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10일 오후 비내리는 서울시청 광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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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0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15년 전, 시위대가 태극기를 끌어내렸던 서울시청 광장은 태극기 물결로
  뒤덮인 꽃밭이 되었다. 이날 장대비속에서 국가와 국민, 늙은이와 젊은이는
  하나가 되었다.
  
  趙甲濟
  
  나는 6월10일 오후 3시15분에 서울시청 앞 플라자 호텔 22층 커피숍 토
  파즈 창가에 자리를 잡고 내려다 보았다. 약3만5000평방미터의 시청광장
  은 붉은 꽃밭이고 단풍이었다. 간간이 노란색, 흰색, 휘날리는 태극기의 물
  결들, 대각선으로 뻗어오르는 팔들, 아~대한민국, 오~필승 코리아, 짝짝짝.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이 전개되고 있었다.
  15년 전의 일이 생각났다. 1987년7월10일 낮 최루탄을 맞아 숨진 이한렬
  의 장례식 행렬이 시청에 도착했을 때 이 광장을 꽉 메웠던 인파 속에 나는
  있었다. 그때 시위대가 시청으로 들어가 태극기를 끌어내렸고 광장 사람들
  은 함성을 질렀었다.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태극기를 보호하지 않았다.
  그 15년 뒤의 광장은 태극기 전시장이었다. 태극기로 온몸을 두른 20代가
  부르짓는 대~한민국과 애국가, 오~필승 코리아. 15년 전의 20대는 소위
  386세대라 불리고 있는데 지금의 20代는 앞으로 월드컵 세대, 또는 대~한
  민국 세대로 불릴 것이다. 대~한민국을 목이 터져라 불러제친 집단체험은
  한국의 체질을 많이 바꿔놓을 것이다.
  다소 딱딱하고 어색해보이던 대한민국이란 말을 우리 가슴 속에 安着시킨
  것은 애국 좋아하는 기성세대가 아니라 젊은 그들이었다. 대한민국과 국민
  들 사이에 있던 찜찜한 울타리를 허물어버리고 국가와 국민들이 한덩어리로
  되게 만든 것도 젊은 그들이었다.
  붉은 악마들은 金正日 광신집단으로부터 赤色까지 빼앗아 애국색으로 만들
  어버린 것이다. 대한민국을 「태어나서는 안될 정권」이라 저주하고 그 이
  름을 애써 지워버리려고 했던 한반도 守舊反動 세력의 시도는 실패했다. 한
  반도기란 정체불명의 깃발을 들고 나와 위선적인 민족·평화·통일의 이름으
  로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를 뒤로 치워버린 뒤 환호했던 세력의 음모도
  물거품이 되었다. 나는 젊은이들이 대한민국을 뜨거운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 현장에 함께 휩쓸리고 싶었다. 비가 쏟아지는 광장으로 내려왔다.
  15년 전 6월에는 아침이슬이 울려퍼지던 거리에 아리랑 합창이 휩쓸고 있
  었다. 15년 전에는 決意와 戰意를 불태우던 젊은이들의 축소지향적 표정이
  이제는 활짝 웃고 실컷 소리치는 확대지향적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날 약4만 명(신문에선 20만 명이라 과장했지만)으로 추정되는 젊은 인파
  들은 장대비를 맞으면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니, 젖는 몸을 전혀 의식하
  지도 않았다. 나는 젊은이들과 섞이면서 우산을 걷었다. 우산을 켤 수 없게
  하는 열광이었다. 나는 우산을 들고도 비맞는 데 공범이 되어야 했다.
  많은 국민들은 이날 韓美戰을 두 가지 감정을 갖고서 조마조마하면서 지켜
  보았다. 한국이 이겨야 한다, 동시에 주인이 손님을 목욕하는 反美책동이
  없어야 한다, 그렇게 빌었다.
  나는 게임이 시작되기 전 사무실에 있으면서 광화문 네 거리 방향에서 목쉰
  마이크가 선동적인 연설을 하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 누가 또 反美 선동
  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겨 다가갔더니 응원 지휘자가
  「파도 박수」 요령 따위를 주지시키고 있었다.
  오히려 중계방송 아나운서가 심판이 미국편을 든다고, 미국선수들이 넘어져
  일어나지 않는 쇼를 한다고 말할 때 불안했다. 그러나 20代는 그런 어른들
  보다 더 어른스러웠다.
  나는 회사에서 내기를 걸 때 1대1을 찍었었다. 1대0으로 밀리고 있을 때
  도 한 점은 더 들어가고 말 것이란 자신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시청 앞에서 비맞고 고함지르면서 미국 사람들에게 욕 한 마
  디 하지 않고 있는 이 순해빠진 붉은 악마들에게 하느님도 그러면 안되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안정환 선수의 동점 헤딩골. 와-하는 함성과 함께 地面이 1미터쯤 솟아올랐
  다. 수만 관중이 동시에 뛰어오른 것이다. 이런 함성을 천둥소리라고 표현
  하는 수밖에 없다면 言語道斷의 세계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1대1로 경기가 끝났을 때 광장은 호수가 되어 있었다. 세종로 車道엔 여전
  히 차들이 다니고 있었고 사람들은 경찰관들의 지시를 고분고분 따랐다. 歸
  家 길에 오른 사람들은 좁은 인도를 꽉 메우면서 조심 조심 흘러갔다. 이런
  군중속에 끼였을 때는 겁이 난다. 누군가가 소동을 부리면 군중들이 쏠리면
  서 압사사건이 날 수가 있다. 특히 비오는 날엔.
  이날은 발등도 밟히지 않았다. 모두 조심 조심 차도를 피해가면서 걷고 있
  었다. 쓰레기들을 한데 모으는 젊은이들도 보였다. 역시 우리는 한다면 하
  는 사람들이었다. 이날은 국가와 국민, 기성세대와 젊은이들이 한 덩어리가
  된 역사적 날이었다.
  
출처 :
[ 2002-06-10, 17: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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