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그리고 韓國)의 미래가 밝지만 않는 문화적 이유
국민들이 관찰과 실험과 경험으로 검증된 사실만 진리로 받아들이는, 과학정신이 발달한 문화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거짓된 환상이나 기만과 사기가 잘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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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登天(등천) 기적

계몽시대(1500~1700년)에 들어서면서 서부 유럽에서는 특히 영국에서는 상상이나 비현실적인 환상에서 나오는 관념적인 지식이나 사상보다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입증 가능한 과학적 지식과 사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학주의적 문화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사물에 대한 진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지상에서 감각적 경험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이어야 했다. 모든 진실은 경험에 비추어 검증을 받아야 하였다. 어떤 지식이나 사실도 성역이 될 수 없었다. 그리스-로마의 고전의 지식도 검증을 거쳐야 하였다. 진리나 지식과 사실의 판정은 국가나 神이나 聖人(성인)이 아닌 과학의 영역이었다. 과학적 실험과 관찰로 검증된 지식만이 참이고 사실이 되었다. 관념적 지식 보다는 유용한 지식(useful knowledge)이 선호되었다.  

그래서 空理空論(공리공론)보다는 물자를 생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실용적 지식을 추구하는 과학자나 기술자들이 존경받고 권위를 누리는 문화적 전통이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역사, 철학, 詩, 군사기술뿐 아니라 수학이나 물리, 화학 등 과학을 하는 사람들도 국민적인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지배층의 귀족가문 출신들이, 과학기술 분야에 투신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과학자나 기술자들이 顯職(현직)에 오르기도 하였다. 천재수학자이며 현대물리학의 아버지인 뉴턴은 생전에는 하원의원과 왕립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고 사후에는 국왕에 버금가는 장례식이 거행되었고 그의 유골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되었다.  

18세기 인류 역사의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는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나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16세기부터 축적되어온 이런 과학정신이 18세기에 와서 물자를 인력이나 畜力(축력)이 아니고 기계로 생산하는, 그래서 물자의 천문학적 대량생산이 가능한 산업혁명의 결과를 빚어낸 것이다. 자연과학이 빚어낸 기계는 인간의 삶에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오는 마법의 물건이 되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동력기계의 발명으로 인해서 경제가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되어 영국은 1840년대는 세계의 공장으로서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가장 큰 나라를 건설하게 되었다.

사실과 진실만을 추구하는 과학정신은 경제성장뿐 아니라 국민의 도덕성 함양에도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험과 관찰과 경험을 바탕으로 가치를 판정하고 사고하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과학정신이 발달한 문화에서는, 진실이 아닌 관념을 추구하는 문화보다는, 도덕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진실이 아닌 거짓된 환상을 추구하는 것은 신성모독과 같은 죄악이 된다. 진실과 사실이 神이며 절대자가 되기 때문이다. 진실과 사실을 추구하는 것이 敬神(경신)이고 도덕적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사실이 神의 권위를 누리게 되면 필연적으로 거짓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문화가 형성된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Honesty is the best policy.)이 되는 문화가 형성된다. 이런 문화에서는 公私(공사)를 막론하고 일의 처리에 있어서 부정부패가 끼어들 여지가 최소화된다. 서부 유럽 특히 영국에서 공무원의 부정부패가 거의 없고 국민들의 준법정신이 대단히 높은 것도 과학적 문화전통 때문일 것이다. 거짓이 들어설 자리가 너무나 좁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들이 정치사기꾼들이나 엉터리 지식인에게 잘 속지 않는 것도 사실을 신성시하는 과학문화 때문일 것이다.

특히 서부 유럽국가들 중에서 어느 한 나라도 공산주의자들의 기만과 선동에 넘어가서 정권을 맡기지 않는 것도, 다시 말해서 서구에서 단 하나의 공산주의국가가 생기지 않는 것도 국민들이 관찰과 실험과 경험으로 검증 된 사실만 진리로 받아들이는 과학정신이 발달한 문화 덕택일 것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거짓된 환상이나 기만과 사기가 잘 통하지 않는다 

또 기만, 증오, 폭력, 광기 등 공산주의의 악마적 독소가 걸러지고 순화되어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의 나라에서처럼 사유재산권, 언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 등 자유민주주의적 기본가치는 그대로 가지고 있는 사회민주주의로 변형되어진다. 그래서 있을 수 없는 가정법이지만 설혹 영국에서 공산당이 권력을 잡는 일이 생기더라도 소련이나 중공이나 북한 같은 무지막지한 전체주의 국가가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사실보다는 거짓된 환상이 지배하는 풍토에서만 공산주의라는 악령이 권세를 잡게 된다.  

중국의 落伍(낙오)

계몽시대 중국의 경제는 서부유럽과 비슷한 수준에 있었다. 중국도 영국 못지않게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발달되어 있었다. 사유재산권도 보장되어 있었다. 관료제도도 발달하여 국가의 통치기능은 영국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그리고 국민의 문자해득률도 영국과 비슷하였고 서적의 생산도 활발하여 북경의 도서시장은 엄청난 규모였으며 중국은 세계적인 서적 수출 국가였다. 요약하면 중국은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영국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은 전통적 강대국이었다.  

그러나 1900년대에 이르면 중국의 국민소득은 1700년대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상태에 있었다. 영국에 비하면 비참할 정도로 낮은 수준에 있었다. 천하의 강대국이 列强(열강)에게 물어뜯기는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은 영국이나 서부유럽국가처럼 기계문명 국가로 도약하지 못하고 여전히 前근대적인 농업국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까지도 대량생산이 특징인 기계문명의 대열에 끼지 못하고 현대문명의 낙오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사학자인 조엘 모키르(Joel Mokyr) 교수는 중국에서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하여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없었던 이유를 아래와 같이 들고 있다: 

1. 지배계급의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은 관직뿐이었다. 귀족들은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관료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평생 白面書生(백면서생)으로 지내야 하였다.

2. 교육열은 높았지만 학교에서는 공자와 그 제자들인 맹자 荀子(순자) 등의 유교사상만 가르쳤다. 과거시험 과목은 이들이 남긴 四書五經(사서오경)같은 고전뿐이었다. 물리, 화학, 생물 등 자연과학 과목을 가르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3. 常民(상민)이나 노예 등 사회적 지위가 낮은 하층계급만이 과학기술에 종사하였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이나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었다.

4. 실험과 관찰 등 과학적으로 검증이 가능한 지식, 물자를 생산하는데 유용한 지식보다는, 주자학 등 유교사상의 관념적 지식, 실현 불가능한 환상적 지식이 주도하는 문화풍토였다. 사실보다는 환상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5. 계몽시대의 서부 유럽과는 달리 창조적 파괴가 불가능하였다. 고전은 신성불가침의 존재였고 난공불락의 대상이었다. 진실에 대한 최종적 準據(준거)는 고전이었다. 고전을 보다 더 잘 인용하고 보다 더 정교하게 해석하는 것이 학문의 궁극적인 목표여서 혁신적인 지식이나 사상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1500년에서 1700년의 기간에 서구 국가들은 上述(상술)한 바와 관념적 지식보다는 유용한 지식을 추구함으로써, 사실을 神처럼 신성하게 생각함으로써, 합리주의적이고 과학주의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산업혁명의 결과를 가져 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수렵시대나 농업시대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기계문명 시대를 열어서 경제는 물론 문명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도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월등히 앞서 가게 되었다.  

계몽시대를 거치면서 西歐(서구)와 중국이 이렇게 크게 갈라지게 된 현상을 학자들은 大分岐(대분기, Great Divergence)라는 용어로서 定議(정의)한다. 대분기는 앞으로 수백 년간은 그대로 존속 될 것 같다. 한 번 형성된 문화의 행로는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수백 년이 흘러도 문화의 기본적 패턴은 잘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앞으로도 수백 년간 중국의 미래가 밝지만 않는 이유이다. 그리고 서구는 이변이 없는 한 중국보다 월등히 앞서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불행히도 중국 문화권에 속하는 한국도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한국의 번영은 벼락부자처럼 당대로서 끝날 것 같다는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累代(누대) 부자, 누대 가난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참고:

Joel Mokyr (2017), 'A Culture of Growth'.

The Economist (2013.2.9.), 'Nomencracy'

 

 


언론의 난
[ 2017-11-24, 09:17 ] 조회수 : 1553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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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정의진리     2017-11-24 오후 9:39
유익한 글입니다! 저도 한국의 미래를 밝게 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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