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민주화가 최선의 통일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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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月刊朝鮮(월간조선)은 脫北(탈북) 벌목공과 북한의 政治囚(정치수) 수용소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보도했고 그 공적으로 권위있는 관훈클럽의 언론상을 받았습니다.
  月刊朝鮮을 대표하여 상을 받는 자리에서 저는
  『북한 정권에 대한 증오심이 없으면 북한주민들에 대한 정의감도 우러나기 힘들다. 우리가 북한 人權(인권)문제를 보도하여 세계적인 이슈로 만들면 북한 정권도 겁을 집어먹고 조심하고 삼가게 될 것이다』
  는 취지의 인사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月刊朝鮮과 저는 아우슈비츠 같은 「인간멸종의 지옥」 정치수 수용소를 서구 언론에서 다루도록 하려고 애써왔습니다. 독일의 권위 있는 주간지 슈피겔, 미국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같은 데서 「북한의 살아 있는 아우슈비츠」를 보도하는 데 자료를 제공해주기도 했습니다. 북한 인권 탄압이 세계적인 뉴스가 되려면 역시 서구 언론, 특히 영어권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보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는 아우슈비츠를 경험한 유태인들이 북한 정치수 수용소의 악마성에 대하여 가장 절실하게 共感(공감)할 수 있고 그들이 경영하는 언론을 통하여 이 문제를 확산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1995년 11월 초 라빈 수상을 만났을 때(암살되기 하루 전) 저는 『유태인들은 50년 전의 아우슈비츠를 지금도 잊지 않고 있는데 북한에는 아우슈비츠가 지금도 살아 있다』면서 同病相憐(동병상련)의 입장에서 관심을 가져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라빈 수상은 그러나 『인류 역사상 어떤 인권탄압도 유태인이 당했던 참상과 비교될 수 없다』면서 아우슈비츠의 특수성과 독점성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1996∼1997년에 10개월 동안 미국 하버드 대학의 기자연수 기관인 니만 재단에 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여러 나라에서 온 21명의 기자들 가운데 네 명(모두 미국인)이 유태인이었습니다. 저는 月刊朝鮮에 실렸던 북한 정치수 수용소 기사를 영어로 번역한 것을 그들에게 주면서『한번 취재를 해보라』고 권하기도 했습니다. 한 기자는 이 자료를 읽어보더니 『끔찍한 이야기인데 문제는 수용소를 탈출한 사람들의 일방적 주장만 있어 우리가 기사화하려면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용소를 경험하고 남한으로 탈출한 증인들이 세 사람이나 있지 않은가. 이들 이상의 물증이 어디 있는가. 귀하가 북한에 들어가서 수용소를 눈으로 확인한 뒤에 기사를 쓰겠다면 이 정치수들도 유태인과 같은 운명을 견뎌야 할 것이다. 2차 세계대전중 연합국에선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알고도 침묵했고 이 때문에 지금까지 유태인들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지 않은가』 언론의 實證主義(실증주의)는 이럴 때는 아주 냉정한 논리가 됩니다.
  
  또 하나 제가 벽에 부딪쳤던 것은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왜 한국 언론은 이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나요』 저는 솔직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한국의 언론이 냉담하게 취급하고 있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 외국 기자들 보고 열렬히 취재해달라고 부탁한다는 것 자체가 낯뜨거운 일이지 않습니까. 북한 인권 문제, 그중에도 특히 政治囚 수용소를 국제적인 문제로 부각시켜 보려던 저와 月刊朝鮮의 시도는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합니다. 하나 반가웠던 것은 月刊朝鮮과 꼭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黃長燁(황장엽)씨란 것을 확인한 일이었습니다.
  
  黃씨는 남한으로 내려온 뒤 줄기차게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여 金正日 정권을 압박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호소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한국 정부가 북한당국에 대하여 「지금부터 이런저런 인권탄압을 북한동포들에게 대하여 자행하는 자들은 통일된 이후 反인륜범죄 행위로 취급, 처벌할 것」이라 선언하면 저들도 눈치를 보게 될 것입니다. 국제 언론이 참여하는 일 이외에도 법률가들이 나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칠레의 철권통치자 피노체트가 영국 방문중 反인륜범죄 혐의로 구속된 사건은 좋은 示唆(시사)를 던져줍니다. 피노체트 보다 수십 배의 惡行(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金正日과 국가보위부장(수용소 관리 책임자) 등 인권탄압의 주동자들을 국내법에, 또 국제기구(유엔과 사법재판소 등)에 提訴해 두는 것이 하나의 방법입니다. 심리적 압박을 그들에게 걸어두는 것입니다.
  
  우리 헌법정신에 비추어 金正日과 그 부하들은 未수복지역의 대한민국 국민이므로 이들을 살인 등 혐의로 국내에서 고발해두는 것은 適法(적법)합니다. 더구나 우리가 증거를 확보하고 있는 것만 해도 金正日은 崔銀姬(최은희)납치사건, 金勝一(김승일)-金賢姬(김현희)에 의한 대한항공 858 폭파사건(1백15명 사망), 아웅산 폭파사건(17명 사망)을 지령한 수괴입니다. 이번 호에 실린 요덕수용소 출신 姜哲煥(강철환)씨의 手記(수기)는 우리의 가슴을 답답하게 만듭니다.
  
  그는 말합니다.
  「외국인들이 남한사람들 보다도 북한동포의 인권문제에 더 관심이 많다」고. 참으로 이상한 것은 북한동포 돕기 운동의 열기는 뜨거운데 북한동포들을 이런 참상으로 몰아 넣은 金正日 정권에 대한 증오심과 정의감은 차갑다는 점입니다. 진정한 정의감은 무조건적인 동정심이 아닙니다. 미워해야 할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정의감의 기초입니다. 정당한 미움이 뒷받침되지 않는 동정심에는 용기가 없습니다. 惡을 용인하는 동정심은 正義가 아닙니다. 우리는 북한과의 화해를 주장하기 전에 金正日 정권에 대해 분노하는 방법부터 제대로 배워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인이 한국인으로서 모듬살이를 해나가는 데 있어 기본이 되는 가치관은 두 개일 것입니다. 國權과 人權. 대한민국의 안전과 자주, 즉 國權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애국심과 의무감. 인간 본연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받고 누리는 데 필요한 권리의식과 예절. 국권의 이름으로 인권을 눌러도 안되고 인권의 이름으로 국권을 약화시켜도 안됩니다. 國權이 인권을 보호하고 人權이 국권을 강화한다는 相生(상생)의 논리에 기초한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정신인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내용은 자유주의뿐만이 아닙니다. 미국 헌법 前文(전문)에 규정된 대로 안보, 복지, 자유가 바로 민주주의의 실질입니다(형식은 법치와 선거). 민주주의 속의 안보는 국가, 국익, 국권이란 말로 대표되고 복지와 자유는 평등, 인권이란 말로 요약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너무 자유주의적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국가, 국익, 국권이 민주주의와 배치되는 개념인 것처럼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국가와 개인. 국익과 私益(사익), 국권과 인권이 조화되고 상호 보완되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어려운 과제입니다. 우리는 국권과 인권을 함께 아우르는 가치체계를 민주화란 단어로써 설명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지난 51년간은 민주화의 歷程(역정)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북한의 민주화를 이끌어내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헌법에 규정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통일 방안입니다.
  
  통일로 가기 위한 교류, 협력, 화해는 북한의 민주화란 목표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북한을 개방시키려는 목적도 북한의 민주화인 것입니다. 북한의 민주화를 목표로 하지 않는 남북한 교류는 나침반 없는 항해에 지나지 않습니다. 권리의식에 있어서 한국인은 市民(시민)이고 북한 사람들은 臣民(신민)입니다. 臣民수준의 북한동포들을 市民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바로 북한의 민주화이며 남북한 이질감의 해소, 그 1장 1조일 것입니다. 북한이 남한처럼 민주화되어야 통일의 조건인 민족 동질성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대한민국에선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민주투사, 시민단체, 인권단체들이 북한동포의 인권문제에 대해서 냉담합니다. 일부는 북한동포들을 탄압하는 金正日 정권 편을 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논리 아닌 논리를 폅니다(예컨대 북한의 인권상황은 북한 사회의 내재적인 논리로 이해해주어야 한다는 식). 남한에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는 사람들이, 그 補償(보상)으로서 정권까지 잡게 된 사람들이 북한의 민주화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면 그들이 진정한 민주주의자인가 하는 懷疑(회의)가 생기는 것입니다. 북한사람들은 영원히 臣民상태로 살아도 좋다는 것인지, 그렇다면 인권과 民主란 보편적 가치는 정치투쟁의 한 방편으로 이용만 했다는 것인지.
  
  남한의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북녘 땅에 유태인처럼 도살되어 가는 정치수 수용소를 두고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가 통일을 맞는다면 북한동포들은 유태인들처럼 물을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갈 때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소?』 북한의 對南赤化戰略은 남한에 親共(친공)정권이 들어서게 한 다음 그 정권을 흡수하는 식으로 통일한다는 것입니다. 남한의 對北통일전략도 기본적으로는 북한 사회를 개방시켜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바람을 불어넣음으로써 체제를 안에서부터 변질시킨 뒤 정권이 무너지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남북의 主戰場(주전장)은 휴전선이 아니라 남북한의 후방 사회 곳곳에서 소리없이 벌어지고 있는 이념투쟁의 陣地戰(진지전)인 것입니다. 북한 민주화 전략은 가장 확실한 통일정책일 뿐 아니라 북한동포들의 고통을 완화해 주고 대한민국이 달성한 민주화의 과실을 전체 민족이 共有(공유)하는, 도덕적으로나 인도적으로나 수준 높은 결단인 것입니다. 독일통일은 東獨(동독)이 민주화되었기 때문에 이루어졌듯이 우리의 통일도 북한이 민주화될 때 비로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의 정치수 수용소로 대표되는 인권문제의 제기는 북한 민주화에 접근하는 最短(최단)거리의 통로일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1999년 2월 월간조선>
출처 : 월조
[ 2003-07-02, 16:5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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