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美學, 남자의 美學, 바이킹의 神話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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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게임, 반지의 제왕, 어벤저스를 즐기려면 그 배경이 되는 북유럽, 특히 바이킹의 생리와 신화를 알 필요가 있다.
왕좌의 게임, 어벤저스, 반지의 제왕을 보면 바이킹이나 北유럽 냄새가 난다. 줄거리, 등장인물, 그들의 성격, 자연풍경(왕좌의 게임은 아이슬란드에서 많이 찍었다)에서. 바그너의 불후의 명작 오페라 '리베룽겐의 반지'도 바이킹 神話에서 영감을 얻었다. 요사이 세계적 히트를 한 만화나 캐릭터도 바이킹 戰士들을 소재로 한 것들이 유난히 많다. 이들의 무자비함과 권력의지, 영웅적 死生觀, 그리고 너그러움, 특히 신화의 거창한 스케일과 深淵 등이 무한한 매력의 소스이다.
一流국가와 보통국가의 가장 큰 차이는 法治이다.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일본 등이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시키는 데 성공한 나라들이다. 대부분의 一流국가는 게르만족이 세운 나라이다. 게르만족은 로마와 싸울 때 야만족으로 분류되었으나 法治 하나는 로마에 못지 않았다. 게르만족의 법치전통이 질서 속의 자유와 안정을 낳고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보장한 셈이다.바이킹도 게르만족의 一派로서 가장 늦게 文明化되었는데 법치로써 일류국가를 만들었다.
  
   미국의 南일리노이 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스웨덴의 역사'(著者 프랭클린 D. 스콧)는 약 700페이지나 된다. 내가 바이킹과 노르만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안 후배 외교관이 구해 준 것이다.
   바이킹과 노르만(프랑스 노르망디에 정착한 바이킹의 후예)은 서기 800~1200년 사이의 약 400년간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를 무대로 드라마틱하고 영웅적인 삶의 자취를 남긴 민족이다. 이 戰士(전사)집단의 활동 범위는 지금의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영국, 아일란드, 아이슬란드, 그린랜드, 캐나다, 러시아, 그리스, 터키(당시는 비잔틴 제국), 이스라엘, 카스피해, 지중해, 北海, 北대서양, 北아프리카, 스페인, 프랑스, 南이탈리아와 시실리에 걸쳤다. 콜럼부스보다 500년 먼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이들이다.
  
   오늘의 영국은 1066년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방에 있던 노르만(바이킹 출신의 정착민) 세력이 바다를 건너가 점령하여 세운 왕조의 후예이다. 비슷한 시기 南이탈리아와 시실리를 점령, 태양의 왕국을 건설, 당대 유럽에서 가장 번영하고 개방적인 나라를 만든 세력도 노르망디에서 원정 온 일단의 戰士들이었다. '러시아'라는 나라도 스웨덴 바이킹이 키에프에서 세운 공국이 母胎(모태)이다. '러시아'라는 말 자체가 바이킹의 '루스'라는 낱말에서 나왔다.
  
   인류역사상 한 민족집단의 에너지가 이처럼 단기간에 대폭발한 예는 흔지 않다. 기원 전 4세기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의 대원정, 7~9세기 이슬람 세력의 팽창, 13세기 몽골 군단의 유라시아 대원정이 비슷한 예일 것이다.
  
   당시 바이킹은 기독교를 믿지 않았다. 거창한 우주관과 용맹한 인생관을 지닌 原始(원시)종교를 따랐다. 바이킹 戰士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긴 덕목은 '남자의 美學', 그리고 명예였다. '스웨덴의 역사'는 바이킹의 인생관을 엿보게 하는, 돌에 새긴 詩를 소개한다.
  
   가축들이 죽는다.
   친척들도 죽는다.
   너도 죽어야 한다.
   내가 아는 한 영원히 살아남을 것은
   죽은 이들 하나 하나의 정정당당한 이름이다.
  
   著者(저자)는 이 시에 담긴 바이킹의 윤리를 이렇게 요약하였다.
   <그들은 영웅적 신념의 소유자들이었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살아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궁극적 결과물이 아니라 어떻게 이 운명적 게임을 감당하였는가였다. 고통은 참아내야 한다, 남을 위해서나 원칙을 위해서가 아니라 운명의 실천을 위하여, 미리 주어진 삶의 목적을 구현하기 위하여. 폭력과 잔인한 행동도 예사로 했다. 이 또한 변명이 필요 없다. 운명이니까.
   그들은 사회적 의무나 도덕적 금기 따위는 무시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안전과 경제적 利害得失(이해득실) 같은 것들은 경멸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이 나쁘고 옳다는 것에 대해선 확실한 기준이 있었다. 그것은 美學이었다. 그들이 한 일들이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할 정도의 이야기꺼리가 된다면 그것은 멋진 것, 그래서 옳은 것이 된다.>
  
   著者는 이런 가치관을 '변명도, 거칠 것도 없는 거친 개인주의'라고 표현했다. 문명사회와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바이킹 사회가 인간관계를 규율하는 정교한 法的 장치를 고안한 것도 개인들이 가진 이런 야성적, 미학적 행동양식을 통제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이런 인생관은 젊은이들의 모험을 장려하고, 여성들의 독립성을 보장하였다. 중세 유럽에서 바이킹 여성들만큼 독립성이 강하였던 나라는 없었다. 오늘날 스칸디나비아 나라의 모범적 남녀 평등도 이런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여성은 재산의 소유권을 가졌고, 집안과 농장의 실질적 운영권도 지녔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서구 여성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천년 전 바이킹 여성이 가졌다는 이야기이다.
  
   바이킹과 노르만에 대한 중세 문명인들의 기록엔 공통점이 있다. 육체는 멋지게 발달하였고, 성격은 용감하며, 너그럽고도 잔인하며 교활하다. 법을 잘 지키고, 명예를 존중하며, 무엇보다도 용감하게 싸우다가 죽는 것을 최고의 美德으로 여긴다. 치졸, 치사, 비겁, 용렬, 옹졸이란 단어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이들이었다.
  
   바이킹 언어에서 유래하는 영어 단어로 버서크(berserk)라는 형용사가 있다. '狂暴(광폭)한'이란 뜻이다. 명사형으로 berserker는 狂戰士(광전사)로 번역된다. 戰場(전쟁)에서 용맹무쌍한 싸움꾼을 일컫는다. 늑대처럼, 곰처럼, 미친 듯이, 그러나 신들린 듯 싸우는 戰士들이다. 미칠 정도로 신나게 싸우다가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 이를 멋진 인생으로 여겼던 이들이 11세기를 前後하여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문명화되었고 지금은 사회복지 제도를 발전시켜 세계에서 삶의 질이 가장 높은 나라를 만들었다. 세계사의 가장 위대한 逆轉劇(역전극) 중 하나이다.
  
   남자의 美學이 실종된 곳이 요사이 한국이다. 막말, 떼쓰기, 폭로, 배신, 저질, 거짓말, 사기, 무례가 배운 층에서 더 기승을 부린다. 이순신의 절대고독, 박정희의 초인적 결단, 김유신의 장엄한 자주정신, 계백의 決戰(결전)의지, 이승만의 자존과 자유, 상삼문의 절개, 안중근의 仁義(인의) 같은 남자의 美學이 우리에게도 있긴 했었다. 요즈음 한국 정치와 언론의 추태는 계급투쟁적 저질 행동 양식에다가 한글專用으로 한국어가 망가지고 思考(사고)체계가 흐트러지고 행동이 그렇게 따라간 것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한글專用엔 미학이 없다. 깊은 생각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학살은 반대세력에 겁을 주기 위하여 이뤄지지만 오히려 반발을 불러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엔 거대한 王宮(왕궁)이 평온한 바다를 내려다 본다. 유럽에서 사용되고 있는 왕궁중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단조롭고 육중하게 보이는 왕궁의 방이 600개가 넘는다.
  
  이 왕궁 정문 앞은 '스톡홀름의 피바다'(Stockholm Bloodbath)라고 불리는 사건이 난 곳인데 기념물이 있다. 이곳이야말로 스웨덴이란 나라의 탄생지이다. 국가가 피바다 한가운데서 태어난 경우이다.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14세기 말부터 덴마크를 중심으로 연방국가를 만들어 살아왔다. 덴마크 王家가 지배자였다. 16세기 초 스웨덴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귀족들이 중심이었다.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2세는 두 차례 진압군을 보냈으나 스웨덴 反軍(반군)에 밀렸다. 세 번째 진압군은 프랑스, 독일, 스코틀랜드 傭兵(용병)들을 포함한 大軍이었다. 스텐 스투레가 지휘하는 스웨덴 반군은 連敗(연패)하였다. 스투레도 부상당한 뒤 죽었다. 스웨덴의 귀족회의는 덴마크 왕이 책임자들에 대한 사면을 약속하면 다시 충성을 맹세하기로 결의하였다. 스투레의 부인이 지휘하는 反軍은 그 뒤에도 스톡홀름에서 抗戰(항전)을 계속하였다. 덴마크의 海軍이 나타나 바다와 육지에서 공격해들어오자 反軍은 사면의 약속을 받고 항복하였다. 1520년 9월7일이었다. 11월1일 스웨덴의 대표자들은 크리스티안 2세에 충성을 다짐하였다. 덴마크 왕이 스웨덴 王位를 세습하는 데도 동의하였다.
  
  11월4일 크리스티안 왕은 트롤레 대주교가 집전한 스웨덴 왕위 즉위식을 올렸다. 그는 스웨덴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통하여서만 다스리겠다는 관례화된 선서도 하였다. 즉위 축하 행사도 사흘간 벌어졌다. 7일 크리스티안 왕은 스웨덴의 지도자들을 궁정의 저녁 회의에 초청하였다. 다음 날 저녁, 덴마크 군인들이 亂入(난입), 스웨덴 지도자들을 끌고 나가 감금하였다. 9일 트롤레 대주교가 주재하는 위원회가 지도자들에게 死刑을 선고하기 시작하였다. 스웨덴 지도자들은 수년 전 덴마크 王家 편인 트롤레 대주교를 쫓아내려는 모의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음모자 명단을 가지고 보복에 나선 것이다.
  
  死刑선고를 받은 이들 가운데는 反軍을 지원한 귀족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바깥으로 끌려나가 참수되거나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틀간 82명의 스웨덴 지도자들이 처형당했다. 크리스티안 왕은 反軍 지도자 스투레와 그의 어린 아들 무덤을 파헤지고 屍身(시신)을 꺼내 불태우게 했다. 이때 처형된 에릭 요한슨의 아들 구스타프 바사는 학살 소식을 듣고는 스웨덴의 북쪽 달라르나 지방으로 피신, 백성들을 상대로 학살의 부당성을 호소하고, 반란군을 조직, 독립전쟁을 일으켜 덴마크 군대를 쳐부순다.
  
  구스타프 바사는 3년간의 전쟁 끝에 덴마크 군대를 무찌르고 1523년 6월24일 스톡홀름에 入城한다. 그 보름 전인 6월6일 그는 議會에서 왕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달아난 트롤레 대주교 자리에 다른 사람을 임명, 교황의 허락을 간청하였으나 교황은 트롤레를 재임명하라고 요구하였다. 이로써 비롯된 분쟁 끝에 구스타파 바사 왕은 가톨릭을 버리고 루터교를 國敎로 택한다. 1525년엔 新約 성경을 번역, 출판하였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그리고 영국의 헨리 8세는 거의 동시에 가톨릭을 버렸다.
  
  재미 있는 것은 1523년, 크리스티안 2세를 몰아내고 王이 된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3세가 루터敎로 改宗하였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덴마크는 피비린내 나는 內戰을 벌인다. 이때 그리스티안 3세는 스웨덴의 구스타프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구스타프는 한때의 敵國이었던 덴마크 왕을 위하여 군대를 보내 新敎軍을 도와준다. 크리스티안 3세는 1521년 神聖로마제국 의회에 마르틴 루터가 나와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는 연설을 하는 것을 보고 감복한 사람이다. 王이 개종하면 국민들도 따라가야 한다. 이렇게 하여 덴마크, 노르웨이(덴마크 속국), 스웨덴(핀란드는 속국)이 비슷한 시기에 루터교를 國敎로 수용하였다.
  
  스칸디나비아 4國이 상업활동과 민주주의를 권장하는 改新敎로 改宗한 것은 이 지역의 향후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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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 노트
  
  *스웨덴 출신의 著名 인사: 노벨, 아바, 잉그리드 버그만, 그레타 가르보, Borg(테니스 스타), 함마슐드
  
  *면적은 45만 평방킬로미터로 유럽연합국 중 프랑스 스페인에 이어 3등이다.
  *인구는 약1000만 명, 세계 4등의 경쟁력을 가진 경제구조, 세계 8등의 무기수출국, 세계 10위권에 항상 들어가는 삶의 질, 1인당 국민소득 세계 17위.
  
  *1814년 이후 전쟁을 한 적이 없다. 1, 2차 전쟁 때는 중립이었다.
  *한국전에 의료지원단을 파견, 병원을 운영하였다. 고아들을 많이 입양한 나라이다.
  *바이킹 전성 시절 스웨덴 지역의 바이킹은 주로 동쪽 및 남쪽으로 진출하였다. 러시아의 출발점이 되는 키에프 공국은 스웨덴 바이킹이 세웠다. '러시아'의 語源인 '루스'도 스웨덴 말이다. 12세기 스웨덴 왕국이 서고, 1397~1523년 사이엔 덴마크 중심의 카르말 연합왕국 소속이었다.
  
  *1523년에 덴마크에서 독립, 노르웨이와 핀란드 지역까지 다스리다가 1905년에 노르웨이가 독립하였다. 1809년엔 핀란드를 러시아에 빼앗겼다.
  *전성기는 17세기 종교전쟁에 개신교 편에서 개입하였던 구스타프 아돌프 왕 시절이었다. 당시 스웨덴의 육군은 유럽 최강이었다. 영토도 러시아, 스페인에 이어 세번째였다. 18세기 초, 북유럽의 패권을 놓고 러시아의 표토르 대제와 싸워 패전함으로써 쇠퇴기에 들었다.
  *국토의 60%가 森林이다. 스웨덴 소톡홀름 근해엔 약2만 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 있다. 인구당 요트 수가 세계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공짜가 안 통한다. 호텔 화장실도 외래인은 공짜로 이용할 수 없다. 하지만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돕는 데는 용감하다. 대체로 냉정한 사람들이란 평이다.
  *유럽연합에 들어갔지만 유로는 쓰지 않는다. 크로나를 쓴다.
  *평양에 대사관이 있다. 미국의 이익을 대표한다.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이 나라에서 열릴지 모른다.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등을 석방하는 교섭을 스웨덴이 중계하는 경우가 많다.
  *음악성이 뛰어나 음반수출액이 연간 8억 달러로서 미국 영국에 이어 세계 3위라고 한다. 아바는 3억8000만 장의 음반을 판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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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히스토리 채널의 연속 드라마 ‘바이킹’엔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오지만 史實(사실)에 충실하다. 8세기 말에서 12세기까지 유럽을 뒤흔든 바이킹-노르만은 용맹하고 잔인하고 영리한 戰士(전사)들이었다. 이들은 유럽 기독교 문명을 공격하다가 기독교화 된다. 문명 파괴자가 문명 건설자로 바뀐다. 천주교의 개혁을 지원하고 십자군 전쟁에 앞장서고 로마네스크 건축 붐을 일으킨다. 그럼에도 바이킹 시절의 野性(야성)과 용맹성은 잃지 않았다. 바이킹-노르만은 정복지를 잘 다스려 一流 국가로 만드는 비상한 재주가 있었다. 이들이 다스린 나라들은 예외 없이 富國强兵의 法治국가가 되었다. 잉글랜드, 시실리 왕국,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아이슬란드 등. 그런 비결의 핵심은 이들의 法治(법치) 정신이었다. 야만 상태에서도 法的 제도와 전통을 유지, 발전시켜간 점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바이킹-노르만의 法(법)에 대한 관점이 독특했다. 그들은 법을, 正義(정의)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보지 않았다. 공동체를 유지하는 질서로 여겼다. 그들의 법 집행은 증거와 證人(증인)을 重視(중시)하고, 매우 실용적이었다. 바이킹은 나쁜 행위가 반드시 나쁜 사람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殺人(살인) 행위에 대한 처벌도 슬기롭게 했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일정한 時限(시한)에 자수하면 정상을 참작하였다. 바이킹 법은 살인한 자는 행위를 한 뒤 만나는 첫 번째 사람에게나 세 집을 지나치기 전에 자수를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살인을 한 뒤 적절한 조치를 취하였을 경우엔 추장이 재판장 역할을 하는 주민회의에서 피살자 가족에 대한 배상을 하는 조건으로 死刑(사형)을 면제해주기도 했다.
  
   사람을 죽이고도 신고하지 않거나 밤에 몰래 죽이는 행위는 용서하지 않았다. 바이킹은 善과 惡보다는 명예와 수치심을 法治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정정당당한 행동을 했느냐의 與否(여부)가 유무죄를 판단하는 데 잣대가 되었다. 예컨대 누군가가 사고를 만나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행위는 살인죄에 준하여 처벌했다. 회식 장소에서 살인이 벌어지면 모든 참석자들은 가해자를 체포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 의무를 다하지 않은 자는 피살자 유족들에게 배상해야 했다. 도둑질을 하다가 발각된 절도범은 죽여도 죄가 되지 않지만 강도를 죽여선 안 된다. 절도는 피해자 몰래 하지만 강도는 面前(면전)에서 이뤄지므로 최소한의 방어 수단은 보장되었다고 판단한 결과이다.
  
   사소한 절도에 대한 처벌법은 통로를 만들어 지나가게 해놓고 마을사람들이 돌을 던지는 것이었다. 이 집단 폭행에서 빠지는 주민에겐 벌금을 물렸다. 범죄자 처벌을 공동체의 의무로 규정한 것이다. 종북세력에 대해서도 한국인이 이런 法的 의무를 지도록 하면 문제 해결이 쉬울 것이다.
  
   법치엔 王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천재지변이 잦고 농사를 망치고 바다에서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 주민들이 굶게 되면 神(신)에게 황소를 잡아 바쳤다. 효과가 없으면 산 사람을 祭物(제물)로 바쳤다. 이것도 소용이 없으면 왕을 祭物(제물)로 바쳤다.
  
   바이킹은 ‘피의 독수리’라는 잔인한 死刑(사형) 집행 의식을 유지하였다. 바이킹이 남긴 詩와 그림에 소개된 방법은 이렇다. 히스토리 채널 시리즈 ‘바이킹’에선 그 장면이 생생하게(처참하게) 방영되었다. 이 사형 방식은 왕이나 주교, 또는 추장과 같은 자가 重罪(중죄)를 범했을 때 적용하였던 것 같다.
  
   사형수의 등을 칼로 갈라 가죽을 벗기고, 등뼈를 드러낸다. 갈비뼈를 부러뜨려 날개처럼 펼친다. 상처엔 소금을 뿌린다. 허파를 등 뒤로 잡아 당겨 어깨 위에 얹어 놓는다. 이 모습이 ‘피로 그린 독수리’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렇게 칼질을 해도 사형수는 비명을 지르지 않아야 한다. 입을 다물고 침묵으로 버티면서 죽어야 바이킹 신화에 나오는 오딘 神(신)을 만날 수 있다. 한번이라도 소리를 질렀다가는 죽어서 좋은 데를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잉글랜드의 캔터베리 대주교, 잉글랜드의 노슴브리아 왕, 노르웨이의 왕자가 이런 형을 받아 죽었다고 전한다.
  
   노르만 戰士(전사) 집단의 이탈리아 남부 정복 역사를 다룬 책 ‘南의 北人’(The Normans in the South, 1016-1130) 著者 존 율리우스 노르위치(John Julius Norwich)는 유럽에서 無法(무법)천지를 만든 노르만과 바이킹이 法治를 세우는 일에 전념하였다는 것은 하나의 파라독스라고 표현했다. 아무리 파렴치한 노르만 지배자라도 아주 독창적인 법과 제도를 만들어내곤 하였다는 것이다. 노르만 戰士들은 국가를 세우는 데는 법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법치를 강화하는 것이 정권을 강하게 만드는 길이라고 계산하였다. 이들은 법을 도덕적으로 보지 않고 실용적으로 인식하였다. 잉글랜드의 노르만 왕 헨리 2세와 시실리의 노르만 王朝 건설자 루제로 왕은 치밀한 법적 제도를 갖추는 데 총력을 경주하였다. 그들은 법을, 관념적 理想(이상)이나 正義(정의)라고 착각하지 않았다. 노르만은 법을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여겼다. 노예는 튼튼할수록 도움이 된다. 법치도 튼튼하게 만들어야 지배자와 공동체에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야만의 바이킹이 유럽 문명의 위대한 遺産(유산)인 法治의 한 건설자가 된 것은 세계사에서 가끔 발견되는 경이로운 逆轉劇(역전극)의 한 幕(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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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만의 美學: 유목민의 경우
  
   '위험한 변경(The Perilous Frontier)'은 북방 유목민족 전문학자 토마스 J.바필드가 쓴 책인데 이런 대목이 있다.
  
   <이 기마유목민족들은 가장 발달된 정착문명인 중국과 인접하여 살면서도 중화적 문화와 이념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속으로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경멸했다. 돔의 천장 같은 광활한 하늘 아래에서 말젖과 말고기를 먹으면서 천막에서 나고 죽고 전쟁과 모험을 동경하는 자신들의 삶이 농경민족보다도 더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목축생활이 유지될 수 있었고 이에 기초한 기만군단의 우세도 계속될 수 있었다.>
  
   高麗史에는 몽골장군 흔도가 고려 장군 金方慶(김방경)에게 한 이런 말이 실려 있다.
  
   <내가 보건대 고려 사람들은 모두 글도 알고 불교를 믿는 것이 漢族(한족)과 유사한데 매양 우리를 멸시하면서 '몽골 사람들은 살륙만 일삼으니 하늘이 그들을 미워할 것이다'라고들 한다. 그러나 하늘이 우리에게 살륙하는 풍속을 준 것이기 때문에 하늘의 뜻에 따라서 그렇게 하는 것에 불과하니 하늘은 그것을 죄로 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그대들이 몽골 사람들에게 굴복하게 된 까닭이다.>
  
   먹물 먹은 사람들에 대한 武士들의 경멸과 '우리식'에 대한 자부심을 담고 있는 흔도의 이 오기서린 일갈은 몽골기마군단의 파괴력이 자라난 정신적 토양, 그리고 그들의 美學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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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세르크(고대 노르드어: berserkr, 영어사전엔 berserk)는 바이킹 전사들 중에서 거의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신들린 것처럼 전투에 임한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베르세르크"라는 표현은 이들이 싸울 때 곰(베르)의 모피로 만든 윗도리(세르크; "셔츠")를 걸쳤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곰은 바이킹의 신 오딘을 상징하는 동물 중 하나였으며, 그 가죽을 걸침으로써 戰士는 곰의 힘과 오딘의 가호를 얻게 된다.
  
  베르세르크라는 말이 등장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9세기 말에 토르뵤른 호른클로피이 미발왕 하랄을 찬양하기 위해 쓴 시 〈하랄드스크베디〉이다. 여기에 하랄 왕의 전사들 중 "울프헤드나르(ulfheðnar), 즉 "늑대 가죽을 뒤집어 쓴 사내들"이 나온다.
  
  
  피를 맛보는 자들아, 내 베르세르크에 대해 묻겠다,
  전투의 뻘흙을 헤치고 들어가는 그 두려움 모르는 협객들이,
  어떤 대접을 받는가?
  그들은 늑대 가죽을 쓴 자라고 불린다. 전투가 벌어지면
   그들은 피투성이 방패를 밀어붙인다.
  피로 물든 붉은 색은 싸움에 임하는 그들의 창날이니.
  그들은 밀집 대형을 이루고.
  적의 방패를 풀처럼 벼히는 그 사내들은
   군주에게 왠지 모를 신뢰를 주는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시인이자 역사가 스노리 스툴루손(1179년 ~ 1241년)은 《윙글링 일족의 사가》에서 다음과 같이 베르세르크를 묘사했다.
  
   <그(오딘)의 사내들은, 갑옷도 입지 않고 앞으로 돌격하여, 마치 미친 개나 늑대처럼 방패를 물어 뜯었으며, 그 힘은 곰이나 들소와 같고, 사람을 단 일격으로 죽였으며, 불도 쇠도 그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베르세르크는 狂戰的으로 번역되는데 미친 듯이 싸울 수 있었던 데는 약물이나 알코올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란 설도 있다.
  
   베르세르크는 일본 만화가에 의하여 캐릭터로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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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그너의 樂劇 '니벨룽겐의 반지'와 영화 어벤저스, 왕좌의 게임 등은 바이킹의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줄거리다. 바이킹 신화엔 오딘과 토르가 主神인데, 오딘은 발키리라는 死神을 부려 용감하게 죽은 戰士들의 영혼을 저승으로 불러들여 살려내고 여기서도 멋대로 먹고 마시고 서로 죽고 죽이는 난장판을 연출한다. Thursday는 Thor(토르)의 날이란 뜻이다.
  
  거창한 모험 이야기를 뜻하는 saga도 바이킹 말이다. law도 바이킹 말이다. 이들은 戰場에선 잔인하였지만 일상에선 법치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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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at Game of Thrones Stole from Norse Mythology
  
  The secret of the HBO show's success is very, very old
  
  
  By Stephen Marche
   Apr 2, 2014
  
  
  
  "Good artists borrow. Great artists steal." If that old saying is true, then George R.R. Martin, author of the Game of Thrones novels, is one of the world's great artists. His theft is amazing in both scope and deftness. He brilliantly integrates material as diverse as the history of the War of the Roses (particularly as Shakespeare interpreted them), legends of the Mongols, and the history of Byzantium. But his secret is Viking stories. That's the key ingredient. Over the course of two centuries, the results have never really varied. Almost nobody reads it today, but if you want to make a mega-hit, you steal from the Volsunga Saga.
  
  You may never have heard of it, but if you consume popular culture of any kind, you've heard stories from the Volsunga Saga. At its heart is the story of Sigmund and his son Sigurd, descendants of the the king of the Volsungs and, slightly further back, Odin. The saga is a story of terrible violence and passion. After Sigmund's father is killed, Sigmund and his brothers are locked into stocks in the forest. Every night a wolf comes and eats one of the brothers. The way Sigmund survives is by putting honey on his mouth, so that when the she-wolf comes to lick it off, he catches her tongue in his mouth and bites it off. I know. Good stuff, right? Other stories will be more familiar: Sigurd fights a dragon who guards an enormous hoard of gold belonging to dwarves. Sigurd promises to marry Brynhild, after rescuing her from a ring of fire.
  
  
  Any story with magic swords, gold hoards, proud warrior women, strong-armed dwarves, evil dragons — all of them owe a debt to the original legends contained in the Volsunga Saga. They are as durable as Bible stories, and have aged much better than Greek or Roman legends. Despite their terrible violence and inherent paganism, the stories have a tendency to fuse easily with Christianity, an early example being the Nibelungenlied, from the thirteenth century, which fused stories of Old Norse legends with those of Christian knights, and was wildly popular.
  
  The ancient stories have an odd way of turning up at essential moments of modernity. The Nibelungenlied was the subject of The Ring of the Nibelungen by Richard Wagner, widely considered the greatest achievement of modern opera. The Nazis, who reinvented mass culture through their politics, took on its aesthetic and managed to turn its ethos of power and horror into mass spectacle. But the greatest modern interpeter of the Norse material — and a man who incidentally refused to permit a German edition of his works during the Nazi period — was J.R.R. Tolkien. The Lord of the Rings, if you count the series as one big novel, is the second most popular novel in history, with worldwide printings of about 150 million copies. Tolkien, besides being a novelist, was also one of the major philologists of his time. He fused stories gathered from a host of Nordic sources, but the Volsunga Saga, and its related work the Elder Edda, were by far the most important. Tolkien could read in Old Norse. He even took some important names straight from the Volsunga Saga.
  
  From Tolkien, the influence of the Volsunga Saga has spread everywhere. And not just in fantasy fiction. The world's biggest MMORPG (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World of Warcraft, has over seven million subscribers and its world of dwarves and elves and constant battles would have been instantly recognizable to Germanic people a millennium ago. The persistence of the stories from the Volsunga Saga is even more incredible when you consider that the groups of fans who follow one strain don't necessarily follow the others. The people who watch Game of Thrones are not at all the same people who are going to see Wagner's Ring of the Nibelungen, even though both are elaborations of the legends originally found in the same source material.
  
  And yet nobody, really, outside of specialists, knows the story itself. You can buy it here. Or you could just watch Game of Thrones this Sunday, because Martin's already taken all the stuff you want anyway. Martin's amazing gift isn't just the range of sources he takes from — it's how he can convert those ancient stories into an organic whole to which millions of people are addicted. Then again, sometimes that's as easy as knowing what stories people have always wanted.
  
  
[ 2019-05-19, 17:1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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