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東仁 내면의 깊이와 질감을 짐작하게 하는 작품
소설가 김동인(金東仁)의 항변(20-2) 잠언(箴言)으로 엮은 ‘아기네’

嚴相益(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20-2
민족을 향한 잠언(箴言)


토마스는 1840년 9월7일 영국 웨일즈 지방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으려고 신학(神學)을 전공했단다. 23세에 그는 결혼을 하고 바로 중국을 향해 떠났다. 4억이 넘는 중국인에게 예수의 도를 전하기 위해 부모 그리고 아내와 작별을 하고 고국을 떠난 것이다. 그해 겨울 동양의 상해에 이르렀다. 그는 교통이 불편한 중국에서 성경 몇 권을 들고 한구로 북경으로 천진으로 돌아다녔다. 어느 날 토마스는 조선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모를 나라.’ 이런 대명사로 불리던 조선이었다. 토마스는 배를 타고 황해도의 어떤 해안에 도착했다. 토마스는 그 근처를 돌아다니며 조선말도 배우고 성경책도 전하며 예수의 도(道)를 전파했다. 그런 뒤 다시 그는 북경으로 갔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이 흰옷을 사랑하는 착한 조선인들이 가득 차있었다. 그러는 동안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가 장사하기 위해 조선으로 떠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젊은 목사는 그 배에 몸을 싣고 조선으로 향했다. 8월 중순경 제너럴셔먼호는 오랜 항해 끝에 조선 땅에 들어왔다. 흰옷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지랑이 낀 붉은 산이 바라보였다. 토마스는 몸을 배의 난간에 기대고 그림 같은 조선의 풍경을 보고 있었다. 배는 점점 강의 상류로 향하고 있었다.

배가 바야흐로 조선의 요새를 지날 때였다. 언덕에서 총소리가 났다. 조선군들이 미국 배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조선 군인에게 포격을 당하기 시작한 그들 배는 더욱 빨리 평양을 향해 위로 올라갔다. 배가 이윽고 서포리에 정박했다. 그날 토마스는 일생 중 가장 감격한 일을 맞이했다. 토마스가 선실 안에서 조선에 내려 전도(傳道)를 할 일을 구상할 때였다. 저편 갑판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토마스는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어부 같아 보이는 조선 사람 몇 명이 셔먼호의 선원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토마스가 가서 서툰 조선말로 조선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어부들은 토마스를 보고 뜻밖에도 천주교의 성호(聖號)를 그었다. 천주교도였다. 이곳에 온 서양 배를 보고 신부가 없나 찾아온 것이다. 토마스는 그들을 맞아들였다. 머나먼 타국 낯선 땅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 것만큼이나 반가운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거기서 그 사람들에게 성경을 전하고 셔먼호는 다시 상류로 올라갔다.

그동안 배가 머무는 곳마다 구경나온 조선 사람들에게 토마스는 성경책을 나누어 주었다. 셔먼호는 봉황진에서 닻을 내렸다. 평양성의 조선군들이 배를 보고 총과 포를 쏘기 시작했다. 군인 가운데는 평양 포수(砲手)까지 섞여 있었다. 강의 물이 빠지면서 배가 모래바닥에 걸려 꼼짝 못하게 됐다. 조선군은 상류에서 작은 배에 불붙은 소나무 가지를 가득 실어 보냈다. 갑판에서 보는 강은 불바다였다. 셔먼호에 불이 붙었다. 확확 타오르는 불기를 느끼면서 토마스는 살아날 가망이 없음을 알았다. 남은 길은 한두 권의 성경이라도 조선에 남겨놓고 죽고 싶었다. 도를 전한다고 하는 중대한 사업은 실패였다. 그러나 그 도를 기록한 책 몇 권이라도 뿌리고 싶었다.

토마스는 황급히 자기의 선실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성경을 가득히 담은 상자를 끌고 갑판으로 나왔다. 상자의 뚜껑을 벗겼다. 첫 번째 성경을 들어서 힘차게 언덕 쪽으로 던졌다. 그 뒤에 또 한권 다시 한권 토마스는 성경을 던지고 있었다. 언덕에서는 흰옷의 무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토마스는 불길 때문에 세 번 자리를 옮겼다. 배 뒤쪽에서 타오르는 불길로 토마스의 오른편 옷자락이 너덜너덜해졌다. 토마스는 불길을 피하면서 계속 성경을 던졌다. 다만 한 권이라도 더 많이 이 흰옷의 나라에 전하고 싶은 그의 정성이었다. 상자는 차츰 비어갔다. 셔먼호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다. 토마스는 불길 속에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익숙한 솜씨로 헤엄을 쳐서 언덕 쪽으로 갔다. 조선 군인 한 사람이 칼을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 토마스는 손을 들고 조선 군인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그의 높이 들린 손에는 마지막 한 권의 성경이 들려있었다. 조선의 군인이 칼을 치켜들고 토마스를 내리치려는 순간이었다. 토마스는 부드러운 눈으로 병정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자, 이 책을 받으시오.”
칼을 높이 들어 토마스를 찍으려던 조선 군인은 한 쪽 손을 내밀어 그 책을 받았다. 책을 전한 후 토마스는 머리를 숙이고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마지막 책까지 전했습니다. 이제 더 전할 책도 없습니다. 이제 제 영혼을 받아주시옵소서.’
이윽고 조선 군인의 칼이 떨어졌다.

일환(日煥)아, 토마스의 얘기는 끝이 났다. 토마스는 몇 권의 성경을 뿌린 것 뿐 아무런 전도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일환아. 이렇듯 귀한 희생의 뒤에 어찌 좋은 열매가 안 맺히겠느냐? 그 때 아무 생각 없이 서양 배를 구경하러 강 언덕에 갔다가 토마스가 던지는 책을 우연히 주은 사람들은 그 책을 보게 됐다.
‘가난한 자는 복(福)이 있나니.’
‘사랑이 제일이라.’
그것들은 귀하고 귀한 말씀이었다. 더구나 그런 귀한 말씀이 적힌 책을 이 민족에게 전하기 위해 목숨조차 내어버린 괴상한 서양인을 생각할 때 그 말씀의 귀함은 더욱 그들을 감동시켰다. 그가 던진 책에서 퍼져 나간 예수의 도(道)는 은연중 차차 넓게 전파되었다.

평양 및 그 남부 일대에서는 비록 선교사가 없다고 하나 예수교가 차차 세력을 펴기 시작했다. 그 후에 나라의 문호가 열리고 예수교를 내놓고 전파할 때 온 조선 안에서 평양이 가장 예수교 열(熱)이 강하고 중심지가 됐다. 평양에는 미리부터 예수교가 암암리에 전파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조선의 예수교 교인 100만 그 커다란 세력의 첫 씨가 그때에 벌써 뿌리어진 것이다. 이걸 생각할 때 토마스의 죽음 결코 헛죽음이 아니었다. 그는 순교자(殉敎者)였구나.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는 말이냐.

일환(日煥)아-
신약 성경에 이런 비유가 있는 것을 너는 알지?
주인이 길을 떠났다. 떠날 때에 주인은 세 종을 불러서 돈을 얼마씩 나누어 맡겼다. 주인이 길을 떠난 후에 한 종은 그 돈을 꽁꽁 싸서 땅에 잘 묻어 두었다. 거기 반하여 다른 두 종은 그 돈으로 장사를 하여 큰 이윤을 얻었다. 몇 해 뒤에 주인이 돌아왔다. 세 종은 다 주인 앞에 나왔다.
“당신이 주신 돈을 잘 보관하여 두었다가 지금 당신께 도로 바칩니다.”
돈을 땅에 묻어두었던 종은 그 돈을 바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두 종은 본전의 두 배가 되는 돈을 내어놓았다. 주인은 이윤을 남긴 두 종을 칭찬했다. 그리고 본전만 바친 종은 욕을 하면서 어두운 밖으로 내어 쫓았다. 이 비유 뒤에 성경은 말한다.
‘있는 자에게는 더 주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 빼앗긴다.’

일환(日煥)아, 이 비유는 잘못하다가는 사람의 오해를 일으키기 쉬운 비유다. 이것은 예수교의 복음을 많이 전하는 사람은 칭찬을 받을 것이라는 전도(傳道) 장려의 뜻에서 나온 비유다.
일환(日煥)아- 아버지는 말하노니 네가 만약 이후에라도 그 종이 당한 일을 만나면 너는 그 돈을 놀려서 많은 돈을 만든 종을 본받지 말고 오히려 땅에 묻었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바친 고지식한 종을 본받아라. 영리한 사람이 이 세상에 너무 많다. 그러나 고지식하고 정직한 사람은 초저녁의 별과 같이 그 수효가 얼마가 되지 못한다. 이 귀중한 감정 나는 너에게 영리하기보다 고지식하게 되기를 명(命)한다.

*

자식에게 잠언으로 들려준 얘기들은 ‘아기네’라는 제목의 글이 되어 1932년 3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됐다. 김동인(金東仁)의 내면의 깊이와 질감을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계속)


언론의 난
[ 2018-02-13, 11:24 ] 조회수 : 463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