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와 그리스도와 공산주의
‘특별한 사람’이 자의적 기준에 따라 정의를 독점하고 사람의 피를 흘리면 악마가 된다

朴承用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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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n if it were proved to me that Christ was outside the truth, and it was really so that the truth were outside of Christ, then I would still prefer to stay with Christ rather than with truth. (Dostoevsky)
그리스도가 진리를 벗어난 것으로 증명되더라도, 그래서 진리가 진실로 그리스도 밖에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래도 그 진리보다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겠다. -도스토예프스키〉

러시아의 위대한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1821-1881)는 공병사관학교 생도시절 독서광이었다. 그는 푸시킨(Pushkin)이나 고골(Gogol)등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과 서부 유럽의 고전들―셰익스피어, 괴테, 라시느, 발자크, 빅토르 위고, 쉴러 등―을 涉獵(섭렵)하였다. 그리고 월터 스콧의 모험소설과 호프만의 판타지 등 낭만주의적 소설에도 심취하였다. 낭만주의는 일생을 두고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영향을 끼쳤지만 20대 전반이 지나갈 쯤 그는 작품의 주제와 인물들을 현실 세계에서 찾아내기 시작하였다. 그는 현실(reality) 자체보다도 더 환상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공병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복무하던 1846년 도스토예프스키는 첫 번째 자연주의 소설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러시아 문학계를 요동시키며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명하게 되었다. 특히 당대 러시아 문단에서 가장 유명한 비평가였던 벨린스키(Belinsky)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문학적 천재라고 극찬하였다. 벨린스키는 문학을 러시아의 사회적 정치적 변혁을 위한 투쟁에 사용될 선전도구로 간주하였다. 그는 문학은 사회의 결함에 초점을 맞추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벨린스키의 이러한 要件(요건)을 많이 갖추고 있는 소설이었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는 벨린스키의 이런 功利主義(공리주의)적 예술관을 수용할 수 없었다. 그는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당장 뭔가를 해야 된다고 생각하였지만, 그리고 서구의 이상주의적 사회주의 사상을 접하게 되면서, 유토피아적 사회주의는 실천적 기독교의 한 형태라고도 간주하게 되었지만 벨린스키의 과격한 유물론과 혁명사상은 결코 수용할 수 없었다. 그는 혁명가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벨린스키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는 다른 문학의 길을 가게 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849년 그가 회원으로 있던 문학토론 클럽에 침투한 직업혁명가의 정부전복 음모에 공범으로 오인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총살집행 직전에 극적으로 減刑(감형)되어 시베리아로 추방되었다. 그는 시베리아에서 8년―수용소 4년과 이등병으로서 군복무 4년―동안 流刑囚(유형수)로 있으면서 많은 고초를 겪었고 또 유럽지역 러시아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기간 중에 러시아 민중의 실상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들에게 동정과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또 受刑(수형) 생활의 경험을 통해 그는 범죄 심리(criminal mind)에 대한 특별한 통찰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위대한 소설 대부분이 범죄에 관한 것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범죄자들과 특히 일부 극악의 흉악범들과 매일 가깝게 접촉하면서 도스토예프스키는 以前(이전)의 유토피아적 이상주의에 대한 믿음 및 인간은 본질적으로 善(선)하다는 믿음은 둘 다 잘못된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그는 성경을 다시 읽으면서 사회의 변화를 위해서는 인간惡(악)의 제거가 필수적인데 종교(기독교)만이 인간의 존재론적 사악함을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시베리아에서 돌아온 이후 그의 소설의 중심적 주제는 이러한 것―신앙을 통한 인간惡의 극복―이었다. 시베리아의 감옥과 추방생활은 그로 하여금 인간의 영혼이 罪(죄)로부터 구원받지 못하고 있는 한 어떠한 정치적 변화도, 체제를 아무리 변혁하여도, 아무런 효용이 없다는 신념을 확고히 갖게 되었다. 그는 신앙만이 러시아를 인간악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神에 대한 신앙을 상실하거나 독선과 독단에 빠져 스스로를 神보다 더 높은 존재로 간주하게 되면 인간은 악마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통찰하게 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주요 소설들은―〈죄와 벌〉, 〈악령〉, 〈카라마조프家 형제들〉―唯我獨尊(유아독존)적 무신론자들이 神[여호와]보다는 자신들의 사상이나 이념을 偶像(우상)으로 만들어 숭배하며 악의 제거에 나서게 되면 사람을 무참하게 죽이고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악마로 전락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코르니코프도 그런 인물이다.

라스코르니코프는 비범한 지적능력과 높은 정의감과 도덕성을 겸비한 지식인(intelligentsia)이지만 자신의 이성과 논리를 과신, 독선에 빠져 냉혹한 살인자가 된다. 그는 노동자를 착취한다는 이유로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양심에 따라 옳은 일을 했다고 확신한다. 그는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확신한다. 그는 수사관들에게 “법적으로 확립된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사람’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현실적 장애를 무시할 권리가 있습니다”라며 ‘특별한 사람’은 자신의 ‘개인적’ 판단에 따라 타인의 피를 흘릴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라스코르니코프처럼 ‘특별한 사람’이 恣意的(자의적) 기준에 따라 正義(정의)를 독점하고 사람의 피를 흘리면 악마가 되는 것이다. 악마는 善(선)과 정의의 절대자인 神의 권위에 도전하며 神의 지위를 찬탈하려다가 천국에서 쫓겨난 타락 천사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스스로를 超人(초인)으로 생각하고 神의 권위에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정의를 독점하는 者는 필연적으로 악마로 전락한다고 보았다. 정의를 독점하는 초인은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악마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이다.

악마적 초인이 권력을 잡고 가치를 독점하면 大災殃(대재앙)이 일어난다. 초인의 이름으로, 미래의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혁명의 이름으로, 무제한의 평등의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는 것이 합법적이 되고 고상한 목적이나 위대한 이상의 실현을 위해 모든 인간을 수단으로 변형시키는 일이 자행되기 때문이다. 초인이 무제한의 자유를 추구하거나 모든 사람이 무제한의 평등 곧 극단적인 집단주의를 추구할 때는 그 초인이나 집단의 이름으로 모든 행동이 허용된다. 대량학살 같은 극악의 蠻行(만행)도 당연시 된다.

라스코르니코프는 급진좌파의 선구자이다. 그는 비록 마르크스를 읽지 않았고 나폴레옹을 숭배하고 자신을 선악을 초월하는 초인으로 간주하였지만 그에게는 인민위원의 싹이 보인다. 사회정의에 대한 강렬한 욕구, 이념에 대한 병적인 집착, 융통성이 없는 경직된 행동, 가치의 독점―이런 것들은 공산주의자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라스코르니코프가 고리대금업자를 죽이는 것은 공산주의자들이 부르주아를 숙청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고리대금업자(부르주아)를 제거하고 전진하자. 고리대금업자를 처치한 후에 계급도 없고 착취도 없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의 창조를 위해서는 고리대금업자를 죽이는 것은 정당하다”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비록 인류의 이익을 위한 것일지라도 살인은 옳지 않다. 그리스도는 ‘너희는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다”라며 공산주의자들의 ‘善을 위한 살인’을 강렬하게 반대하였다. 공산주의자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차이는 惡(악)에 대한 관점의 차이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고리대금업자, 즉 부르주아는 惡이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는 惡은 고리대금업자이기 보다는 고리대금업자를 제거하기 위해 라스코르니코프가 채택하는 수단, 즉 폭력이다. 더구나 라스코르니코프는 고리대금업 노파를 죽일 뿐 아니라, 증인을 없애기 위해 죄도 없으며 신앙심 깊은 리자베타(노파의 자매)도 무참하게 살해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善의 이름으로 살인의 도끼를 휘두르는 라스코르니코프를 정의의 사도가 아닌 악마의 화신으로 간주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민중혁명에 반대하였다. 그는 혁명은 인간성에 내재하는 악령이 善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이라며 민중혁명의 악마적인 속성을 경고하였다. 그러나 도스토예프스키의 경고는 당대의 러시아를 사로잡았던 사회주의혁명의 도도한 물결에 휩쓸려 무시되었다. 그리하여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고 러시아는 역사상 가장 참혹한 고난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神[러시아 정교]을 버리고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우상을 神으로 모시게 된 죽음의 나라가 되었다. 라스코르니코프의 도끼는 레닌과 스탈린의 손을 거치면서 3500만 명의 리자베타(무고한 인민)를 학살하였다. 러시아에서 뿐 아니라 라스코르니코프의 도끼는 지난 100년 동안 중국, 북한, 동유럽, 캄보디아, 베트남, 쿠바 등에서 혁명의 이름으로 1억의 무고한 인민을 학살하였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충고 “인간악은 신앙에 의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를 받아들였더라면, 그래서 공산주의라는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 2018-08-02, 11:09 ] 조회수 : 1543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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