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發掘 <25> 잉카의 몰락
4만 잉카 군대의 궤멸… 붙잡힌 황제, 피사로에게 황금을 약속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안데스의 樂園

잉카제국은 살아있다. 400년 전 멸망한 이 제국의 후예들은 안데스 산맥에서 옛 풍습 그대로 살고 있다. 서기 16세기 현재로 냉동된 모습이다. 약 600만을 헤아리는 인디오. 그들은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칠레에 걸쳐 흩어져 산다. 현재의 국경과 법률은 그들에겐 아무 쓸모가 없다. 그들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직도 잉카제국의 질서일 따름이다. 안데스 산맥을 따라 건설됐던 길이 3500㎞의 잉카제국. 마야가 정글에서 일어난데 대해 잉카는 산맥에서 탄생했다. 또 하나의 신비스런 문명이다.

남아메리카의 태평양 연안을 따라 세계로 내리 뻗은 6400㎞의 안데스. 세계에서 가장 긴 산맥이고 히말라야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빙하와 열대림, 강과 사막 凍土帶(동토대)와 산호초 해발 3800m의 호수와 4000m의  도시들이 공존하는 안데스. 화산의 불꽃이 만년설을 분홍으로 물들이는 6000m의 巨峰(거봉)―영겁스런 자연에서 꽃핀 잉카帝國(제국)은 지상 유토피아에 가장 가깝다.

안데스 산맥에서 그들은 왜 삶터를 잡았을까. 미스터리다. 일부학자는 평지부족에게 쫓겨올라갔다고 한다. 다른 학자들은 잉카민족의 선조 되는 몽고족일파가 베링海(해)를 건너기 전엔 몽고고원에서 살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아메리카대륙에 건너와서도 무의식적으로 높은 곳에 대한 향수에 젖게 됐고 마침내 안데스산맥에서 욕구를 충족케 됐다는 풀이다. 안데스의 최고봉은 아콩카구아로 7201m. 아시아를 제외한 5대 대륙에서 가장 높다.

자그마한 에콰도르에도 4500m이상의 산이 12峰(봉). 안데스 산맥은 너비가 좁은 게 특징인데 30㎞밖에 되지 않는 곳도 있다. 따라서 경사는 무지하게 급하다. 25㎞ 걷는 사이에 고도가 3000m 높아지는 것은 보통. 볼리비아의 포토시는 해발 4000m의 고원에 발달한 도시고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는 해발 3350m. 해저에서 아콩카구아 정상까지는 높이 1만4500m. 해면을 무시하고 수직거리로만 따진다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 된다.

이런 환경에서 인디오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서기 1200년 경 일어난 잉카제국이 최전성기에 달했을 때 영토는 南韓(남한)의 10배에 해당하는 90만㎢, 인구 1600만. 그들은 로마제국의 도로망 뺨치는 9000㎞의 산복도로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바위산에 굴을 뚫고 협곡엔 줄다리를 걸친 이 도로는 지금도 애용되고 있다.

잉카민족은 공기가 희박하고 추운 高山(고산)지대에 적응하기 위해 특이한 체질을 갖고 있었다. 현대 인디오의 체질을 미뤄 짐작하면 그들은 두껍고 넓은 가슴을 자랑했다. 산소를 최대한 들이 마시기 위해 허파가 컸던 때문이다. 그들의 혈액량은 평지사람보다 평균 2리터 많았다. 역시 산소를 많이 저장하기 위한 구조변화였다. 적혈구도 조금 큰 편이었고 심장은 다른 인종보다 20%나 더 무거웠다. 순환계통의 능력이 평지인종보다 20~30% 뛰어나 맨발로 눈 속을 걸을 수 있었던 이들이었지만 평지에서 발생한 질병엔 형편없이 약했다.

1531년 1월20일 돼지치기 출신이며 까막눈인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는 카제국에 천연두와 피부병 등 전염병이 유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길조로 생각하며 파나마를 출항, ‘황금의 나라’로 향했다. 용병 180명, 말 37마리를 3척의 범선에 태우고 그는 인구 1600만의 제국을 정복하기 위해 떠난 것이다. 백인종은 아메리카대륙에 질병을 갖고 왔다. 천연두와 인플루엔자는 저항력을 갖지 못한 인디오 사이에 들불처럼 번져갔다. 코르테스에 점령당한 멕시코에선 수십만이 몰죽음. 백인의 발이 아직 닿지 않았던 잉카 제국에도 이런 질병이 침입했다. 병원균은 백인 정복자보다 훨씬 빨리 퍼져갔다. 잉카 제국을 덮친 전염병이 스페인 정복자에게 유리한 정세를 만들어준 것은 확실하다. 인류가 건설한 사회 중 가장 평등하고 질서 있었던 잉카문명은 이제 돼지치기에게 능욕될 자세로 바꿔지고 있었다.


피의 광장

잉카제국은 현대의 복지국가보다 더 평등한(권력과 재산에서) 사회조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이 제국이 악마 같은 피사로에게 겁탈당한 것은 비극 중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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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에 눈이 멀었던 피사로

피사로는 아즈텍 제국의 목을 자른 코르테스보다도 악질. 코르테스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엘리트였다. 피사로는 바람둥이 아버지 아래 사생아로 태어나 평생 文盲(문맹)으로 지냈다. 코르테스는 신비한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였지만 피사로는 제 명조차 다 못살고 부하에게 암살된 폭력배였다. 둘의 공통점은 황금에 미쳐있었다는 것. 그들은 노다지를 일단 손에 넣고선 곧 날려버렸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고 있다.

1531년 2월 당시 56세의 피사로는 지금의 에콰도르에 상륙했다. 전염병과 내란으로 텅 빈 잉카 부락을 지나 그들은 톤베스란 도시에 입성. 스페인 용병들은 이곳을 약탈, 군자금을 마련했다. 피사로는 약탈한 순금 82㎏을 파나마로 보냈다. 더 많은 용병을 모집하기 위해서였다. 피사로가 잉카제국의 내란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얻은 것은 이 도시에서였다.

당시 잉카제국은 두 형제에 의해 남북으로 분할 통치되고 있었다. 그러나 곧 국경분쟁이 일어나 아타우왈파 황제는 와스칼 황제가 수도로 정했던 쿠스코를 며칠 전 점령, 내분을 수습한 참이었다. 아타우왈파 황제가 지금의 페루 중심부 카하말카에서 지을 치고 있다는 소식이 피사로의 귀에 들어왔다. 그는 잉카(황제란 뜻)를 만나기 위해 카하말카로 진군을 개시한다. 1532년 11월15일 스페인 정복대는 해발 3500m의 분지에 있는 카하말카에 들어갔다. 스페인 병력은 180명. 이 도시에 포진한 잉카군대는 4만.

피사로는 부관들을 황제에게 보내 인사를 올렸다. 황제는 친위대를 앞세우고 거만하게 사신을 맞았다. 부관은 황제를 초대하고 싶다는 피사로의 뜻을 전했다. 황제는 승낙했다. 친위대는 부관이 탄 말을 보고 겁을 집어먹은 눈치였다. 처음 본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부관은 그들 앞에서 말을 달려 보였다. 30~40명의 친위대가 한발 주춤 뒤로 물러섰다. 스페인 부관이 돌아가자 황제는 이들 겁먹은 친위대원을 몽땅 죽여 버렸다.

그날 밤을 스페인 용병들은 공포 속에서 지샜다. 4만 對(대) 180. 몽땅 사로잡혀 神殿(신전)의 제물이 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겁에 질려 오줌을 싸는 병사가 많았다고 당시 기록은 전하고 있다. 회견 장소는 이 도시의 광장으로 정해졌다.

날이 밝자 황금 가마에 몸을 실은 잉카 황제를 앞세우고 대군이 느릿느릿 광장으로 흘러들어오는 게 보였다. 피사로는 대포 4문과 전 병력을 광장에 면한 3채의 집에 숨겨두고 기다렸다. 황제는 광장에 들어오자 스페인 용병이 그림자도 없는데 놀라 “어디냐”고 소리쳤다. 이때 스페인 신부가 성경을 들고 기어 나왔다. 엉뚱하게도 황제에게 다가가더니 선교를 해대는 것이었다. 황제가 노하여 성경을 내동댕이쳤다. 이것이 뇌관을 때린 격. 광장을 꽉 메운 잉카군대를 향해 포탄과 총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터져죽고 밟혀 죽고 맞아죽고…. 광장은 수라장으로 변했다.

2시간 만에 잉카제국 군대는 궤멸됐다. 황제는 포로가 되고. 이날 살육된 잉카군대는 7000명. 창과 칼로만 무장한 잉카제국 군대는 대포와 소총 앞에 순식간에 가루가 돼버린 셈이다. 포로가 된 아타우왈파 황제는 스페인 용병들이 황금에 이상하리만큼 관심을 보이는 데 놀랐다.  잉카제국에선 황금은 다른 쇠붙이와 꼭 같이 취급됐다. 다만 細工(세공)하기 쉬워 공예품에 자주 이용되는 게 특이하다면 특이한 것이었다. 황제는 자기를 놓아주겠다는 약속만 하면 자신이 잡혀있는 방을 황금으로 채워주겠다고 피사로에게 간청한다. 황제의 방은 길이 10.7m 너비 6.2m였다.

 

(‘잉카의 몰락’편 계속)

언론의 난
[ 2015-09-03, 15:58 ] 조회수 : 25068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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