核기밀을 폭로한 기술자를 납치, 18년형을 살린 이스라엘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1980년대에 영향력의 절정기를 맞았던 영국의 언론 재벌 로버트 맥스웰은 체코에서 출생한 유대인이었다. 그는 거의 모든 가족을 나치의 강제 수용소에서 잃었다. 영국군에 들어가 장교가 된 그는 1948년에 이스라엘이 建國하자 체코가 이스라엘에 무기를 대주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스라엘은 건국하자 마자 아랍국가들과 전쟁에 돌입하는데, 체코製 무기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1980년대 그는 데일리 미러, 선데이 미러, 데일리 레코드, 선데이 메일 같은 신문사와 출판사 및 텔레비전 방송국을 소유, 영국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노동당 국회의원도 두 차례 지냈다.
  
  1984년 맥스웰은 이스라엘 핵개발의 代父이기도 한 수상 시몬 페레스(현 대통령)를 만난 뒤 해외정보기관 모사드의 적극적인 협조자가 되었다. 페레스는 모사드 부장 나훔 아드모니를 맥스웰에 소개해주었다. 맥스웰은 거물 언론인으로서 세계의 지도자들을 쉽게 만나고 다니면서 고급 정보를 수집, 모사드에 전해준다.
  
  1986년 9월14일 맥스웰은 모사드의 아드모니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디모나 핵시설에서 근무했던 한 기술자가 대리인을 통하여 자신이 소유한 신문사 선데이 미러에 핵시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제의하여 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보중엔 비밀 시설에 대한 사진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 기술자의 이름은 디모나에서 9년간 근무한 적이 있는 모로코 출신의 유대인 모르데차이 바누누. 아드모니 부장은 페레스 수상에게 直報하였다. 모사드가 바누누의 행적을 조사하니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바누누는 핵무기를 제조하는 시설까지 볼 수 있는 保安 허가증의 소유자였다.
  
  이스라엘은 당시 핵폭탄을 수백 개나 보유하고 있었지만 대외적으론 '核에 대하여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다'는 모호성을 核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었다. 이 모호성 덕분에 이스라엘은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핵강국이란 사실을 증명하는 폭로가 이뤄지면 이 모호성과 유연성이 깨진다.
  
  이스라엘 정부는 비상대책반을 구성하였다. 바누누를 암살하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납치로 결정되었다. 모사드는 바누누가 선데이 타임즈와도 접촉을 하기 시작하였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그들은, 로버트 맥스웰을 동원, 선수를 쳤다. 맥스웰의 지시로 선데이 미러는 바누누가 제공한 정보는 가짜라고 보도하였다.
  
  선데이 타임즈는 기사를 쓰기 전에 영국의 핵전문가를 바누누와 만나게 하여 정보의 眞僞를 확인하게 하였다. 그 결과는 '진짜'였다.
  
  선데이 타임즈는 바누누를 보호하기 위하여 마운트바텐 호텔에 투숙시켰다. 모사드는 런던에 사는 협조자들을 동원, 바누누의 거처를 알아냈다. 모사드는 美人計를 쓰기로 하였다. 모사드의 여성 첩보원 세릴 벤 토브가 동원되었다. 그는 결혼한 상태에서 이 작전을 자원하였다.
  
  9월24일 바누누는 따라다니는 선데이 타임즈 기자를 따돌리고 호텔 바깥으로 산책을 나갔다. 타임즈 기자는 그를 미행하였다. 기자는 바누누가 라시세스터 광장에서 한 여자와 이야기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금발의 미녀였다. 유대인 냄새가 났다.
  
  호텔로 돌아온 바누누는 선데이 타임스 기자에게 "신디라는 미국 여자를 만났다"면서 다시 만나기로 하였다고 털어놓았다. 기자가 "당신이 그 여자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고 계획된 것 같다"고 경고했지만 바누누는 듣지 않았다. 모사드 첩보원 세릴은 훈련 받은 대로 첫눈에 바누누를 사로잡은 것이다.
  
  며칠 뒤 공작원 '신디'는 로마에 사는 여동생을 만나러 가자고 바누누를 설득, 로마行 비행기에 올랐다. 이 여객기엔 다섯 명의 모사드 요원이 동승하였다. 로마 공항에서 신디와 바누누는 택시를 타고 여동생이 산다는 아파트로 갔다. 여동생의 호실에선 세 명의 모사드 요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바누누를 끌어들여 마취시켰다. 요원들은 바누누를 들것에 실어 바깥으로 데리고 나와선 앰불런스에 옮겼다. 걱정스런 표정을 한 이웃사람들에겐 "친척인데 갑자기 발병하였다"고 설명했다.
  
  바누누를 실은 차는 해안으로 달려갔다. 작은 배에 옮겨진 바누누는 먼 바다에서 기다리던 이스라엘 화물선으로 다시 옮겨졌다. 사흘 후 바누누를 납치한 요원들은 이스라엘의 하이파 항에 도착하였다. 선데이 타임스는 10월에 바누누의 폭로를 기사화하였다. 이스라엘이 적어도 100개의 핵폭탄을 갖고 있다고 썼다.
  
  바누누는 간첩죄로 18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11년간 독방에 감금되었다. 국제여론이 나빠지자 1998년에 좀 좋은 방으로 이감되었다. 그는 2004년에 석방되었으나 이스라엘 당국은 엄격한 제한 조치를 취하였다. 출국은 금지되고 외국인을 만날 수 없으며, 항구와 공항에 접근할 수 없게 하였다. 이스라엘 국경의 500m 이내론 다가갈 수 없다. 전화도, 인터넷도 사용이 금지되었다. 이 규정을 어기면 석방조건 위반으로 수시로 잡아 가둔다.
  
  1991년 11월5일 로버트 맥스웰은 카나리아 군도 근해를 항해중이단 자신의 호화여객선에서 바다로 떨어져 죽었다. 失足死로 발표되었으나 자살이란 설과 모사드에 의한 암살이란 설도 있다. 사고 직전 한 전직 모사드 요원은 미국에서 발간한 책을 통하여 맥스웰과 데일리 미러의 외신부장 닉 데이비스를 모사드 요원이라고 지목하였다. 데일리 미러는 맥스웰이 모사드에 의하여 암살되었다고 주장하는 기사를 실었다. 맥스웰은 이스라엘에 묻혔는데 國葬에 버금 가는 장례식이었다.
  
  
  
[ 2011-01-08, 15:2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