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덴 폰드에서: 홀로 있어야 홀로 선다
趙甲濟 식 글쓰기(10)/主體性의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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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다는 것
  
  1971년부터 기자생활을 한 나는 1996년 9월부터 10개월간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연수를 하였다. 가족을 데리고 가지 않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좋았고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많아서 더 좋았다. 도서관 서고(書庫)에 놓인 빈 의자, 케네디 스쿨(하버드의 정치대학원) 앞에 있는 공원의 잔디, 찰스강가의 벤치, 흘러간 명화(名畵)만 상영하는 브레틀 시어터, 이 극장 아래층에 있는 카사블랑카 식당, 보스턴 시내의 역사적 건물群 사이로 난 「자유의 길」(Freedom Trail), 소설가 나다니엘 호돈의 「주홍글씨」에 나오는 마녀재판의 무대 세일럼 항구의 바닷가 길,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의 무대인 19세기의 포경(捕鯨) 기지 뉴 베드포드의 스산한 부둣길과 고래박물관, 통통하게 살이 찐 다람쥐들이 설치는 하버드 야드(校庭), 눈덮인 캠브리지 콤몬(공원), 하버드 스퀘어(광장) 바로 옆, 도시 한복판에 조성된 공동묘지.
  
  사람이 혼자 있다는 것은 결국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의 방향이 내면(內面)으로 향한다는 의미이다.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서울에서 항상 他人을 의식하는 환경 속에서도 기자는 택시를 타고 있을 때가 가장 좋았다. 주변에 신경쓰지 않고 空想(공상)과 상상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시간대였다. 하버드에서 나는 그런 공상의 공간이 있는 택시를 한 열 달 동안 탄 셈이었다.
  
  나는 넥타이 매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한때는 넥타이를 풀지 않고 매듭을 유지한 채로 그냥 벗겨서 걸어두었다가 다음날 아침에 다시 목에 걸고 나오곤 했었다. 이스라엘의 라빈 수상이 1995년 11월에 암살되기 하루 전에 마지막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라빈이 청년 장교시절에 넥타이 매는 것을 그렇게 싫어했다고 한다. 그도 나처럼 넥타이를 풀지 않고 벗겨서 걸어놓곤 했었다고 한다. 한번은 외교회담에 가야 하는데 누군가가 걸어둔 넥타이를 풀어버려 당황했다고 한다. 하버드에서 이 넥타이로부터도 해방되었다. 한 달에 넥타이를 매야 하는 행사는 한두 번이었다. 하버드에서 넥타이를 맨 사람은 교수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지금 세계적 추세는 될 수 있으면 넥타이를 안 매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선 넥타이를 꼭 매어야 하는 행사의 경우엔 미리 고지(告知)를 하도록 한다. 아마도 세계에서 넥타이를 가장 충직하게 매는 사람들은 한국인들일 것이다. 공식 모임에서 넥타이를 안 매는 사람이 있으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나라도 한국인뿐일 것이다. 넥타이란 것이 우리나라의 복식도 아닌데 왜 이렇게 「외래 풍조」인 넥타이를 숭배하는가. 모택동(毛澤東), 호지명(胡志明), 주은래(周恩來)가 자국민들로부터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고 비판받은 적이 있는가. 혹시 이 넥타이에 대한 숭배는 주자학과 자유민주주의를 수입하여 本國보다도 더 교조화해 버린 우리나라의 문화적 체질과도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넥타이, 민주주의, 한글전용, 1인1표제, 크리스마스의 공휴일 지정, 신문의 영어 표기(스포츠面을 Sports로 표기), 대학총장 직선(直選) 같은 것들도 『꼭 무조건 따라가야만 하는가. 우리 실정에 맞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다는 것, 이것이 바로 주체성일 것이다.
  
   소로우의 숲 속 삶
  
  내가 다닌 니만 財團에서 만난 미국 기자들의 옷차림이나 식사, 몰고 다니는 승용차 등 생활태도와 수준은 꼭 노동자 같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기자직에 따르기 쉬운 권위의식이나 오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간편한 생활태도, 그래서 그들의 질문도 항상 단문(單文)이고 의문부호로 끝나는 것이었다. 간편한 생활에서 간결한 사고(思考)와 명쾌한 언동(言動)이 나온다.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 끼여 살다가 보면 인정(人情)이 생기고 아기자기한 재미도 있다. 남을 너무 의식하면서 살다 보면 판단의 근거를 자신의 잣대가 아닌 他人과의 관계 속에서 찾게 되는 바람에 눈치를 보는 능력만 뛰어날 수도 있다.
  
  미국인은 우직하고 한국인은 영리하다. 영리가 순간적으로는 우직함을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하버드 대학이 있는 캠브리지市에서 서북쪽으로 한 30분을 차로 달리면 왈덴 폰드(Walden Pond)라고 불리는 숲 속의 호수가 나온다. 이 호수가 유명한 것은 경치가 특별히 아름다워서라기보다는 19세기 미국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이곳에 통나무집을 짓고 혼자서 살았던 덕분이다.
  
  하버드 대학 졸업생인 소로우는 그의 대학 선배이자 동료인 랄프 왈도 에머슨과 함께 미국식 개인주의의 본질을 포착하여 정리하고 옹호했으며 이를 실천해 보인 사람이다. 소로우의 아버지는 연필공장 사장, 어머니는 노예 폐지론자였다. 名門대학 출신이면서도 그는 지적(知的)인 면에서뿐 아니라 실용적인 기능이 많았다. 목수 일, 석공(石工) 일, 그림 그리기, 지질 조사, 항해술에 능하고 정원사 일도 곧잘 했다. 에머슨은 「나는 일을 해내는 사람을 존경한다」고 했는데 14세 후배인 소로우가 바로 그런 실용적 인간이었다. 소로우는 이렇게 썼다.
  
  「어떤 사람이 동행자(同行者)들과 보조(步調)를 맞추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가 다른 드럼 소리에 맞추어 걷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소로우는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드럼 소리에 맞추어 평생을 살아간 사람이다. 그는 하버드를 졸업한 뒤에 교사가 되었다. 학생을 體罰(체벌)하라는 지시를 거부하곤 사표를 냈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꾸려가는 연필공장에서 일하면서 시간만 나면 숲 속에 가서 혼자 술을 마시고 취했다. 그는 19세기의 미국을 휩쓸고 있던 상업주의에서 벗어난 생활을 하겠다고 결심한다. 1845년 7월4일 그는 왈덴 폰드 옆에 있는 에머슨의 땅에 통나무집을 짓고 거기로 이사했다. 세속(世俗)과 벗어난 삶을 실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일부러 그렇게 살고 싶었다. 내가 죽을 때 내가 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까 두려워서.」
  
  그는, 살기는 살았는데 인간답게 살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기 싫어서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보겠다는 실험을 단행한 것이다. 소로우는 이 숲과 호수를 벗삼아서 주로 명상하고 관조(觀照)하고 글쓰는 일을 했다. 그는 자신의 생활을, 이 세상과 담을 쌓는 隱遁(은둔)과 구별했다. 가까운 마을에 사는 친구들을 찾아가서 만나기도 하고 손님들의 방문을 환영하기도 했다. 미국-멕시코 전쟁이 터지자 소로우는 이는 노예제도를 확산시키려는, 正義가 없는 전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항의의 표시로 州정부에 내는 주민세 납부를 거부했다. 州정부에서는 소로우를 감옥에 집어넣었다. 소로우의 숙모가 세금을 대납(代納)했기 때문에 하루 만에 풀려났다.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러운 돌출행위였다. 그러나 이 대수롭지 않은 경험에 기초하여 소로우가 쓴 것이 「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라는 제목의 수필이었다. 소로우는 이렇게 주장했다.
  
  「만약 어떤 법률이 다른 사람에 대한 정의의 파괴자로서 당신을 이용하는 그런 성격이라면 당신은 그 법을 거부해도 된다고 나는 감히 말하겠다.」
  
   自我의 발견
  
  이 「시민 불복종」이란 개념은 그 뒤에 인도의 간디와 미국의 마틴 루터킹 목사에 의한 非폭력 저항운동의 이론적인 바탕이 되었다. 요사이는 환경운동가들이 소로우의 숲 속 삶을 따라 배우고 있다. 이는 세속을 멀리 한 인간의 깊은 성찰(省察)이 하나의 논리적인 힘으로 전환되어 세월이 흐른 뒤에는 그 世俗의 발전과 개혁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나는 1996년 11월 말 눈이 살짝 덮인 이 왈덴 폰드의 숲 속 길, 호반 길을 친구와 함께 걸어보았다. 한 바퀴 도는 데 한 시간쯤 걸렸다. 눈 덮인 낙엽을 사각사각 밟으면서 걸으면 친구가 옆에 있어도 굳이 말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자연과, 그리고 자신의 內面과 무언(無言)의 대화를 하게 된다. 자연 속을 혼자서 걷는다는 것은 인간의 영혼을 세탁하는 일이다. 「나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하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져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자신의 영혼과 양심의 울림과 떨림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이다.
  
  미국인들은 인간이란 혼자 있는 時間과 空間이 있어야 성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라이버시」의 개념이 그것이다. 친구도, 부모도, 국가도 침범할 수 없는 절대공간에서는 신(神)과 대화할 수 있다. 이곳에서 인간은 자아(自我)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自我의 발견이란 인간이 자신을 아는 것이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실존적으로 깨닫는 것이고 살아있음의 엄숙함을 진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것은 주체성 定立의 前단계이다. 미국인의 개인주의가 가진 강점(强点)의 입각점을, 기자는 홀로 있는 시간과 공간으로 보았다. 홀로 있어 보는 연습을 많이 했으므로 홀로 설 수가 있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과 대화할 수 있는 환경으로는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명상, 기도, 參禪, 산책, 다도(茶道)와 같은 심리적 공간도 있다. 이런 고독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문화, 종교, 사회는 주체성이 강한 인간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그런 인간들이 많이 모인 나라는 자주적일 것이다.
  
  
언론의 난
[ 2015-07-12, 18:18 ] 조회수 : 60822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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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운     2017-01-04 오전 8:48
이렇게 좋은 글에 왜 댓글이 없을까요? 감히 댓글을 달아 봅니다. 저는 초중고생의 실력은 휴대폰 가격에 반비례한다고 봅니다. 않가지 학생이 가장 뛰어나지요. 자기만의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기 때문으로 보고 이 견해은 본 글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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