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이 경제를 발전시킨다
반공자유-교양영어(10): Profit and the public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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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t and the public good: Companies that merely compete and prosper make society better off (The Economist February 5th 2005)
이익과 공익: 단순히 경쟁하고 번영하는 회사가 사회를 더 부유하게 만든다
  
  *해설: 이기심이 경제를 발전시킨다
  
  냉전 시대 소련은 거의 매년 식량이 부족하였다. 유라시아에 걸쳐 뻗어 있는 무한대의 대평원이 있어도 식량이 모자라서 해마다 인민들이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 1920년대 말에는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지역에서 수백만이 굶어 죽었고 전국적으로는 1500만 이상이 餓死(아사)하는 참사가 일어났었다. 토지국유화와 집단농장 때문이었다. 개인은 원칙적으로 농지를 가질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활동의 자유도 없었다. 시간이 가면서 농민들이 농사일에 소극적으로 되어 갔다. 근로의욕을 상실하게 되었다. 자기 땅도 아니고 생산을 많이 하여도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았다.
  
  농부들은 물론 간부들도 농장에 출근하여 시간만 적당히 때웠다. 아침부터 술판을 벌리기도 하였다. 파종할 때는 눈에 띄는 도로 옆에만 씨를 뿌리고 나머지는 강물에 버리기도 하였다. 비료도 강물에 쏟아 버렸다. 심지어 트랙터 같은 농기계를 파손하기도 하였다. 상황이 이러니 당과 정부에서 아무리 독려하여도 농업생산량이 제자리에 머물거나 목표미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소련은 만성적 식량부족국가가 되었다. 해외에서 식량을 구하지 못하면 인민이 굶주릴 수밖에 없는 나라가 되었다.
  
  미국은 1년 농사를 지으면 전 국민이 3년을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생산되는 농업대국이다. 미국농업의 가장 골치 아픈 문제 중의 하나는 과잉생산이다. 때문에 정부에서는 보조금을 주어서 농민들로 하여금 땅의 일부를 休耕(휴경)하도록 한다. 땅을 놀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농민들은 소유 토지 중에서 생산여건이 다른 것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모자라는 부분은 놀리며 보조금을 챙기고 나머지 땅에는 전 보다도 비료도 더 많이 주고 김도 더 많이 매서 생산량은 전과 똑같거나 더 많게 한다. 그래서 미국의 농업문제는 해결하기가 어렵다. 항상 식량이 남아돌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의 가장 큰 관심사 중의 하나는 식량의 해외수출이다. 식량 가격의 폭락을 막아서 농민들의 불만을 달래야 하기 때문이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은 식량문제에서만은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다. 소련은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에 식량을 팔아달라고 구걸하였고 미국은 선심 쓰듯이 남아도는 식량을 팔았다. 냉전이 열전으로 비화 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사정이었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소련이 망하고 러시아가 태어났다. 집단농장은 해체되고 땅은 다시 개인소유가 되었다. 그래서 러시아는 帝政(제정) 러시아 때처럼 지금 다시 유럽의 곡물창고가 되었고 그때처럼 다시 세계 최대 식량수출국 중 하나가 되었다. 백성들은 적어도 양식만은 걱정 없이 배부르게 먹고 살게 되었다. 국민 개개인에게 경제적 자유를 주면 이런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다.
  
  
  10-1-64
  Adam Smith, you might say, wrote the book on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It is entitled, "Wealth of Nation".
  
  “Every individual necessarily labours to render the annual revenue of the society as great as he can. He generally, indeed, neither intends to promote the public interest, nor knows how much he is promoting it...he intends only his own gain, and he is in this, as in many other cases, led by an invisible hand to promote an end which was no part of his intention. Nor is it always the worse for the society that it was no part of it. By pursuing his own interest he frequently promote that of the society more effectually than when he really intends to promote it. I have never known much good done by those who affected to trade for the public good.
  
  It is not from the benevolence of the butcher, the brewer, or the baker, that we expect our dinner, but from their regard to their own interest. We address ourselves, not to their humanity but to their self-love, and never talk to them of our own necessities but of their advantages. “
  
   Adam Smith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책을 썼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책은 “국부론”이라고 稱(칭)한다.
  
  “모든 개인은 필연적으로 일을 해서 사회의 연간소득을 가능한 한 크게 만든다. 진실로 개인은 일반적으로 共益(공익)을 증대하려고 의도하지도 않고 공익을 얼마나 증대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이득만 의도하며 그리고 다른 모든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런 의도에서 그의 의도에는 조금도(no part) 없었던 목적을 증대시키도록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이끌려진다. 그의 의도(it)가 공공의 목적(it)을 위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는 것이 사회를 위해서 항상 더 나쁜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 의해서 개인은 사회의 이익을 실제로 증대하려고 의도할 때보다도 빈번하게 더 효율적으로 사회의 이익을 증대하게 된다. 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였던(그렇게 가장했던, affected) 사람들에 의해서 많은 좋은 일(much good)이 해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저녁 먹기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과 釀造者(양조자) 또는 제빵업자들의 자선 때문이 아니고 그들 자신의 이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애(humanity)가 아닌 그들의 이기심(self-love)에만 관심을 두며 우리 자신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결코 말하지 않고 그들의 이익에 대해서만 말한다.
  
  
  10-2-65
  Smith did not worship selfishness. He regarded benevolence as admirable, as a great virtue, and he saw the instinct for sympathy toward one's fellow man as the foundation on which civilised conduct is built (he wrote another book about this: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But his greatest economic insight - and indeed the greatest single insight yielded by the discipline of economics - was that benevolence was not in fact necessary to advance the public interest, so long as people were free to engage with each other in voluntary economic interaction. That is fortunate, he pointed out, since benevolence is often in short supply. Self-interest, on the other hand, is not.
  
  If self-interest, guided as though by an invisible hand, inadvertently serves the public good, then it is easy to see why society can prosper even if people are not always driven by benevolence. It is because Smith was right about self-interest and the public interest that communism failed and capitalism worked.
  
  Most advocates of CSR, especially those who run giant international corporations, have probably read some economics in their time. Many of the officials at the United Nations, World Bank and OECD who argue in favour of CSR have advanced degrees in the subject from the best universities.
  
  Smith는 이기심을 숭상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선을 찬탄할 만한 것으로, 위대한 미덕으로 간주하였으며 동료 인간에 대한 동정의 본능을, 그것을 바탕으로 문명된 행위가 형성(built)되는, 礎石(초석)으로 간주하였다(그는 이것에 대한 책도 썼다: “도덕적 정서의 이론”). 그러나 그의 가장 위대한 통찰은―그리고 진실로 경제학 과목에 의해서 생산된 가장 위대한 통찰은― 사람들이 자발적 경제활동에 서로서로 자유롭게 참여만 할 수만 있다면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기는 데에 자선은 사실상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자선이 필요 없다는 것)은, 자선은 종종 공급부족 상태에 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그는 지적하였다. 반면에 이기심은 그렇지 않다(이기심이 공급부족 되는 일은 없다).
  
  만약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이끌어지는 이기심이 本意(본의) 아니게 공익에 기여한다면, 그렇다면, 사람들이 항상 자선심에 의해서만 움직이지는 않는데도 사회가 번영하는 이유를 알기는 쉽다. 공산주의가 실패하고 자본주의가 성공한(worked) 것은 이기심과 공공의 이익에 관한 Smith의 생각이 옳았기 때문이다.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主唱者(주창자)의 대부분은 특히 거대한 국제적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젊을 때(in their time) 경제학에 대해서 읽었을 것이다. CSR을 찬성하고 주장하는 UN이나 세계은행이나 OECD에 근무하는 많은 공직자들은 최고의 대학에서 그 과목(경제학)에 대한 고등학위(석·박사)를 가지고 있다.
  
  
  10-3-66
  Yet they have apparently failed to grasp this most basic and necessary insight of the entire discipline. Through the action of Smith's invisible hand, the private search for profit does advance the public interest. There is no need for thought-leaders in CSR armed with initiatives and compacts to bring this about.
  
  Smith was a genius because this harmony of private interest and public interest is not at all obvious―and yet, at the same time, once it is pointed out, the idea is instantly simple and plausible. This is especially so if you think not about self-interested individuals but about profit-seeking companies. The value that people attach to the goods and services they buy from companies is shown by what they are willing to pay for them. The costs of producing those goods and services are a measure of what society has to surrender to consume those things. If what people pay exceeds the cost, society has gained―and the company has turned a profit. The bigger the gain for society, the bigger the profit. So profits are a guide (by no means a perfect one, but a guide nonetheless) to the value that companies create for society.
  
  그런데도 그들은 학문(경제학) 전체에 대한 이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통찰(자선보다는 이기심이 공익증진에 기여한다는 것)을 분명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Smith의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을 통해서 私益(사익)의 추구가 共益(공익)을 증진시킨다. 이것을 해내기(bring about) 위해 정책(initiative)과 계획서(compact)로 무장한 CSR 이념지도자는 필요 없다.
  
  공익과 사익의 이런 조화는 얼른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보통사람에게는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Smith는 천재였다.―그런데도 동시에 일단 그것이 지적이 되면 그 사상은 즉각 단순하고 그럴듯하게 된다. 이것은 이기적인 개인이 아니고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에 대해서 생각하면 특별히 그렇게 된다. 사람들(소비자)이 회사로부터 구매하는 상품과 용역에 부여하는 가치(가격)는 그들이 그것들(상품과 용역)을 사기 위해 지불할 뜻이 있는 것에 의해서 표시된다. 그 상품과 용역의 생산비용은 사회가 그것들을 소비하기 위해서 지불(surrender)해야 하는 것의 척도가 된다. 사람들이 지불하는 것이 생산비를 초과하면 사회는 이득을 보게 된다.―그리고 그 회사는 이익을 보게 된다. 사회의 이득이 클수록 이익(회사의)도 커진다. 이익(회사의)은 회사가 사회를 위해 생산하는 가치에 대한 지침(결코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침)이 된다.
  
  
  10-4-67
  Does this mean that Gordon Gekko, the odious protagonist of the movie, "Wall Street", was right to say that "greed is good"? No : greed and self-interest are not the same thing, as Mr Gekko discovered in that movie. Greed, in the ordinary meaning of the word, is not rational or calculating. Freely indulged, it makes you fat and drives you into bankruptcy. The kind of self-interest that advances the public good is rational and enlightened. Rational, calculating self-interest makes a person, or a firm, worry about its reputation for honesty and fair dealing, for paying debts and honoring agreements. It looks beyond the short term and plans ahead. It considers sacrifices today for the sake of gains tomorrow, or five years from now. It makes good neighbours.
  
  Morally, also, there is a world of difference between greed and self-interest. The first, even if it were not self-defeating, would still be a gross perversion of the second. Failing to see this distinction, and thus concluding without further thought that private enterprise is tainted, is a kind of ethical stupidity. Greed is ugly. There is nothing ignoble, in contrast, about a calm and moderate desire to advance one's own welfare, married (as it is in most people) to a sympathetic regard for the well-being of others. And, as Smith pointed out, rational self-interest also happens to make the world round.
  
  이것은 영화 "Wall Street"의 밉살스러운 주인공 Gordon Gekko가 “탐욕은 좋은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탐욕과 이기심은 Gekko가 그 영화에서 발견하는 것처럼 같은 것이 아니다. 단어의 일반적 의미에서 탐욕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계산적이지도 않다. 탐욕에 완전히(freely) 몰두하면 탐욕은 사람을(you) 우둔하게 하고 파산으로 몰고 간다. 공익을 증진시키는 그런 종류의 이기심은 합리적이고 계몽된 것이다.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이기심은 개인이나 회사로 하여금 회사의 정직성과 공정한 거래에 대한 명성에 대해서, 회사의 부채지불과 협정존중에 대한 명성에 대해서 신경을 쓰게 한다. 이기심은 단기간을 넘어서 앞날을 대비한다. 이기심은 내일의 이득을 위해서, 혹은 5년 뒤의 이득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한다. 이기심은 좋은 이웃을 만든다.
  
  또한 도덕적으로도 탐욕과 이기심 사이에는 다른 세계가 있다. 첫 번째(탐욕) 세계는 비록 자멸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여전히 두 번째(이기심) 세계의 비천한 악용이다. 이러한 차이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래서 보다 더 깊은 생각도 없이 사기업은 더럽혀져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우둔이다. 탐욕은 추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타인의 복지에 대해 동정적 관심을 가지면서 (대부분의 경우에 그런 것처럼) 자신의 복지를 증진시키려는 조용하고도 온건한 욕망에 대해서는 저열한 것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리고 Smith가 지적한 것처럼 이기심은 대단히 중요하고 필수적이다(make the world round).
  
[ 2020-09-10, 14:1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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