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원 前 국정원장 "北核,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없어"
“북한의 핵무기 추구는 외부 위협에 대한 억제용이오, 체제 수호를 위한 생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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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원장과 통일부 장관을 지낸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이 “북한이 핵무기를 갖게 된다 해도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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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원 前 국정원장.

임 씨는 최근 국회 한반도평화포럼 초청 강연에서 “(북한의) 핵무기 사용은 곧 자멸을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임 씨는 “북한의 핵무기 추구는 외부 위협에 대한 억제용이요, 체제 수호를 위한 생존용이며 관계개선을 위한 협상용”이라고 옹호했다.

그러면서 “북핵문제는 美北 적대관계의 산물이다...(중략) 적대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미국의 의지와 결단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군사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적대관계의 뿌리인 군사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노력 없이는 북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이나 남북관계와 미북관계의 정상화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통일문제에 대해서도 임 씨는 “북한을 붕괴임박론이 아니라 점진적 변화론의 시각에서 보고, 흡수통일이 아니라 점진적 평화통일을 추구해야 한다. 북한을 적이요 악마로 몰아 제재하고 굴복시키려는 대결정책이 아니라 평화와 통일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화해 협력의 포용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동원 강연전문 URL
http://koreapeace.co.kr/xe/48517

[관련기사] 酒巖會 회원 임동원, 北가족 만난 뒤 돌변
1990년 이후 임 前 원장은 일관되게 親北행태를 보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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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2월24일 <동아일보> 캡쳐


제1차 남북정상회담(김대중-김정일 회담)을 수행했던 ‘특별수행원’ 24명은 방북 당시 숙소였던 ‘주암산 초대소’의 이름을 따 ‘주암회(酒巖會)’라는 모임을 결성했다.

‘주암회’ 회원으로는 모임의 회장인 최학래 前 <한겨레신문> 사장을 비롯,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고은(詩人), 박지원 민주당 의원, 박재규 前 통일부 장관, 이해찬 민주당 前 대표, 이종석 前 통일부 장관, 임동원 前 국정원장, 문정인 연대 정외과 교수 등의 인사들이 있다.

이들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2004년 까지 5~6차례 걸쳐 만나 식사를 하는 등 모임을 가졌다. 2002년 북한 경제시찰단과 2004년 6월 6.15공동선언 4주년 기념 국제토론회 참석차 방문한 북한의 리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평화위) 부위원장 일행과 만찬을 갖기도 했다. 아태평화위는 북한의 통일전선부 산하조직으로 외형상 非정부기구의 형태를 띤 채, 對南당국-민간협상을 전담하는 북한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주암회’ 회원으로 활동했던 이해찬 민주당 前 대표는 2013년 대선에서 야권연대를 주도했던 左派원로 활동자들의 모임인 ‘희망2012 승리 2012 원탁회의’(원탁회의) 참여인사로 활동했다. 이종석 前 장관과 문정인 연대 교수는 문재인 민주당 前 대선후보 캠프 내 ‘남북경제인연합회’(연합회) 위원이며, 임동원 前 국정원장은 연합회의 고문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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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0월23일자 <한겨레신문> 캡쳐


이들 중 임동원 前 국정원장의 경우도 문재인 前 후보처럼 북한에 가족이 있는 케이스다.

그는 평안북도 위원군 출생으로 위원초등학교와 선천중-신성고를 졸업한 뒤 6.25전쟁이 터지자 1.4 후퇴 때 단신으로 월남(越南)했다. 임 前 원장은 1990년 10월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로 평양을 갔을 때 누이동생을 만났다. 이후 그는 자신의 회고록 ‘피스메이커’(2008년 출간)에서 북한의 가족들에 대해 아래와 같은 내용을 남기기도 했다.

《여동생 동연이와 남동생 동진이임을 확인한 나는 마침내 서로 그러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한참동안 울고 난 후, 어머님과 아버님이 모두 전쟁 때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전해 듣게 되자 도무지 눈물의 바다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이날 밤 나는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밤새 울었다.(198페이지)》

1990년 이후 임 前 원장은 일관되게 親北행태를 보여 왔다.

1993년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의장, 1993년 통일정책평가위원, 1994년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을 맡다가, 軍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對北상호주의’를 주장했던 것이 김대중의 눈에 띄어, 1995년 아태평화재단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어 ‘햇볕정책’을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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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선언 5주년 기념행사에 정부대표단으로 참석한 임동원 前 국정원장이 김정일과
건배하고 있는 모습/통일부


이후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정부개편위원회 심의위 위원(1998년)을 거쳐 1998년 2월25일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수석비서관(차관급)에 임명됐다. 이어 1998년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장을 겸임했으며, 통일부장관(2001년 3월30일~2001년 9월3일)을 지냈다.

임 前 원장은 김대중 정권에서 외교안보수석, 통일부장관, 국정원장, 외교안보통일 특보 등을 거치면서 김대중의 트레이드마크인 ‘햇볕정책’을 입안-집행한 장본인이다. 김대중과 임동원, 둘 중에서 어느 한 사람이 없었다면 ‘햇볕정책’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정리/조갑제닷컴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언론의 난
[ 2017-02-16, 17:19 ] 조회수 : 2148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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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 방랑자     2017-02-20 오후 12:42
임동원이 이놈 시끼, 아직 늙지도 않았는데, 벌써 치매가 들었나. 말하는 것이 모두 "大中스럽기"만 하네. 줴쳐대는 말이 모두 대중이가 나발불던 그대로구나. 벌써 맞아죽었어야 할 쓰레기인데, 여전히 대한 민국에서 好衣好食하고 자빠져 있구나. 아, 대한 민국 좋은 나라, 저주받아야 할 나라!
   Moltke     2017-02-17 오전 2:22
임동원 이 자식 아직도 살아있나. 북한급변사태 날 때가지 꼭 살아있어야 반역죄로 법정에 세울텐데...
   민주주의수호자     2017-02-16 오후 11:05
대한민국 육사 출신이 자유민주주의 방식으로 북한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데 반대하고 북한 체제를 인정하자고 하는 사람이 있네요
육사 출신들이 있으면 댓글한번 쓰보시지요.
일반 사병으로 군복무를 한사람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유민주주의 방식으로 평화통일하자는 것이 국가정책인줄 알고 있는데 이런 분류의 사람들은 평화적인 방식으로 자유민주주의로 통일하자는 것을 반대한다는 뜻인가요?
댓글 부탁드립니다
   멋진나라     2017-02-16 오후 9:24
별 것 아니네요. 그저 그래요.
북한이나 친북좌파들이 늘 하는 주장이 아닌가요?
   그령초     2017-02-16 오후 8:09
임동원 전국정원장의 위와같은 론리는 오늘날 야권에서 다음 대선에 나설려는 사람들 중에 어느 누구도 입 밖에 내 놓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도 임동원 전 국정원장의 론리는 현실에 맞지 않는 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런저 의아하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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