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보다 20~30대가 愛國心이 높은 나라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여행기(6편, 최종회)/넓은 세상을 호흡하고 재충전하는 것도 남은 여생을 위하여 결코 낭비가 아니라는 점을 이번 여행을 통하여 새삼 인식하는 기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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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도 여름이 되면 기온이 한낮에 섭씨 35도까지도 올라가곤 한다. 그렇지만 에어컨이 있는 집은 전체 가구의 20%는 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선풍기를 트는 것도 아니다. 35도를 넘는 날이 한국처럼 많지도 않은데다가 같은 온도인데도 습도가 없기 때문 한증막처럼 찌는 더위가 아니다. 햇볕을 피하여 그늘에만 가면 그 온도에서도 별로 더위를 느끼게 되지 않는다. 
 

또 하나 이곳이 좋은 이유는, 한국에서는 한 여름이 되면 무더위와 더불어 모기와 파리, 하루살이들이 기승을 부리고 인간을 괴롭히는데 여기는 도심은 물론이고 숲이 우거진 야외로 나가도 모기, 파리, 하루살이 같은 날벌레들이 한국처럼 극성을 부리지는 않는 것 같다.  혹자는 밤 기온이 15도 이하로 떨어지면 벌레들이 산란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과학적 근거에 바탕을 둔 얘기인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쓰레기 관리를 잘 해서 그런지 몰라도 쥐들도 거의 보이지가 않는다. 단독주택에 여름에 창문들을 열어놓고 자도 쥐 걱정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단독 주택임에도 집안 어딘가에 쥐가 서식한다든지 집 근체에 쥐 서식처가 있다는 사람을 들어보지 못했다. 같은 지구상에서도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오스트리아만 해도 세계 각 나라에서 온 유엔 직원들이나 아프리카에서 근래에 들어온 흑인 난민들 때문에 흑인들이나 중동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필자가 이번에 여행하는 동안 이 두 나라에서는 흑인들이나 차도르를 두른 중동인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유고 연방이란 국명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이 나라들이 다()민족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민족 구성은 전부 백인 이민족이었을 뿐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아프리카와는 인연이나 교류가 거의 없었고 2차 대전 후에는 사회주의 철의 장막이 이민족의 유입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동구권이 무너진 후에도 이 나라의 경제적 여건은 난민들을 받아들이거나 흑인들을 끌어들일 만한 유인이 많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여행 얘기로 돌아간다. 

23시가 넘어서 도착한 플리트비체에서 우리는 하루 밤 체류를 위하여 단독 주택 한 채를 100유로를 지불하고 사전에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빌렸다. 대충 몸을 씻고 곤한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보니 간밤에는 어두워서 몰랐는데 우리가 빌린 집은 숲속에 띄엄띄엄 흩어져서 자리잡은 7채의 주택 중 하나로 동화에나 나올 것 같은 그런 집이었다. 벽난로가 있었지만 날씨가 춥지 않아서 불을 지필 필요는 없어서 그냥 아침에 주변을 산책하고 나서 숲속에서 마시는 모닝 커피는 색다른 운치를 가져다 준다. 싸늘한 대지 위에서 떠오르는 태양 아래 뜨거운 커피 잔에서 피어나는 커피향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오늘은 우리의 금번 여행을 마감하는 마지막 날이다. 낭만도 잠시, 우리는 오늘(4월 15일) 일정을 위하여 전원 주택을 뒤로 하고 0830분에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으로 향하였다.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봐야 할 지구상의 1000개 명소 중 하나로 일컬어지며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적 문화유산인 플리트비체는 깊은 계속에 자리잡은 트레킹 코스와 계곡, 그리고 16개의 크고 작은 호수와 폭포들로 이뤄진 명소가 있다.  

네비에 의존하여 70분 정도를 달리니 지도상으로는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나오는데 현지어로 적힌 이정표가 드물어서 입구가 어디인지 파악이 힘들었다. 인적이 드문 산 속에 가끔씩 보이는 호텔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가 매표구가 아니어서 나오는 시행착오를 몇 번 한 끝에 주차장을 찾아서 주차하고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했다. 입장료는 코스에 따라서 약간씩 달랐는데 1인당 15유로짜리 표를 끊었다. 우리가 좀 일찍 온 것인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3시간 코스(C 코스)를 선택한 우리는 먼저 구름다리를 지나고 트래킹에 나섰다. 4월 중순 깊은 산 속의 아침 기온은 다섯 살짜리 손녀에게는 다소 추운 날씨였지만 꼬마는 군말 없이 평탄하지 않은 오르막 내리막 길을 곧잘 걸어갔다. 1.5 KM 정도의 트래킹을 마친 우리는 드디어 호수에 도착하여서 그리 크지 않은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넜다.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한 호수에는 이름 모를 물고기 집단이 차가움에도 아랑곳 없이 유영하고 있었다. 반대편 선착장에 도착한 우리는 다시 10분을 걷다가 다시 보트를 탔다. 50인승의 보트에 15명 정도 승객을 태우고 15분 정도를 호수 위를 달리는데 강바람이 무섭게 한기를 몰고 왔다.  

 

  선녀들이 목욕이라도 했을 것 같은 동화 속의 호수들이 16개가 이어진다.  

햇볕이 드는 따뜻한 양지가 그리워진다. 배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가 된다. 우리는 그 때마다 양지를 쫓아서 자리를 옮겨 앉았다.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비록 음지에서 어렵게 살아가지만, 사람은 누구나 볕들 날을 기다리며 양지를 지향하는 법이다.  

배에서 내리니 추위가 가셔서 살 것 같다. A, B, C, D 각각의 코스에서 모여든 사람들 중 배를 타려는 사람, 트래킹 코스를 밟는 관광객으로 어느 새 공원 곳곳은 줄에 줄을 잇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트래킹을 더 한 후에 공원 관광을 마친 우리는 마지막 목적지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Zagreb)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탔다.  

이정표 상으로 자그레브까지 350km라고 나오니 200분 정도 소요될 것 같다. 100여 분쯤 달렸을까 즈음에 갑자기 앞에 차들이 속도를 늦추는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유럽에 온 후에 단 한 번도 목격한 적이 없는 교통사고가 앞에서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느릿느릿 5분 여를 앞으로 전진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도로 한복판에 깨진 유리조각들이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었고 갓길에는 관광버스를 포함하여 여러 대의 차량들이 멈춰서 있었다. 다행히 인명사고는 아니고 화물트럭에 싣고 가던 통유리판들에 대한 결박이 느슨하여 그 중 한 장이 도로 위로 떨어진 것이었다. 흩어진 유리 조각을 피해서 사고 현장을 지나온 우리 차도 갓길에 멈춰서고 혹시라도 타이어에 박힌 유리 파편이 없는지를 점검했다. 두 개의 유리조각이 앞뒤 바퀴에 박혀있었지만 다행히 일찍 발견한 덕택에 펑크는 면했다. 예비 타이어를 별도로 준비하지 않았던 관계로 여행 중 자동차가 펑크 나면 큰 낭패였을 텐데…”  

유럽, 특히 한때 사회주의권 국가였던 동구권 고속도로에는 중간에 휴게소가 극히 드물다. 우리나라의 경부 고속도로에는 상하행선에 족히 각각 10개 이상의 휴게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는 1000km 정도 달리는 동안 휴게소는 고작 한두 개다. 또 한 가지는 고속도로에 주유소는 꽤 있는데 주유소의 98%에는 화장실은 없다. 사람들이 화장실을 너무 많이 찾기 때문인지 아예 화장실이 없다는 표시를 매 주유소 안내 표지에서 볼 수 있다. 화장실은 고속도로 중간에 띄엄띄엄 있는 대형 슈퍼마켓 같은 곳에나 있는데 이런 상점들도 극히 드물기 때문에 발견하면 급하지 않아도 미리미리 봐두는 것이 지혜다.    

유럽의 화물차량이나 고속/관광 버스가 외관상 우리나라 차량과 다른 점이 딱 한 가지 있다. 유럽 차들은 차량 뒷부분 외부에 빨간색으로 된 원이 그려져 있고 그 원 안에 60, 70, 80, 90, 100 이런 숫자들이 어김 없이 적혀 있다. 버스인 경우는 통상 80과 100이 적혀 있고 트럭이나 탑차와 같은 것에는 60, 70, 80 이라고 적혀있거나 또는 60, 70, 80, 90이라는 식으로 적혀 있다.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분들이 많으실 것 같다. 제한 속도인 것이다. 버스에 80, 100이라고 적혀있는 것은 80~100km 이내에서만 운행하겠다는 의미다. 가령 눈·비가 오거나 안개가 낀 경우는 어떤 경우도 80km를 넘지 않을 것이며 최상의 기상 조건에서도 100km 이상으로는 달리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간밤에 늦게 잠자리에 들고 새벽에 일찍 일어났더니 졸음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이제 여행의 막바지이니 졸음과의 전쟁에서 패배해서는 결코 아니된다. 도중에 산 과일들로 졸음을 쫓아본다. 제주의 한라봉 이상으로 당도가 높은 유럽의 값싼 귤과 역시나 깊은 맛이 나면서도 식감이 좋은 씨 없는 청포도를 씹으며, 혼자 중얼거린다. 같은 지구상에 살면서도 단지 대양을 건넜을 뿐인데 너는 씨도 없는데다가 모양도 동그란 한국 포도와는 달리 길쭉하냐!  

이윽고 자그레브 10km라는 이정표가 나왔다. 자그레브 공항은 오른쪽으로라고 표시된 차선 변경 안내판도 나왔다. 윤정희·백건우 부부가 유인되어 타고 갈 비행기가 대기했던 공항이란 생각을 뒤로 하고 우리는 계속 시내로 달렸다. 자그레브는 크로아티아의 수도이고, 그 위치는 크로아티아와 전쟁까지 벌였던 철천지 원수 국가 세르비아와 가까운 내륙 지방에 있었다. 인구 85만 명의 자그레브는 고대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 깊은 舊시가지와 새롭게 외곽으로 뻗어나간 新시가지가 각기 다른 모습으로 공존하는 도시였다. 구시가지에 대한 첫 인상은, 서유럽의 대도시와는 다르고 유서 깊은 도시임에도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서인지 주옥 같은 건물들의 외벽에도 낙서로 얼룩져 있는 등 기대에 못 미쳤지만 신시가지 지역은 고층 빌딩이 계속 들어서고 있었고 도시가 외곽으로 확장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도심 지역의 주차난이 심각하여 유료 주차장을 찾아 주차하는 데도 시간이 좀 소요되었다. 시내에는 헝가리나 슬로베니아, 오지리에서 국경을 넘어온 승용차나 화물차들도 간간히 보였다.  

 

 자그레브의 명물, 시가지를 다니는 파란색이 눈에 띄는 전차 모습 

2부에서도 이미 소개 드린 바와 같이, 크로아티아는 `1992 11월에 남북한이 공히 경쟁적으로 독립국가로 승인하고 외교관계를 체결한 나라다우리들에게 지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잘 알려지지 않은, 한때 공산권 국가였던 이 나라 수도 자그레브에서 우리나라 유명 여배우 부부가 납치될 뻔했던 비극의 현장은 역사 속에 묻혀서 그 어디에서도 체취나마 찾을 수 없고, 같은 사회주의권 우방국임을 믿고 납치극을 꾸몄던 현지 북한의 외교 공관(영사관)은 궁핍한 저들의 경제 사정으로 1992 10월에 폐쇄한 후에 25년이 경과한 오늘까지 재개할 움직임이 없다고 하고 인공기가 사라진 자그레브에는 대한민국만이 상주 공관을 개설하고 두 나라간의 쌍무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최근에야 우리나라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 나라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아직까지는 많지 않으며 지난 해부터 LG전자가 진출하여 이 나라 스마트 폰 시장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고 시내 중심가 광장을 관광하는데 집시 여인이 종이 한 장을 내밀고 동냥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데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단돈 1유로라면 도와 주고도 싶었지만 이런 때 유난을 떨 필요는 없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내가 크게 부자도, 자선가도 아닌데 동양인이 나서서 현지인들의 시선을 끌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낮 기온은 27도 정도로 햇볕 속을 장시간 걷기에는 땀이 났다. 식사는 따로 예약한 곳이 없으니 도중에 적당한 곳에서 하기로 했다. 자그레브에는 돌락 시장이라는 재래식 시장이 유명하다는 정보를 알고 왔기에 가보기로 했다. 자그레브 시민들의 삶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재래시장 특유의 활기가 넘쳐흐르는 이곳에 이르자 이내 아드리아해(Adriatic Sea)를 내리쬐는 햇살을 머금고 자란 다양한 종류의 향긋한 향기를 풍기는 과일들의 좌판들로 시장 광장이 붐비고 있었다.   

귤과 포도 등을 맛보라는 상인의 후덕한 인심에 끌려서 일단 시식을 해본 후에 만족스러웠기에 돌아오는 길에 먹을 각종 과일들을 푸짐하게 샀다. 여기 저기를 둘러보는 데 시장에서 빠져 나오는 통로 거의 끝부분에 특히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고 붐비는 곳이 있어서 보니 식당이 아닌가! 식당 내부는 이미 만원이고 광장에 마련된 자리들도 100명은 넘는 식객들로 꽉 차 있었는데 마침 식사를 마친 일행이 일어서는 곳이 있어서 요행히 기다리지 않고 앉을 수가 있었다. 현지식에 추가하여 피자와 맥주 등을 시키고 거하게 먹었다. 어느 것 하나 입맛에 맞지 않은 음식이 없었다. 6명이 부족함 없이 먹고도 가격은 팁을 포함하여 불과 70유로로 해결이 가능했다. 여행 중 가장 실속 있는 식사였던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1500가 넘었다. 우리는 집이 있는 비엔나를 향하여 서둘러 자그레브를 출발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불과 5일 전에 출발했을 뿐인데 고속도로의 갓길에는 그 사이에 더 짙어진 나무 잎들과 이름 모를 들꽃들로 봄은 한층 더 익어가고 있었다. 3시간 정도를 달리니 봄비가 제법 세차가 창가를 때리기 시작했지만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오던 비가 멈췄다. 집에 무사히 도착하고 보니 2140분이 되었다. 역시 나그네에게는 집이 최고다.  

자기 차로, 아니면 차량을 빌려서 국제 여행을 하는 경우, 여행에서 보내는 시간의 4분의 1 정도는 차량에서 보내게 된다는 점에 착안하여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미리 생각해두는 것이 좋다. 이동 중에 그냥 잠을 자거나 아무 생각 없이 멀뚱멀뚱 보내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시간이다. 이 시간을 어떻게 유익하고 생산적으로 보내느냐에 따라 그 여행이 더욱 보람되고 내실 있게 된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집에서는 가족마다 생활 영역이나 공간이 다르기 때문에 평소에 못 나눴던 생산적인 대화를 나눈다든지, 여행기를 적는데 필요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메모로 적어놓는다든지, 무조건 목적지까지 직행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므로 중간에 의미 있는 장소가 있다면 잠시 시간을 늦춰서 예정에 없던 곳을 둘러본다든지 하는 것도 시간을 활용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임을 말씀 드리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동구권에 속하는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는 냉전 시기 체제 경쟁의 희생자들이다. 국가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았던 이들 나라 국민들은 서유럽 부자 나라에 밀입국하여 불법 취업으로 돈을 벌어서 고국에 있는 가족들을 먹여 살렸다. 이제는 이들 나라도 EU 회원국이 되었기 때문에 불법 체류자 신세는 더 이상 면하고 그들의 송금은 이들 나라의 경제를 살리는 데 많은 기여를 하였다. 우리도 1960~70년대 이들과 같은 시기가 있었는데 우리의 젊은이들 중에 극히 일부이지만, 선대가 이뤄놓은 번영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그 시절, 부모나 조부모 세대가 겪은 고난과 수고에 대하여 당연한 것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후대를 위하여 그들이 고생하여 성취해 놓은 오늘을 인정은 못 하더라도 능멸하는 풍조만은 확산시키지 말았으면 좋겠다.        

유럽의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목격하고 느낀 인상은, 그 나라에서 한 이름 하는 소위 5성급 이상 호텔 방에는 대부분 어김 없이 삼성이나 LG의 TV, 냉장고가 비치되어 있는 반면에 그 이하의 호텔이나 숙소에는 이름도 생소한 전자제품을 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이 정도까지 왔나 하고 스스로 감탄하다가, 정작 그들 국민(가령 호텔 종업원)들에게 이 브랜드가 어느 나라 것인지 물으면  십중팔구 일본제라는 대답 앞에서 솟아오르던 자긍심이 사그라들어 버렸다. 제품 인지도는 높은데 88 올림픽까지 개최한 대한민국임에도 국가 지명도는 아직 별로라니 Korea여,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세계를 향하여 더욱 분발해야겠다.  

그간 해외 여행을 통하여 중국인 관광객들도 우연히 많이 만났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한국 내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한국 여행을 못하게 된 중국인들이, 봐줄 사람도 없는데 별로 어울리지도 않는 검정색 선글라스를 끼고 발칸 반도의 구석구석까지 메뚜기 떼처럼 떼를 지어 누비는 가운데, 역시 사드 보복에 대한 반발로 중국 대륙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린 한국인들도 중국인 집단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숫자가 이곳으로 몰려들어서 중국인들과 본의 아니게 곳곳에서 조우하고 있다. 이를 보면서 뭔가 불길한 기운이 엄습해 왔는데 그 공포가 과연 무엇인지는 아직도 알아차리지를 못하고 있다.   

이 여행을 하면서 대한민국 외부에서 느낀 소회는,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 국민들은 자기 나라가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에 가입 승인이 나자 온 국민들이 가슴을 부여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들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피를 흘릴 때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세르비아에 항전을 했는데, 이제 더 이상 세르비아든 누구든 외적이 침입하면 자신들을 도와줄 우방국이 26개국이 생겨났다는 감격과 그간의 외톨이 신세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었던 것이다.

자국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하여 그래도 못 미더워서 자국 영토 내에 미군 유치를 국가 최우선의 목표로 삼고 미국에 외교적 노력을 전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이뤄내지 못하는 데 대하여 온 국민들이 안타까워 하고 더욱 분발하자고 영어까지 따라 배우고 있다고도 했다.

이들 나라에서 애국심이나 적개심이 가장 높은 연령층은 50대 이상의 기성세대가 아니라 40대가,  40대보다는 30대가, 그보다는 20대가, 나이가 어릴수록 더 높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독립전쟁에서 나라를 지키는데 앞장을 서야 했고 전사자나 상이 군경을 가장 많이 낸 주인공 세대는 50대 이상이 아니라, 꽃다운 나이의 젊은 청춘들일 수밖에 없었던 숙명을 몸소 체험하고 피를 흘리는 것을 지켜보고 그 무용담이 그 나라의 현대사가 되어 젊은이들의 가슴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역자 주: 유고 연방에서 분리된 7개국 중 현재까지 NATO 가입이 승인된 나라는 위 두 나라와 몬테네그로뿐이다.)  우리 국민들은 주한 미군이 우리 안보에 결정적 방패 역할을 하는 넝쿨채 굴러온 복덩이인 줄 모르고 미군 철군도 불사하고 적대시하는 반미정서를 나이가 젊을수록 더 강하게 표출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마다 착잡하기 그지 없다.   

언젠가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여행을 할 때, 가이드가 한 말이 생각난다. 자식 키우는 데 헌신적인 한국인들은 자식을 위해서는 큰 돈도 마다하지 않지만 막상 자신을 위해서는 돈을 쓰는데 자기 절제가 너무 심하다 보니 평생에 단 한번의 해외 여행도 못 가는 사람도 있고, 간다고 해도 고작 일본이나 중국 정도에 만족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정말 자식들 돌보고 키우는 데 고생한 당신, 아직은 스스로를 위하여 자신에게 투자할 때 아니라고 혹시라도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이 짐을 싸 들고 여권을 챙겨서 해외로 나가야 할 때이다.’ 고 조언하고 싶다. 넓은 세상을 호흡하고 재충전하는 것도 남은 여생을 위하여 결코 낭비가 아니라는 점을 이번 여행을 통하여 새삼 인식하는 기회가 됐다는 소회를 밝히면서 본 여행기를 마칠까 한다.  

필자가 머물고 있는 오지리는 1955년 이래 영세 중립국이다. 이 나라를 침략하거나 넘볼 나라는 아무도 없다. 군대가 없어도 무방한 나라다. 그렇지만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오늘 이 시간에도 비엔나 상공에는 자국의 영공을 수호하기 위하여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 편대가 쉼 없이 비행운을 그리며 훈련에 몰두하고 있음을 보면서 조국 대한민국의 암담한 장래가 가슴을 짓눌러 온다.    

6회에 걸친 여행기를 읽으시느라고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언론의 난
[ 2017-06-18, 09:36 ] 조회수 : 1007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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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중가     2017-06-24 오후 8:56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는 중인데 갑자기 막이 내리니 얼마나 섭섭한지 모릅니다. 정말 기행문의 정석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더우기 매우 정확한 현실인식이 더욱 감동적입니다. 저도 가본곳은 많아도 기행문을 이렇게 써낼지 의문도 해 봅니다. 아무튼 너무 고마웠습니다. 또 새 글을 기다리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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