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재를 부르는 일본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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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이 표정 관리하기에 바쁘다. 북한과 한국이 번갈아 일본의 입지를 높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로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측면 지원하고, 한국은 민족공조와 평화번영이란 말로 이에 화답하며 한일 중간수역의 독도와 백골이 진토된 친일파 문제로 일본열도에는 흙탕물 한 방울 튀지 않을 평지풍파를 국내에 대대적으로 일으키며 일본의 자위대가 막 불려고 하는 동북아 패권의 나팔을 가로채서 신나게 대신 불어 주고 있다. ‘다케시마의 날’이란 기름기가 좌르르 도는 참치 미끼를 덥석 문 것이다. 카리브해가 아닌 동해에서 노인이 아닌 청년이 낚은 엄청난 월척이다. 도저히 청년 혼자 힘으로는 끌어올릴 수 없는 고래만한 고기다.
  
   짖는 개는 물지 못한다고 실력이 없는 하룻강아지가 호언장담하고 단정적인 협박을 일삼으면, 산중왕 호랑이는 경고조로 깊은 밤에 한두 번 포효하고는 모습은 전혀 드러내지 않고 때가 무르익길 기다리다가 그 하룻강아지가 제법 토실토실하게 자랐다 싶으면 단숨에 그 목을 물어뜯어 버린다. 주인집을 박차고 나와 동네 개들과 일진회인가 뭔가 작당을 해서 어울려 다니며 마침내 산 위에 올라 기고만장하게 산이 떠나갈 듯 왕왕 짖어대면, 물실호기(勿失好機)라 바람처럼 덮쳐 천하에 무서울 게 없는 사춘기를 맞아 천방지축 날뛰는 그 개를 숨 쉴 틈도 안 주고 아작내 버린다. 잡아먹어 버린다.
  
   예로부터 일본은 말을 앞세우지 않는다. 이따금 극우파가 참지 못하고 본심(혼네)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한국이 이를 망언이라며 길길이 뛰면 입막음조로 그 자를 직위 해제시키거나 개인적 발언이었다며 적당히 무마시키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지진과 태풍에 대비하듯 때를 기다리며 철저히 준비하고 꾸준히 실력을 배양한다.
  
   맥아더에게 개처럼 충성하면서 흰둥이든 검둥이든 미군한테 마누라와 딸까지 바쳐가며 눈에 불을 키고 미국을 무섭게 배우던 일본을 결정적으로 키워 준 것은 김일성이었다. 일제라면 이를 간다면서 일본을 가장 이롭게 한 자가 김일성이다. 그로 인해서 일본은 전쟁특수를 누리고 이름만 평화로울 뿐 무시무시하기 짝이 없는 실질적으로는 아시아 제일의 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이젠 그 아들이 또 일본을 크게 돕지 못해 안달이다.
  
   일본의 군사비는 GNP의 1%에 묶여 있었지만, 1980년대까지는 그것만으로도 한국의 1년 정부 예산에 못지않았다. 이른바 보통국가가 되기 위해 미국의 핵우산 아래서 상대적으로 군사비를 적게 들여 과학기술과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하면서 그들은 꾸준히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했다. 군사는 과학기술과 경제의 밑거름이 없으면 뿌리 썩은 거목이기 때문에 일본은 핵무기만 없을 뿐 실질적으로는 세계 제2위 군사대국이라는 러시아도 능가한다. 마치 19세기말 20세기초 아시아에서 최초로 근대화에 눈을 뜬 일본이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십분 발휘하여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끎으로써 동아시아의 패권을 잡던 것처럼 지금도 미국이 고삐만 풀어 주면, 능히 단독으로도 중국과 러시아를 물리칠 수 있다.
  
   일본은 핵무기도 미국만 눈감아 주면, 원자력 발전소에 쓰기 위해 프랑스에서 수입한 20톤의 플루토늄 중 반만 전용해도 한 달 안에 개발완료해서 6개월 이내에 무려 1,000기에서 1,500기를 양산할 수 있다. 일본은 전자와 기계, 화학 기술이 미국을 뺨치고 외환보유고가 단연 세계1위이기 때문에 이제 겨우 먹고 살만한 중국과 러시아를 능가하는 최첨단 무기를 개발하고 양산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일본이 바라는 바는 오로지 미국이 이미 느슨해진 고삐를 아예 풀어 주면서 미운 놈을 물어뜯으라고 명령하는 것뿐이다.
  
   걸프전에서 일본은 전쟁분담금을 가장 많이 내고도 미국과 유럽 각국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피 흘리는 군인을 한 명도 안 보냈다는 이유였다. 일본은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면서 겉으로는 억울하다며 사방으로 동정의 눈빛을 갈구하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다들 싸늘했다. 마침내 때가 온 것이다. 아무런 눈총을 받지 않고 일본은 그 이후로 평화의 사도로서 처음에는 비전투원을, 다음에는 전투원을 분쟁지역에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픈 과거가 있는 아시아는 기겁을 했지만, 미국과 유럽은 대환영이었다. 여기에 반일한다며 북한이 또 다시 큰 원군이 될 줄이야! 북한은 1998년 일본열도를 넘어가는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고 2002년에는 농축우라늄계획을 자랑하고 2005년에는 핵보유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미사일과 핵무기만 해도 고마운데 북한인권 문제와 메구미 사건까지 선물해서 일본은 제2의 대동아공영권에 대한 명분을 넘치도록 쌓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자위 수단이라며 일거에 북한의 팔을 비틀 거리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었는데, 한국마저 민족공조를 내세우며 따뜻한 남방 삼각동맹에서 이탈하여 추운 북방 삼각동맹에 끼어들겠다고 한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대테러전쟁을 선언한 미국으로서는 이 시점에서 동맹국 하나 떨어져 나가는 게 얼마나 입안이 바싹바싹 타는 일인데, 미군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주둔한 반세기 동맹국이, 혈맹이 ‘할 말은 하겠다, 중재에 나서겠다, 자위 수단이라는 그이의 말은 일리가 있다’ 등의 말로 등 뒤에서 비수를 겨누는 상황에서 세계 제2위의 군사적 잠재력을 가진 일본을 평화헌법의 족쇄로 계속 묶어 둘 까닭이 없다. 불과 15년 전만 해도 공산국가였던 폴란드가 미국의 문경지교(刎頸之交)로 거듭났는데, 60년 전에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일본이야 이 시점에서 적대감이나 의구심의 대상일 리가 없다. 게다가 입의 혀처럼 일본은 미국이 주창한 ‘자유의 확산’과 ‘폭정의 종식’을 100% 지지하니까, 능히 텍사스의 크로포드 목장에 불러 청바지 입고 함께 죽마(竹馬)를 탈 만하다.
  
   힘없는 자의 큰소리는 종종 화를 자초한다. 10대 소년이 쪽지 하나로 부모에게 독립을 선포하고 고리타분한 교과서를 쓰레기통에 집어던진 다음 큰 뜻을 품고 가출하면, 주머니에 꼬불쳐 온 돈이 있는 며칠 동안만 하늘을 날아갈 듯 행복할 뿐이다.
  
   (2005. 3. 25.)
  
  
[ 2005-03-26, 07:3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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