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 사는 가수(歌手)
“아저씨, 노래 하나를 천 번 부르실 수 있어요? 나는 해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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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년 전에 혼자 제주도로 내려간 그를 만났다. 그는 대중의 갈채를 받는 가수였다. 수천명의 환호를 받는 그는 무대 위에서 꿈의 왕자였다. 그는 제주도에서 독특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는 잠수복을 입고 산소탱크를 짊어지고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 물고기가 되어 유영(遊泳)을 했다. 바위섬에 나가 낚시를 드리고 세월을 낚았다고 한다. 별이 밝은 밤이면 환하게 불을 켠 한치잡이 배를 타고 어두운 바다 저쪽으로 나가기도 하고 해안가 호젓한 곳에 캠핑카를 세우고 그 안에서 생활하기도 한다.
  
  그는 자기만의 피난처이자 안식처를 만들어 그곳에서 독특한 삶을 살고 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스타는 어느 순간 그렇게 세상에서 도피해서 다른 세계로 가고 싶은 모양이다. 그는 드론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카메라를 장착한 드론을 날리면 새가 되어 허공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는 기분인 모양이다. 나는 그를 소년시절부터 중년인 지금까지 간간이 보아왔다. 친한 분의 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등학생이던 소년 시절 그를 만났다. 그의 아버지는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아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고등학생이던 그 아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아저씨, 노래 하나를 천 번 부르실 수 있어요? 나는 해요. 천 번이 아니라 한 노래를 진지하게 백 번만이라도 불러보세요. 지겨워서 부르시지 못할 걸요? 그렇게 연습하는 나를 아버지는 삐딱하게 보는 거예요. 제가 율동연습을 하는데 학교 강당에서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밤을 새서 춤을 춰요. 하룻밤 사이에 운동화 바닥이 다 닳아버려요. 완전히 녹초가 될 때까지 연습을 하는 거예요.”
  
  나는 아이의 말에 전율을 느꼈다. 염불을 하는 승려나 도(道)를 닦는 사람들은 만트라라고 해서 한 가지 주문(呪文)을 백번 천번 끊임없이 반복한다. 마음 속을 비우고 공명을 얻어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법이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를 닦는 것 같기도 했다. 수피즘이라는 종교단체는 끝없이 빙빙 도는 춤을 추며 환상의 세계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 아이는 십대 소년시절 벌써 연예 기획사에 스카웃이 됐다. 얼마 가지 않아서 그 아이의 노래를 담은 앨범이 히트를 치고 백만 장이 넘게 팔린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이는 눈부신 스타가 됐다. 어느 날 성인이 되어 버린 그 아이가 이런 말을 했다.
  
  “저 정말 죽을 지경이에요. 어디 아파서 병원에라도 입원했으면 좋겠어요.”
  “왜 그러는데? 이제 모두가 부러워하는 스타잖아?”
  내가 물었다.
  
  “기획사에서 숨돌릴 틈 없이 출연 스케줄을 짜 놨어요. 한 방송이 끝나면 다른 방송사 무대로 가야 해요. 차들이 막히면 출연시간에 맞추기 위해 퀵 서비스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가기도 하고 더 급하면 앰뷸런스를 타고 가요. 앰뷸런스가 방송국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방송국 근처에서 내려서 기타를 짊어지고 달리기를 해요. 그렇게 헐떡거리면서 방송국에 도착하면 피디나 가수선배들은 인기가 좀 올라갔다고 건방져졌다고 하면서 못마땅한 표정들을 짓죠. 밤에도 마찬가지에요. 하룻밤에 나이트클럽 여섯 군데나 돌아다녀야 해요. 밥은 그때그때 틈 있을 때 차 안에서 컵라면이나 김밥으로 때워요. 잠이나 제대로 자 봤으면 좋겠어요. 완전히 나는 노래하는 노예예요. 그런 노래는 재미도 없어요. 입원 외에는 도망갈 방법이 없어요.”
  
  어느 순간 그는 자신을 묶고 있던 계약의 사슬을 끊고 나왔다. 그는 혼자 제주도의 한적한 곳으로 집을 옮겼다. 대중스타가 되면 세상은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 것 같았다. 그가 이런 하소연을 하는 걸 들었다.
  
  “여기서도 괴롭힘을 당하고 있어요. 섬에 관광을 온 사람들이 가이드가 연예인 누가 산다고 하면 꼭 우리집까지 와서 현물을 확인하는 거에요. 소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창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모르는 얼굴들이 나를 쳐다보는 거에요. 그러면서 마치 동물이라도 보듯 ‘여기 있다’라고 소리치는 거예요.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죠. 화를 낼 수도 없고 그 사람들을 집에 들여 대접할 수도 없어요. 갈 때도 그냥들 가지 않고 정원에 둔 걸 하나씩 마음대로 가져가는 거에요. 팬들이라는 사람들이 그래요.”
  
  그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이름없는 존재일 때는 사람들은 모두 유명해지고 싶어한다. 유명해지면 이번에는 사람들을 피해 혼자이고 싶어지나 보다. 그래서 집을 산꼭대기에 짓지 말고 골짜기에 지으라고 했다. 유명해진다는 것은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가 바다를 좋아하는 것도 그런 마음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그는 인기라는 마약에 취하지 않고 자신의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존재를 빨리 찾은 것 같았다
  
  
  
[ 2019-06-06, 09:4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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