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아이들’과 닥터 지바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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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25일 명동 CGV에서 김덕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김일성의 아이들'을 보았다. 1시간30분의 비교적 긴 상영시간인데도 지루하지 않았다. 다큐로 만든 '닥터 지바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혁명과 전쟁 속에서 꽃피는 애잔한 사랑 이야기. 한국전쟁,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동구권의 반공봉기, 김일성 우상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북한고아들의 이야기이다. 1950년대 김일성이 동구로 보낸 전쟁 고아 5000명의 삶과 귀환과정을 추적한 이야기이다. 실제로는 1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 영화엔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불멸의 러브 스토리를 닮은 이야기가 핵심이다.

 1950년대 초반 당시 갓 스무살이던 제오르제타 미르초유는 루마니아로 온 북한 아이들 위탁 교육 담당 교사였다. 그녀는 북한 고아학교 교장 조정호씨와 사랑에 빠졌다. 1957년 결혼, 딸까지 낳았다.    

 

 혁명에 삼켜진 라라(줄리 클리스티)와 지바고(오마 샤리프)의 애절한 사랑처럼 루마니아의 한 여교사와 북한 교장 사이에 있었던 사랑도 비극으로 끝난다.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갔지만 김일성 우상화와 외국인 배척(이것도 주체사상이란다)의 狂氣(광기)에 견디지 못하고 딸을 품고 단신 루마니아로 돌아온다. 생이별한 그녀는 북한의 남편과도 연락이 두절된다. 북한당국은 사망하였다고 하지만 여인은 믿지 않고 지금도 재회를 기다린다. 그녀가 남편의 숨결을 느끼면서 만든 것이 한국어-루마니아 사전! 이 대목에서 영화는 절정을 이룬다.

루마니아, 폴란드, 체코, 헝가리 등에서 북한의 전쟁고아들은 특수학교를 다니면서 행복하였다. 스탈린의 지시로 이들 나라에서는 아이들을 잘 대우하였다. 북한은 교사들을 보내 역사와 사상을 직접 가르치고 김일성의 유겐트로 양성하였다. 그래도 북한보다는 인간의 숨결이 남아 있는 동구였다. 친구가 된 동구 아이들, 고아들을 자식처럼 아껴준 교사들과 학부모들, 그들은 1956년 이후 홀연히 사라진 고아들을 아직도 기억한다. 고아들이 불렀던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기억에서 끄집어내 부르기도 했다.

김덕영 감독은 휴머니즘으로 접근했는데, 김일성의 실체와 만났다고 술회한다. 이른바 주체사상의 기원과 광신을 확인한 것이다. 그는 '개인우상화는 1950년대에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북한 국기에 김일성의 얼굴을 새긴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지구상의 어느 나라도 국기에 독재자의 얼굴을 그려넣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김일성의 아이들을 찍은 흑백 사진과 동영상을 중심으로 이어가는데 동구의 오늘날 풍경을 대조시킨다. 들판, 숲, 古城, 설경이 '닥터 지바고'의 풍경을 연상시키고 흑백 필름과 아름다운 대조를 이룬다. 역사를 다룬 서사시, 사랑을 다룬 서정시가 만났다.

1956년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연설은 세계 공산주의를 뒤흔들었다. 북한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틈타 김일성을 몰아내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김일성은 무자비한 숙청으로 대응했다. 공산세계에 불어닥친 解氷(해빙)의 바람, 이 틈을 탄 폴란드와 헝가리 봉기, 겁을 먹은 김일성은 체제 단속을 강화하고 동구권에서 자유를 맛본 고아들을 송환한다. 여기서 비극이 시작된다.  

북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자유와 인간애를 누렸던 아이들은 돌아가기 전 여러 흔적들을 남긴다. 앨범, 감사의 편지, 기념물 등. 이들이 돌아가는 영상은 가슴을 저미게 한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김일성 전체주의 체제. 이들 고아는 북한에 도착하자 마자 분산되었다고 한다. 몰려 다니면 외부정보를 확산시킬까 겁이 났던 것이다. 그래도 한동안은 동구의 친구들과 교사들에게 편지를 보낼 순 있었다. 그 편지엔 물건을 보내달라는 애원, 어느 고아는 고향(동구)으로 돌아간다면서 걸어서 한만접경지대를 넘었다가 물에 빠져죽었다는 이야기 등.

그리고 소식이 끊어졌다. 김덕영 감독은 2004년부터 고아들의 기억을 찾아 동구를 헤매고 다녔다. 문서, 편지, 그리고 친구와 교사들, 양부모들의 가슴과 머리에 새겨진 기억들을 재생하였다. 영화는 그 안에 몇 편의 소설감을 품고 있다. 스토리가 이어지니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었다. 영화를 보고 그냥 집으로 돌아올 수 없어 같이 본 사람과 커피숍에 가서 담소를 하며 감동을 나눴다.

고아들의 얼굴은 의외로 밝다. 그만큼 동구가 북한보다 자유로웠다는 이야기이다. 동구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화되었지만 아이들에게 베풀 인정까지 메마르진 않았다. 김일성의 아이들이 북한으로 귀환하여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철저한 연락두절! 이렇게 인간관계를 단절하는 정권은 지구상에서 김일성 집단뿐이다. 동구 사람들의 훈훈한 인정과 북한정권의 악마성이 대비된다. 

북한에서도 잊혀진 고아들 이야기, 세계 최초의 발굴이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김덕영 감독은 '고아들을 귀환시키고 문을 꽁꽁 닫아걸면서 김일성 우상화로 치닫기 시작한 1956년이 오늘의 북한을 예약한 느낌이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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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웃지 않는 의사 지바고를 연기하였던 이집트 출신 배우 오마 샤리프(Omar Sharif)가 2015년 7월에 카이로의 한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향년 83세.
 그해 5월 외아들 타렉 엘 샤리프는 부친이 치매로 투병중이라는 사실을 스페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었다. 닥터 지바고의 상대역(라라)이었던 영국배우 줄리 크리스티는 약한 기억 상실증을 겪었지만 당시 75세로 건재.  
 오마 샤리프는 유명한 이집트 여배우 파텐 하마마와 결혼하였다가 이혼한 뒤엔 재혼하지 않았다. 하마마는 절대로 키스하지 않는 배우로 유명하였는데, 오마 샤리프가 처음으로 출연한 영화에서 그와 키스를 하였고,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결혼하였다. 하마마는 2015년 1월에 84세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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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년 전 sbs에서 방영한 심야영화 '닥터 지바고'를 새벽 3시 넘어까지 보았습니다. 아마도 여섯 번째로 본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도 끝까지 보게 하는 이 영화의 마력이 무엇인지?
 닥터 지바고는 舊소련 소설가 파스테르나크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기초로 한 영화입니다. 파스테르나크는 소련정부의 압력으로 수상현장에 가지 못했습니다. 이 소설은 자전적 내용이라고 합니다. 여주인공 줄리 크리스티가 맡은 연인 라라의 모델이 된 사람도 실존했다고 합니다. 공산주의 혁명에 비판적인 이런 소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1950년대 흐루시초프 시절 스탈린 격하 운동이 시작되면서 암흑기에 대한 어느 정도의 언론자유가 허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중학교 시절인 1960년대 초에 번역된 이 소설을 읽었습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1969년으로서 공군 졸병 시절에 휴가나와서입니다. 그 뒤 텔레비전에서 재방영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한 1년 있을 때도 재방영을 끝까지 봤습니다. 이 영화처럼 재방영을 여러 번 한 영화도 달리 없을 것입니다. 재방영을 볼 때마다 새로운 각도에서 더욱 깊은 감동을 느끼게 하는 신비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羅寬中(나관중)의 三國志를 소년 때 읽은 감동과 어른 때 읽은 감동이 다른 것처럼 닥터 지바고는 결혼 전에 보았을 때, 연애 시절 보았을 때, 결혼한 뒤 보았을 때, 아이를 결혼시키고 보았을 때, 외손자를 본 뒤 보았을 때(어제밤의 저처럼) 느낌이 다 다를 것입니다.

이 영화는 悲戀(비련)의 이야기를 러시아 혁명이란 역사의 무대에 올려놓은 大作이지요. 데이비드 린 감독은 [콰이강의 다리][아라비아의 로렌스][인도의 길] 같은 역사물을 장대한 배경에 담아내는 巨匠인데 닥터 지바고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공산혁명을 雪原에 깔고 시인이자 의사인 지바고(오마 샤리프)와 라라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그 위에 그린 서사시이자 서정시로 영상화되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은 라라가 탄 마차가 눈덮인 들판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끝까지 보기 위하여 지바고가 2층의 창문을 깨고 머리를 내미는 장면일 것입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장면은 너무 처절합니다. 그 이별 8년 뒤 지바고는 모스크바에서 전차를 타고 가다가 걸어가는 라라를 봅니다. 심장병을 갖고 있던 그는 전차에서 내려서 라라를 부르지만 라라는 못알아 듣고 걸어갑니다. 그녀를 비틀비틀 따라가다가 심장마비를 일으키면서 쓰러지는 장면, 그것도 모르고 계속 걸어가면서 사라지는 라라의 뒷모습. 저는 감독이 여기서 라라 비슷한 여자를 내세워 지바고가 다른 여자를 라라로 오인한 것처럼 처리했더라면 덜 잔인하였을 텐데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여러 번 보면서 저는 이 영화가 역사적 현장을 자연스럽게 살려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부자연한 장면이나 연결이 없이, 그때는 그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혁명기가 만들어내는 여러 형의 인간군상-무자비한 혁명가, 따뜻한 혁명가, 도태되는 구질서의 인간들, 현모양처, 요령 좋은 인간, 차가운 정치장교, 인간적 체취를 가진 빨치산 대장 등-이 살아서 움직입니다. 옷, 장비, 배경 등 관중들이 러시아 혁명의 현장 속에 있는 것 같은 실감, 그래서 여러 번 보아도 지겹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007 위기일발, 벤허 같은 영화를 요사이 보면 전개가 너무 느려서 도저히 끝까지 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장면들이 어색하고 대화가 너무 산만해서 그럴 것입니다. 반면에 카사블랑카(잉그리드 버그만, 험프리 보가트) 같은 영화는 요사이 보아도 전개가 빠르고 어색한 점이 없어 끝끼지 긴장감을 갖게 합니다.

역시 名畵(명화)는 세월의 도전을 극복하고 생동감과 감동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모양입니다. '닥터 지바고'가 세월이 갈수록 더욱 빛나는 이유는, 혁명가와 시인, 학살과 사랑, 雪原과 戰場의 대조가 서사시적인 영상으로 우리 뇌리에 오래 남는 덕분이겠지요. 특히 全篇을 흐르는 배경음악인 [라라의 테마(Somewhere my love)]의 哀調(애조)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적시기도 하고 쥐어뜯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성공에는 알렉 기네스(지바고의 형), 제럴딘 체프린(지바고의 처), 로드 스타이거(라라의 의붓아버지) 같은 세계적인 배우의 功이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라라로 나온 줄리 클리스티의 연기입니다.

열정과 욕정을 담은 불타는 눈과 입술, 성깔 있는 단호한 목소리, 육체적 욕망과 따로 노는 정신적 지조, 이런 것들을 한 女性像 안에 담고 있는 그녀는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헵번처럼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인의 연인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지바고와 라라 사이에 여러 번의 이별과 만남이 있습니다. 간호사와 의사로서 戰場을 누비다가 헤어지고, 혁명의 한복판에서 도서관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만 임신한 아내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받은 지바고가 라라에게 '관계 단절'을 선언하고 돌아오다가 빨치산에 잡혀 헤어집니다. 빨치산 종군 의사로 일하다가 탈출하여 다시 라라와 만나고, 그 라라를 다시 떠나보내고, 마지막으로 모스크바에서 걸어가는 라라를 뒤쫓다가 쓰러집니다.

 이 영화에는 잊을 수 없는, 놓칠 수 없는 장면들이 참 많습니다.
 비밀경찰이 언제 두 사람을 붙들어 처형장으로 보낼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나날들 속에서 그 마지막의 생을 의미있게 살자면서, 오직 사랑의 熱氣(열기)로써 서로를 데우면서, 겨울밤의 늑대 울음을 들으면서 詩를 쓰고 라라를 쓰는 지바고. 운명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순간을 예감한 절박한 삶 속의 詩作, 그 작업도 포기하고 운명을 기다릴 때 찾아온 한 사나이의 제안…
  여러 차례의 이별과 만남이 이 영화의 주된 흐름입니다. 혁명이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격동기에 펼쳐진 哀戀(애련이랄까 悲戀(비련)이랄까. 인간을 역사적 존재로 설정한 영화이기 때문에 닥터 지바고는 그런 사랑 이야기에도 무게가 더해집니다. 다음 재방영 때도 저는 아마도 또 밤을 새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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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닥터 지바고 제작 秘話


 며칠 전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데이비드 린 감독의 명화 '닥터 지바고'가 만들어진 내막을 소개한 프로를 보았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영국사람이다. 콰이강의 다리, 아라비아의 로렌스, 닥터 지바고, 제3의 사나이, 인도로 가는 길 등 大作을 찍었다.

 닥터 지바고는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초에 찍혀졌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에게 '이 영화에는 이념을 담지 말고 사랑과 인간을 담으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닥터 지바고는 시인이기도 한데 이 역을 맡은 오마 샤리프는 데이비드 린 감독으로부터 이런 주문을 받았다고 한다.

 '당신은 연기할 생각을 하지 말라.'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오마 샤리프는 울고 웃고 하는 연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표정이 거의 없거나 극도로 절제한다. 이런 무연기를 부탁한 것이다. 오마 샤리프는 영화를 찍던 중에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린 감독에게 '이렇게 해도 되는 거냐'고 물었다. 린 감독은 말했다.

 '정말 나를 못믿겠단 말인가.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이 영화를 본 사람은 결국 당신만을 기억할 거야.'

 닥터 지바고를 보고나면 남는 인상은 역시 오마 샤리프의 눈동자 연기이다. 그는 말 없이 눈으로 연기한다. 憂愁에 찬 눈동자, 라라에 대한 애잔한 사랑이 깃든 눈동자,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스며 있는 눈동자, 비밀경찰의 감시망이 좁혀오는 것을 느끼면서 라라와의 마지막 나날들을 절박하게 보내는 초조한 눈동자, 그런 것들이 殘影(잔영)으로 남는다. 연기가 지나치면 관객들은 싫증이 난다. 연기가 적당하면 관객들은 만족한다. 연기가 절제되어 좀 모자란 것 같으면 그 아쉬움이 가슴에 오래 남는다.

 라라 役을 맡은 줄리 크리스티는 행운이었다. 이 영화 제작자인 이탈리아인 폰티가 부인 소피아 로렌을 데이이드 린 감독에게 추천하였으나 린은 로렌이 너무 몸이 크다면서 거절하고 크리스티를 썼다.  지바고의 본처 役으로는 오드리 헵번이 추천되기도 하였다.


 닥터 지바고에는 대평원과 눈덮인 雪原이 나온다. 어디서 찍었을까? 핀란드? 캐나다? 놀랍게도 스페인이다(부분적으로 필란드와 캐나다에서 찍기도 했다). 마드리드 북부 지방에 모스크바 시내를 본뜬 세트장을 지어놓고 찍었다고 한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평균 해발 고도가 가장 높다. 평균 600미터이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오는 곳도 있다. 황량한 대륙의 기분이 나는 곳이기도 하다.

 마드리드 근교에서 러시아 혁명 장면을 찍을 때의 에피소드. 붉은 혁명을 일으킨 군중들이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주제가인 '인터내셔널'을 합창했다. 엑스트라로 동원된 스페인 사람들은 이 노래를 아주 잘 불렀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스페인 內戰 때 좌익 공화파쪽에 섰던 사람들이나 2세들이 많이 있었던 것이다. 난데 없이 불순한 노래가 울려나오자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노래를 들은 이웃 마을에선 '프랑코가 죽은 모양이다'고 좋아했다고도 한다. 닥터 지바고의 마지막 장면은 댐이다. 이 댐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국경에 있는 알데아다빌라 댐으로서 높이가 140m이다. 마지막 장면은 댐 위로 무지개가 걸리는 것인데, 공산주의의 미래를 밝게 그린 것이라고 말이 많았다. 원작을 시나리오로 바꾸는 데 영국 공산당 출신자가 참여하였다는 지적도 받았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정치엔 무관심한 이였다.  

 이 영화에는 오마 샤리프 妻族이 탄 기차가 시베리아로 달리는데 한 어머니가 아기를 데리고 달려와 겨우 타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자세히 보면 어머니가 기차를 타기 직전에 차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면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 다음 기차 안에 탄 사람의 손에 이끌려 올라간다. 실제 촬영에서 이 어머니는 기차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크게 다쳤다고 한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그 장면을 그대로 영화에 쓴 것이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오로지 영화밖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주인공과 조연들의 옷 색깔도 린 감독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기차 기관차의 색깔을 붉게 칠한 것도 혁명을 상징하기 위함이었으며 戰線에서 간호부 라라가 떠나고 홀로 남은 유리(오마 샤리프)의 뒷모습, 그 옆에 놓여 있던 해바라기의 잎사귀가 하나 둘 떨어지는 장면은 유리의 마음속에서 터지는 울음을 상징하였다.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는 혹평도 많았다고 한다. 너무 길다는 게 주된 비판 포인트였다. 이 영화는 '사운드 오브 뮤직'과 같은 해에 개봉되었다. 오스카상은 '사운드 오브 뮤직'이 더 많이 받았다. 닥터 지바고의 주제가 '라라의 테마'는 러시아 전통 현악기의, 가슴을 쥐어 뜯는 듯한 애절한 멜로디로 유명하다. 이 노래는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았다.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러시아 음악인들과 교향악단의 협주로 녹음된 곡인데 작곡가는 프랑스 사람이다.  소설 닥터 지바고가 러시아에서 출판이 허용된 것은 1988년이고 영화가 상영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였다.

 '닥터 지바고'는 세월이 흐를수록 호평이 높아져 미국 영화 연구소는 미국 영화중 歷代 39등으로 꼽았다. 돈을 많이 벌기로는 역대 8등이다.
 
 1등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34억 달러
 2등: 아바타, 30억 달러
 3등: 스타 워즈, 28억 달러
 4등: 타이타닉, 25억 달러
 5등: 사운드 오브 뮤직, 24억 달러
 6등: ET, 23억 달러
 7등: 十戒, 22억 달러  
 8등: 닥터 지바고, 21억 달러
 9등: 조스, 20억 달러
 10등: 백설공주, 18억 달러
 

 

[ 2020-06-27, 18: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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