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끝이 아닌 또다른 시작
조인정의 미국유학奮鬪記(26)/ 또 하나의 계단을 훌쩍 뛰어오른 내 자신에게 박수를 보냈다

曺認桯(조인정)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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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의 마지막 날,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뜬 순간부터 나는 평소와는 다른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이날은 내 미국 고등학교 유학생활의 종지부를 찍는 졸업식 날이었다.

고등학교 3년을 미국에서 보내면서 나는, 과연 나의 졸업식 모습이 어떠할지 상상해보았다. 하지만 그 모습은 전혀 상상이 되지 않았고, 마치 아무런 그림도 그려져 있지 않은 흰 도화지 같았다. 이 순간이 과연 꿈인지 生時(생시)인지 알쏭달쏭 했다.

하루 전날에 졸업생들과 학교 선생님들은 어느 교회에 모여 저녁 예배에 참여했다. 가톨릭 학교였던 우리 학교는 매년 졸업생들의 졸업 축하와 밝은 미래를 염원하는 예배를 졸업식  전 날 드리는 것이 학교의 오래된 전통이었다. 이날은 또 내가 학교의 코러스에 속해 찬송가와 졸업식 노래를 부르는 날이라 더욱 의미 있었다.

졸업식은 저녁에 시작했기 때문에 아침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그때 기숙사의 선생님이었던 레이첼(Rachael Hornberger)이 내 방을 찾았다. 레이첼은 대학교 원서 접수 시기에 내 에세이의 문법적인 오류를 손봐주었고, 인터뷰에 필요한 옷을 결정하기 힘들어했던 나를 위해 함께 쇼핑까지 가줬던 아주 친절한 선생님이었다. 이날 레이첼은 내게 졸업선물을 줄 거라면서 같이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얼떨결에 레이첼 차를 타고 밖으로 나왔다. 점심시간이었으므로 레이첼은 내게 점심을 먼저 사주겠다고 하며 에리 도심의 어느 레스토랑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 곳은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 중 하나인 스테이크 전문 레스토랑인 LornHorn Steakhouse 이었다. 난 기숙사에 살면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내느라 외식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

기숙사에서 먹는 음식도 거의 통조림 캔이나 냉동식품을 해동해서 조리한 음식들이었기에 유학생활 중 음식은 단순히 내 배를 채우기 위해, 살기 위해 먹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날 간 스테이크 레스토랑은 내게는 ‘神의 만찬’을 위한 자리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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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에 들어선 나는 제일 먼저 볶은 땅콩과 빵 그리고 시나몬 버터를 먹었다. 메뉴판을 보며 나는 수 많은 스테이크 종류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도대체 어느 스테이크가 가장 맛있는 것인지 도무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내가 어느 부위의 소고기가 가장 맛있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면 레스토랑 안 한 켠에 마련되어 있는 정육점에서 고기를 선택할 수 있었겠지만 사실 고를 줄 몰랐다. 결국 가장 일반적인 Prime Rib(프라임립)을 주문했다. 육즙에 적셔서 먹는 스테이크와 곁들여 먹는 볶음 양파와 버섯은 일품이었고, 이 맛은 그 동안 내가 전혀 느낄 수 없는 황홀한 맛이었다.

점심을 먹은 후 레이첼을 나를 어느 네일샵으로 데리고 갔다(한국도 그렇지만 미국에도 네일샵은 정말 많은데, 신기한 건 네일샵의 대부분이 아시아인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살면서 한 번도 손톱관리를 받은 적이 없었던 나를 위해 레이첼은 예전부터 네일샵에 데리고 가고 싶어했다. 내게 특별한 졸업 선물을 해준 레이첼이 정말 고마웠다.

시간은 5시를 가리켰고,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은 모두 스쿨버스를 타고 졸업식장으로 향했다. 졸업식은 우리 학교가 아닌, 에리호 바로 옆에 위치한 어느 건물에서였다. 건물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시니어(senior)들이 도착해 있었고, 모두 초록색의 졸업식 캡과 가운을 입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그토록 그리던 장면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졸업식은 10분 뒤면 시작되었기에, 나는 얼른 졸업생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곳으로 가는 길에 졸업식 프로그램 책자를 나눠주시던 영어선생님이 나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머시허스트 고등학교에서 지난 2년 동안 나의 고생스러웠던 나날과 행복했던 순간들을 모두 옆에서 지켜보며, 나의 대학 합격에 그 누구보다 기뻐하셨던 분이 바로 그 영어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내게 “졸업 정말 축하해.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니? 다시 에리로 온다면 언제든지 우리 집으로 오렴. 언제나 환영이야”라고 말씀하셨다. 지난 어려운 시기에 선생님이 주신 갚진 助言(조언)들로 인해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뭔가 울컥했다.

학생들은 모두 열을 맞춰 졸업식장으로 입장했다.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졸업 가운을 입고 내 주변에 앉아 있는 친구들을 보니, 지난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이 자리의 모든 친구들이 나와 같은 클래스를 듣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니, 믿겨지지가 않았다.

교장선생님의 연설에 이어 전교 회장과 부회장의 인사가 모두 끝이 났다. 학생들은 순서대로 무대 위로 올라가 졸업장을 받으며, 교장선생님 그리고 학교의 중요한 인사 두 분과 악수를 하고 무대를 걸어 나갔다. 친구들이 하는 모습이 카메라로 찍혀 무대에 있는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여지니, 긴장되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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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 이름이 불려졌다. 졸업장을 받았고, 악수를 한 다음 무대를 걸어 나왔다. 떨리는 마음에 어찌나 빨리도 걸었는지, 그 짧았던 순간에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하지만 내 손에 쥐여 있는 졸업장을 보니 드디어 고등학교라는 한 획의 마침표를 찍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졸업식은 학생들이 캡에 달린 태슬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기는 것을 끝으로 끝이 났다(태슬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기는 것은 인생의 한 단계를 통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졸업생들은 場內(장내)를 울려 퍼지는 축하 박수와 함성을 받으며 서로 포옹했다. 고등학교의 대장정을 드디어 마쳤다. 학생들은 다시 열을 맞춰 퇴장 했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카메라 플래시에 웃으며 걸어 나가는데,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神學(신학) 선생님이셨다. 선생님 옆에 앉아 계시던 카운슬러는 내게 신학 선생님이 주는 어떤 것을 내게 건넸다. 나중에 보니 그것은 불교 서적인 《Dhammapada(법구경)》이었다.

세계 종교 클래스를 맡으셨던 신학 선생님은 불교에 대해 배울 때, 내게 자주 한국의 불교에 대해 물어보셨다. 우리나라 전국 여행을 다니며 많은 절에 들러 구경했던 나는, 그 배경지식을 가지고 한국의 상징적인 사찰과 불교 건축물, 미술, 사찰음식 등에 관한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 반 친구들에게 소개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내게 학문적인 궁금증을 던지셨고 내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다. 선생님의 편지가 들어간 이 책은 내게 더욱 더 깊은 신학적 지식과 제자로서의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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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에서 메기, 메디, 브래난, 케이틀런, 셰논 등 나와 잊지 못할 추억들을 만들었던 친구들과 나는 마지막으로 울고 웃으며 포옹했다. 모두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서로에게 ‘자랑스럽다’는 말을 전했다. 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파 사진으로 이 영광을 기념했다.

넓은 홀은 이미 수많은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부모님들은 자식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며 예쁜 꽃다발을 선사했다. 안타깝게도 나의 부모님은 일 때문에 한국에서 오실 수 없었지만, 레이첼(Rachael Hendrickson)의 부모님은 나를 위해 선뜻 시간을 내셔서 이곳을 찾아오셨다. 그 날만큼은 내게 그 두 분은 나의 부모님이셨다. 홀을 걸어 나가며 헤어짐이 아쉬운,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사진을 같이 찍은 후, 나는 많은 친구들과 이미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헤어짐은  누구나 겪은 일이지만 오늘만큼은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겨우 홀의 끝에 다다랐다. 레이첼의 부모님은 내게 연거푸 축하 인사를 전하며, 나를 꼭 자신의 딸처럼 자랑스러워 하셨다. 댄스 경연을 막 마친 레이첼(Rachael Hendrickson)을 데리고 우리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인 Olive Garden으로 향했다. 샐러드, 브래드스틱, 라비올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티라미슈 초콜렛 케잌까지 곁들인 식사를 했다. 시간은 거의 11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우리는 졸업 축하 만찬을 함께 하며 영광스러운 이날을 함께 축하했다. 나를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어 준 레이첼 가족들에게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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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만 그리던 졸업식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렸다.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계단을 훌쩍 뛰어올랐다. 실감할 수 없었지만 뿌듯했다. 또 다른 인생의 한 幕(막)을 성공리에 마친 내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주었다.     

[ 2013-08-26, 10: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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