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최악의 인간들이 권력을 잡는가?
하이에크: 좌익 선동은 하급계층을 노린다.

趙甲濟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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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회와 북한정권을 보면 인간의 本性에 대하여 근원적인 의문이 생긴다. "왜 最惡(최악)의 인간들이 권력을 잡는가". 이런 의문에 과학적인 답을 낸 사람이 위대한 자유주의 사상가 하이에크이다.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는 1899년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소련의 붕괴를 목격하고 1992년에 사망하였다. 1974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그가 쓴 책중에는 1944년에 나온 '노예가 되는 길'(The Road to Serfdom)이 특히 유명하다. 이 책의 主題는 '왜 히틀러나 스탈린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가 탄생하는가', '왜 사회주의는 필연적으로 전체주의로 갈 수밖에 없는가' 따위이다.
  
  이 책의 한 章은 '왜 最惡이 頂上(정상)에 오르는가'이다. 하이에크는 이 책에서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눴다. 한 그룹은 높은 교육을 받은 知的으로 우수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교양이 있기에 생각과 취향이 다르고 어떤 특정한 가치관에 傾倒(경도)되지 않는다. 독재자들은 이들보다는 원시적이고 서민적인 본능을 가진 大衆을 노린다. 대중이 꼭 무식한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풍습과 생각과 가치관을 共有하는 숫자가 많은 계층은 역시 低수준 계층이다. 이 계층은 독립성과 창조성과 너그러움이 결여되어 있다. 이들을 표적으로 한, 최다 군중을 지지자로 확보하기 위한 최대 공약수적인 정책과 戰略은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다.
  
  독재자들은 이 低수준 계층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넓히려 한다. 여기서 2단계 전략이 나온다. 양순하면서도 잘 속는 다른 대중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한 선전戰이다.
  
  <선동의 표적으로 선정된 그룹은 자신의 고유한 신념 체계가 취약하므로 미리 잘 만들어놓은 가치관과 논리를 그들의 귀속으로 크게, 자주 주입시키면 그들의 열정과 감정을 흥분시켜서 전체주의 정당원으로 흡수할 수 있다.>
  
  세 번째 전략은 네거티브 프로그램이다. 인간의 本性은 긍정적인 프로그램보다는 외부의 敵(적)에 대한 증오심이나 내부의 잘 사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심을 중심으로 뭉치기가 더 쉽게 되어 있다. '우리'와 '그들'을 대칭시키고, 외부 그룹에 대한 단결된 싸움을 선동한다. 이런 선동은 대중을 한 덩어리로 묶어내는 신념을 만들어내는 데 필수적이다. 외부의 敵에 대한 투쟁심을 선동하는 것은 내부 지지층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불러내기 위하여서도 필요하다. 나치는 내부의 敵으로서 유태인들을 설정, 그들에 대한 증오심을 선동하였고, 소련 공산당은 地主들에 대한 적개심을 선동하여 지지층을 확대 강화했다. 북한정권은 미국을 증오의 대상으로 설정하였다.
  
  하이에크는 전체주의자들이 선전매체를 이용하여 본능적 야수성을 선동하면 저변층 사람들의 지지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인간이 가진 열등감이나 파괴적 본능을 자극하기 위해서는 그 수법이 이들 저변층에 먹혀들 만큼 저질스러워야 한다.
  
  한국의 좌파정권이 방송 등 선전매체를 총동원하여 벌여온 계층갈등 조장, 兩極化(양극화) 선동은 하이에크가 말한 바 전형적인 전체주의 수법이었다. 좌경적 저질문화 속에서는 그런 데 어울리는 사람들만이 출세한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면 개인의 양심은 함몰되고 집단적인 가치관에 종속된다. 그 집단적인 가치관이라는 것은 다분히 좌파적이다. 좌파적이란 것은 생산수단을 국유화, 私有재산권을 제약하겠다는 것이고, 계급투쟁설에 근거한 세계관이며, 私생활에도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公的인 부문만 통제하는 독재가 아니라 私的인 부분도 통체하려 한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적이다.
  
  개인은 양심이 있지만 집단은 없다고 한다. 사회주의, 전체주의 등의 집단주의는 인간 생명의 존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집단주의는 필연적으로 人權, 양심, 자유를 탄압하게 된다. 전체주의는 거짓과 폭력을 무기로 하고 사회 저변층을 앞세우므로 증오, 갈등, 분열, 욕설, 거짓말 같은 저급한 문화를 확산시킨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最惡의 인간들이 그 사회의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 하이에크가 한 예언이었다. 이 예언은 오늘날 한국에서 대체로 적중하였다.
  
언론의 난
[ 2017-06-11, 14:13 ] 조회수 : 3438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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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평안     2017-06-11 오후 11:18
"개인의 양심은 함몰되고 집단적인 가치관에 종속된다."
아주 정확한 표현입니다.
촛불 정신이 그러하고, 좌악인론이 그러하고,
새 정권이 그러하네요.
하이에크의 말과 조 기자님의 설명이 아주 적확하게 맞군요.
감사합니다.
   자장가     2017-06-11 오후 5:43
남쪽의 종북들의 속성
굴종 - 북에대하여 무한 굴종
비열 - 종북외의 사람들을 비열하게 헐뜯고 공격함

屈卑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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