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통일의 발자취를 따라서(12): 가장 약한 나라가 이뤄낸 삼국통일
신라는 불리한 환경을 오히려 강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게 바로 신라의 역동성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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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장군묘 上]
  
  이재호 향토사학자: 여기가 김유신 장군묘입니다. 이 잔디가 파랗게 물들었을 때 여기서 보면 경치가 기가 막힙니다. 이런 유물을 보는 방법에 대해 아까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유물을 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밑에서 위로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걸 仰視(앙시)라고 합니다. 배가 조선소에서 처음에 나올때 그걸 보는 걸 仰舟(앙주)라고 합니다. 그렇게 사물을 위로 올려다보면 일종의 설레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스코리아를 심사할 때도 보면 항상 밑에서 올려다보면서 심사를 하지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심사를 하지 않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과거 히틀러도 이런 방법을 이용했다고 그럽니다. 제가 듣기로 히틀러는 연설을 할때 달밤에는 안하고 꼭 캄캄한 그믐날 밤에 고가 사다리를 타고 자기 혼자 올라가서 조명을 받으면서 연설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 분위기를 연출한 상황에서 ‘독일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다’고 그러면 군중들은 ‘와~’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반대로 히틀러가 관중을 내려다보는 식입니다. 이것은 뭐냐하면 위에서 밑으로 내려다보는 기법입니다. 이걸 俯瞰法(부감법)이라고도 하는데 일명 헬리콥터 기법입니다. 헬리콥터를 타고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과 같은 시각입니다. 석탑과 같은 유물을 이런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좋습니다. 최근 각종 공연을 할 때가 그렇습니다. 옛날에는 관객이 밑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우러러보는 형식이었는데 이제는 층계 위로 올라가서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면서 공연을 잘 하고 있는가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죠. 


  참고로 서양에서는 험한 산세와 지형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잘 지어야 하다보니 건축이 발전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산세와 지형이 좋아서 그냥 집하나 슬쩍 지어도 괜찮으니까 건축이 제대로 발전을 안한 편입니다. 그냥 대충 지어도 자연과 잘 어울리니까요.
  서양에서는 건물을 지을 때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지었습니다. 예를 들어 성당같은 게 그렇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聖소피아 성당에 들어가면 ‘아이고, 잘못했습니다. 하나님!’ 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입니다. 그 천장의 높이나 규모 등에서 위압감에 눌려 ‘아이고, 회개하겠습니다. 하나님!’ 할 수 밖에 없을 정도입니다. 


  그 다음에 평지에서 보는 게 평원법입니다. 이건 보통 유물을 감상하는 방법입니다. 
  이상 위에서 보는 법, 위로 보는 법, 평원법을 잘 사용하신다면 어떤 유물이든지 자기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그럼 먼저 제가 김유신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리고 조갑제 선생님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김유신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김유신은 일단 출신이 안좋았습니다. 그는 가야의 왕족 출신입니다.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해왕의 증손자인가 그렇게 될 겁니다. 김유신의 아버지는 우리가 아는 金舒玄(김서현)입니다. 김서현은 김유신의 생가가 있는 충북 진천의 군수였습니다. 거기 군수로 발령되기 전까지 김유신 일가는 가야의 망한 왕족이기는 했지만 신라의 귀족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성골, 진골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김서현은 우연히 길거리를 지나가 자기보다 신분이 높은 萬明(만명) 부인과 서로 눈이 맞습니다. 보통 중매결혼은 조건을 봅니다. 그렇죠? 서로 집안과 돈, 잘난 거 못난 거를 보지만 연애는 다릅니다. 둘이 서로 좋아하면 결혼하는 게 가능하죠. 그렇게 김서현과 만명 부인이 서로 좋아하게 됐을때 만명 부인의 가족들이 말립니다. 그때 만명 부인의 아버지가 이렇게 말합니다. ‘야, 너 미쳤냐, 그런 놈하고 니가 친하면 되겠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출신이 안맞았기 때문입니다. 만명 부인의 아버지는 결국 만명 부인을 창고에 가둬버렸습니다.


  여기에 얽힌 이야기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이때 벼락이 쳐서 창고가 무너지는 바람에 만명 부인이 도망쳐 나왔다는 게 있고 다른 하나는 그 때부터 김서현이 만명 부인을 업고 진천까지 도망을 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쨌든 거기서 낳은 아들이 바로 김유신입니다. 그래서 김유신의 고향이 진천이 되는 겁니다. 


  그때까지는 그럴 수 있는 상황입니다만 나중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가 하면 김유신이 만명 부인의 속을 썩이는 일이 일어납니다. 만명 부인도 부모님이 반대한 결혼을 했다는 것에 대해 자기 친정에 어떤 미안함이 있었을 겁니다. 그 엄마도 ‘니가 그렇게 결혼해서 잘 사는가 보자’ 이렇게 말했을 거라는 겁니다. 요즘도 그렇지 않습니까. 부모가 반대하는데도 서로 사랑한다면서 결혼하면 니가 나중에 잘 사는가 보자 이러지 않습니까. 이랬기때문에 만명 부인은 자기 친정에 안갔습니다. 대신 김유신을 잘 키우려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키운 김유신이 커가면서 보니까 애가 잘난 겁니다. 잘 키웠다고 자부하는데 이 애가 자기 아버지하고는 전혀 다르게 자기보다 신분이 못한 여자하고 친하게 지내는 겁니다. 그게 바로 天官女(천관녀)입니다. 김유신이 천관녀하고 친하다는 걸 알게된 만명 부인은 눈물을 흘리면서 김유신에게 이야기합니다. 만명부인이 ‘니가 계속 그 여자를 만날꺼냐’고 물으니까 김유신이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하고 맹세를 합니다.


  그런데 김유신이 술을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술을 먹고는 말에 실려 다시 천관녀의 집에 가게 됩니다. 이야기의 다른 주인공인 그 말도 名馬(명마)였습니다. 그 말을 탔는데 이거 아닙니까. 사람은 보통 술을 마시면 감성적으로 변합니다. 이성적으로는 어머니가 천관녀를 다시는 만나지 말라고 해서 그걸 참고 있는데 술을 마시니까 또 천관녀 생각이 막 나는 겁니다. 그래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내키는대로 행동하기는 미안한 거죠. 


  제가 혼자 생각하기에는 이렇게 갈등하던 김유신도 술에 취하자 ‘아이고, 모르겠다’하고는 말 등에 가만히 누워있었겠죠. 그러니까 말이 알아서 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보면 그 말이 명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인이 술취하면 어디로 간다는 그 습관대로 간 겁니다.
  김유신은 그 상태에서 그렇다고 자기가 말꼬리를 잡고 ‘야, 안돼’하기에는 좀 감성적으로는 이미 안맞는 거에요. 천관녀에게 끌리기는 끌리고 어머니는 반대하고 이러니까 그 묘한 갈등 상황에다 술까지 먹으니 ‘에이 모르겠다’하고 간 겁니다. 그렇게 천관녀를 찾아가서 원앙금침 깔아놓고 술 먹고 그렇게 한 겁니다. 


  그러다가 다음날 일어나보니까 자기집이 아닌 겁니다. 이제 현실로 돌아오니까 ‘아이쿠, 큰일났다’ 싶어서 결국 말의 목을 치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간 거 아닌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때 뒤도 안돌아보고 갔다고 이야기하는데 원래 큰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습니다. 옛날에 사명대사가 있던 절에 왜군이 불을 지르려 했습니다. 사명대사가 ‘나는 절대 안돌아본다’ 그러니까 일본 장수 고니시 유키나카가 그럽니다. ‘저 중이 뒤를 돌아보면 목을 쳐라’ 했는데 뒤를 안돌아봤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시 절에 지른 불을 끄고 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큰 사람들은 뒤를 안돌아봅니다.


  그렇게 김유신이 뒤도 안돌아보고 가니까 천관녀로써는 ‘저게 날 좋아할 때는 언제고’ 하면서 엄청나게 고통을 받습니다. 여기도 두 가지 설이 있습니다. 천관녀가 ‘아, 저 사람은 큰 사람이 돼야 된다. 그러면 난 저 사람이 잘되도록 평생 기도해줘야겠다’고 해서 중이 됐다는 설과 김유신이 떠난 다음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갔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 이후에 김유신은 통일도 하고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룬 다음에 과거를 회상하다 천관녀를 생각해냈습니다. ‘아, 내 옛날 애인.’ 그래서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수소문을 해보니까 천관녀가 이런저런 사연을 가지고 자기를 위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옛날 집터에다가 천관녀를 위해 절을 지어줬다고 합니다. 그것이 天官寺(천관사)입니다. 지금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반대하던 만명 부인이 지내던 김유신의 집터 자리인 財買井(재매정)이 있습니다. 김유신 묘와 재매정과 천관사 터, 이 세 군데가 묘하게 삼각축으로 돼 있습니다. 김유신이 천관녀를 보려면 어머니가 항상 걸리는 겁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어머니 묘를 통해야지만 천관사가 보입니다. 만명 부인이 죽어서도 아마 ‘너는 잘난 거하고 서로 좋아해야돼’ 그런 뜻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김유신하고 김춘추의 관계에 대해서 잠깐만 이야기하고 조갑제 선생님께 이야기를 넘기겠습니다. 당시 김유신도 일단 자기 신분이 귀족이 아니었기 때문에 출세를 해야 됐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생각하게 된 게 김춘추하고 처남매부지간을 만드는 거 였습니다. 
  김유신에게는 여동생인 寶姬(보희)와 文姬(문희)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큰 여동생인 보희가 어느날 꿈을 꿨는데 선도산에서 소변을 누니까 온 서라벌 장안이 소변 바다가 되는 겁니다. 이 꿈 이야기를 들은 문희가 언니에게 비단 저고리를 주고 꿈을 삽니다. 


  김유신은 김춘추보다 9살이 많습니다. 하지만 김춘추는 출신이 좋았습니다. 왕족이었습니다. 잘 하면 왕이 될수도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김유신으로서는 김춘추에게 잘 보이는 것도 별로 안나쁘죠. 
  이렇게 김춘추와 친해질 기회를 보던 김유신이 축국을 하다가 김춘추의 옷고름을 밟았습니다. 이때 김유신이 나이는 많아도 신분 차이가 나니까 사과를 하고 자신의 동생방으로 김춘추를 데려 갑니다. 계획적이었죠.


  일단 스타가 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합니다. 얼굴만 잘나서는 안되죠. 우선 권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돈이 있어야 되고 거기에 얼굴이 이뻐야 한다고 합니다. 아마 선덕여왕, 클레오파트라 전부 그렇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권력만 가지고도 안되고 얼굴만 가지고도 안되고 모두 돼야 하죠. 
  어쨌든 문희가 김춘추의 옷고름을 기워주다가 서로 눈이 맞아가지고 나중에 둘이 부부가 됩니다. 이를 계기로 김유신과 김춘추의 합작이 시작되는 거죠. 


  아까 조갑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김춘추의 사위 品釋(품석)하고 자기 딸이 지금의 합천에 있던 대야성에서 싸우다 죽었습니다. 게다가 백제에서 시체까지 가져가 버렸어요. 그러니까 김춘추가 완전히 미쳐버린 겁니다. 그때부터 이걸 복수하기 위해서 외교가 시작됐습니다. 즉 신라의 힘이 약하니까 강한 나라의 힘을 빌리기 위해 노력한 겁니다. 
  그렇게 고구려에 갔는데 고구려에서는 땅을 달라하니까 내가 권한이 없다고 했다가 갖혀버리죠. 이때 김춘추가 꾀를 씁니다. 내가 땅을 주겠다고 고구려와 거짓 약속을 합니다. 김유신과는 그 전에 미리 약속을 했습니다. ‘내가 60일 이내 돌아오지 않으면 니가 데리러 와라.’ 둘이서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결국 김유신이 김춘추를 데리러 옵니다. 


  그렇게 돌아온 다음에 김춘추가 이러죠. 내가 고구려에 한 말은 거짓말이다 이런 말이 나옵니다. 좌우간에 둘은 나중에 환상의 콤비가 됩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삼국통일같은 대업을 이룰 때는 왕만 잘나서는 안됩니다. 
  거기에 한가지만 제가 추가를 할께요. 삼국 중에서 가장 약한 신라가 어떻게 통일을 했는가가 의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신라의 힘이 강했다면 통일이 안됐을 겁니다. 당시 삼국 중에서 신라가 가장 강한 게 하나 있었습니다. 뭐냐하면 가장 사상적이고 철학적이었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신라에는 당나라 유학생이 가장 많았습니다. 조건이 불리한데도 말이죠. 


  지금은 아니지만 옛날에 똑같은 조건에 책만 보면 될 때는 우리가 시골에서 태어나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판검사되고 그랬죠. 지금은 부모의 조건이 중요하지만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시골 출신들이 공부만 하면 성공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라도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도 삼국 중에서 당나라 유학을 제일 많이 갔습니다. 그렇게 선진문물을 배웠고 정신적으로 발전하면서 화랑도 정신적으로 무장이 됐습니다. 화랑들은 바로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첨병들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해서 신라가 통일하는데 힘이 됐습니다. 


  낙동강, 이것도 신라의 힘이 약할 때는 천연의 방어선이 됐습니다. 태백산맥도 그 산줄기를 보면 고구려 세력들이 넘어올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신라는 힘만 있으면 넘어가면 되는 겁니다. 이렇게 신라는 불리한 환경을 오히려 강점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에 장단점은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장점도 단점이 될 수 있고 단점도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라는 단점이었던 것을 장점으로 활용한 것이죠. 그게 바로 신라의 역동성이라고 봅니다. 저는 이 정도로 하고 조갑제 선생님 말씀을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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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10-18, 10:1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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