申鉉碻 총리가 지켜본 12·12 때의 崔圭夏 대통령
全斗煥과 그의 時代(11)대통령은, "무슨 일을 이 따위로 처리하느냐"고 화를 냈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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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12일의 군사변란 중에 崔圭夏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이는 申鉉碻 국무총리이다. 그는 1995년 12월 검찰 신문(참고인)에서 아래와 같이 답하였다. 

 ―진술인은 全斗煥 합수본부장이 鄭昇和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을 10·26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연행·조사하겠다는 보고를 사전에 받은 사실이 있나요.
 『전혀 없습니다.』
 ―진술인은 鄭昇和 계엄사령관이 연행된 사실을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1979년 12월12일 19시 제가 국무위원에 대한 인사를 대통령과 상의하기 위해 총리 공관으로 혼자 갔는데, 全斗煥 장군이 崔대통령에게 보고 중이어서 약 1시간 정도 기다린 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당시 崔대통령이 「조금 전에 全斗煥 장군이 다녀갔는데, 10·26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혐의로 鄭昇和 계엄사령관을 연행해 조사하겠다면서 裁可해 달라하기에 국방부 장관 결재 없이는 裁可할 수 없으니 절차를 밟아 오라고 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0~40분 정도 지난 다음 누구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대통령 비서실 관계자가 외부로부터 연락받아 鄭총장이 연행되었다는 보고를 해 그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무슨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는가!』

 ―진술인은 개각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崔대통령을 만났다고 하는데 그와 관련하여 어떤 의견을 보고했나요.
 『제가 개각 명단을 가지고 갔으나,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해 개각을 협의할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따라서 개각이 이틀 정도 지난 다음 이루어졌습니다.』
 ―진술인이 崔대통령에게 위와 같은 말을 들을 당시의 대통령 표정이 어땠나요.
 『국방부 장관이나 대통령과 사전 협의 없이 계엄사령관을 연행해 조사하겠다는 말을 들은 후라 그런지 全장군에 대해 매우 화를 내고 힐책하는 듯한 언동을 하셨습니다.』
 ―당시 崔대통령은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나요.
 『「무슨 일을 이 따위로 처리하느냐」고 하셨습니다.』
 ―진술인은 崔대통령으로부터 위와 같은 말은 듣고 어떻게 했나요.
 『저도 全斗煥의 처신을 의아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잘 하셨습니다. 그처럼 중요한 일은 국방부장관 등의 의견을 들으시고 정식 절차를 밟아 신중하게 처리하셔야 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진술인은 당시 全斗煥 합수부장이 崔대통령의 재가를 거부당하고 나가는 것을 보았나요.
 『총리 공관의 안쪽 방에서 全斗煥이 보고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가 보고를 마치고 간 다음 崔대통령을 만났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全斗煥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당시 崔대통령이 全장군으로부터 폭행이나 협박을 당한 사실은 없었다고 하던가요.
 『그런 말씀은 없었습니다.』
 ―그 때 보안사의 李鶴捧 중령을 본 사실이 있나요.
 『못봤습니다.』
 ―당시 총리 공관의 경비상태는 어땠나요.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피의자 全斗煥의 진술에 의하면 비서실로부터 메모가 전해져 와서 崔대통령에게 보고하던 중 나가보니 비서실에서 李鶴捧 중령이 鄭총장 연행사실과 그 과정에서의 총격전으로 禹慶允 대령이 다쳤다는 사실을 보고했으며, 그 후 다시 대통령에게 鄭총장 연행사실만 보고했다고 하는데요.
 『제가 崔대통령을 만났을 때는, 저는 물론 대통령께서도 鄭총장 연행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全斗煥이 崔대통령께 위와 같이 보고했다는 것은 거짓 진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술인이 개각문제 협의를 위해 崔대통령을 만나게 된 것은 몇 시경인가요.
 『20시가 조금 안 되었을 것으로 기억합니다.』

 『法을 무시하면 나라가 안 된다.』

 ―피의자 전두환의 진술에 의하면 崔侊洙 비서실장, 鄭東烈 의전수석 비서관도 12월12일 18시30분경 30경비단장실에 모여 鄭총장 연행 건에 대한 사전 브리핑을 받기로 되어 있었으나, 대통령 재가시간이 30분 앞당겨져 오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崔대통령께 보고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서실장 등이 全斗煥의 브리핑을 군부대 내에서 듣기로 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신이며, 아주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술인이 12월12일 21시30분경 피의자 全斗煥이 兪學聖, 黃永時, 車圭憲, 朴熙道, 白雲澤 장군 등과 함께 鄭총장 연행에 관한 재가를 다시 받으러 온 사실을 알고 있지요.
 『崔대통령은 비서실 관계자로부터 鄭총장 연행 사실을 보고 받았는데, 이에 대통령은 비서실 관계관들에게 그 경위를 빨리 알아보라고 지시해 여러 루트를 통해 鄭총장의 연행 경위, 그 과정에서의 총격전 발생 사실 등을 보고받고 계셨습니다. 이 상황에서 5~6명의 장군들이 鄭총장 연행에 대한 재가를 요청하기 위해 대통령을 찾아왔습니다. 崔대통령께서 盧載鉉 국방장관을 찾아오라면서 여전히 裁可해주지 않자 20~30분 정도 계속 재가를 요청하다 돌아간 사실이 있습니다.』
 ―당시 崔대통령에게 裁可를 요청하러 온 장군들의 복장이 어땠나요.
 『모두 전투복 차림이었습니다.』
 ―그들이 권총을 휴대하지 않았던가요.
 『몸 속에 휴대했는지는 몰라도 외관상으로는 권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 崔대통령의 표정은 어땠나요.
 『장군들이 崔대통령에게 「사태가 이렇게 되었으니 재가를 해 달라」고 계속 요청하자, 崔대통령은 「왜 절차를 무시하고 연행부터 했느냐, 국방부 장관을 데려와라」고 소리치면서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장군들이 돌아간 뒤 崔대통령이 진술인에게 뭐라고 하던가요.
 『崔圭夏 대통령은 매우 불쾌하고 노여운 표정을 계속 지으시면서 「이 친구들이 무슨 일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다, 앞뒤가 전도된 것이 아니냐, 법을 무시하고 이런 식으로 일처리를 하면 나라가 안 된다」라고 걱정하셨습니다.』
 ―崔대통령이 끝내 裁可하지 않자, 장군들이 崔대통령을 권총 등으로 협박한 사실은 없는가요.
 『그런 사실은 없습니다.』
 ―鄭昇和 총장을 연행하려면 사전에 대통령 재가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당연하지요. 鄭총장은 당시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으로서 비상시국에 막중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어떤 범죄에 연루되었다 해도 대통령 재가없이 연행한다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생각합니다.』

 盧載鉉 데리러 국방부로 가다

 ―피의자 全斗煥은 10·26 사건과 관련해 혐의가 있던 鄭昇和 총장 연행은 정당한 수사권 발동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의 사전 재가는 필요 없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법치국가에는 엄연히 법적 절차가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국가원수이자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재가도 없이 마구잡이로 계엄사령관을 구속한다면 법의 존재가 무의미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욱이 鄭昇和 계엄사령관은 全斗煥 합수본부장의 직속상관이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사전 재가 없이 그를 연행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무렵 尹誠敏 육군참모차장은 鄭총장이 합수부에 의해 불법적으로 연행된 사실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병력동원 등의 지휘를 받기 위해 崔侊洙 비서실장에게 전화했더니 대통령을 바꾸어 주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저는 당시 총리 공관의 응접실에서 崔대통령과 계속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당시 崔侊洙 비서실장은 비서실과 응접실을 오갔는데, 그 과정에서 그런 통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尹誠敏 참모총장의 진술에 의하면, 崔侊洙 비서실장과 위와 같이 통화한 후 조금 있다 진술인에게 전화해 상황을 보고했다는데 사실인가요.
 『저는 전혀 모릅니다. 만약 제가 그 전화를 받았다면 바로 옆에 앉아 계시던 崔대통령에게 왜 전화를 바꿔 드리지 않았겠습니까.』
 ―兪學聖 등 장군들이 鄭昇和 총장 연행에 대한 재가를 요청하기 위해 총리 공관에 오기 전에 崔侊洙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그들이 대통령께 찾아온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사실이 있나요.
 『저는 물론 崔대통령도 보고받은 사실이 없습니다.』


 ―鄭東烈 대통령 의전수석의 진술에 의하면 崔侊洙 비서실장이 어디로부터인가 전화연락을 받고 자신에게 장군들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崔侊洙 비서실장이 왜 崔대통령께 그러한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을까요.
 『그 점은 저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진술인은 그곳에서 盧載鉉 장관과 전화통화를 한 사실이 있지요.
 『예, 12월13일 02시30분에서 03시경 사이에 盧국방이 전화를 해 제가 받아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국방부에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총리 공관으로 빨리 오라」고 했더니 총격전이 벌어지기 때문에 못가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崔대통령에게 盧국방의 전화를 바꿔주었는데 崔대통령께서도 저와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당시 그곳에는 李熺性 中情부장 서리도 와 있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李熺性 中情부장 서리는 12월12일 24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왔는데, 崔대통령에게 당시까지의 상황을 보고 드리러 온 것으로 기억합니다.』
 ―진술인은 12월13일 03시30분경 李熺性 中情부장 서리와 함께 盧載鉉 국방부장관을 데리러 국방부로 갔나요.
 『예.』

 盧국방, 보안사로 가서 鄭총장 연행서류에 裁可

 ―그 경위는 어떤가요.
 『盧載鉉 장관이 국방부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어 혼자서는 도저히 총리 공관으로 올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제가 대통령에게 盧장관을 데려오겠다고 했더니 승낙했습니다. 李熺性 中情부장 서리도 함께 가겠다고 하여 국방부로 가게 된 것입니다.』
 ―진술인 등이 국방부에 도착해 어떻게 盧장관을 만나게 되었나요.
 『장관실로 갔더니 그곳에 盧장관이 있어 만나게 됐습니다.』
 ―당시 국방부장관실 상황은 어땠나요.
 『무장병력들이 장관실 안팎에서 서성거리면서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盧載鉉 장관의 언동은 어땠나요.
 『상당히 당황하고 겁먹은 표정이었습니다. 제가 빨리 총리 공관으로 가자고 하니 아무 말 없이 따라 나섰습니다.』
 ―당시 국방부 주변 상황은 어땠나요.
 『제가 도착했을 당시에는 총격전이 이미 끝난 상황이었지만 국방부 건물의 현관 유리창 등이 깨어져 있는 등 총격전 흔적이 역력 했습니다.』
 ―진술인이 총리 공관을 출발해 국방부로 향할 때 심정은 어땠나요.
 『중앙청 옆의 碑閣(비각)을 통과할 무렵 戰車 3대가 도로를 봉쇄하고 있어 停車했습니다. 그 순간 사병들이 문을 갑자기 열고 착검한 총을 저의 옆구리에 들이대면서 「누구냐」하기에 제가 장교를 불러 「총리다, 국방부장관에게 가는 길이다. 길을 비켜라」라고 소리치자 비로소 보내주었습니다.』
 ―진술인이 盧장관을 국방부장관실에서 만나 총리 공관으로 함께 가게 된 경위는 구체적으로 어떠한가요.
 『제가 먼저 「어떻게 되었느냐」고 盧장관에게 물었더니 겁먹은 표정으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 「대통령이 급히 찾고 있는데 이렇게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소리쳤습니다. 바로 국방부장관실을 나와 총리 공관으로 출발했습니다. 李熺性 中情부장 서리와 저는 같은 차량을 타고, 盧장관은 자신의 차량으로 뒤따라 왔습니다.』

 더 큰 혼란 예방 위해…

 ―진술인과 李熺性 中情부장서리가 총리 공관으로 돌아온 시각은 04시경이지요.
 『예.』
 ―진술인이 국방부장관으로부터 총리 공관으로 돌아오던 도중 보안사 앞길에서 보안사 직원들이 앞을 가로막고 盧장관을 강제 하차시킨 후 보안사로 데리고 들어갔다는데, 그 사실을 알았는가요.
 『저는 그 상황을 목격하지 못했습니다. 먼저 출발한 저의 차량이 총리 공관에 먼저 도착했는데 盧載鉉 장관이 타고 있던 차가 도착하지 않아 화장실에 갔다 오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 盧장관이 도착했는데, 보안사에 들러 鄭총장 연행 재가 서류에 자신이 재가한 후 그 서류를 들고 오느라고 늦었다고 했습니다.』
 ―그 사실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늦게 도착한 盧載鉉 장관에게 崔대통령이 「당신을 그렇게 찾았는데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나무라며 鄭총장 연행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盧장관이 「이것이 대통령께서 재가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입니다. 이미 끝난 일이니 더 큰 혼란을 예방하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재가를 해 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고 말했습니다. 崔대통령은 한참 생각하시다가 재가해 주었습니다.』
 ―진술인은 1988년 국회청문회에서 軍 장성들이 鄭총장 연행 재가를 崔대통령에게 재차 요청하자 崔대통령이 그들에게 『재가를 받기 전에 행동을 일으킨 것(총장 연행)은 위법이다. 이 자리에서 얘기만 듣고 재가해 줄 수 없다. 사건경위를 다 들어보고 판단해보고, 또 책임자의 이야기를 듣는 등의 절차를 밟지 않으면 결재를 못하겠다』면서 재가를 거부했다고 증언했는데 사실인가요.
 『사실대로 증언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 시간 후에 崔대통령이 裁可했다는 말인가요.
 『비록 崔대통령께서는 裁可하고 싶은 생각이 없으셨겠지만 당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盧載鉉 장관이 재가서류를 가져왔나요.
 『예.』
 ―그 재가서류는 보안사에서 가져온 것인가요.
 『그 당시에는 어디서 서류를 만들어 왔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盧載鉉 장관이 보안사에 들러 全장군으로부터 재가서류를 받아 먼저 결재하고, 그 서류를 가져와 대통령 재가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진술인도 국무총리로서 재가서류에 결재를 했나요.
 『당시에 崔대통령이 재가를 하시기 전에 저에게 주면서 「서류를 보시지요」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 서류가 국무총리가 결재할 성격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읽어보지도 않은 채 대통령께 즉시 돌려 드렸습니다.』
 ―그러면 崔대통령이 어떻게 재가했나요.
 『盧載鉉 장관이 이미 결재하여 가져온 재가서류 내용을 대략 검토하신 후 일자와 시간을 기입하고 사인을 했습니다.』
 ―진술인은 崔대통령이 왜 일자와 시간을 기입했다고 생각하나요.
 『그 이유는 제가 국무총리 재직시에는 물론이고 12·12 사건 이후 여러 해가 지난 뒤 여러 차례 崔대통령으로부터 들은 사실이 있습니다. 崔대통령께서는 그 당시 사전 재가 없이 鄭총장을 연행한 것은 불법이라고 생각했고, 12월13일 새벽에 더 큰 혼란과 희생을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재가했지만, 事後에 재가를 했다는 점, 국방부장관의 결재 등 정식결재 절차를 거쳤다는 점, 장시간 고민 끝에 어쩔 수 없이 결재했다는 점 등을 서류상 명백히 하기 위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재가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崔대통령, 불쾌하고 노한 표정

 ―당시 盧載鉉 장관과 全斗煥 장군이 함께 왔나요.
 『정확히 기억이 없습니다.』
 ―대통령이 재가한 시간이 1979년 12월13일 05시10분이 맞는가요.
 『예.』
 ―재가 당시 崔대통령 표정은 어땠나요.
 『대통령은 매우 지친 상태였으며, 볼쾌하고 노한 표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진술인 등의 진술내용을 종합하면, 崔대통령께서는 鄭총장 연행을 내심 반대하면서도 사후 재가를 할 수 없이 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당시로서는 12·12 사건 당일의 軍部 동향 즉, 陸本 및 국방부가 점거되고, 盧국방, 尹誠敏 참모차장, 張泰玩 수경사령관 등 육군 정식 지휘계통이 와해됐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盧載鉉 장관이 「재가해 주시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씀드리자 할 수 없이 事後 재가를 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만약 저와 崔대통령께서 당시의 軍部 동향에 대한 정확한 정보보고를 받았다면 다른 판단을 하셨을 가능성도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崔侊洙 비서실장은 12월13일 아침 歸家 길에 보안사령관실에 들러 軍내 인사문제 등을 全장군, 兪學聖, 黃永時 장군 등과 협의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있을 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술인은 피의자 全斗煥이 1979년 12월4일경 崔圭夏 대통령 권한대행을 10·26 사건과 관련해 조사한 사실을 아는가요.
 『당시에는 몰랐는데, 1980년 3월 경 全장군이 총리실로 찾아와 「제가 崔대통령도 10·26 사건과 관련하여 조사한 사실이 있습니다」라고 말을 하여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이에 대해 진술인은 어떻게 했나요.
 『저는 너무도 기가 막혀서 「당신이 대통령을 조사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대통령은 당신의 임명권자인데 무슨 권한으로 대통령을 함부로 조사하느냐」고 화를 냈습니다.』
 ―진술인은 全斗煥의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을 했나요.
 『제가 全斗煥에게 화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반성하는 기색도 없이 당당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에, 저는 全斗煥이 10·26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명목으로 누구든지 연행해 조사할 수도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현실에 국무총리로서 매우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진술인은 全斗煥 장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요.
 『한편으로는 괘씸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겁도 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술인은 피의자 全斗煥 등이 대통령 재가도 없이 직속상관인 鄭총장을 불법연행해 구속하고 軍權을 찬탈한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요.
 『법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나라의 장래가 매우 걱정됐습니다』

언론의 난
[ 2016-06-29, 01:29 ] 조회수 : 24177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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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證人     2016-06-29 오전 9:55
[읽고 난 느낌]
그 시간에 바깥에서는 김대중이 내각명단을 짜고 군중폭동을 획책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우유부단했다. 전두환이 중심 잡지 않았으면 결국 나라 개판 될 뻔 했다.
비상시국에 대통령이 모든 문제는 자신의 판단과 말 한마디에 의해 움직이게 된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판단하고 기민하게 일처리를 해야함에도 법 따지고 몽니를 부리며 시간을 지체하다가 일이 좀 어그러졌다. 그러나 결국 최 대통령은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후임에 전두환이 적임자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 권력을 강제로 빼앗고 빼앗기고 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불쾌하고', '자기 생각과 다르고' 하는 뒷말은 시정잡배들 세계에서나 할 얘기이지 한 나라의 운명을 가름하는 순간순간에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역사가 움직이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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