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 전의 겨울, 리지웨이 장군을 생각하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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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겨울은 춥다. 특히 6.25 熱戰이 한창이던 1950년 겨울은 추웠다. 이 시기에 대한 미군들의 회고담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가 'cold'이다. 미군이 싸운 전투중 가장 온도가 낮았던 것이 6.25였다.
 
 지금 북한동포들은 우리가 6.25 때 겪었던 그 추위를 거의 알몸으로 견디고 있다. 춥고 배고픈 시절은 남한에선 추억이 되었으나 북한동포들에게는 현실이다. 

 '알지도 못한 나라의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참전을 결단했던' 트루먼 대통령, 군사전문가들의 거의 일치된 반대를 꺾고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戰勢를 역전시켰던 맥아더 장군, 낙동강 방어선과 부산교두보를 확보하여 반격의 힘을 축적했던 워커 미8군 사령관, 그는 1950년 12월에 한국군 트럭에 받혀 사고사했다.

중공군 대공세 시기에 워커의 후임으로 부임하여 유엔군의 총붕괴를 막고 서울을 재탈환했던 리지웨이, 조종사 아들을 북한상공에서 잃은 미8군 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 등등.
 
 나는 리지웨이 장군의 한국전 회고록을 읽었을 때 여러 번 감동했다. 文明국가의 장교들이 가진 紳士道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戰死한 워커 장군의 후임으로 미8군사령관에 임명된 그는 부인한테 제대로 작별인사도 하지 못하고 도쿄를 거쳐 대구로 날아온다. 맨 처음 그가 한 일은 李承晩 대통령 예방이었다. 李 대통령은 미군이 중공군의 총공세에 굴복하여 한국을 포기하고 철군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 같았다.
 
 <나는 이 완강한 戰士를 만나 내가 8군을 일본으로 데려가기 위해 온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싶었다. 그는 약간 수동적으로 나를 맞았다. 나는 악수를 하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을 했다. 말을 돌려서 할 시간도 없었다.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대통령 각하, 여기 오게 되어서 기쁩니다. 저는 여기 머물려고 온 것입니다.'
 이 말을 그는 기다렸던 것 같았다. 그는 태양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눈에 물기가 고였다. 그는 두 손으로 나의 손을 잡았다.>
 
 서울을 포기한 직후 리지웨이 장군은 한국군의 丁一權 참모총장에게 보낸 친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직 하나의 궁극적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귀하의 국민들의 자유를 지켜내는 일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우리는 함께 싸워야 한다.>

 리지웨이 장군은 1951년 1월21일 苦戰中인 미8군을 향해서 '우리는 왜 여기에서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란 제목의 글을 내려보낸다. 이 글에서 리지웨이 장군은 '우리는 한국의 마을과 도시를 지키기 위해서만 여기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국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만 싸우는 것만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지는 글의 요지는 이러했다.

 <핵심적 문제는 서방문명이 공산주의의 도전을 극복할 수 있는가, 아니면 포로들을 사살하고, 시민들을 노예화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지배층이, 개인과 개인의 권리를 신성시하는 정부를 무너뜨릴 것인가이다. 우리의 동맹국인 한국의 자유뿐 아니라 우리의 자유, 우리의 자주독립과 생존을 위해 우리는 싸우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공산주의와 개인의 자유 중 양자택일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으나 동시에 최선의 기회를 부여받았다. 군인이란 직업의 명예를 드높여, 우리를 믿고 지원해주는 사람들에게 최선의 의무를 다할 기회가 왔다.>
 
 1951년 1월1일 그는 서울 북방으로 가서 후퇴하는 한국군을 보았다. 회고록에서 그는 한국군이 무질서하게 무기도 버리고 지휘계통도 무너진 채 퇴각하는 모습을 실감 있게 묘사했다. 리지웨이 장군이 차에서 내려 한국군의 궤주를 정지시켜려고 해도 공포에 질린 한국군은 미군 사령관의 말도 듣지 않더란 것이다. 리지웨이 장군은 1.4 후퇴時 지켜본 한국인들의 참혹한 피난행렬에 대해서 이런 요지의 묘사를 했다.

 <그 장면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남자들, 여자들, 아이들, 수염을 기른 노인들, 아들의 등에 어린아이처럼 업힌 할머니들, 그들은 말 없이 한강을 건너갈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유일한 목적은 공산주의의 폭력을 피해 잠시 맛보았던 그 자유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이 시기 미군은 후퇴하고 있었고 리지웨이는 병사들과 함께 막사에서 생활하면서 미군의 사기를 회복시켜 반격의 찬스를 만들기 위하여 苦鬪하고 있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시기에도 그는 한국인에 대한 예의와 동정심과 배려를 유지했다. 그의 회고록엔 고생하는 한국인들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온다. 紳士란 어려운 조건하에 처했을 때 품위를 유지하는 言行의 소유자이다.
 
 같은 시기 毛澤東은 人命손실에 대해서는 일체의 고려 없이 작전을 짜고 수행했다. 중공군이나 북한군측의 기록에선 인간적 배려가 전혀 나와 있지 않다. 戰場에서도 인간의 생명, 그것도 他國民의 생명을 소중히 여긴 리지웨이 장군. 그는 1951년 봄의 반격작전을 통해서 서울을 수복함으로써 한국포기를 검토하던 미국 워싱턴의 정책입안자들을 안심시키고 한국을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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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리지웨이 중장은 자동차 사고로 죽은 미8군 사령관 워커 중장의 후임으로 1950년 12월말에 한국에 부임했다. 때는 최악이었다. 중공군 수십만 명이 서울을 점령하고 漢江을 넘어 水原을 향해서 밀려내려오고 있었다. 워싱턴은 한국 포기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었다.
 
 유엔군의 主力인 8군 장병들의 사기는 떨어졌다. 한국의 겨울 추위는 미군들의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릿지웨이 장군은 이들의 士氣를 회복시키지 않고서는 반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50代의 이 猛將은 텐트를 치고 장병들과 행동을 함께 했다. 가슴에 수류탄을 달고 전선을 누비면서 장병들의 軍心을 파악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발끝에서 입술까지 얼어붙은 몸을 녹인 커피 한 잔의 추억을 실감 있게 묘사했다. 아래 소개하는 글은 그가 미8군 소속원들에게 내린 훈령 全文이다. 미군 장교들의 생각과 筆力을 잘 보여준다. 진짜 군인은 모두가 知性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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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왜 여기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내가 한국에 온 지난 數週 동안 제8군 장병들의 마음속에 두 개의 절실한 의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는 왜 여기 있는가?'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이다.
 
 8군 사령관으로서 나는 모든 장병들이 나의 응답을 들을 권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1951년 1월21일자로 8군에 소속되거나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아래와 같은 나의 응답을 전달하도록 지시했다.
 
 첫번째 질문, '왜 우리는 여기에 있는가?'에 대한 답은 간단하고 단호하다. 우리가 존중하는 정부의 合憲的으로 구성된 당무자들이 내린 결정에 의해서 우리는 여기에 와 있다. 유엔군 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는 말했다: '유엔 회원국들이 우리에게 부여한 임무에 따라서 우리 사령부는 한국에서 군사적 布陣을 유지할 것이다'
 더 이상의 논평은 불필요하기 때문에 나의 대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바치고 기대하는 충성심은 이상의 명령에 대한 아무리 사소한 의문이라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대답은 단호한 것이다.
 
 두번째 의문은 아주 심각한 것이므로 우리 사령부 소속원들은 논리적이고 완전한 답변을 들을 권리가 있다. 나의 답변은 이렇다.
 
 나로선 문제가 명쾌하다. 한국의 이런 저런 도시와 농촌을 지키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그런 不動産 문제는 부수적인 것이다. 문제는 동맹국 한국의 자유에만 한정되지도 않는다. 한국인들의 지조와 용기가 전쟁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꺾이지 않았음을 우리가 높게 평가하지만, 한국의 자유를 수호한다는 것은 더 큰 명분의 한 상징이며 이 大義명분 속에 포함되는 셈이다.
 
 문제의 본질은 서구 문명의 힘,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에서 꽃피도록 하신 그 힘이 공산주의를 저지하고 패배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인간의 존엄성을 비웃고, 포로들을 쏘고, 시민들을 노예로 삼는 독재세력이 개인과 개인의 권리를 신성하게 보는 민주세력을 뒤집어엎을 것인가이다. 문제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심에 따라서 우리가 생존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시체처럼 사라질 것인가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 싸움은 동맹국 한국의 국가적 생존과 자유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이 논란의 여지가 없이 명백해진다. 이 전쟁은, 우리의 조국이 독립과 명예를 누리는 가운데 우리 자신의 자유와 우리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투쟁이다.
 
 우리가 바친 희생과 도움은 他人을 위한 자선이 아니라 우리를 지키기 위한 직접적 自衛행동이었다.
 
 결론적 분석: 여기 한국에서 제기된 문제의 핵심은 공산주의냐, 개인의 자유냐의 투쟁이며, 무리가 목격한 그 겁에 질린 사람들의 대탈주를 중단시킬 것인가, 아니면 머지 않는 장래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절망적이고 비참한 그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 것인가이다.
 
 이것들이 우리가 싸우는 이유들이다. 일찍이 그 어떤 군 사령부의 소속원들도 우리가 직면한 이런 도전을 감당한 적이 없다. 이는 도전이기도 하지만 우리 자신과 우리 국민들 앞에서 최선의 노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리하여 군인이란 직업과 우리를 키워준 용감한 사람들에게 영광을 돌리자.


언론의 난
[ 2017-12-05, 01:17 ] 조회수 : 564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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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ngho21     2017-12-05 오전 10:53
감동적인 글입니다..
스탈린, 히틀러, 마오쩌뚱, 金3부자의 공통점은
'이념'달성을 위해 개인(타인이기에)의 생명을 파리 목숨처럼 다루는 겁니다.
여객선참사, 낚시선참사는 전적인 국가책임이라면서
JSA탈주병(방어사격포기), 생존국군포로, 강제수용소의 인권은 '무심히 외면'합니다.
문재인과 주사파운동권도 이념적이기에 선전선동으로 국민을 대하는 것 아닐까요..
해양문명의 대표주자 미국, 영국의 자유민주주의(인권과 법치)는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추미애, 이해찬, 송영길이 추종하는 대륙의 주자 中國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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