손상시킨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박해라고 해석하는 대통령이 있다면 앞으로 김정일 추종세력이 정권을 잡고 나라를 팔아넘기더라도 언론은 침묵하라는 주문인가, 경고인가.
  
  盧대통령이 굳이 박해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런 느낌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것은 자유이니까. 사실과 헌법에 입각한 비판을 왜 박해라고 느꼈을까. 그런 심리-감각 구조엔 중요한 비밀이 들어 있을 것 같다.
  
  온건하고 합리적인 비판도 박해라고 생각할 만큼 두려워하는 그 무엇이 정권속에, 개인속에 숨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밤에 북쪽으로 가는 친구를 보고 '야, 이 밤에 어딜 가?'라고 이야기했을 때 그 친구가 박해받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친구가 지금 월북하기 위하여 北行을 하고 있다면 말이다.
  
  언론의 사실 摘示를 박해나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정권이나 개인은 약점을 갖고 있다. 언론은 약점을 가진 정권이나 사람에게는 고통을 줄 수 있다. 그들이 그런 고통을 박해라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이 박해자가 될 수는 없다. 진실은 정상적인 사람을 자유롭게 만들지 박해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출처 :
[ 2003-04-04, 17: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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