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계 일본시민
소설가 김동인(金東仁)의 항변(31) 1926년 이후 출생한 사람들이 수백만이 됐다

嚴相益(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31
조선계 일본시민
  


김동인의 이웃에 사는 김덕수는 1920년대 초에 출생한 인물로 그의 부모는 구멍가게를 한 영세한 시민이었다. 김덕수는 소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경찰서의 급사로 들어갔다. 그는 급사겸 형사의 정보원으로 공로를 세워 정식 일본형사가 됐다. 그가 성장하던 시절은 일본이 중국을 정복하면서 조선인의 일본화가 맹렬히 진척되던 시절이었다. 출생부터 그의 국적은 일본이었고 그는 세계 일등국가인 일본시민인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는 일본제국의 단결을 방해하는 분리주의자들은 적발해서 쫓아내야 한다고 확신하고 그 임무를 수행하는 자신의 직업을 신성한 것으로까지 느꼈다. 그는 국가의 역적을 없애는 게 조선반도의 명예를 올리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독립투사라고 하는 어떤 인간도 그의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 약한 존재였다. 그는 자백을 빨리 받아내는 명인으로 일본인 경찰 상관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조선사회의 명사라는 사람들에 대해 반항과 증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가난했던 그의 부모에게 조선인 양반 출신들은 일본인보다 더 가혹했다. 그는 그런 인물을 골라가며 미행하고 뒤를 파헤쳤다. 잡아다가 두들겨 패고 매달아 물을 먹이면 그가 원하는 어떤 자백도 했다. 한 가지 자백이 나오고 그의 친구나 동료까지 범위를 넓히면 신문에 나올 하나의 거대한 ‘음모사건’을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는 사건 만들기에 재미와 쾌감까지 느꼈다. 그가 한번 노리기만 하면 반드시 어떤 사건의 주범이 됐다. 검사에게 사건이 넘어가고 법원에서 유죄가 선고됐다. 그는 일본제국이 인정해주는 명(名) 형사였다. 김덕수의 아내 애희는 애국반장이었다. 고등여학교 출신인 그녀는 남편 김덕수의 행동이 지극한 애국심과 충성에서 나오는 것으로 알고 남편을 존경했다.

애희는 명예욕이 강한 여자였다. 사람들이 자기 남편의 앞에서 굴복하고 떠는 모습을 보면서 자랑스러워했다. 동네 애국반장인 애희라는 여자는 김동인의 집에 와서 그런 자랑을 늘어놓곤 했다. 애국반장은 각종 배급 등을 책임지기 때문에 김동인의 집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애국반장인 그녀는 물자배급에는 정직하고 공평했다. 구하기 힘든 광목양말 같은 특수물자를 주면서 이렇게 생색을 내기도 했다.
“이런 건 시중에서 볼 수 없는 물건이기 때문에 우리 집에 있는 물건을 반원 여러분에게 나누어 드리는 겁니다.”
김덕수 형사 부부는 진정한 일본제국 신민이었다.

그들은 일제시대에 태어나 학교에 다니면서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서의 교육만 받았다. 일본인과 조선인은 조상이 같다는 교육을 뼈에 박히게 받았다. 그들의 뇌리에 조선과 일본에 말과 풍습에 차이가 있는 것은 바다를 두고 거리가 더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조선과 일본의 차이를 일본 내부에서도 구주(九州)지방과 동북(東北)지방이 사투리가 다르고 풍습이 다른 것이나 유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김덕수에겐 일본제국의 정책에 방해가 되는 사상을 가진 사람은 역적인 것이다. 애국반장인 그의 아내는 동네 여인들의 불평을 살 만큼 방공연습과 국방헌금 걷기에 열렬했다. 비상시국에 표면적으로라도 황국신민인 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약간만이라도 눈치가 달랐다가는 김덕수 부부의 눈에 걸리기 때문에 방공훈련에 나오라고 하면 여자들은 하던 빨래를 던지고라도 나가야 했고 국방헌금이나 국채(國債)를 구입하라고 하면 없는 주머니를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애국반장인 김덕수의 부인 애희는 영리한 여자여서 공채나 국방헌금의 배당이 나오면 동네 사람들의 수입을 참작해서 공평하게 배정하고 자기네가 솔선해서 가장 많이 매입을 했다. 1926년 이후 출생한 사람들이 수백만이 됐다. 시대에 영합하기 위해 또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가정에서조차 일본시민 만들기를 목표로 교육을 하거나 방임한 아이들은 일본인으로 되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고종황제와 순종황제를 임금으로 모신 구세대는 일본인이 된 신세대 김덕수 부부를 이해하기 불가능했다. 전차에서 노동자들이 일본인을 ‘내지놈’이라고 욕해도 그들의 인식은 우리를 일본의 한 지방 정도로밖에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동인은 김덕수 부부의 모습을 단편소설로 형상화해서 식민지시대에 태어난 또 다른 한 조선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김덕수란 인물은 일제시대를 살았던 조선인의 상당수를 대표하고 있었다.


(계속)

[ 2018-06-12, 10:49 ] 조회수 : 867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서석영     [실명인증확인]   2018-06-12 오후 6:13
일제시대의 실상을 알려주시는것에 감사드립니다
거짓과 모략 선동에 취약한 한국인들의 어거지의 실상을 알려서
우리의 억지가 정의하고는
거리가 있음을 인식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아래 변태원님
조정래의 아리랑 부터 비판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동인은 조정래보다 일제시대를 더 잘 아는 분입니다
조정래의 헛소리부터 고치라고 하는게 어떨까요..
   변태원     [실명인증확인]   2018-06-12 오후 4:00
긴말 않할렵니다 김동인이라고하는 왜정때 살다간 문인 작가의 소설같은 이야기를 그 무슨 Fact인양 쓰고 덧글을 단 꼴을보니 한심하네요 저도 1935년 출생해서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세월을 조선계 일본인으로 살았고 애들때는 멋도모르고 [고구혼니 쯔지까이 고꾸로꾸워 야시나이 못데 곡가 주세이 유부나리] 하며 勅語를 열심히오이며 살던 인간입니다 그러나 해방과 더불어 반일사상이 뚜렸하신 조부와 부친의 교육을 받으며 살아온 인생 이제 다늙어 저승갈날도 머지 않은데 조선계 일본인이라니 듣기 거북하네요 조갑제 대표님은 1945년생이시니 조선계 조선인이네요 엄 변호사님도요 이런글은 좀 삼가게 해주세요 이소설의 주인공보다는 9살적지만 기분이 썩좋지 않네요
   이민복     [실명인증확인]   2018-06-12 오후 2:23
또 역사적인 좋은글 감사합니다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