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대법관이 지난 주에 죽었어.”
친구가 그의 소식을 전했다. 순간 속에서 미묘한 복잡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이어서 그와 얽혔던 마음의 매듭이 스스르 풀리는 느낌이었다. 죽음이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의 판결은 내 마음에 깊은 흉터 자국을 남겼었다.
그 사건이 다시 떠오른다. 아내의 여고 동기가 변호사인 내게 이혼과 재산분할 소송을 맡겼다. 그녀의 말을 듣고 법정에서 그 남편을 신랄하게 공격했다. 시간이 지나자 어떤 의심이 들었다. 그녀가 망상 환자인 것 같았다. 확인해 봤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거의 다 거짓말이었다. 나의 스탠스가 신중한 모드로 바뀌었다. 그 얼마 후 그녀가 나를 배임죄로 고소하고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도 걸었다. 내가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돈을 받아먹고 불리하게 소송을 진행했다는 내용이었다. 엉뚱하게 그녀와 나의 싸움이 됐다. 대법원에 갈 때까지 판사들이 나를 동정하면서 덫에서 빼주려고 했다. 그녀는 대한민국사법부가 썩었다고 공격했다. 그녀는 소송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십년 만에 그 사건이 대법원으로 갔다. 담당 대법관이었던 그는 나에 대해 패소 판결을 선고했다. 나는 기가 막혔다. 그 대법관이 기록을 읽어 보기라도 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법원장을 지낸 고교 선배는 그 대법관이 다른 판사들처럼 나를 한 번이라도 직접 봤다면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선고한 대법원 판결문의 행간에서 나는 이런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꼬집어 낼 수는 없지만 네가 뭔가 잘못한 게 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저 여자가 20년을 그렇게 집요하게 덤빌 리가 없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면 그 대법관도 망상환자가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내가 직접 피고가 되어 대법원 판결을 받아보고 깨달았다. 법원 앞에서 절규하는 소리들이 진실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이전에는 남의 아픔을 몰랐다. 그 판결은 주님이 내게 주신 십자가 선물이었다.
그 대법관은 하나님의 선물을 내게 전하는 배달꾼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 법관을 통해 하나님한테서 전에 받은 또 다른 선물이 있었다. 그가 고등법원의 재판장으로 있을 때였다.
“변호인 일어나 보세요.”
그가 손에 항소이유서를 들고 근엄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서서 멀뚱한 눈으로 그를 쳐다 보았다.
“이걸 글이라고 씁니까?”
무슨 뜻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의 고정관념과 법원의 틀을 벗어난 형태의 글이었다. 법이라는 거푸집은 어쩔 수 없이 사용했지만 나는 내 식으로 쓰고 변론하고 싶었다. 그가 방청객 쪽을 둘러보면서 외쳤다.
“여기 이 사건의 가족 오셨습니까? 일어나 보세요.”
방청석의 뒤쪽에서 내 의뢰인의 형이 겁먹은 얼굴로 일어섰다. 재판장이 그에게 말했다.
“이따위 항소이유서는 보통 사람들도 다 쓸 수 있어요. 변호사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세요.”
중간에 서 있던 나는 오물을 뒤집어 쓴 느낌이었다. 재판장의 특이한 행동이었다. 미워도 그런 공개적인 모욕은 자제하는 게 보통 판사들의 인격이었다. 재판이 끝나고 법원 언덕을 같이 내려오면서 의뢰인의 형이 내게 말했다.
“그 재판장에게 미운털이 되게 박히신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사건을 끝까지 맡길 거예요. 저 판사는 살인죄를 저지른 제 동생에 대해 이미 결론을 내렸을 것 같아요.”
나는 왜 미운털이 박혔는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었다. 군법무관 시절 나는 대위였고 그는 근처 부대의 중위였다. 종종 만났다. 그는 나보다 어렸다. 나는 미남이고 총명해 보이는 그에게 호감을 느꼈었다. 혹시 내가 건방졌었는지도 살펴보았다. 아무리 살펴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이해를 하게 됐다. 그의 법정에 들어갔다 나온 변호사중에는 나와 비슷한 감정을 공유한 사람이 많았다.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들어오고 대접을 받은 그의 직선적인 성격인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고 돌이켜 보니까 그것도 하나님이 내게 준 선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성경 속의 예수는 지금도 침뱉음과 조롱을 당하고 얻어맞고 있다. 그러면서 자기를 따르라고 한다. 모욕도 그분의 선물이 아니었을까. 그 후 나는 더욱 맷집이 좋아졌다. 그리고 나만의 스타일인 변론문을 만들어 갔다.
그 대법관은 죄가 없다. 하나님의 선물을 배달하는 심부름꾼 역할을 잘해 주었다. 그의 죽음을 보면서 생명이란 잠시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는 말이 맞다는 걸 느낀다. 지난 주 죽은 그 대법관에게 마음으로 전한다. ‘잘 가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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