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지 베이크?” “천국으로 갈 거야”
평생 친구였던 제임스 베이커 前 국무장관이 지켜본 부시 대통령의 마지막 순간들

金永男(조갑제닷컴)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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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부시’로 더 잘 알려진 조지 H.W. 부시가 향년 94세를 일기로 지난달 30일 별세했다. 뉴욕타임즈는 부시 前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자 그의 밑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제임스 베이커 前 장관을 통해 그의 마지막 순간들을 소개했다. 그는 가장 좋아했던 삶은 계란과 노래 ‘고요한 밤’을 들으며 생을 마감했다. 해당 언론보도를 번역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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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부시의 병세는 최근 며칠 사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침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식사도 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시간 잠을 잤다. 지난 몇 년간 여러 차례 죽음과 싸워 이겼던 그였지만 죽음이라는 순간이 마침내 그에게 찾아오는 것으로 보였다.

부시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자 前 국무장관인 제임스 베이커(88세)는 11월 30일 부시 전 대통령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휴스턴에 있는 집을 찾았다. 부시 전 대통령은 정신을 차린 뒤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지 베이크(注: 베이커의 애칭)?”라고 물었다. 베이커는 “우리는 천국으로 갈 거야”라고 답했다. 그러자 부시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이 그곳이야”라고 말했다.

이로부터 13시간 뒤 부시 전 대통령은 숨을 거뒀다. 그는 휴스턴의 집에서 여러 친구와 가족, 주치의, 그리고 목사가 함께 한 가운데 生을 마감했다. 30일 금요일 밤 (아들 부시인)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그의 달라스의 집에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작별 인사를 했다. 아들 부시는 아버지에게 당신은 훌륭한 아버지였다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버지 부시는 아들에게 “나도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답했다. 이게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부시 전 대통령을 지속적으로 만나오고 마지막 숨지는 순간도 함께 했던 베이커 전 국무장관.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상공을 날고 냉전의 끝을 백악관에서 보낸 다사다난한 94년의 삶을 보낸 부시 전 대통령의 마지막 날들은 놀랍게도 평화로웠다고 말했다.

그는 (뉴욕타임즈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고서는 말을 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원할 만한 편안한 임종이었다. 그는 준비가 돼 있었다”고 했다.

부시 전 대통령의 임종을 지킨 건 제임스 베이커와 그의 부인 수잔 베이커를 포함해 아들인 닐 부시와 그의 가족이 있었다. 또한 오랫동안 부시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진 베커도 함께 했으며 휴스턴에 있는 성 마틴 성공회 교회의 러셀 레벤슨 목사도 있었다. 주치의인 클린트 도어와 에이미 민더스, 그리고 간병인들도 함께 했다.

지난 11년 넘게 부시 전 대통령의 목사였던 레벤슨 목사는 최근 들어 더욱 자주 그를 찾았다. 그는 부시 전 대통령이 73년간 아내로 지내오다 지난 4월 숨진 바바라와 1953년 세 살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숨진 딸 로빈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 안도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어디로 가 누구와 함께 할지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며 “바바라와 로빈과 함께 하는 것을 고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바바라 부시 여사가 지난 봄에 숨진 뒤 부시 전 대통령은 지인들에게 자신은 아직 죽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일종의 파킨슨 병으로 지난 몇 년간 고생했으며 이로 인해 걷지 못하고 말을 잘 할 수 없었다. 그런 뒤 그는 메인州의 있는 별장에서 그의 마지막 여름을 보냈다.

가을이 된 뒤 그는 휴스턴으로 다시 돌아왔고 상황은 다시 조금 악화됐다. 그와 베이커는 2주 전 굴을 먹으러 외출했다. 베이커는 그 때 이후로 상황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베이커는 약 10일 전 부시 전 대통령을 다시 찾아 서재에서 술 한 잔을 나눴다. 베이커는 그날 부시 전 대통령을 영어 단어 대장(chief)의 스페인어인 ‘Jefe’라고 부르며 100세까지 살고 싶으냐고 물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응, 그렇게 하고 싶지만 그렇게 못할 것 같아”라고 답했다.

부시와 베이커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부터 가까운 친구였다. 이들은 약 60년 전 휴스턴에 있는 테니스장에서 만나게 됐으며 일요일에는 가족이 같이 바비큐를 함께하고 미식축구 얘기를 했다. 크리스마스에는 같이 칵테일을 나누던 사이었다.

부시는 베이커의 첫 번째 부인이 숨졌던 1970년 당시 베이커와 함께 있어줬다. 그런 뒤 베이커가 슬픔을 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상원의원 선거 캠페인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이들은 당시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이들의 파트너십은 결국 이들을 최고 위치까지 오르게 했다. 베이커는 부시가 대통령 선거에 나섰던 1980년과 1988년, 그리고 1992년 대선 모두를 함께 했다. 냉전의 마지막 시기에는 국무장관을 지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최근 며칠간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베이커와 함께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지역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11월 27일 부시 전 대통령을 찾기도 했다. 11월 29일이 되자 부시 전 대통령은 식사를 하지 못했고 몸무게가 줄기 시작했다.

그는 의료진에게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바바라 부시 여사가 숨진 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등 최근 몇 년간 병원에서 죽음 근처까지 갔었다.

베이커는 부시 전 대통령은 자신이 일생 동안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경쟁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이런 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보여줬다. 그는 이제 갈 시간이 됐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죽음과 맞서 싸웠다. 계속 싸웠고 계속 다시 일어섰다”고 했다.

베이커는 30일 오전 부시 전 대통령을 찾았다. 부시 전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죽음에 맞서 싸울 마음이 생긴 것으로 보였다. 그는 다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가 제일 좋아하던 5분간 삶은 계란 세 개와 요구르트 한 그릇, 그리고 과일주스 두 잔을 마셨다. 베이커는 “모든 사람들은 이 날이 좋은 날이 될 것으로 생각했고 그(부시)가 다시 힘을 찾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베이커는 오전 9시 15분 부시의 집을 떠난 뒤 저녁 약속이 있어 떠났다. 베이커는 부시 전 대통령이 침대에서 일어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고도 했다. 저녁 약속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베이커는 부시 전 대통령 집으로 빨리 와달라는 전화 연락을 받았다. 베이커가 집에 도착한 것은 오후 8시 15분이었다.

아일랜드 테너 가수인 로난 티넌 역시 이날 혹시 부시 전 대통령 집에 와줄 수 있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부시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진 베커 여사는 티넌에게 ‘고요한 밤 거룩한 밤(Silent Night)’과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지방의  ‘게일’ 노래를 청했다.

베이커는 티넌이 고요한 밤을 부르기 시작하자 부시 전 대통령이 입 모양으로 가사를 따라 했다고 말했다. 베이커는 약 30분 동안 부시의 손을 잡고 발을 주물렀다. 미국 곳곳에 살고 있는 그의 자식들도 아버지와 전화를 통해 작별 인사를 했다.

레벤슨 목사는 오후 9시 15분에 도착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 모두 그의 곁에서 무릎을 꿇고 그의 몸을 손을 올린 채 기도했다. 매우 품위 있고 편한 임종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는 이 사람이 매우 큰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 그 자체이다”고도 했다.

고통도, 힘든 숨소리도 없었다. 오후 10시 10분, 부시 전 대통령은 숨을 거뒀다.


[ 2018-12-03, 10: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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