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은 왜 에스토니아를 인양하지 않았나?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았지만 관할국인 스웨덴은, 부패한 屍身(시신)을 보여주는 데 반대하는 여론도 있고 경비도 엄청나 침몰된 배 위에 콘크리트를 부어 덮어버리고, 선박의 접근 금지 水域(수역)으로 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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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틱 3국 중 하나인 에스토니아 船社 소속의 The Estonia(에스토니아)호 침몰 사건은 1994년 9월28일 발틱해에서 일어났다. 자체무게가 2800톤이고 길이 156, 너비 28미터의 페리船(선)이었다. 무게는 작지만 크기는 세월호와 비슷하였다. 803명의 승객과 186명의 선원을 합쳐서 989명이 승선했다. 배는 9월27일 저녁 7시에 에스토니아의 탈린을 출발, 스톡홀름으로 향했다. 배는 화물을 적재 허용량까지 가득 실었다.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상태로 항해했는데, 화물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바람이 거셌다. 초속 15~25 미터에 波高(파고)는 4~6 미터나 되었지만 출항 금지를 내릴 정도는 아니었다. 다른 페리들도 항해를 하고 있었다. 발틱海는 늘 2000척 정도의 배가 떠 있는 분주한 곳이다.
새벽 1시쯤 금속이 船首(선수)의 문을 치는 소리가 났다. 10분 동안 소리가 계속 나더니 배가 오른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船首 쪽 문이 열리고 물이 들어와 자동차가 주차해 있던 갑판을 덮었다. 1시15분, 배는 처음엔 오른쪽으로 30~40도 기울었다가, 1시30분엔 90도로 기울었다. 에스토니아호는 왼쪽으로 돌다가 네 개의 엔진이 꺼지면서 멈추었다.

1시20분, 船內(선내) 방송으로 여자 목소리가 “비상, 비상, 비상”이라고 소리쳤다. 선원들에게도 비상벨이 울리고, 구명정을 타라는 경보도 울렸다. 배가 너무 기울어 승선자들은 구명정이 있는 갑판으로 올라가기 힘들었다. 이것도 세월호와 비슷한 점이다.
1시22분, 선원이 구조신호를 발신했다. 너무 서둘렀는지 국제구조 신호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에스토니아호는 발틱해를 항해하는 실자 유로파 호를 불렀다. 에스토니아호는, ‘메이데이(긴급상황)’라고 했다. 유로파 호의 1등 항해사는 영어로 “에스토니아, 긴급상황인가?”라고 되물었다. 에스토니아호의 교신자가 바뀌더니 핀란드 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상황설명을 하다가 정전으로 교신이 끊어졌다. 정확한 위치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전기가 들어오자 에스토니아호는 위치를 알려주었다. 에스토니아호는 1시50분에 다른 선박의 레이다에서 사라졌다. 수심은 약 80미터. 기울기 시작한 지 약 한 시간 만에 전복, 침몰한 것이다. 

에스토니아호가 침몰한 지 22분이 지난 2시12분에 마리엘라호가 사고 현장에 도착했다. 이 배는 구명벌을 바다로 던졌다. 에스토니아호의 구명벌에 타고 있던 탈출자 13명이 던져진 구명벌에 옮겨탔다. 이들은 다른 탈출자들이 탄 구명벌이 어디 있는지를 알렸다. 마리엘라호는 에스토니아호 탈출자들이 탄 구명벌이 떠 있는 위치를 스웨덴과 핀란드 헬리콥터들에 알렸다. 스웨덴 헬기는 승선객들이 탈출을 시작한 지 90분 뒤에 날아와 생존자들을 육지로 옮겼다(세월호의 경우는 신고를 받고 30분 만에 해경 헬기가 도착했다). 핀란드 헬기 두 대는 구조하러 온 다른 페리호에 내렸다. 한밤중에 아주 위험한 착륙이었다. 이 헬기는 44명을 구조했다. 이사벨라호는 구조 슬라이드를 내려 16명을 살렸다.

989명의 승선자중 137명이 구조되었다. 그 중 한 명은 나중에 병원에서 죽었다. 배가 건진 이들이 34명, 헬기가 구조한 인원은 104명. 852명이 죽었는데, 93軀(구)의 시신은 33일 안에 수습되었다. 배를 탈출한 이들중 반이 구조되었다. 상당수는  헬기가 현장에 도착하였을 때 이미 低(저)체온증으로 죽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수온은 맹골수로와 비슷한 섭씨 10~11도였다. 젊은 남자들이 많이 살았다. 55세 이상 중엔 7명만 살았다. 12세 이하에선 한 명도 없었다.

사고조사위원회는 310명의 승선자들이 외부 갑판으로 올라왔으며, 그중 160명은 구명벌과 구명정에 탔다고 계산하였다. 이들이 주로 구조된 것이다. 757명의 실종자 중 650명은 배 안에 갇힌 것으로 추정되었다. 세월호도 그러했지만 배가 급하게 기울면 배 안에서 이동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사고의 主원인은, 船首에 있는 門의 잠금장치가 파도를 맞고 이탈하면서 문이 열려 물이 주차 공간 안으로 들어와 배를 기울게 하였다는 점으로 확인되었다. 문에 이상이 생겨도 조타실(브릿지)에선 육안으로 확인이 되지 않는 구조였다. 선원들은 비상벨을 너무 늦게 눌렀다. 승객들을 제대로 인도하지도 못했다. 페리의 주차 데크로 일단 물이 들어오면 물이 표면을 쓸고 다니면서 배의 복원성을 약화시킨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침몰한 에스토니아 호를 인양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았지만 관할국인 스웨덴은, 부패한 屍身(시신)을 보여주는 데 반대하는 여론도 있고 경비도 엄청나 침몰된 배 위에 콘크리트를 부어 덮어버리고, 선박의 접근 금지 水域(수역)으로 설정했다.

수년 전 독일 함부르그의 유체力學(역학) 연구소와 함부르그 기술대학의 연구팀은 에스토니아호의 침몰 과정을 시뮬레이션 방법으로 연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에스토니아호의 승선자들은 약 40분간의 탈출 가능 시간대가 있었다. 船首 문짝이 떨어져 나가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나서 전복될 때까지의 시간이었다. 국제海事(해사)기구의 규정대로라면 船室에서 갑판으로 다 나올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현실은 그러지 못하여 실험 결과는 승선자 989명중 278명만이 갑판으로 나올 수 있었을 것이라 했다. 그 이유는 배가 일단 기울면 탈출로는 사람이 이동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는 점이었다. 경사가 급해진다든지 쏟아져 내린 물건이 막는다든지 하는 이유에서였다. 넘어가는 船體(선체)에선 구명정을 제대로 내릴 수가 없음도 확인되었다. 기울어져가는 에스토니아號는 일종의 棺(관)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월호에서 많은 승선자들이 갑판으로 나올 수 없었던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 2018-04-16, 11:53 ] 조회수 : 1974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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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평선     2018-04-17 오후 7:26
세월호 사고 4주기 아직도 물고 늘어지는 원망의 분위기는, 자기 합리화를 위한 변명 트집 등 온갖 핑게 거리를 만들어, 그원인을 외부로 돌리려는 원칙을 무시하는 피해자와 선주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악한 야당의 속셈이 깔려 있습니다. 이는 해상에서 발생한 교통 사고이고 그책임은 청해진 해운사에 있고, 그보상은 마땅히 선주에게 있지만 부당하게 특별법을 만들어 선주의 책임은 간곳 없이 만들어 버리고 , 당시야당이 앞장서서 나라곡간에 빨대질한 몰염치한 결과를 만들었기 때문에, 나라의 정의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라도 이문제는 재탕 삼탕 원칙대로 해결 될때까지 절대로 추격을 늦추어서는 안 될것이고 , 책임저야될 사람을 가려서 반드시 엄벌로 다스려야 됩니다. 자기주머니 돈나가는 일이면 피해자나 당시 야당 이나 그따위 판단을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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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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