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렉 스칼라튜 칼럼> 짐바브웨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 사망
무가베와 차우셰스쿠, 김일성은 주민들을 굶기고 인권을 무시하면서도 자신의 숭배에 열을 올려 나라의 부족한 자원을 탕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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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지난 9월 6일 아프리카 짐바브웨 정권을 37년 동안 독재로 장악했던 95세 로머트 무가베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가베는 젊은 시절 짐바브웨의 혁명가와 독립운동가였는데 결국 독재자가 되면서 자신의 나라를 망친 인물이었습니다. 2년 전 2017년 11월 15일 짐바브웨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습니다. 쿠데타가 일어난 이유는 37년 동안 정권을 잡은 당시 93세인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영부인인 그레이스 무가베에게 정권을 이양하기 위해 군 출신 부통령을 경질하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짐바브웨 국민들이 무가베의 독재에 의해 굶주림과 가난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영부인 그레이스 무가베는 해외에서 수백만 달러를 낭비하면서 비싼 사치품을 사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이탈리아 브랜드 ‘구찌’를 포함한 비싼 상표를 좋아하는 그레이스 무가베의 별명은 ‘구찌 그레이스’라고 지었습니다.
  
  무가베 정권하의 짐바브웨는 너무나 가난해서 ‘아프리카의 북한’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짐바브웨는 북한에서 ‘로므니아로’ 알려진 동유럽의 루마니아와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짐바브웨와 루마니아는 과거 비교적 부유한 나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루마니아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1971년 북한을 처음 방문한 후, 또 짐바브웨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가 1980년 북한을 처음 방문한 후, 둘 다 북한식 주체사상, 십대원칙, 김일성 신격화에 첫눈에 반한 나머지 자신의 나라를 북한과 같은 독재 국가로 바꿔 놓으려 했습니다.
  
  짐바브웨는 예전에 상대적으로 부유한 곡창지대 국가였지만, 37년 동안 정권을 잡은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가 짐바브웨를 공산주의 국가로 만들려다 나라의 경제를 완전히 망쳐놓고 말았습니다. 짐바브웨는 독재자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처형하며 아프리카 국가 중 정치 탄압과 인권 유린이 가장 심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짐바브웨 사람들은 먹을 것조차 없어 남아프리카공화국과 같은 이웃 나라로 피난갔습니다. 1983년 북한으로부터 훈련받았던 짐바브웨 군인들은 무가베의 명령에 의해 수만 명의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했습니다. 무가베 독재정권을 강화시키기 위한 그 대학살은 ‘마타벨레랜드 대학살’(Matabeleland Massacre)로 알려져 있습니다.
  
  짐바브웨가 아프리카 나라들 중 가장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개인숭배를 모방해 무가베 대통령의 생일을 북한의 태양절처럼 많은 돈을 낭비하며 화려하게 지냈습니다. 냉전 시대 때 루마니아도 김일성의 북한과 많이 비슷했습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이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내 엘레나를 찬양하는 연주회나 무용을 관람하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루마니아의 독재자는 사냥을 엄청 좋아했습니다. 그는 특히 1971년 북한을 방문 뒤 북한식 개인 숭배에 매혹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와 짐바브웨의 무가베가 북한식 공산주의 독재자 숭배를 그렇게 좋아했을까요? 인류 역사에는 독재자들이 많았지만, 북한식 개인 숭배가 가장 심하면서 거의 종교와 같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저도 그것이 항상 궁금하여, 몇년 전 차우셰스쿠와 같이 북한을 방문하며 루마니아-북한 정상회담 때 통역을 맡았던 그당시 루마니아 외교관과 고위 간부이던 분에게 직접 물어본 일이 있습니다. 그 김일성 대학 출신인 루마니아 외교관의 말로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차우셰스쿠도 북한의 김일성처럼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싶어했습니다. 차우셰스쿠는 북한처럼 루마니아식 '주체' 사상을 통해 독재자의 절대적 권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둘째, 북한식 개인 숭배는 독재자의 가족까지 숭배하기 때문입니다. 독재자 남편과 함께 북한을 방문한 후 엘레나는 루마니아의 정치 무대에서 오지랖을 넓히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루마니아에서의 개인 숭배는 차우셰스쿠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와 막내아들에게 이어졌습니다.
  
  셋째, 평양의 웅장한 도로와 군중 때문입니다. 평양에서 독재자를 숭배하기 위해 만든 도시에 감명받은 차우셰스쿠도 루마니아의 수도 부꾸레쉬띠(부카레스트)를 그런 도시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차우셰스쿠가 가장 좋아한 것은 구호를 외치는 군중 앞에서 연설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일성은 그것을 알고 차우셰스쿠가 방북할 때 수만 명의 주민을 모아 그들 앞에서 연설을 할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차우셰스쿠는 많은 나라를 방문했지만, 북한을 방문하는 것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무가베와 차우셰스쿠, 김일성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세 사람은 각각 짐바브웨식, 루마니아식과 북한식의 주체 사상을 설교하며, 절대적 공산체제로 국민을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주민들을 굶기고 그들의 인권을 무시하면서도 항상 자신의 숭배에 열을 올려 나라의 부족한 자원을 탕진했습니다. 차우셰스쿠와 김일성은 아들인 니쿠와 김정일이 권력을 세습하는 것을 바랐습니다. 무가베는 아내인 그레이스에게 권력을 넘기려 했습니다.
  
  물론 차우셰스쿠와 무가베, 김일성의 차이점도 있습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와 그의 아내는 1989년 12월 유혈 반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 사형을 당했으며 막내아들은 간암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무가베는 군사쿠데타에 의해 권력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김씨 일가는 아직까지 생존한 것뿐만 아니라, 1994년 7월, 2011년 12월, 두 번이나 권력세습을 이뤘습니다. 루마니아는 정치경제 개혁과 자유민주주의 길을 선택하여 유럽연합과 북대서양 조약기구에 가입했습니다. 무가베 독재 정권을 제거한 짐바브웨도 상황이 아직까지 너무나 어렵지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북한의 김정은은 아버지와 할아버지 유산을 유지해 왔습니다. 북한의 얼마 없는 자원을 핵과 미사일개발에 낭비하며 주민의 고통, 식량 부족, 인권 유린과 위협적인 외교정책으로 악명 높은 ‘불량 지도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21세기에도 김씨 일가 정권에 의해 비인간적 반인륜 범죄가 계속 자행되고 있으며 북한은 세계적으로 인권상황이 가장 열악한 국가입니다.
  
  무가베 사망, 또한 2년 전 짐바브웨 쿠데타를 생각하면서 독재자와 독재체제가 영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또한 북한이 김일성의 제자들이던 차우셰스쿠와 무가베 정권의 붕괴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 2019-09-11, 04:1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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