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무인을 천대하고 문인을 숭상한 문존무비(文尊武卑)의 골은 깊다. 조선 500년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에도 무신을 하대(下待)하다 결국 정중부의 난(亂)이라는 피의 보복을 불렀고, 조선 말기에는 임오군란(壬午軍亂)을 겪었다. 가만히 되돌아보면 이 땅에서 무인이 대접(待接)받았던 시절은 고대 삼국시대가 유일할지도 모른다.
유럽을 비롯한 해외를 다녀보면 도심 한복판에 칼과 창을 든 무사 동상이 당당히 서 있고, 화폐에도 나라를 구한 무인 지도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피 흘려 나라를 지킨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국가가 존재함을 국민이 인정한 결과다. 반면, 900회 이상 외침(外侵)을 극복했다는 대한민국 화폐 속 인물은 모두 조선 시대 문인 일색이다. 동상 역시 광화문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다.
민족 최고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조차 서글픈 역사적 그늘을 담고 있다. 노량해전 당시 갑옷마저 벗어 던지고 선상에 서서 지휘하다 전사한 그를 두고, 역사가들은 선택된 죽음이라 말한다. 전쟁이 끝난 뒤 다가올 문민 통치자들의 모함(謀陷), 영문도 모른 채 당할 굴욕(屈辱)과 고초(苦楚)를 예견했기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길을 택했다는 해석이다.
최근 정치권과 사회 일각에서 불거진 육군사관학교 폐교 논쟁을 보며 충무공의 마지막이 겹쳐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육사 출신이 주축이 된 우리 군은 건국과 호국, 국가 근대화와 부국강병, 나아가 민주화의 울타리를 지켜내는 데 혼신(渾身)을 다했다. 물론 과(過)도 존재한다. 하지만 공(功)은 깎아내리고 과실만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하여 군 전체를 난도질하는 현실을 보면, 차라리 전장에서 죽음을 택하려 했던 이순신의 심정이 이해된다.
계엄 사태에 연루(連累)되어 전역한 뒤 연금마저 끊겨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간다는 어느 장군의 소식은 국가를 위해 청춘을 바친 무인들에게 참담한 환멸(幻滅)을 안겨준다. 국가가 군인의 헌신에 보상은 못 할망정, 정권의 향방에 따라 인격과 삶을 짓밟아서는 안 된다. 여전히 문존무비의 굴레에 갇힌 나라에서 군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숭고(崇高)한 사명이 아닌 괴로움이자 재앙이 되어버렸다.
헌신할수록 토사구팽(兔死狗烹) 당하는 구조라면 더 이상 후배들에게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라"고 말할 수 없다. 무인을 범죄자 취급하고 군의 명예를 짓밟는 나라에서, 군을 미워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군인이 된다는 것은 정신 승리에 지나지 않는다. 후배들에게 군인이라는 멍에를 씌우느니 차라리 육사를 폐교하는 것이 맞다. 이런 나라에 누가 기꺼이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겠는가. 위대한 충무공 이순신도 스스로 죽음을 택했는데, 하물며 이해득실에 밝은 현대인이 누가 군인을 하겠는가?
이순신의 죽음과 육사 폐교론
- 소월하인(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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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8-29, 1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