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은 교류와 협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아데나워와 콜이 이끈 힘의 優位 정책으로 성공하였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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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 제1차장(해외담당) 출신인 염돈재 박사(성균관 대학교 교수)가 수년 전에 쓴 ‘독일통일의 과정과 교훈’(평화연구소, 1만5000원)은 누구보다도 정치인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著者(저자)는 인류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통일 모델을 설명하면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실패한 對北(대북)정책을 비판하고 代案(대안)을 제시한다.

나는 이 책이 독일통일을 다룬 국내 책들 중에서 최고라고 평가한다. 이 책만큼 핵심을 정확하게 짚고 쉽게 정리한 책을 읽은 적이 없다. 독일통일과 남북통일의 조건들을 비교하면서 그가 제시한 정책 代案(대안)들은 모두가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것들이다. 통일정책에 관계하는 이들의 必讀書(필독서)이다.

이 책이 實感(실감) 있게 읽히는 것은 著者(저자)의 독일통일 현장 경험 덕분이다. 염돈재 박사는 盧泰愚(노태우) 정부 시절 청와대에 비서관으로 근무하면서 북방정책의 立案(입안)에 관계하였다. 그는 헝가리, 소련 등 공산권과 수교 교섭을 할 때 실무자로 참여하였다. 더구나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통일 과정이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던 1990년 8월에 駐독일대사관 공사로 부임, 3년간 근무하였다. 그는 2003~2004년 노무현 정권 시절 國情院 해외담당 차장으로 재직하면서 對北정책에도 간접적으로 관계하였다.

그는 머리글에서부터 <우리 사회가 독일통일의 배경을 잘못 이해하고, 독일통일이 주는 교훈을 잘못 받아들이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국에선 브란트의 동방정책 이후 서독이 東獨과 적극적인 교류·협력을 해온 것이 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著者는 <독일통일은 基民黨 정부의 ‘힘의 優位’ 노선이 이룬 성과>라고 규정한다. 그는 <서독 정부가 社民黨의 화해·협력 노선을 따랐다면 독일통일이 불가능하였을 것>이라고 단정하였다.

저자는 노태우 정부 때 북한정권과 맺은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선언’,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과 對北지원은 독일통일의 원인을 誤解한 것과도 관계가 있다고 했다.
<우리가 (서독 사민당처럼) 善意를 갖고 먼저 북한을 지원하고 북한의 안정과 발전을 도우면 북한도 변하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길이 열릴 것이다>는 전제는 잘못 된 것이다.

그는 <우리는 지금 독일통일을 잘못 이해한 데 따른 代價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화해협력 정책과 햇볕정책은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10년간 추진한 이 정책은 <공산동맹의 상실과 경제파탄으로 위기에 처한 북한이 위기에서 벗어나 핵개발에 필요한 시간과 자금을 얻는 데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

염돈재 원장은 독일통일이 미국의 부시 정부의 적극적 지원으로 가능하였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 점을 알았다면 韓美관계를 더 소중히 생각했어야 했다고 비판한다. 그는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독일통일에 관해 집단오류에 빠졌었다고 지적하였다.

<독일정부가 통일과정에서 저지른 실책을 연구하는 데 더 관심을 가진 것>은 독일통일을 성공사례로서가 아니라 실패사례로 인식하는 과오를 범하게 했다. 가장 모범적인 평화통일 사례가 한국사회에선 ‘경계해야 할 모델, 회피해야 할 모델’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독일통일의 후유증을 과장한 지식인들이 “조급한 통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경제를 살려놓고 나서 천천히 통일해야 한다”고 하니 젊은 세대에는 “통일을 왜 해야 하는데? 통일을 하면 북한사람은 누가 먹여 살릴 건데?”하는 통일기피 심리가 널리 퍼지고 있다고 그는 개탄하였다.

염돈재 원장은 <독일통일은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이룬 성과가 아니다>고 단정한다. 오히려 <서독의 對동독 지원이 동독의 민주화 혁명을 지연시켰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는 것이다.

독일통일은 頂上회담을 통해서 이뤄진 것도 아니고 東西獨이 화해하고 협력해서 이뤄진 것도 아니다. 동독 공산정권 지도자들의 결단으로 이뤄진 것도 아니다. 독일통일은 동독 共産정권이 주민의 시위로 무너지고, 그들이 西獨연방에의 가입을 원해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저자는 정리하였다.

따라서 동독 공산정권을 인정하고 안정시켜 동독의 변화를 유도하려고 한 社民黨의 정책은 정통성 없는 동독 공산정권을 안정시켜 평화혁명을 지연시켰다는 비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비판 논리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對北(대북)정책에 그대로 적용된다. 사민당의 햇볕정책은 공산주의의 改良 가능성과 ‘위로부터의 혁명’ 가능성을 믿었다는 점에서 역사인식의 오류를 범하였다. 1989년 가을 東獨에서 주민들이 反共시위를 벌일 때 서독의 야당인 사민당은 소련 및 동독과의 화해협력 기반이 손상된다는 점을 걱정하여 통일된 독일의 중립화 추구, 東獨 이주민의 수용 제한, 동독에 대한 경제지원 등을 주장하였다. 著者는 이 주장대로 하였더라면 독일통일은 불가능하였거나 통일과정이 훨씬 지연되었을 것이라고 썼다.

염 원장은 독일통일은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보다는 기민당이 추구해온 ‘磁石 이론’의 성과라고 평가하였다. ‘자석 이론’이란 <서독이 경제, 정치, 군사, 도덕적으로 ‘힘의 優位’를 차지하면 자석에 쇠붙이가 끌려오듯 동독이 끌려와 (흡수)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독일식 흡수통일이 한반도에도 유리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남북한의 경우 ‘흡수통일’이 아닌 ‘대등한 통일’을 해야 한다면 남북한이 서로 타협하고 양보하고 절충해야 한다. 그렇다면 김일성 주체사상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수용하고 시장경제 체제를 고수할 것인가? 결국, 북한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대등한 통일은 불가능하다. 역사상 대등한 위치에 있는 分斷(분단) 양측이 평화통일을 이룬 사례가 없으며 힘의 차이가 있을 때 통일이 용이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흡수통일은 불가피한 선택이 될 가능성이 많다.>

염돈재 원장은 한국에서 독일식 흡수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고 통일 후유증이 크게 부각된 데는 독일 社民黨(사민당) 계열 인사들의 영향도 있다고 했다. 통독 직후 한국 언론에 소개된 인사들 가운데는 통일의 主役(주역)인 기민당 계열보다는 비판적인 사민당 계열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한국언론이 호의적으로 소개하였던 하버마스, 귄터 그라스, 패트릭 쥐시킨트 같은 인사들은 독일안에서도 통일에 대하여 험담을 많이 하는 좌경적 지식인이다. 좌파정권도 햇볕정책과 對北(대북)지원의 당위성을 홍보하면서 독일통일을 실패사례로 소개하기도 하였다.

著者(저자)는 북한경제를 회생시킨 후 통일해야 한다는 주장은 틀렸다고 지적한다. <부패한 북한 사회주의 독재체제 하에서 통일에 도움이 될 만한 수준의 경제발전을 이룬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우리의 경제기반을 더욱 강화하고 財政(재정)의 건전성과 탄력성을 높여 나가는 일이 훨씬 더 현실적 방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북한을 대함에 있어서 ‘好意(호의)와 지원이 북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잘못된 기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면서, ‘속아서도 안 되지만 속이려 해서도 안 된다’는 名言(명언)을 남겼다. 흡수통일이란 말을 두려워하는 한국의 識者層이 이 책을 읽고 용기를 되찾았으면 한다.
언론의 난
[ 2017-06-17, 10:35 ] 조회수 : 1096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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