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바에서 이승만을 생각한 이유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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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부스의 고향인 제노바에 갔다가 문득 이승만 생각이 떠올랐다. 이 도시에 대한 기햄문을 쓴 최초의 한국인아 아닐까?
  
  
  李承晩 연구원(연세대학교)과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이 같이 간행한 '이승만 英文 일기 국역판'을 읽었다. '1904~34 & 1944'년에 걸친 일기이다. 1933년분이 가장 길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연맹 회의에 한국 독립 문제를 올리려고 스위스에 간 해이다. 이 여행에서 오스트리아의 이혼녀 프란체스카 여사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이승만은 스위스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폴란드, 헝가리, 오스트리아, 그리고 러시아까지 여행하였다. 8개월에 걸친 그의 여행 일기는 가이드 북 같은 느낌을 줄 때도 있다. 그의 폭 넓은 見聞은 평생 여행을 하고 1급 인물들을 많이 만난 축적의 결과일 것이다.
  
   1933년 8월7일 日記(이탈리아 제노바)
  
   ─ 아침에 두 명의 여행객과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외출.
   ─ 수태고지 교회(The Church of Annunciation)는 세계에서 제일 부자라고 함. 천정과 벽을 순금으로 장식함.
   ─ 聖 로렌조(St. Lorenzo) 대성당은 세례자 요한의 유해를 1097년 미라(Mira)에서 가져와 아직까지 그곳에 안장하고 있음.
   ─ ‘가장 오래된 구역(The oldest district)’에 있는 콜럼버스 집은, 콜럼버스가 1451년에 살았던 곳.
   ─ 레지나 아레나(The Regina Alena) 터널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터널과 흡사.
   ─ 전쟁기념아치(The War Memorial Arch)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으로 불리는 곳.
   ─ 공동묘지(The Cemetery): 내가 이제까지 본 묘지 중 가장 잘 꾸며진 묘지. 묘지 입구에서 구입한 일련의 그림들은 인상적인 동상과 무덤을 잘 보여줌.
  
   8월7일 오후에 나와 같은 호텔에 묵고 있고 독일어를 구사하는 한 스위스 청년과 함께 외출했다.
   서로 말을 잘 알아듣지는 못해도 같이 관광하기로 했다. 우선 케이블 카 선이 가장 긴 후니쿨래(Funiclare)역으로 가서 케이블 카를 타고 아펜닌 언덕 위에 서 있는 리기(Righi)호텔로 갔다. 호텔 현관 마당에서 차를 마셨다. 언덕 아래로 아름다운 제노바 시가, 항구 바다가 그림처럼 한 눈에 펼쳐졌다. 언덕 저편에는 깊은 계곡 사이에 공동묘지가 있고, 아펜 산맥을 따라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여기저기 솟아나 있었다. 그 위로는 지금은 버려진, 오래된 요새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리기에서 내려와 작은 공원으로 걸어가자 그곳에서는 여러 종류의 새와 오리 등 날짐승이 있었다. 보도가 매우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많아 처음에는 스위스 친구가 나를 따라오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재차 오라고 재촉하자 마지못해 나를 따라왔다가 마침내 大路(대로)에 다다르자 끝없는 미로를 벗어난 것을 기뻐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외출했다. 나의 스위스 동료는 호텔 직원을 통해 내게 제노아의 진짜 오래된 도로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를 따라나섰다. 곧 자갈이 깔린 좁고 꼬불꼬불한 미로가 나타났다. 거리가 어두컴컴하고 사람들로 붐벼서 처음엔 좀 불안했다. 그러나 군중들 사이로 경찰관들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여 곧 두려움에서 떨쳐났다. 고풍스럽고 높게 우뚝 솟은 건물은 처마들이 모두 도로를 향해 마주보고 있었다.
  
  
   저녁에 바리에타(Varieta)라고 하는 커피집으로 갔다. 간판을 보고 무슨 버라이어티 쇼가 있나 보다하고 들어갔는데, 이곳은 맨발의 아가씨들이 나와 흥겹게 춤을 추는 유명한 커피 하우스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아 시원한 음료를 주문하자 아가씨들이 우리 주위로 몰려와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중 한 사람은 우리 옆자리에 앉아 나에게 일본어와 영어로 우리에게 合席(합석)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자 주인이 와서 그녀들을 저지했다.
  
  
   1933년 9월9일(미국 여행)
  
   오전 8시45분에 커니를 출발하여 어둑어둑해질 무렵 와이오밍州의 샤이엔(Chyenne)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자동차에 휘발유를 가득 채우고 75 내지 80마일(120~129km) 떨어진 콜로라도州 덴버로 출발했다. 칠흑같이 어두웠고 비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사흘 전 덴버에는 심한 폭풍우가 몰아쳐 도시 한 부분이 물 속으로 잠겨버렸다.
  
  
   도로는 좁고 꼬불꼬불하고 라이트도 희미했다. 깜깜한 밤중에 비까지 억수로 내리 퍼부었다. 극도로 조심 운전을 하여 시간당 20 내지 30마일(32~48km) 이상 달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 밤에 덴버에 도착해야만 가능한 빨리 몬태나州의 뷰트(Butte)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물이 車까지 오는 개울인지 웅덩인지에 빠져 버려 하늘과 땅이 모두 내려앉은 것만 같았다. 다행히 차가 곧 떠올라 긁히지 않고 물웅덩이를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이로써 難題(난제)가 해결되었다.
  
  
   나는 가다가 첫 번째 마을에서 무조건 자고 가자고 했다. 마침내 콜로라도州의 눈(Nunn)이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여 이름도 없이 그저 ‘호텔’이라고만 적힌 그다지 내키지 않는 곳을 발견했다. 하지만 달리 갈 곳도 없어서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나이 든 주인 여자가 저녁으로 햄과 계란을 요리해주었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주인 노파는 캘리포니아에 사는 한 친척이 뉴욕 여행을 위해 차와 옷을 새로 샀는데, 3일 전 밤에 끔찍한 폭풍우가 몰아쳐 우리가 지나온 그 물웅덩이에서 차가 거북이처럼 뒤집혀져서 언덕 아래로 굴렀으나 다행히 다치지는 않고 멈추었지만, 차 안은 온통 물이 가득 찼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래서 그들 일행도 이 호텔로 와서 모든 것이 다 마를 때까지 머물다 갔다고 주인 할머니가 말했다.
  
   1933년 9월12일
  
   오전 8시에 장기영과 함께 덴버를 출발하여 몬태나州의 뷰트를 경유하기로 했다. 콜로라도주의 포트 콜린스(Fort Collins)에서는 다정다감한 빅모어(Bigmore) 양의 사촌인 위태커(Whittaker) 부부와 또 다른 부부를 보고 가기로 했다. 위태커 부부는 호놀룰루에서 살았었다.
   덴버의 친구들은 콜린스와 옐로스톤 공원 사이의 드라이브 길이 아름다우니까 공원의 동쪽 문으로 들어가라고 권했다. 그들에게 말은 안 했지만 덴버에서 자동차 수리를 하느라고 경비를 다 써버려 자동차에 넣을 휘발유 값도 없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最短(최단) 거리로 뷰트에 가야만 했다. 우리는 그날 하루 종일 운전을 했다. 그러나 길은 험했고 다리들은 너무 좁아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피곤해서 잠까지 쏟아졌다.
  
  
   물론 덴버를 떠난 후 하루 종일 식사도 못했다. 밤 12시45분에 와이오밍州의 버팔로라는 조그만 마을에 도착하여 ‘여인숙(Tourist Inn)’이라고 간판을 내건 작은 집으로 들어갔다. 나이 든 주인 아주머니에게 나와 장기영 둘이서 한 방을 1불에 쓰기로 흥정을 했다. 그래서 張과 둘이서 한 침대에서 잤다. [ 2015-12-16, 0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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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험은 할 만하다.'
   “Adventure is worthwhile.” – Aesop
  
   '여행은 사람들의 말문을 막았다가 나중엔 이야기꾼으로 바꾼다.'
   “Traveling – it leaves you speechless, then turns you into a storyteller.” – Ibn Battuta
  
   '우리는 여행하는데 우리 중 상당수는 영원히 여행을 한다. 다른 장소를, 다른 인생을, 그리고 다른 영혼을 찾기 위하여.'
   “We travel, some of us forever, to seek other places, other lives, other souls.” – Anais Nin
  
   '여행의 가치는 거리가 아니라 친구의 숫자로 매겨야 한다.'
   “A journey is best measured in friends, rather than miles.” – Tim Cahill
  
   '나는 인생의 가장 장엄한 순간은 알지 못하는 땅으로 떠날 때라고 생각한다.'
   “The gladdest moment in human life, me thinks, is a departure into unknown lands.” – Sir Richard Burton
  
   '여행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작은 곳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Travel makes one modest. You see what a tiny place you occupy in the world.” – Gustave Flaubert
  
   '사람과 사물을 폭 넓게, 종합적으로, 그리고 온정적으로 보려는 생각은 평생을 지구의 한 작은 구석에서 죽치고 살아서는 습득할 수가 없다.'
   “Broad, wholesome, charitable views of men and things cannot be acquired by vegetating in one little corner of the earth all of one’s lifetime.” – Mark Twain
  
   '해안이 안 보이는 바다로 나가야 새로운 대양을 발견할 수 있다.'
   “Man cannot discover new oceans unless he has the courage to lose sight of the shore.” – Andre Gide
  
   '이 세상은 책이다.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은 첫 페이지만 읽는 이다.'
   “The world is a book, and those who do not travel read only one page.” – Saint Augustine
  
  
  
  
[ 2018-10-07, 14:25 ] 조회수 : 353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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