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正熙―케네디 2차회담 대화록(1988년 8월 비밀 분류 해제)
  
  ·1961년 11월 15일 오후 4시
  ·백악관
  ·주제 : 朴의장이 케네디 대통령에게 작별인사
  ·참석자 : 대통령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정일권 주미한국대사. 사무엘 D 버거 주한미국대사, 한상구 통역. 폴 S 크레인 통역.
  
  대통령은 朴의장이 미국에 와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자신과(미국)정부의 모든 각료들이 朴의장의 견해를 더욱 잘 이해하고 평가하게 되었으며, 미국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보장하고 싶다는 견해를 표시했다. 朴의장은 대통령에게 이러한 방문기회를 주어 감사하다면서, 미국 대통령을 만나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게 돼 큰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朴의장은 우선 가장 어려운 시기는 5개년 개발 계획의 첫해인 내년이라면서 이 기간 동안 해외차관의 형태로 특별한 도움을 요청했다. 대통령은 앞으로 6개월 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검토하고 또 朴의장이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진전을 이루어낼 수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朴의장이 러스크 국무장관, 그리고 AID 책임자 해밀턴을 함께 만날 수 있어 특히 기뻤다면서 이번 방문으로 이 문제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증진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朴의장은 (삭제) 그(대통령)의 느낌으로는 월남에 대한 원조가 당분간은 경제적 지원, 장비, 통신 그리고 기타의 지원활동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이상의 원조가 장래 어떻게 될 것인지는 국민들이 정부를 얼마나 지지하는가 그리고 자유를 위해 싸우는 역할을 얼마나 기꺼이 받아들일 것인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만일 그곳 국민들이 정부를 지지하여 자기 몫을 다한다면, 朴의장이 언급한 것과 같은 외무부로부터의 도움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는 한국 외무장관을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해 朴의장과 접촉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버거 대사는, 대통령을 대신하여 한국의 경제적 요구를 검토했는 바 한국인들이 느끼는 것만큼 상황이 열악하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다음해의 경제상황에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면서 희망적으로 말했다. 대통령은 한국 내의 경제적 진전, 강제 해결 등이 합해지면 앞으로 원조를 결정하는 데 있어 의회에서도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은 朴의장에게 다음 일정과 다음날 기자회견계획에 대해 물었다. 그는 언론이 통상 그랬던 것보다는 좀더 그에게 우호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네루 수상이 여기 왔을 때도 기자회견에서 곤란을 겪었고 흐루시초프의 경우에는 스탈린에 관한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아 화가 나서 방문일정을 중단할 뻔했었다고 했다. 대통령은 1951년 한국에 잠시 있었는데 자신과 다른 미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면서 朴의장의 방문이 이해를 높이는데 많은 힘이 됐다고 말했다. 朴의장은 대통령에게 두 번째 예방 기회를 주어 고맙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을 한국에 초청했으나, 대통령은 동북아 쪽으로 갈 수 있으면 꼭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대답을 했다.
  
  월남파병의 씨앗은
  
  두 차례의 朴―케네디 정상 회담록에서 삭제된 부분중 주목해야 할 부분은 朴의장이 월남문제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 확실한 대목이다. 앞뒤의 문맥과 연결시켜 볼 때 朴의장은 『한국은 월남을 돕기 위해 한국군을 파병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음이 거의 확실하다. 케네디와 만날 때 朴의장의 입장은 약했다. 군사정권의 정통성을 미국으로부터 확인받아야 할 입장이었고 경제개발에 필요한 원조자금을 구걸하다시피 해야 할 처지였다. 미국에 대해서는 아무런 카드도 갖고 있지 못했던 朴正熙의장은「월남파병용의」란 비상(砒霜)을 썼을 것이다. 이 극약처방에 대해서 케네디의 반응은 빨랐다. 「깊은 감사」를 표시하면서 그 제안을 미 국방당국에 넘겨 구체적인 검토를 하도록 함으로써 朴의장의 말을 하나의 언약으로 묶어버렸다.
  
  이것이 그 뒤 1개군단 규모의 한국군을 월남전선으로 보내게 되는 신호탄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월남파병 용의」부분은 공동성명에선 빠졌다. 1961년 12월 4일자로 주한미국은 朴의장의 미국방문에 대해서 긍정적인 논평을 하고 있다. 「박의장은 미국의 고위관리들에게 매우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는 신념 있고, 자신감에 넘치며, 정보에 밝고 그의 정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당면한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는 인물로 비쳤다」1962년 3월 17일 미국의 원로외교관인 에버릴 해리만 순회대사가 한국을 방문, 윤보선(尹潽善)대통령, 朴正熙의장, 宋堯讚내각수반, 金鍾泌중앙정보부장과 만났다. 비밀분류에서 해제된 「러스크 국무장관 앞 주한미국대사관의 전문 보고」에 따르면 해리만은 이들 요인과의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월남파병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송요찬 내각수반은 해리만에게 김종필부장이 최근에 월남을 방문하고 돌아왔는데 아주 부정적인 보고를 했다고 말했다. 송수반은 한국은 월남에 파병할 용의가 있으나 현재상태로서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金鍾泌 민자당 최고위원은 최근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박대통령이 케네디 대통령에게 월남파병용의의 의사를 밝힌 것은 누구의 부탁을 받고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한 것이다. 미국에 대한 카드로 던진 것이다. 그런데 그 회담 뒤에도 미국으로부터 파병 요청이나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朴대통령이 나를 불러 월남에 한번 가서 고딘디엠 대통령의 월남정부와 이 문제를 상의해 보라고 했던 것이다. 내가 가기 전에도 우리 정부는 군 조사단을 월남으로 보낸 적이 있었다』 즉, 월남파병은 미국측의 희망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金鍾泌최고위원은 『처음에는 월남 파병으로써 경제적 이득을 보자고 하는 목적보다는 한국인의 기개를 높이고 인사적체 등으로 침체돼 있는 한국군의 활로를 트자는 생각이 더 강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왕 월남파병을 하자면 실리도 얻자고 해서 한국군 장비의 현대화, 병력만 월남에 가고 그 장비는 미국이 조달한다는 등의 반대급부를 받아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金최고위원은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이민을 받아들이게 된 것도 월남파병에 대한 반대급부의 하나였다』고 했다.
  
  「위로부터의 혁명」이란 평가
  
  1962년 2월12일 미국의 대(對)한국 정책관련자들이 합동으로 정리한 한국평가보고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1961년의 쿠데타는 위로부터의 진짜 혁명(a revolution from the top)으로 발전하였다. 우리(미국)의 도움으로써 이 혁명은 전제적인 군사정권이 끝난 뒤에는 효율적인 민주체제가 구축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기반을 놓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다 잘 받아들이고 있으며 우리의 상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수용적인 자세이다」「한국은 동북아시아 대륙의 끝에 있는 자유세계의 최전선 초소로서 일본을 공산세력으로부터 막아주는 방패이며 서태평양 방어에 있어서 하나의 자산이다. 한반도에서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의 밀도를 가진 군사적 대치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에 대해 미국이 그동안 인적, 물적 자원과 국가적 체면을 투자한 일과 세계인의 눈이 미국과 한국을 밀접하게 연관시켜 보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에서 우리의 기본적인 목표물을 달성하는 것은 절대명제이다」최근 일본에서 나온「朴正熙의 시대」란 책에서 도카이대학 하야시 다케히코(林建彦)교수도「위로부터의 혁명」이란 표현으로써 朴정권의 18년을 정의하였다. 정권은 군사쿠데타란 수단으로서 잡았지만 그 정권으로써 근대화혁명을 이루었다는 해석이 요사이 퍼져가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중재자 역할
  
  미국정부의 수뇌부는 한일국교정상화 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 1961∼1965년 사이에 이 문제는 미국의 대(對)동북아정책에 있어 우선 순위 1번이었다. 국가안보회의에서도 이문제가 지속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1962년 5월17일 딘 러스크 국무장관은 케네디 대통령에게 한일 관계에 대한 2페이지 짜리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메모란덤에서 러스크장관은 「한국측은 그 전에 요구했던(청구권) 금액을 낮추어 타결하겠다는 시사를 우리에게 했는데 일본측은 지난 연말 때보다도 비타협적이다」고 했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보다는 일본에 더 강한 영향력(압력)을 행사해야 하며 요시다 전 수상을 통해 이케다 수상에게 압력을 넣어야 한다」1962년 6월9일 주한미군과 정보부대는 미 태평양사령부와 미 합참에 중요한 정보보고서를 전문으로 보냈다. 이 보고서는 「지난 수개월 동안 쿠데타의 소문이 떠돌고 있다」면서 5·16주체세력의 한 중심인물인 朴林恒중장이 군단장직에서 해임된 사실을 주체세력 내 함경도파의 약화로 해석하였다.
  
  「정보부의 공작에 의해 박장군이 물러남으로써 박정희 의장이 균형을 잡아오던 권력의 추는 김종필 부장쪽으로 기울고 있다. 송요찬 내각수반도 정보부가 내각의 사무에 관여하는 데 항의하여 몇번 사임하려 한 적이 있다. 수도경비사령부 산하 30,32 예비사단 소속의 연대장 여섯 중 다섯명이 육사8기 출신이다. 육사8기 출신들은 정보부, 국민재건운봉본부, 한국군부, 국가재건최고회의 내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고 김종필의 권력기반이 되고 있다. 앞으로 몇 달 동안 김종필과 그 반대세력간의 권력투쟁은 계속될 것이며 암살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金鍾泌위원은 『미국이 한,일 양국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에 더 적극적인 압력을 넣었고 우리한테는 이래라, 저래라 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1962년 6월 13일 러스크 국무장관은 일대사에게 전문을 보내 한일양국의 최고위층 인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양국의 국교정상화 회담을 촉진시키도록 훈령하였다. 러스크 장관은 미국의 역할은 교섭 당사자가 아닌 교섭의 촉매자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두 대사에게 한국과 일본정부가 실력자를 교섭책임자로 지명하여 막후에서 정치적으로 타결하도록 권유하라고 지시하기도 하였다. 「한국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하나의 기반으로서 주한미국대사관은 5개년 계획과 관련하여 한국 측에 대해 투입자원으로서 미국과 유럽 뿐 만 아니라 일본의 자원과 일본시장에의 수출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가능하다면 양국정부에 대해서 미국을 메시지의 중개역으로 이용하는지 내밀한 정보제공자로 이용하도록 권유할 것」8월23일에 케네디 대통령은 이틀 전에 재개된 한일회담에 즈음하여 朴正熙의장과 이케다 수상 앞으로 거의 같은 내용의 친서를 보내 국교정상화를 빨리 이뤄달라고 당부하였다.
  
  金鍾泌 방미와 버거의 견제
  
  6·25전쟁 중 주한 미8군사령관을 지냈던 제임스 A 밴 플리트 장군은 1962년 10월16일 케네디 대통령 앞으로 金鍾泌정보부장을 꼭 만나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金부장은 미CIA의 맥콘 부장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게 돼 있었다. 이 편지에서 밴 플리트는 「김종필은 정보부장일 뿐만 아니라 한국정부를 버티고 있는 실력자이며 사실상의 총리이자 박정희 대통령의 측근심복이므로 미국을 위해서도 각하께서 꼭 그를 만나주시는 게 좋겠다」고 했다. 러스크 국무장관은 같은 날 주한 미 대사에게 보낸 전문에서 「(정일권) 주미대사는 김종필이 대통령, 부통령, 국무장관, 국방장관, 3군 총장을 다 만나도록 해줄 것을 간청하고 있으나 국무장관을 예방하는 정도로 조정하고 싶다」고 했다. 이에 대해 버거 대사는 「(그 때는)김종필이 일본에서 오히라 외상과 중요한 협상을 한 뒤이므로 국무장관이 만나는 것은 찬성이나 대통령 및 부통령과의 면담에는 강경하게 반대한다」고 했다. 버거 대사는 金부장의 방미에 신경을 곤두세운 듯 10월23일자 러스크 장관 앞 전문에서 金鍾泌부장과 만나 나눌 대화의 가이드라인까지 언급하고 있다.
  
  「김종필은 내가 그와 군사정부에 대해 반대입장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워커힐 사건, 증권시장조작, 환율조작사건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지 말고 밀수의 감소, 농촌개혁, 반공체제의 강화 등을 높게 평가해줄 것. 한국정부의 선거계획에 대해서는 분명분명하게 선을 그어줄 것, 즉 혁명적인 이상주의, 개혁주의, 그리고 인재들은 민간의 인재들과 결합해야 정부의 지지기반이 넓어질 것이라는 점, 군인이 군복을 벗고 민간직책을 맡는데는 반대하지 않으나 군의 역할을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할 것」1962년 10월10일자 국무장관앞으로 보낸 전문보고에서 버거 대사는 비밀해제시 삭제하여 이름을 알수 없는 인사의 말을 인용하여 金鍾泌부장이 10월20일 일본을 방문, 이케다 수상 및 오히라 외상과 만나 국교정상화의 기초가 될 만한 중대한 합의에 도달할 것이라고 했다.
  
  金―오히라 메모의 진실
  
  丁一權주미대사는 10월15일 윌리엄 P 번디 국방차관보를 방문하여 『김종필 부장이 부통령이라도 만나도록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졸라댔다. 번디 차관보는 이 간청을 맥콘 CIA부장 등 관계 요로에 전달해주었다. 대사는「김부장은 일본과의 외교교섭에서 열쇠를 쥔 사람이며 다가오는 선거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임」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번디 차관보는 「정일권 대사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듯했으며 부통령과 체면용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金鍾泌부장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쿠바의 미사일 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케네디 대통령은 그전에 맥나마라 국방장관과 러스크 국무장관으로 하여금 金부장을 만나도록 지시하였으나 맥나마라 장관은 빠지고 러스크 장관과 해리만 차관보가 김부장을 만났다. 미국 국무부가 金부장의 미국내 행적을 기록하여 주한미대사관에 통보한 문서는 1983.년 8월11일에 비밀분류에서 해제되었다.
  
  그 내용은 매우 비판적이다. 「그는 미국에 도착한 뒤에도 미국고관들과의 독자적인 면담 약속을 계속 요구했고 직접 그런 약속을 하기도 했으며 늘 사진기자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가 방미 중에 선전활동에 대단한 인력을 투입하고, 신경을 쓰는 것으로 미루어 서울에 돌아가면 정치적으로 이용할 것 같다. 그는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과 만나는 장면을 사진 찍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하였다. 그래서 법부장관이 사인한 사진을, 한국대사관을 통해 보내주기로 하였다」「그는 한국기자들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 지나친 내용들도 있었다. 예컨대 민간정부로 복구하는 일이 단 한번의 조치로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에 미국정부가 동의하였다는 주장과 같은 것들이다」
  
  金鍾泌씨의 증언
  
  金鍾泌 당시 정보부장은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으로부터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케네디 장관은 金부장을 집무실로 안내하더니 그를 소파에 앉게 하고는 자신은 집무탁자 위에다가 발을 올려다 놓고 비스듬히 누운 채 金부장을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金부장은 자신도 소파에 비스듬히 누운 채 낮잠 자는 시늉을 해버렸다. 그러니 케네디 장관도 웃으면서 자세를 고쳐 잡고 『귀하의 나이가 몇이냐?』고 묻더란 것이다. 金부장이 『1962년생이다』고 하니 『제가 한 살 아래이군요』라고 하면서 이야기가 잘 풀려나갔다는 것이다. 金鍾泌위원은 기자에게 「김―오히라메모」에 대해서는 이런 증언을 했다.
  
  『1962년 11월에 미 CIA 맥콘 부장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고 있는데 朴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귀로에 도쿄에 들러 담판을 지으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대일청구권 자금을 8억 달러 선에서 타결해 보라고 하셨다. 오히라 외상은 집에서 저녁 8시부터 담판을 가졌다. 그때 대일청구권 액수를 어느 정도로 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 안에서는 확실한 생각이 없었다. 5·16전에 한일회담 대표였던 유진오(兪珍五)씨를 초청하여 의견을 구했더니 2천만 달러정도를 받으면 성공이라는 견해였다. 오히라 외상과의 담판은 2시간이 지나도록 진전이 없었다. 10시 30분쯤 됐을 때 내가 웃으면서 「손님대접이 이래서 되나. 커피 한 잔도 내오지 않고 ,,,」라고 불평했다. 커피를 내오는 사람이 방문을 여는데 바깥에 기자들이 몰려 있는게 방문 틈으로 엿보였다.
  
  내가 이야기하기를 「지금부터 액수를 털어놓겠는데 내가 한 번 말하면 이것이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선으로 알아야 한다」면서 다짐을 놓았다. 그리고는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달러, 민간차관 1억달러 플러스알파」를 제시하였다. 오히라 외상은 놀라서 일어나더니 말도 안 된다는 시늉을 했다. 그때 이케다 수상은 유럽에 가고 없었는데 떠나기 전 오히라 외상에서 8천만 달러 이상은 절대 안 된다고 못을 박아 놓았던 것이다. 오히라 외상은 일어나서 뒷짐을 지고 왔다갔다 하더니 결단을 내렸고, 그 액수를 확인하기 위해 두 사람이 그 탁상위에 있던 메모지에 기록을 하여 하나씩 나눠 가졌던 것이다. 청구권이란 용어에 대해서는 오히라 외상이 일본국외에서 문제를 삼을 것 같으니까 그대로 쓰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우리는 청구권이라고 할 테니까 당신네들은 「경제협력」이라고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여 해결이 되었다. 이 합의는 그러나 양국 정부 책임자의 결재를 받아 실무회담에서 논의 공식으로 합의하도록 한다는 조건을 달았던 것이다. 내가 「이완용처럼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욕을 먹을 각오가 돼 있다」고 하니까 오히라 외상은 「명치유신 시대의 지사를 연상시키는 군요」라고 했다. 그 뒤 오히라 외상이 잘 버티어 이케다 수상의 측근 중의 측근이었기에 그런 설득이 가능했던 것 같다』
  
  1963년 1월, 金鍾泌이 정보부를 지휘하여 비밀리에 조직한 공화당의 창당발기를 계기로 국가재건최고회의 내에서는 반 金鍾泌파가 일대공세를 폄으로써 군사정권은 심각한 내분을 겪게 되었다. 이 무렵 버거 주한대사가 국무부에 긴급 보고한 전문(1월 21일자)은 金종오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버거대사의 한 정보원(源)이었음을 보여준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21일 저녁에 다섯 시간 동안 회합. 김종오 참모총장은 버거대사에게 이 회합의 의제는
  ①여당 사무국의 기능축소
  ②여당 내 정보부 요원들의 복귀
  ③여당의 지방 지부는 정보부의 영향권에서 배제였다고 알려 옴.
  김종오는 오늘밤에는 별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무슨 긴급사태가 발생하면 버거대사와 멜로이 유엔군 사령관에게 즉각 알리겠다고 했음. 정보부 7국의 요원들은 김종필이 명령만 내리면 반金인사들을 체포하려고 대기중임」
  
  미국정부는 군사정권내의 권력투쟁이 한일회담의 타결시기를 늦추게 될 것이라고 걱정하여 버거대사를 통해 한국정부에 압력을 넣었다. 미 국무차관이 버거대사에게 보낸 2월12일자 전문은 「(한일회담이) 올해 (3년)봄을 넘기면 한국이 크나큰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될 것임을 경고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정부는 朴의장에게 한일회담의 성사를 위해서는 金鍾泌을 멀리하도록 권유하였다. 金부장은 결국 외유 길에 오르게 된다.
  
  의외의 공정선거
  
  주체세력 내외부의 갈등, 민정이양에 따른 야당의 정치활동재개, 대통령·국회의원 선거로 이어진 1963년은 전해의 흉작에 기인한 쌀의 부족으로 민심이 흉흉할 때였다. 미국정부는 공법 PL480호에 의한 곡물 원조를 한국정부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이에 대해 버거주한대사와 멜로이 유엔군사령관은 「위기 때 한국을 도와주어야 진정한 친구임을 증명할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워 워싱턴을 설득하였음이 비밀문서들에서 드러나 있다. 1963년 10월15일 대통령선거에서 朴正熙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尹譜善후보를 누른 직후(11월19일)주한미국대사관이 미 국무부에 보낸 보고서에는 「대통령선거가 의외의 공정한 선거였으며 야당이 박후보를 상대로 선거무효소송을 낸 것을 총선 전략에 불과하다」는 평이 실려 있다. 1963년 11월27일에 버거 대사는 러스크 국무장관에게 보고한 전문에서 「공화당 압승의 원인은 야권의 분열이며, 단편적인 부정사례는 있으나 전국적인 투표부정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1964년 3월에 한일회담반대 시위가 폭발하자 한국정부는 1천5백 명의 병력을 서울로 진입시켜 청와대 근방에 배치함으로써 사태악화에 대비하였음이 3월26일자 주한미국대사관의 국무부앞 보고전문에서 드러나고 있다. 민기식 육군참모총장은 이 병력이동에 관해 작전통제권을 쥔 주한미군사령관의 허락을 받았다. 4월5일자로 된 미태평양사령부 미합참 전문은 펠트 태평양지구사령관이 朴正熙대통령과 김성은(金聖恩) 국방부 장관을 만나 나눈 대화의 요약이다. 이 전문(비밀분류해제 : 1982년 1월22일)에는 朴대통령의 언급이 이렇게 소개돼 있다.
  
  「이번 학생시위는 학생들의 왜곡된 애국심과 야당의 선동이 결합된 결과이다. 한국정부는 일본과의 교섭을 차질 없이 밀고 나갈 것이며 이미 외무장관을 일본에 보내 그런 뜻을 전달하였다. 학생들에게는 한일국교정상화의 의미를 교육할 것이다」미 태평양 사령관은 주일 라이샤워 미국대사를 만나는 자리에서 朴대통령과의 대화내용을 전달하겠다고 보고하고 있다. 1964년 4월9일 맥아더 원수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왔던 최두선(崔斗善)총리는 러스크 장관과 회담했다. 이 자리에서도 러스크 장관은 『한일국교정상화회담의 연기는 한국에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5년 전에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졌더라면 한국은 5년간 중요한 경제적 결실을 얻었을 것이다. 또 다시 정상화가 연기된다면 한국은 경제적 이득을 놓치게 된다』고 말했다.
  
  계엄령선포와 미군
  
  1964년 6·3사태때 朴대통령은 한일반대 시위를 잠재우기 위해 서울지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 전에 주한미국대사와 8군 사령관을 청와대에 불러 이 문제를 논의하였음을 이 미8군사령관→백악관전문(비밀분류해제 : 1982년 1월22일에)에서 밝혀졌다. 朴대통령은 두 사람에게 포병을 제외한 6사단과 28사단병력을 서울로 불러들이기 위해 미8군사령관의 작전통제권 해제를 요청하였다. 두 사람은 이에 동의하였다. 주한 미8군사령관은 이번 조치가 한국군과 국민 사이에 존재하는 전통적인 우호 관계을 해칠까 두렵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6·3사태의 여파로 朴정권 안에서는 金鍾泌공화당 의장을 사퇴시켜야한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특히 계엄군 안에 그런 견해가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군 수뇌부도 이에 동조하였다. 이렇게 하여 朴대통령은 金의장을 두 번째로 외유시키게 된다. 미국의 러스크 국무장관이 직접 나서서 金의장이 하바드 대학의 키신저교수가 주관하는 1964년도 국제문제 세미나에 등록할 수 있도록 주선하여 주었다. 러스크는 키신저 박사에게 「김종필을 가르치는 것은 장기적으로 봐서 좋은 투자가 될 것이다」는 뜻을 편지로 전달하였다. 金鍾泌 민자당최고위원은 『그때 나는 통역을 데리고 키신저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키신저 교수는 「여기에는 보디 가드를 데리고 들어온 학생이 있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