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잠입한 北韓工作 지도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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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수사국 수사관들
  
  金洛中 사건의 11개의 의문점
  
  김낙중(金洛中)씨 재산문제, 증거조작 여부, 「민주당지지」 비밀 전문의 해독과정, 심금섭(沈今燮)씨 포섭과정, 金씨 수사계기, 발표시기…
  
  <1992년 10월 월간조선>
  
  사건수사의 네 가지 단서
  
  지난 9월9일 월간조선 취재반은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金洛中 간첩사건」을 직접 수사했던 수사단장을 비롯한 수사관 네 명을 세시간 가량 만났다. 월간조선 취재반은 이들을 상대로 金씨의 가족과 재야인사들이 제기하는 의문점을 중심으로 사건 전말에 대해 따져 물었다. 수사관들은 『이 사건은 결코 조작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비교적 차분히 소상하게 답변했다.
  
  -이번 사건발표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우선 안기부가 金씨 수사에 착수하게 된 계기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金씨는 일찍부터 안기부의 주목을 받아오던 사람이었습니다. 흔히 북한 쪽 주장을 드러내놓고 지지하는 사람을 의심하지만 그 보다는 남북한 모두를 비판하는 양비론으로 나가다가 결국에는 교묘하게 북한지지 쪽으로 흐르는 사람이 더 수상한데 金씨가 이 조건에 딱 부합됐습니다. 金씨가 결정적으로 꼬리를 잡히게 된 것은 14대 총선을 앞두고 그가 민중당 후보들에게 몇백 만원에서 몇천 만원에 이르는 개인자금을 지원한 사실이 포착되면서 부터였습니다.
  
  金씨는 그 동안 변변한 직업을 가진 적도 없는데다 중농이었던 金씨의 부친도 「집밖으로 겉도는 자식에게는 재산을 물려줄 수 없다」며 그에게 유산을 남겨놓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자금의 출처가 의심스러웠던 것입니다. 더구나 그는 버스를 타고 다닐 정도로 자린고비 생활을 했었습니다. 또한 지난 1월 간첩죄로 구속된 朴영희씨의 진술도 金씨가 간첩임을 굳히는 증거가 됐습니다.
  
  그는 「월북해 연락부 부부장에게 정선·태백·마산 등을 5대 정책지구로 정해 민중당 후보를 집중 지원해야 한다고 건의하자 부부장은 참 좋은 생각이라며 내려가면 金洛中씨를 만나보라고 말했다」고 진술했습니다. 金씨가 총선을 코앞에 두고 한번에 1만∼2만 달러씩의 거금을 명동 등지에서 암달러상을 통해 환전한 것도 수사기관에 쉽게 포착돼 중요한 단서가 됐습니다』
  
  -안기부 중간발표문에 따르면 1990년 이전의 金씨 간첩협의는 거의 없어 36년간 고정간첩이었다는 발표는 다소 과장되었다는 느낌이 드는데…
  
  『金씨가 간첩으로 포섭돼 내려온 뒤 1990년까지 활발한 간첩활동을 못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金씨처럼 북한에 다녀왔다는 것이 알려진 경우 북한 쪽에선 보통 몇 년 동안 접촉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합니다. 섣불리 접촉하다가 남한 쪽의 감시망에 적발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金씨는 북한에서 내려온 뒤 모두 세 차례나 간첩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투옥됐었고 7년여 동안(1973∼1980) 감옥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金씨가 이렇게 투옥 생활을 오래하자 북한측으로서도 섣부른 접촉이 위험하다고 판단해 오랫동안 접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간첩활동이 국가기밀정보 수집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필요한 시기에 북한의 요구에 따라 활동해 북쪽에 이롭게 국민의식을 변화시키는 것도 중대한 간첩행위입니다』
  
  金씨 재산 많아야 3억
  
  -金씨의 가족들은 金씨가 지난 8월 25일 아침 집에서 연행되기 전 안기부원들에 의한 가택수색에서 중간 발표 때 제시된 돈·독약·난수표 등의 증거물이 발견되지 않았었다는 점을 들어 강한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는데 가족들의 주장이 사실입니까.
  
  『8월 25일 수색 때 의심할 만한 물건이 안나왔던 것은 사실입니다. 수사진이 金모씨를 계속 다그치자 8월 25일 오전에 돈과 난수표 독약 등이 숨겨져 있던 곳을 털어놔 그날 오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난수표는 한약방 안에서 무전기는 산 속에서 찾아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피의자의 자백 없이 수색해서는 물증을 발견할 수가 없는 거죠』
  
  -8월25일 金씨 집 수색 당시 안기부 직원이 찾아낸 라디오와 중간발표 때 증거물로 제시된 라디오가 서로 다르다는 주장이 있는데 주장이 있는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金씨 집에는 두개의 라디오가 있었는데 金씨의 자백으로 암호 지령 청취용 단파 라디오가 확인되었고 그것만 증거물로 제시한 것입니다』
  
  -金씨의 가족들은 金씨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과 사채놀이 등으로 상당한 자금 동원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10년 전에 선친으로부터 유산으로 받은 현금 1억원을 사채놀이 등으로 불려 현재 4억원의 현금을 가지고 있고,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토지가 「통일동산」으로 국가에 수용되면서 6억원이 넘는 보상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金씨는 선친에게 미움을 사 선친이 그에게 재산을 안 준다고 했었어요. 그가 선친에게서 물려받은 돈은 8천만원으로 사채놀이로 재산을 불렸다 하더라도 1억5천만원은 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金씨에게는 땅속에 파묻어 두었던 1백만 달러 외에 공작금과 金씨 개인자금이 섞여있는 7억원 정도의 재산이 더 있습니다. 여기에는 공작금이 들어간 사채놀이(1억 2천만원), 부동산 매입(3억3천만원), 은행예치(7천만원) 등이 포함해 있는데 金씨 개인재산과 공작금을 분류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토지가 통일동산으로 수용되면서 받은 돈은 1억2천만원입니다. 아무리 넉넉하게 잡아도 金씨 개인 돈은 3억원을 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沈씨. 노모 때문에 포섭
  
  -김낙중(金洛中)씨나 심금섭(沈今燮)씨가 쉽게 자백을 했습니까.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돈의 흐름을 추적해 구체적으로 신문하니까 어쩔 수 없이 다 얘기하더군요. 상징적인 얘기이지만 金씨의 진술을 하나하나 비교해 차이가 있으면 집중 추궁하는 방식을 썼습니다. 공범이기에 신문하기 쉬웠어요 다행히 沈씨가 아주 솔직하게 진술해주는 바람에 수사가 잘 진전될 수 있었습니다. 金씨는 이미 여러 차례 수사를 받아본 경험이 있어 수사진들과 신경전을 벌이며 애를 먹였습니다』
  
  -沈今燮씨는 1956년 북한에서 두 명의 사람을 죽이고 탈출한 귀순용사인데 특별한 이유 없이 포섭된 듯해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沈씨가 포섭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沈씨가 포섭된 것은 북한에 있는 형 沈호섭(전 정치보위부원)이 1백 여세인 노모가 살아 있다며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북한을 위해 일해 달라고 간곡하게 호소했기 때문입니다. 沈씨는 지난해 4월1일 金洛中 씨와 거물급 간첩 임모씨에게 속아 무역 상담차 태국 방콕에 갔다가 북한 공작 아지트로 안내돼 형을 만나 이런 설득을 당했던 것입니다.
  
  당시 沈씨는 처음에는 형에게 대어드는 등 거세게 반대했으나 형이 계속 노모 등 재북가족을 들먹이며 인정에 호소하자 결국 형의 설득을 따르기로 했다고 합니다. 沈씨가 포섭된 데는 金洛中씨와의 각별한 인연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1956년 沈씨가 귀순한 뒤 서울 대방동 미군수용소에 수용돼 있을 때 두 사람이 처음 만났고 이내 가까워졌습니다. 金씨가 해마다 세배를 갈 정도였고 서로 형님 아우 하면서 지냈습니다. 호적상의 나이는 沈씨가 더 많았지만 실제 나이는 金씨가 더 많아 沈씨가 金씨를 형님으로 모시고 따랐습니다』
  
  -지난 6월 북한에서 金洛中씨에게 보낸 전문에 따르면 「연말 대선에서 민주당을 지원하라」는 내용이 있었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지난 6월12일 암호로 내려온 전문을 해독한 결과 「…대선시 모든 민주세력이 민주당 후보 밀어주며 민중 독자 후보론은 바람직하지 못함…」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지령 전문은 암호로 돼있어 해독이 어려울 텐데 어떻게 해독해냈습니까.
  
  『전문 해독은 난수표가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다행히 金洛中씨는 총 8개의 난수표 가운데 6개만 태워버리고 끝의 두개(7∼8번째)는 남겨 두었었는데 이것이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됐던 것입니다. 안기부에는 북한의 모든 방송을 자동 녹음해 두는 컴퓨터가 있습니다. 이 컴퓨터에 수록돼 있던 문제의 「A3 방송」을 난수표로 풀었던 것입니다. 이를 해독하는 방법은 전문의 첫조(組) 숫자와 난수표의 첫 조 숫자가 같은 난수표를 골라 각 단위마다 전문 숫자에서 난수표 숫자를 뺀 뒤 약어표에서 해당되는 숫자를 찾아 읽으면 됩니다』
  
  관권선거 사건으로 손해봤다
  
  -金洛中씨가 1955년 월북했다가 다시 내려온 부분에 대해선 이미 1957년 간첩 혐의가 없음이 밝혀졌는데 다시 같은 사안에 대해 간첩죄 혐의가 있다고 발표한 배경이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있는데…
  
  『1957년 金씨가 간첩죄 혐의가 없음을 판결했던 것은 잘못이었습니다. 당시 「인민경제대학 특설반」에서 같이 간첩교육을 받았던 사람의 증언 등 金씨가 간첩교육을 받았었음을 입증하는 직간접 증언의 결과 金씨의 간첩혐의가 새롭게 드러난 것입니다』
  
  -안기부가 한준수(韓峻洙) 전 연기군수의 관권 부정선거폭로를 희석시키기 위한 「맞불작전」으로 이번 사건을 터뜨렸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희들은 오히려 韓씨 사건에 밀려 커다란 손해를 봤습니다. 언론에서 크게 취급해 줬어야 조금이라도 보람을 느꼈을텐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정치적 의도」「조작 운운」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일선에서 수사를 담당했던 저희들은 분통이 터지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야속하기까지 합니다』
출처 : 월조
[ 2003-06-30, 21: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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