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고, 언제까지 내팽개칠 것인가!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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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학년도 서울 실업계 79개 고교 원서 접수를 마감한 결과 7년 만에 정원을 초과했다고 합니다. 미림여자정보과학고, 선린인터넷고, 서울로봇고, 서울관광고,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 등 몇몇 특성화 고등학교에는 중상위권도 제법 지원한 모양입니다. 2005학년도부터 수능에서 직업탐구도 신설되어 실업계 출신이 대학 진학하는 것이 크게 불리하지 않은 면도 많이 작용했을 겁니다.
  
   그러나 실업계는 대학예비과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중환자에게 캠퍼 주사를 놓는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특성화 고교처럼 전면적으로 바꿔야 할 겁니다. 한국의 교육은 인문계에 온통 매달리고 있는데, 실업계에 그 정성의 10분의 1만 쏟으면, 대학진학을 둘러싼 교육의 온갖 병폐가 감쪽같이 사라질지 모릅니다.
   (2004.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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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포기의 현장, 실업고]
  
   학교 붕괴라는 말이 요란스럽다. 학교는 이제 졸업장과 내신 관리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덤으로 친구 좀 사귀고. 국민의 관심은 그러나, 아직도 대학과 관련된 인문고에 집중되어 있다. 실업고를 생각하면 암담하기만 하다. 실업고 학생들은 심한 경우 3분의 1이 장기결석자이다.
  
   전국의 고등학생은 모두 225만 명. 이 중에 실업고생이 85만 명으로 약 40%의 비중을 차지한다. 이들은 지난 수십 년간 교육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었다. 한 때는 실업고와 인문고의 비율을 5:5로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지금은 예산만 많이 차지했지, 실업고는 사회적으로 거의 아무 기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실업고생들은 졸업 후 취직도 잘 못하거니와 취직을 해도 비율만 그럴 듯하지, 대부분 중간에 나와 버린다. 전공을 거의 살리지 못하고 심부름꾼 역할이나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이 학교서 배운 것을 써먹을 데가 거의 없다. 실업고가 왜 존재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심하게 말하면 실업고는 현재 갈 곳 없는 교사들의 실업자 구제소이다.
  
   실업고 교사들의 말을 들어 보면, 학생들의 학업 참여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선 결석이 다반사이다. 일상사다. 어떤 학교는 1교시, 2교시 수업은 거의 못한다고 한다. 3교시 되어야 겨우 열 명 남짓, 4교시에 열 다섯 명. 정원은 마흔 명 안팎. 2학년이 되면, 결석일수가 73일을 넘겨 제적 당하거나 청운의 꿈을 품고 일부 인문고로 전학 가서 10여명이 사라진다. 서울시 국감자료에 따르면, 실업고생의 장기결석률은 무려 13%라고 한다. 1학년 때는 19.4%. 결석 하루 하면 죽을 줄 알던 시절에 비하여 이건 정말 격세지감이 들게 한다.
  
   인문과목의 수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몇 명 옹기종기 앉아 있는 학생들도 수면과 잡담이 이들의 전공이다. 대학에 수면학과와 잡담학과가 개설되면, 이들이 단연 최고 우수자로 합격할 것이다. 방과 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휴대폰, MP3는 웬만하면 자기 돈으로 사서 갖고 다닌다. 등록금은 거의 대부분 면제다. 간혹 면제 받지 못한 학생은 끝까지 버티면, 어떻게 해결된다.
  
   놀라운 일은 교사가 이제 더 이상 미우나 고우나 학생을 화제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업고의 '교육포기' 현상이 인문고로도 급속하게 옮겨가고 있다. 어쩌다 이런 참담한 결과에 이르렀을까.
  
   실업고 하나 유지하는 데 인문고 하나 유지하는 것보다 다섯 배가 든다고 보면 된다. 이리 돈을 많이 들이고도 왜 저 모양이 되었을까. 돈 드는 문제도 자세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장학금이 너무 많다. 가난한 학생이 많이 가는 편이나 지금 장학금이 중요한 게 아니다. 장학금은 가난하나 열심히 하는 학생에게 주는 거지, 공부는커녕 결석을 밥먹듯이 하고 결과, 지각, 조퇴가 일상사인 학생에게까지 장학금을 준다는 것은 국가 예산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지금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장학금이 아니다. 부모가 가난하다고 해도 아르바이트하면 그 돈 정도야 우습게 번다. 이들이 쓰는 용돈에 비하면 등록금은 껌 값은 조금 더 되고 담배 값 정도이다. 설령 장학금을 없애더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희망이다.
  
   실업고는 대부분 교과과정 자체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 사회 나와서 써먹을 곳이 없다. 원래 실업고는 사회 나가서 바로 활용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끔 실용적인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 기관이다. 그런데 이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 존재 가치가 심히 의심스럽다.
  
  [선망의 대상이던 실업고가 왜 천덕꾸러기가 되었을까]
  
   초기 산업화 시대인 50년대, 60년대는 돈줄을 잡고 있는 은행이 최고의 직장이었다. 그래서 이 때는 상고 나와서 은행에 취직하는 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선린상고, 서울여상, 경기상고, 덕수상고, 대구상고, 부산상고, 광주상고, 강릉상고, 강경상고--이런 학교들은 수재 아니면 들어가지 못했었다.
  
   이어서 60년대 말 70년대는 대대적인 공업화와 더불어 공고가 각광을 받았다. 서울공고, 금오공고, 성동기계공고, 대구공고, 부산공고 나오면 서로 데려가려고 아우성이었다. 더군다나 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줄줄이 받아오면, 김포공항에서 세종로까지 카 퍼레이드까지 했었다. 동계 진학이라고 해서 한 때는 몇 명씩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도 갈 수 있었다.
  
   80년대 접어들면서 서서히 실업고는 그 빛을 바래기 시작했다. 인재들이 거의 인문고로 몰려들었다. 서울여상이 그나마 명맥을 겨우 이어갔을 뿐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세 가지를 우선적으로 들고 싶다.
  
   첫째, 사회가 급격히 바뀌고 있었다. 고도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비교적 단순한 능력의 소지자인 기능공과 계산수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산업 시설이란 게 아예 없던 시절에는 대졸 사원이 너무 높은 자격 때문에 오히려 껄끄러운 존재였으나 이제는 외국어 실력을 비롯하여 종합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70년대 후반에는 대학생들이 입도선매되다시피 했다. 최소한 전문대는 나와야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는 분야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업고 출신은 명문고 몇몇을 제외하면 서서히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갔다.
  
   둘째, 소득이 늘어나면서 학부모들이 자녀가 조금만 공부를 잘하는 기색을 보이면, 큰 희망을 가슴에 품고 어떡하든 대학에 보내고 싶어했다. 대학 나왔느냐, 안 나왔느냐에 따라 과거와는 달리 대우가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서, 자기 자녀만은 설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80년대 들어 대학 문이 활짝 열려서 약간의 노력만 보태면 대학 입학하기가 아주 수월해졌다. 우등생만이 아니라 보통 학생도 대학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셋째, 정부 정책의 미숙함이다. 시대가 바뀐 만큼 교과과정을 대폭 개선해야 했는데, 이를 소홀히 했다. 70년대와 바뀐 게 거의 없었다. 70년대에 정부가 기능공을 대대적으로 양성하던 때 투자한 시설을 거의 그대로 썼다. 용도 폐기된 기술을 열심히 가르쳤다.
   게다가 전인 교육을 한답시고, 민주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교양을 강제로 입을 벌리고 떠 먹인답시고, 인문고서 가르치는 과목을 거의 다 가르쳤다. 그것도 수준에 맞게 교과서를 새로 만든 게 아니라 인문고와 똑같은 걸 가르쳤다.
  
   시설도 70년대 거의 그대로였다. 그 당시는 그것이 획기적인 시설이었으나 갈수록 애물단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이를 신주단지 모시듯 했다. 기술 수준이 비교적 단순한 대량생산 체제에 맞는 기술을 설령 달인의 경지에까지 익힌다고 해도 그것은 계룡산에서 30년 만에 사서오경 다 떼고 자신 있게 장원급제를 따놓은 당상이라 확신하고 한양에 짚신 신고 올라왔건만, 아뿔싸 과거가 폐지된 지 29년이 지났다는 말을 듣게 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롯데재단에서 미림전산여고를 서울대 앞 신림동에 세워 일반인들이 '워드'가 뭔지 모를 때 컴퓨터 교육을 강화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일은 우리 실업고가 나아갈 바를 잘 제시했건만, 제 몸을 가누지 못해 망하기 직전의 공룡같이 비대해진 교육부는 열심히 예산을 확보하여 못 사는 학생들 장학금 주기에 급급해 하면서 실업고를 획기적으로 신설해서 인문고와 비율을 같이 맞춘다고 호언했다. 못 사는 집 아이들, 불쌍한 아이들을 얄팍한 장학금으로 꼬여 사회에서 아무 쓸데없는 지식과 기술을 가르쳐, 결과적으로 가난을 고착화시킨다는 걸 그들은 전혀 몰랐다. 알았다면 그들은 정말 못된 인간이었다. 덕분에 아무 소용도 없는 실업고가 80년대에도 많이 생겼다. 인문계 실업계 합한 종합고도 마구 허가했다.
  
   실업고는 철저한 들러리였다. 아니 버린 자식이었다. 교육부와 언론과 학계와 국민은 오로지 대학 입시에만 관심을 집중시켰다. 입시철만 되면 온통 신문과 방송은 대학 입시에 관해 홍보하고 이를 부추기고 개탄하느라고 무당 굿하듯 요란했다. 그러고도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날이 악화되기만 했다. 어쩌다 실업고 얘기 나오면 취직이 아직도 잘 되는데, 왜 인문고 가는지 모르겠다고 국민의 의식을 개탄했다. 그들이 취직되자마자 서너 달도 못 채우고 나와 버리는 일이 이미 비일비재해졌음을 그들은 몰랐는지, 모른 체 했는지, 지금도 그것이 궁금하다.
  
  [실업고도 이젠 엄연한 대학 예비학교]
  
   덩달아 실업계 졸업생도 너도나도 대학 간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최소한 전문대는 나와야 인간 구실하는 시대가 어느 날 아침 자고 나니,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와 있었다. 이젠 실업고는 교육부가 마련해준 '특혜'로 전문대 가기가 더 쉽다며, 순진하고 공부 잘 못하는 중학생을 꼬였다. 90년대가 되자, 실업고도 인문계와 똑같이 대학예비학교가 되어 버렸다.
  
   현실적으로 이젠 실업고 출신이 원서를 안 내면 대학은 미달 사태가 속출한다. 1년에 인문고 학생이 불과 43만 명에 4년제 대학 정원이 무려 37만 명이다. 여기에 전문대 입학정원이 33만 명이다. 인문고만 따지면 4년제, 2년제 대학 정원에 무려 27만 명이 모자란다. 실업고 출신이 대학을 안 가면 문닫을 대학이 부지기수다. 재수생이 많아서 그렇지, 인문고와 대학 정원만 따지면 대학 입학 정원이 고졸 학생수를 넘어 선 지 이미 한 10년 되었다. 이럼에도 언론은 걸핏하면 입시경쟁 과열 어쩌고 저쩌고 야단이다. '세상엔 돌도 많아요.'
  
   이에 장단 맞춰 '문민' 정부의 이명현 전교육부 장관과 '국민'의 정부의 이해찬 전교육부 장관은 입시 과열을 원천적으로 막는 획기적인 핵 폭탄을 각각 한 방씩 투하했던 것이다. 서울대 철학과와 서울대 사회학과에 과연 그런 이름의 졸업생이 있는지, 누가 꼭 뒤져봤으면 좋겠다. 아마 없을 것이다. 있다면 그들은 유령이었을 것이다.
  
   홍콩에서 부도나야 마땅한 한국 기업이 희한한 논리로 살아남아 시장을 교란하는 것을 보고 '강시' 기업이라고 한다더니, 혹 그 두 분은 강시가 아닌지 모르겠다. 그들 두 초절정고수의 공절절후의 '비급'에서 전수 받은 '나가사키 구음신공'과 '히로시마 구양신공'으로 전국의 학교를 묵사발로 만드는 교육부, 교육청 나으리들은 아마 아기 '강시'리라.
  
  [실업계 교육의 귀감, 독일과 자유중국]
  
   세계2차대전 후 미국이 프랑스에 의해 주도된 1차대전의 가혹한 전후 처리가 히틀러 등장의 한 원인이었다고 반성하여, 독일을 경제적으로 부흥시켜 미국 중심의 서방 세계를 구축하여 새로운 적 소련에 대응하기로 했다. 이것이 이른바 마샬 계획이었다.
   이 때 독일이 요구한 것은 딱 하나였다고 한다.
  '경제, 정치 등 너희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 단 교육만은 우리에게 맡겨 달라.'
  
   각 나라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있다. 그래서 아무리 현대에 접어들어 과학기술을 비롯한 교육 내용을 비슷하게 가르치더라도 구체적인 방법과 제도에서는 다를 수밖에 없다. 다른 나라는 참고의 대상일 뿐이다. 이를 서독은 정확히 알았던 것이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장인 정신이 강한 나라이다. 전에는 명인(Meister)이 도제를 개별적으로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교육체제였지만, 대량 생산 체제에서 그것은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이고 과학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도입한 게 실업학교(Realschule)였다. 초등학교 4학년 마치면 담임 선생님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하여 평생 진로가 결정되었다. 독일은 오랜 봉건주의로 자기의 분수를 지킬 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거의 반발이 없었다. 소수의 우수한 학생이 인문학교(Gymnasium)에 진학했다. 이건 대학 예비과정인지라 당연히 대학을 목표로 공부를 시켰다. 너무 어릴 때 장래 진로가 결정되는 것은 가혹하다고 해서 종합학교(Gesamtschule)가 일부 시도되기도 했지만, 이건 주류가 아니었다.
  
   독일은 전통적인 도제훈련을 현대화한 실업교육의 강화로 현장에서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양질의 기능공을 양산했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 제일의 중소기업(세계1위 기업만 해도 300여개)에 선진국 중 가장 제조업 비중이 높은 탄탄한 경제를 구축하게 되었던 것이다. 독일은 유럽에서는 단일 인종, 단일 문화에 가장 가까운 나라의 하나이다. 가장 균질한 인간이 모여 있는 곳이다. 따라서 미국과 같은 다인종 국가의 자유분방한 교육제도는 독일에 맞지 않다. 이를 잘 알고 독일은 고유한 문화와 전통에 입각한 교육 제도를 도입하여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보통교육을 실시한 것이다.
  
   독일의 실업 교육이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비결은 대우 면에서나 사회적 인식 면에서나 마이스터(Meister)가 독토르(Doktor)와 동격이었다는 점이었다. 사람은 나름대로 타고난 능력에 있어서 방향과 분야가 다를 뿐, 최고의 경지에 오르면, 박사가 되든 명인이 되든 다같이 훌륭하다는 인식이 독일에는 광범위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독일은 이를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뒷받침해 주었다.
  
   우리가 본받을 만한 나라는 독일의 제도를 원용한 자유중국이 아닐까 한다. 자유중국도 유교문화의 영향이 강하여 숭문사상이 만만찮아 대학 진학에 대한 열기에 대단했었다. 이 열기는 그대로 살리면서 그들은 물꼬를 틀었다. 그게 바로 실업교육의 강화였다. 법과 제도와 예산으로 자유중국은 확실하게 뒷받침했다. 우수한 학생이 공고로도 많이 모여들게 한 것이다. 한국도 70년대에는 어느 정도 성공할 듯하다가 좌절한 적이 있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자유중국은 집중적으로 실업고 특히 공고를 지원했다. 최첨단 시설에 최고의 교사진으로 현장에 바로 투입될 인재를 길렀다. 또한 이들 중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진학의 길도 틔워 주었다. 전문대, 대학, 대학원까지 본인만 우수하면 진학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공고 출신은 공업계열의 전문대에 가면, 2년 만에 졸업시켰지만, 인문계 출신은 3년만에 졸업시켰다. 이렇게 10년간 인문계는 거의 지원 않고 실업고를 집중 지원하자 국민의 의식구조가 바뀌어 버렸다. 실업고와 인문고가 평등해져 버린 것이다. 그것은 선택의 문제이지 능력의 문제가 아니게 된 것이다. 마침내 과학기술부 장관도 공고 출신으로 박사 학위 받은 사람이 차지하게 되었다.
  
   자유중국의 중소기업이 강한 것도 실은 그 교육제도에 힘은 바 크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기업을 하면 그 기술이란 것이 금방 한계가 드러나지만, 이렇게 한 단계 높은 교육을 이수하여 인재를 키우면 중소기업을 비롯한 제조업은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도 당당히 이길 수가 있다. 더불어 자유중국은 실업고 교육 강화로 맹목적인 대학 진학열도 식히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었다.
  
   [우리 나라 실업고를 살리는 방법]
  
   한국은 사회적으로 어떤 대접을 받느냐 하는 것을 목숨보다 중히 여기는 나라이다. 이런 나라에서 실업고, 전문대를 인문고와 대학보다 어떤 면으로 보나 열등한 기관으로 만들어 놓고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려고 하면, 설령 졸업 후 월급이 더 많다고 해도 열등한 학생들의 집합소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 나라는 장인 정신이 없지만, 장인 정신을 능가하는 신바람 문화가 있다. 뜨거운 애국심이 있는 특이한 나라이다. 그래서 사회서 나라서 알아 주기만 하면, 놀라운 저력을 발휘한다. 대표적인 예가 기능 올림픽이다. 우리 나라가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탁월한 소질을 발휘한 곳이 바로 국제기능올림픽이다. 70년대말부터 거의 싹쓸이를 했다. 몇 년 전에 자유중국한테 한 번 종합 우승을 넘겼을 뿐 국제기능올림픽은 완전히 한국의 독무대였다. 9연패를 달성한 적도 있다. 이건 정말 경이적인 일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제조업의 기술 수준은 독일, 일본에 형편없이 뒤진다. 대만에도 안 된다. 독일과 일본이 국제 기능올림픽에서 3연패를 달성하면서 선진국으로 도약한 것과 너무도 대조적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이 뛰어난 잠재력을 극소수만 발휘하게 한 교육 내지 문화 때문이었다. 실업교육의 황폐화 내지 부재 탓이었다. 전혀 저변을 넓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체육에서 올림픽 금메달 따는 방법과 거의 비슷했다.
  
   극소수의 선수만 영웅 대접하고 나머지는 모조리 거지발싸개 취급하는데, 어느 누가 실업고에 가겠으며 어느 누가 운동을 할까? 아무리 산업 현장에서 실력있고 성실한 실업고 출신이 필요하다고 해도 그걸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지 않는데, 우수한 학생이 갈 리 없고 가더라도 열심히 공부할 리 없다.
  
   더군다나 교육과정이나 시설이나 가르치는 기술이 시대에 형편없이 뒤떨어져 설령 열심히 한다고 해도 그것이 오히려 산업 현장에 가면 안 배움만 못하니, 누가 열심히 하려고 하겠는가? 또한 한국인은 성취욕구, 내지 신분상승욕구가 엄청나게 강한데, 실업고 가는 순간 대학 가기는 거의 불가능하니, 제대로 된 4년제 대학에 가려면, 그 때까지 배운 것을 모두 버리고 고1 과정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니, 어느 누가 소명감을 갖고 애국애족 정신으로 봉사정신으로 실업고에 가겠는가?
  
   우리 나라에서 대안으로 보이는 곳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직업학교와 기능대이다. 직업학교는 현재 인문고에서 적응을 잘 못한 학생들에게 대부분 3학년 때 위탁 교육을 실시한다. 일주일에 한 번 본교에 가서 인문과목 교육을 받는다. 학생들은 여기 가는 것을 대단히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이미지가 아직 좋지 않다. 반에서 거의 바닥인 학생들이 간다. 어찌어찌 인문고를 졸업만 낮고 낮은 수능점수로도 하면 전문대에 갈 길이 넓고 넓기 때문에 구태여 직업학교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직업학교의 교과과정을 보면 아주 놀랍다. 최첨단이다. 시설도 아주 좋다. 사회가 필요로 하지 않으면 과감하게 그 과를 폐지한다. 착실하게 1년 공부하면 90%가 2급 자격증을 받는다. 공고 3년 배워야 여기서 받는 교육의 6개월에도 못 미친다. 전혀 시대에 안 맞는 것을 길게 나누어 3년에 걸쳐 배우는 공고가 이제 이런 식으로 가르쳐야 한다.
  
   하루 속히 교육과정과 시설을 이리 갖추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겠지만, 이건 기업체로부터 얼마든지 협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아예 그들에게 학교를 맡겨 버리고 교육부서 전혀 간섭을 않는 방법도 있다. 또한 학생들에게 일부 학생 외에는 등록금을 받으면, 많은 재원을 마련할 수도 있다. 4년제 대학 나와서 취직이 안 되어 직업훈련원에 다니는 것보다는 그래도 월등히 쌀 것이다.
  
   그 전에 교사들을 재교육시켜 월급 받아도 '떳떳하게' 만들어서, 3내내 이런 식으로 가르치면, 그 기술과 전문지식 수준은 현재 이론 위주로 가르치는 전문대 수준을 능가할 수 있다. 실업고 출신이 이렇게 하여 현재 전문대 졸업자 정도의 실력을 갖추면, 회사에서도 대우를 그 정도로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안 해 주면, 실력이 확실한 만큼 스스로 중소기업, 벤처기업을 만들어 대표이사가 되면 된다.
  
   인문 과목도 대폭 축소해야 한다. 정보 사회에 알맞은 교양과 윤리가 무언지 제대로 연구개발해서 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막연히 인문고서 배우는 과목을 이것저것 배운다고 이들이 교양 있고 예절바르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되리란 환상을 버려야 한다.
  
   만약 이렇게 하여 실력이 짱짱한 졸업생들이 배출되면, 이들이 그 다음 단계로 노동부 소속의 기능대처럼 현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과학기술을 가르치는 기술대학을 대대적으로 설립하여 우수한 학생을 중심으로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대기업에서 기술대학을 설립하여 필요한 인재를 키우려고 그렇게 애를 써도 그저 형식적으로만 인정해 주는 고리타분한 정책을 이제 버리고 과감히 이를 허용해야 한다. 그러면 예산 문제를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경쟁력이 없는 전문대는 이제 이런 기술대학과 경쟁에서 밀려나서 자연도태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각 전문대도 위기의식을 갖고 대구 영진전문대처럼 주문자 중심, 곧 기업이 원하는 학문과 기술을 가르쳐 주는 대학으로 급속히 개편될 것이다.
  
   이렇게 하면 맹목적인 대학 진학열이 저절로 꺾이게 되고 4년제 대학도 위기 의식을 느끼고 비로소 대학 구실을 하게 하는 부수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모른다.
  
   한국인은 머리와 손이 함께 발달한 민족이다. 머리도 어느 나라에 뒤떨어지지 않지만, 손도 단연 세계 최고다. 머리는 바둑 세계1위로 확인되고 손은 양궁과 국제기능올림픽에서 확인되었다. 거기에다 뜨거운 가슴까지 있다. 마음만 먹으면 한국인은 아주 끈질기다. 누구보다 잘 참고 '끝내기'를 잘한다. 바둑 황제 이창호를 보라. 정보화 시대(online)에 제조업(off-line)을 함께 할 수 있는 나라이다. 이 저력을 이제 살려야 한다. 그 첫걸음이 바로 실업고 교육의 정보화이다(손). 대학의 정보화도 시급하다(머리).
  
   뱀의 발 : 상고는 거의 전면적으로 뜯어 고치고 아예 많은 학교는 폐쇄해야 할 것이다. 미림전산여고처럼 명실상부한 정보고등학교로 만들든지.
   (2000. 11. 7.)
  
  
  
[ 2004-12-11, 09:4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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