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출생증명서 두 번 공개에도 믿지 않는 음모론자들
1차 공개 때는 발급 당시 출생증명서의 일부 내용만 담겨 있다며 全體本 공개 요구. 2차 공개 때는 출생증명서의 윤곽선이 삐뚤어졌다는 등 또 다른 의혹 제기.

金永男(조갑제닷컴)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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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는 하와이가 아닌 케냐에서 태어났다. 오바마는 유년 시절을 인도네시아에서 보냈고, 당시 미국 국적을 상실했다. 출생증명서만 공개하면 되는데 하지 않는 걸 보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거다.”

이 같은 오바마 출생 음모론은 2008년 대통령 선거 민주당 경선 때부터 시작했다. 의혹은 2012년 재선 때까지도 이어졌다. 오바마가 2008년 출생증명서를 공개했는데도 불구하고 음모론은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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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2008년 6월 공개한 출생증명서

소위 사진 분석 전문가들은 오바마 선거 캠프가 공개한 사진이 위조됐다고 주장했으며 공개된 출생증명서가 모든 인적 사항이 기재된 것이 아니라 단순한 발급용이라 의심된다고 했다. 한국으로 따지면 주민등록등본이 아니라 초본을 공개했다는 주장이다. 하와이 주당국이 출생증명서를 전산화한 관계로 과거에 발급하던 식의 출생증명서를 더 이상 발급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하와이주 역시 오바마의 비리(?)에 가담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미국은 헌법상 시민권자라도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이상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첫 흑인 대통령 탄생을 막아야겠다는 취지로 생겨난 엉뚱한 선동에 오바마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줄줄이 가담하기 시작했다.

오바마 출생 의혹 제기자(birthers)’들은 의문점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는 사실일 수밖에 없다고 단정했다. 이들은 주요 언론에서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하지 않고 연예 뉴스 다루듯 한다며 메이저 언론도 싸잡아 비판했다.

의혹은 정치권에서 멈추지 않았다. 애리조나주 시골 보안관이 6개월간 민간인과 함께 수사를 벌인 결과 오바마가 하와이 출신이 아닌 게 확실하다는 발표를 하기도 했으며, 한 軍醫官(군의관)은 오바마가 미군 통수권자가 아니라며 아프가니스탄 파병 명령을 따르지 않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법원에 넘겨져 유죄판결을 받았다.

자신들이 거주하는 州에 소송을 제기하는 미국인들도 생겨났다. 대통령 자격이 없는 사람을 어떻게 대통령 후보라며 투표하게 했느냐는 주장이었다. 오바마의 당선 무효를 외치는 사람들도 오바마 본인과 자신들의 거주지를 상대로 訴()를 제기했다. 재판정은 이러한 그들의 주장을 모두 기각하거나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오바마의 무혐의 판결을 내렸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09 7월 오바마 출생 의혹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음모론자들은 그들의 의문을 누구도 공개적으로 반박하지 않는 이유를 아무도 이러한 문제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바마에 대한 각종 소송은 완전히 실패했다. 증거나 주장이 모두 하찮거나 바보 같았기 때문이다. 음모론자들은 그들이 가진 증거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증거라고 주장했었다.”

오바마 출생 음모론의 始初(시초)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대부분의 언론은 2008년 민주당 경선 당시 힐러리 클린턴의 지지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곳곳에 익명의 e메일을 보내면서 시작한 것으로 보도했다. 선거에서 승리할 것으로 확신하던 클린턴은 오바마라는 뜻밖의 경쟁자를 만나 고전하는 상황이었고 일부 클린턴 지지자들은 오바마의 출생에 의혹을 제기해 선거 판도를 바꾸려고 시도했다. 이게 아직도 일부 미국인들이 믿고 있는 오바마 출생 의혹의 출발점이다. 

오바마가 민주당 大選 후보가 되자 음모론은 공화당 지지자로 확산됐다. 내셔널리뷰온라인이라는 보수 사이트에서 음모론은 점점 進化(진화)했다. 이 사이트의 짐 게라티 칼럼니스트는 2008 69일 처음으로 오바마에게 출생증명서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오바마의 중간 이름(middle name)이 후세인이 아니라 무하마드이고 본명은 버락이 아니라 배리다. 버락 오바마 시니어는 버락의 生父(생부)가 아니다라며 출생증명서가 공개만 되면 각종 루머가 사라진다. 출생증명서를 공개하라고 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오바마는 2008 612일 출생증명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의혹 제기자들은 오바마가 공개한 증명서가 全體本(전체본)이 아니라 요약본이기 때문에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오바마가 요약본을 공개한 이유는 하와이주가 더 이상 전체본을 발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혹 제기자들은 공개된 사진이 포토샵을 사용해 위조됐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직인이 보이지 않고 종이의 質(질)이 공식문서라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었다. 그들은 하와이주 보건국이 2001년 전산화하며 더 이상 발급하지 않기로 한 전체본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하와이주 보건국장 치요미 푸킨은 이러한 의혹이 일자 적법한 절차를 통해 출생증명서 원본을 발부했다. 발급하지 않기로 한 이러한 문서(전체본)를 이 경우에만 특별하게 발부하라는 지시를 받은 적도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음모론자들은 하와이 보건국이 과거 문서를 은폐한다. 과거 문서를 분실한 게 확실하다고 주장하며 하와이 보건국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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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2차로 공개한 출생증명서

오바마가 대통령이 당선되고 난 후에도 출생 의혹은 가시지 않았다. 논란이 지속되자 하와이 법무부장관 측 대변인 조슈아 위시는 2011하와이는 과거 출생증명서를 문서보관소에 보관하고 있다. 대통령이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보건국이 이를 공개할 수는 없다. 州法에 따라 이러한 문서를 복사할 수 없다고 밝혔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오바마 대통령은 로레타 푸디 하와이주 보건국장에게 자신의 출생증명서 전체본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했다. 2011 425일 오바마의 참모 주디스 콜리와 푸디 국장이 직접 보건국을 찾아 출생증명서가 복사되는 것을 지켜봤다. 오바마 대통령은 427일 복사본을 기자들에게 전달하고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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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자들은 공개된 출생증명서의 윤곽선, 쉼표, 서명 방식 등을 문제 삼으며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사진이 공개되자 또 다른 컴퓨터 분석 전문가가 등장했다. 그는 보수성향의 사이트 드러지 리포트에 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이 같은 문서를 위조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주장했다. 공개된 문서의 윤곽선이 일직선이 아니라는 것이 그가 의문을 품게 된 이유였다. 또한 오바마가 태어났을 당시인 1961, 인종란에는 과거 아프리카인(African)이라는 표현에서 흑인(Negro)이라고 바뀌었는데 아프리카인이라고 답한 점, 쉼표의 위치와 서명이 어색한 점 등을 발견했다며 위조됐다고 주장했다. 조작됐다고 믿는 사람들은 공개된 출생증명서의 모든 부분이 비상식적이라고 했다.

물론 이 같은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오바마 출생 의혹 제기 선봉에 나선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는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진 후 그래도 내가 출생증명서 공개를 이끌어내는 데 一助(일조)하지 않았는가라고 했다.

이코노미스트誌는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됐고, 또 출생증명서의 요약본을 공개한 뒤 공화당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믿는가라는 질문에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답한 사람은 42%였다. 28%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30%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오바마가 출생증명서 요약본을 공개한 뒤에도 58%가 이를 믿지 않거나 잘 모르겠다는 설명이다. 

출생증명서가 두 번째로 공개된 후인 2011년 5월 실시된 갤럽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18명 중 5%가 ‘오바마는 미국에서 절대 태어나지 않았다라고 답했으며 8%는 ‘아마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을 것’이라고 했다.

오바마의 2008년 대선 당선 이후 공화당 내 보수성향 티파티 지지자들은 각종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출생증명서는 어디 있는가’라는 푯말을 들고나오기도 했다. 이에 중도 성향의 공화당 정치인들은 黨이 분열될 수 있다고 자제를 요구했다.

마이크 캐슬 前 델라웨어 주지사(공화)는 2009년 델라웨어주에서 열린 한 타운홀 미팅에서 오바마의 출생 의혹을 주장하며 소리치는 여성에게  “당신이 오바마 대통령을 얘기하고 있는 거라면 그는 미국의 대통령이 맞다”라는 말을 했다가 야유를 받기도 했다.   

음모론에 빠지는 것은 비단 공화당과 민주당, 우파냐 좌파냐의 문제가 아니다.

911 테러가 발생한 지 6년이 지난 2007년 시행된 설문조사에서 민주당원의 35%가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이 테러 공격을 事前(사전)에 알았다고 답했다. 39%는 사전에 몰랐다, 26%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誌는 2009 820일자 칼럼에서 일부는 부시가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해 직접 테러를 지휘했다고도 믿는다. 이러한 것을 믿으려면 부시가 수천 명의 미국인을 살해하고 이 같은 계획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닉슨이 주거침입죄(: 워터게이트 사건)를 저지른 것도 숨기지 못하는 게 미국이라고 했다.

2013년 기준, F. 케네디 대통령 암살에 리 하비 오스왈드 말고 제3자가 개입했다고 믿는 미국인은 61%에 달했다. 암살이 일어난 지 50년 후, 1988년 법무부의 최종 수사 종결 선언이 25년 지났는데도 말이다.

[ 2019-01-08, 09:2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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