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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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혼자서 소련을 붕괴시킨 것이 아니다
  
  趙甲濟 月刊朝鮮 편집장 (mongol@chosun.com)
  
  
  기자는 한국 시간으로 지난 6월12일 새벽에 미국 워싱턴의 국립 교회에서 있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영결식을 텔레비전 중계로 보았다. 弔辭를 하는 사람들마다 레이건의 공적을 이야기하면서 그가 소련을 「惡의 제국」으로 규정하여 붕괴로 몰고 간 점을 언급했다. 부시 대통령은 『그는 공산당 지배자들을 「노예주인」이라고 불렀다』는 점을 강조하더니, 『레이건의 「惡의 제국」 발언은 공산 압제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어 공산체제를 무너뜨린 결정적 타격이 되었다』고 말했다. 기자는 조문객들에 섞여 이런 연설들을 듣고 있는 고르바초프의 표정이 카메라에 비쳐질 때마다 안쓰러웠다. 아래를 내려다보는 그의 얼굴이 밝지 않았고 소외감을 느끼는 듯도 했다.
  
   레이건을 상대로 한 게임에서 졌기 때문에 소련을 해체로 몰고 간 역할을 했다는 평을 듣고 있는 고르바초프로서는 영결식이 拷問(고문)이었을 것이다. 레이건을 칭찬하는 弔辭들은 그대로 고르바초프를 바보로 취급하는 말들이기도 했었다.
  
  
   고르바초프와 흐루시초프야말로 인류가 감사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해온 기자로서는 미국인들의 예의가 다소 아쉬웠다. 勝者가 敗將을 대할 때는 「喪中의 禮」로써 해야 한다는 고대 중국의 격언이 생각났다. 문상 온 敗者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唯我獨尊式의 레이건 美化 연설이 상징하는 미국의 자기중심주의가 오늘날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反美감정의 한 원인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뉴욕 타임스」만은 문상 온 고르바초프에 대한 따뜻한 기사를 썼다. 이 신문은 레이건이 冷戰의 승자가 된 것은 선량한 인품의 고르바초프가 소련 지도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想起시켰다. 역사의 손이 고르바초프를 통해 레닌과 스탈린이 피로써 세운 소련제국을 평화적으로 붕괴시키도록 한 것 아닌가.
  
   고르바초프는 청년 공산당원 시절부터 이런 체제로써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다. 그런 점에서 생존을 위해 스탈린에 굴종하면서도 스탈린을 惡의 화신으로 보는 문제의식을 접지 않았던 흐루시초프와 연결된다. 고르바초프의 회고록을 읽어 보면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 연설에 크게 鼓舞(고무)되었다가 브레즈네프의 守舊 회귀에 절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르바초프는 낸시 레이건 여사를 찾아가 위로한 뒤 「뉴욕 타임스」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낸시와 나의 아내 라이사에게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지만 두 여성은 영부인으로서의 역할을, 위엄을 잃지 않고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레이건은 집권 후반기에 자신이 평화를 이룩한 사람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랐었다. 그런 방향으로 그를 유도한 것이 낸시였다. 낸시는 레이건에게 영향력이 가장 큰 사람이었는데 레이건이 전폭적으로 그녀를 믿었기 때문이다』
  
   레이건 영결식에서 텔레비전 카메라는 낸시의 얼굴을 가장 많이 비쳤다. 곱게 늙은 얼굴이었으나 지난 10년간 남편의 치매와 同居했던 고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얼굴이기도 했다.
  
  
   이날 레이건 영결식에 참석한 前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 여사는 건강악화로 직접 弔辭를 하지 못하고 미리 준비한 비디오로 弔辭를 했다. 레이건과 대처는 20세기의 가장 성공한 보수 개혁자일 뿐만 아니라 고르바초프를 이용하고 지원하면서 소련을 붕괴로 몰고 간 콤비였다.
  
   대처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공산권 붕괴의 功을 레이건에게 전적으로 돌리고 있다. 대처는 소련제국이 큰 유혈사태 없이 해체된 데는 고르바초프라는 마음씨 좋은 러시아 사나이의 등장과 개혁 시도가 있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면서, 러시아에서는 욕을 많이 먹고 있는 그를 변호하고 있다.
  
   대처는 1983년 3월에 레이건 대통령이 발표한 이른바 「별들의 전쟁 계획(SDI: 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이 소련제국 붕괴를 가져온 결정적 조치였다고 평가했다. SDI는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을 우주에서 요격할 수 있는 기술과 방어망을 가리킨다.
  
   미국이 사람을 달에 착륙시켰던 국가 기술력을 총동원하여 「별들의 전쟁」을 시작하려고 하자 소련 지도부는 겁을 집어먹었다. 그들은, 미국과 맞서 그런 미사일 방어기술을 개발하고 배치하려면 경제력과 과학 기술력을 집중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하다가는 국가재정이 망가지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부문의 무기개발에 들어갈 돈도 이 대응조치에 전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을 했다.
  
   그 이후 소련의 對美 정책은 총력을 다해서 SDI를 포기하도록 하는 데 집중되었다. 레이건은 소련의 이런 초조한 자세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므로 더욱 SDI를 정력적으로 추진하는 척했다. 미국 과학자들도 당시 기술로는 완벽한 核미사일 방어망을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레이건은 우직하게 이 계획을 밀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대처 총리에게 『우리가 이 계획을 밀고 나간다면 소련의 경제에 큰 압박을 가하게 될 것이다. 소련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결국 소련은 미국의 도전에 굴복하고 말 것이다. 즉 소련은 군비경쟁을 포기할 것이다. 이는 미국에 대한 소련의 군사적 우위를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개혁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들의 군사력만이 소련 지도부로 하여금 개혁을 거부하도록 하는 마지막 보루이니까』라고 솔직하게 말했다고 한다.
  
   1986년 10월11~12일 고르바초프와 레이건은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에서 頂上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에서 고르바초프는 전략무기 감축과 관련하여 양보를 거듭했다. 고르바초프는, 「중거리 核미사일 감축 협상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미사일은 제외한다」, 「美蘇 양쪽이 모두 똑같은 수의 전략무기를 남길 수 있도록 감축한다(그전에는 현재 보유비율에 따른 감축을 주장했다. 그렇게 하면 소련이 더 많은 수를 보유하게 되어 있었다)」는 데 동의한다고 했다.
  
  
   레이건도 5년 안에 전략핵무기―대륙간 탄도미사일, 폭격기, 장거리 크루즈 미사일을 반으로 감축하고 10년 뒤에 대륙간 미사일을 전부 폐기하자는 제안을 했다. 고르바초프는 한술 더 떠 10년 뒤에는 모든 전략무기를 폐기하자고 했다. 레이건은 10년 내에는 ABM(장거리미사일요격망 건설 금지) 조약에서 탈퇴하지 않을 것이지만 이 조약과 위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SDI 개발은 계속하겠다고 했다.
  
   이때 고르바초프가 그동안의 양보를 일거에 만회할 수 있는 도전장을 냈다.
  
   『지금까지 소련이 제안한 양보는 조건부이다. 즉, 미국이 SDI 개발계획을 실험실에서만 추진한다는 것을 약속해야 한다』
  
   레이건은 즉각 고르바초프의 이 제안을 거부했고, 頂上회담은 결렬되었다. 세계의 언론은 레이건을 공격했다. 세계 평화에 巨步를 내디딜 수 있는 기회를 차버렸다면서…. 선전전에선 이겼지만 고르바초프는 이로써 소련이 큰 곤경에 처할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레이건의 양보를 얻기 위해서 제안했던 군비 감축案들을 거두어들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련은 그 뒤 미국과의 협상에서 이 제안을 토대로 양보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미끼만 떼인 결과를 낳았다.
  
  
   고르바초프 회고록에 이 레이캬비크 회담을 묘사한 대목이 있다. 그는 레이건과의 마지막 담판은 「셰익스피어의 드라마」 같았다고 했다.
  
   <우리는 대화를 중단했다가 다시 만나 이야기하다가 또 헤어지곤 했다. 회담의 성공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그러나 SDI는 넘을 수 없는 걸림돌이었다. 대화는 돈좌하더니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레이건은 말했다.
  
   『조금만 더 양보하여 내 案을 받으세요. 그러면 미국이 소련과 협조할 것이고 그것이 얼마나 득이 되는지 나중에 알게 될 거요』
  
   나는 거의 절망적으로 그를 설득하려고 다가갔지만 그는 한 걸음 뒤로 빠지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그는 평화를 만든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되었을 텐데…>
  
   회담이 결렬되어 두 사람이 바깥으로 나왔을 때는 어두워지고 있었다. 레이건이 고르바초프를 향해 질책하듯 말했다고 한다.
  
   『귀하가 여기에 와서 모든 일들을 이렇게 계획해서 나를 곤경에 빠뜨렸습니다』
  
   『아닙니다. 대통령 각하, 지금 당장 회담장으로 돌아가서 사인합시다. 귀하가 우주를 군사화하겠다는 계획을 포기한다면 말입니다』
  
   『정말 미안하군요』
  
   두 사람은 헤어졌다.
  
   사실 레이건은 SDI를 추진할 때부터 대처 총리에게 『나는 어떤 경우에도 이것만은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배우 시절 좌익과 대결하면서 공산주의의 악마적 속성을 체험했던 레이건의 이 무서운 일관성이 소련 군사제국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그들을 개혁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게 했으며, 그 길은 공산권 해체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金正日이든 고르바초프든 힘을 바탕으로 밀어붙이지 않으면 공산주의자들로부터는 어떤 양보도 얻을 수 없다. 金正日로 하여금 핵무기 개발에서 손을 떼게 해야 그는 對南 군사우위 노선을 포기하고 개혁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金正日이 군사력의 優位를 믿는 한 그는 개혁·개방을 거부할 것이다. 金正日이 고르바초프 같은 사람으로 人格 전환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결국 그가 밀려나든지 물러나야 돌파구가 생길 것이다. 최근 한국 기독교계에서는 「0508 운동」을 벌이고 있다. 2005년까지 金正日을 물러나게 하고, 2008년까지 자유통일이 되도록 해달라는 기도운동이다.
  
   美蘇 냉전을 평화적으로 종식시킨 세 主演의 만남―레이건 영결식장에 함께 참석한 대처와 고르바초프의 모습을 보면서, 또 고르바초프가 權座에서 밀려나서도 당당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선량함이 민주주의와 만날 때 보상을 받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냉전장 한반도판의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없는가?●
출처 : 월조
[ 2004-07-05, 00:3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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