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마광수
음식점 벽에 무릎을 세우고 쪼그리고 앉은 그의 모습에서 나는 강가에 혼자 외롭게 서서 시간을 쪼아 먹고 있는 두루미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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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 교수가 베란다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일흔네 살의 누님이 지키는 장례식장은 조문객이 없이 썰렁했다고 신문기사는 전하고 있다. 1992년경 그의 책 ‘즐거운 사라’의 외설성을 두고 사회가 들끓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그의 작품이 성관계를 노골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해서 성욕을 자극한다’고 했다. 그 무렵 호기심에 그의 책을 사서 읽었다. 나의 시각으로는 사춘기가 시작되던 중학생 무렵 교실에서 은밀히 돌던 음란서적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성욕을 자극하기는커녕 혐오감 때문에 오히려 싸늘하게 식는 것 같았다. 명문대 교수가 그런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감옥에 들어간다는 게 파격으로 보였다. 민주화운동도 아니고 독립운동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예술적 순교자라고보기도 찝찝했다. 그가 근무한 연세대에 나와 고교 동기가 교수로 있었다.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마광수 교수의 방이 내 방과 가까이 있어서 우연히 보게 됐는데 마 교수가 세상이 인식하는 것 같이 그런 야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 내가 보기에는 다른 교수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하루 종일 자기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끼니 때가 되면 혼자 컵라면을 먹더라구. 성실하고 소심한 사람 같아 보여.”
  
  1999년경 한 출판사가 마광수 교수와 내가 ‘이혼’ 문제에 대해 공동 집필로 책을 낼 것을 제의했다. 마광수 교수는 ‘사랑, 이별, 결혼, 이혼, 고독 등에 대하여’라는 글을 쓴다고 했다. 그의 원고를 보았다. 솔직한 자기고백이었다. 그중 자신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있었다. 그 내용을 대충 간추리면 이랬다.
  
  <나는 주로 글 쓰는 일을 핑계로 일요일이든 연휴든 책상 앞에 쭈그리고 앉아 원고지의 칸을 메워 나가는 게 정해진 일과처럼 되어 있다. 정말 단조로운 노동의 연속이다. 남들은 내가 연애 얘기나 성에 관한 얘기를 많이 쓰니까 아주 재미있고 신나게 일상을 때워가는 줄 아는데 정 반대다.
  
  나는 하루에 담배를 세 갑씩이나 피우고 매일 저녁마다 혼자서 어김없이 술을 마시고 있다. 나는 근본적으로 허무주의자다. 그런 인생관을 가지고 비사교적으로 살아가다 보니 자연 관능적 상상력이 발달하게 됐다. 그리고 비현실적 공상에 빠져드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야하고 과장적인 ‘꿈’과 ‘일탈’을 담은 시나 수필, 소설을 많이 쓰게 됐는데 문학이 허구라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구속도 되고 꽤나 시달림을 받았다. 거세게 비난하는 분들이 지적하는 것 같이 내 작품세계가 비현실적이고 변태적인 백일몽의 산물이라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작가의 경우라면 야한 연애소설이나 솔직한 고백소설을 쓰기보다 교훈적 이념소설이나 종교소설 또는 민족대하소설을 써서 ‘글쟁이’가 아닌 ‘지도층 인사’가 되고 싶어 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현학적인 포장을 중요시하는 분위기다. 나는 보수적 권위주의자가 되기를 거부하며 수구적 봉건윤리와 맞서 싸워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1985년 12월에 결혼해서 1990년 1월에 이혼했다. 오랫동안의 교제 끝에 벼르고 별러 한 결혼이었지만 잘 맞지 않았다. 2년 만에 별거를 하면서 창피하고 고통스러웠다. 어렵게 맺어진 소중한 인연의 끈을 하루아침에 잘라버린다는 것은 안타깝고 애석한 일이었다. 가수 패티김과 길옥윤 두 사람은 이혼한 후에도 계속 친분관계를 유지했다. 참으로 부러운 모습이었다. 솔직히 나는 지금까지 ‘색’을 마음껏 포식해 본 적이 없다. 담배나 술처럼 항상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사 돈을 주고 여자를 산다고 해봤자 뒷맛이 찝찝하기 마련이어서 나는 늘 색에 굶주린 상태에 있다.
  나는 연애를 못하고 있다. 내가 너무 늙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또래의 여자들은 모두 유부녀들뿐이다. 젊은 여성들은 나이가 많은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대학교에서 많은 여대생을 상대하고 있으니까 혹시 여학생들 중에서 나를 흠모하여 따라다니는 학생이 많은 줄 안다. 그렇지만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요즘 여대생들은 절대로 선생을 이성으로 흠모하거나 짝사랑하지 않는다. 주변에 쌔고 쌘 게 남학생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남자들이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따뜻하고 편안한 여자는 없다. 머리털이 미친 듯이 숭숭 빠져나가고 있는 나는 연애를 단념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쓰는 문학작품들의 내용이 과장적으로 에로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안 되면 상상으로라도 충족시켜야 하는 게 사랑이니까 말이다. 나 자신의 경우 문학을 통해 ‘사랑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럭저럭 대리충족감을 맛보면서 외로운 나날들을 지탱해 나갔다. 사실 내게 가장 즐거웠던 일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나를 따라주고 격려해 주며 즐거운 사라 이후 복직운동을 열심히 해 준 젊은 학생들을 대하는 강의시간에 나는 진정한 기쁨을 맛보며 보람을 느꼈다. 선생으로서 또 작가로서 걸어간 나의 인생은 이만하면 그래도 행복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해 늦가을 저녁 책이 나온 날 인사동의 한 음식점에서 마광수 교수를 만났다. 음식점 벽에 무릎을 세우고 쪼그리고 앉은 그의 모습에서 나는 강가에 혼자 외롭게 서서 시간을 쪼아 먹고 있는 두루미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작은 머리에 붙은 길고 뾰족한 코는 두루미의 부리 같은 느낌이었다. 작은 그의 눈은 겁먹은 새의 눈 같았다. 그는 사람을 대하면서 서먹해 하는 표정이었다. 세상에 알려진 자신에 대한 인상과 이름을 버거워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친구교수에게서 들은 얘기를 전해 주었다.
  
  “마 교수님과 같은 대학의 사회학과 교수가 제 친구예요.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마광수 교수는 야한 사람이 아니라 아주 성실한 사람이라고 하던데요?”
  내가 들은 말을 전해 주었다. 그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 말 들으니까 정말 감사하네요. 내가 왕따 당하고 있는데. 다음에 그 교수님 만나면 고맙다고 해야겠어요.”
  그의 눈까지 촉촉해지는 것 같았다.
  
  “구치소 생활은 어땠어요? 고생했죠?”
  “담요에서 먼지가 너무 많이 나와서 고생했어요.”
  
  그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이 좀 열린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그가 이런 말도 해 주었다.
  
  “저는 원고를 써내고 돈을 받지 못하는 사기를 워낙 여러 번 당해서 선불을 받지 않으면 안 써요.”
  그가 잠시 말을 중단하고 내게 귓속말로 이렇게 속삭였다.
  
  “지금 앞에 예쁘지도 않은 사나운 여기자가 버티고 관찰하고 있어서 마음대로 말도 못하고 있어요. 가면 얘기해요”
  
  반어법의 농담이 섞인 듯한 말이었다. 그게 그날 이차로 간 카페에서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그 여성 기자는 미인이었다.
  
  그가 퇴직을 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고 죽음 저쪽의 세계로 성큼 건너갔다. 늦가을 강가에 혼자 외롭게 서 있던 두루미가 훨훨 밤하늘로 날아가듯이 그의 영혼이 간 것 같다. 그의 작품들이 다시 사람들의 입술 위에 올려지고 있다. 자유로운 관능을 추구한 그의 작품은 사회를 불편하게 했다고 한다. 음란물의 바다 속에서 왜 그의 작품만 사회를 아프게 했을까. 왜 그만 감옥에 갔을까. 명문 대학교수였기 때문일까. 그의 참 모습은 허구의 작품 속의 야한 주인공이 아니라 학생들을 사랑하고 가르치는 일을 좋아한 착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허구의 작품 속의 주인공을 작가와 착각해 손가락질하고 감옥까지 보낸다는 게 정말 정의였을까는 잘 모르겠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언론의 난
[ 2017-09-08, 16:57 ] 조회수 : 5867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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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전독조     2017-09-10 오후 8:27
사람들 대부분 아니 거의 전부가 어리석다. 어떤 현상이 앞날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모른다. 마광수는 성적으로 역겨운 소설을 쓰는 것은 자유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앞으로 사회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소설이 거짓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당했다는 무책임한 생각을 하였다. 민주주의를 부르짓던 사람들이 박정희의 군사혁명을 어떻게 평가하였는지는 모두 알 것이다. 박정희의 군사혁명의 결과를 보라. 박정희의 군사혁명을 법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만 보는 사람들은 한치만 보는 사람이다. 소인배다. 10.26. 이후의 전두환의 행위를 보고 비판하기는 싶다. 민주주의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전두환을 욕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잘 보라 소인배가 되기 싫으면 작게 보지 말고 크게 보라. 이사야서에도 있을 것이다. 한사람이 고난을 당하여 많은 사람이 위안을 얻는다고. 소수가 고문을 받고 소수가 매장당하여 많은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았다. 이를 비난하다가 이제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당하고 소수의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 시대가 멀지 않았다.
   stronger     2017-09-09 오후 4:34
마광수 교수는 잘은 모르지만 한가지를 모르고 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즐거운사라 그것이 음란물이라고 하지만, 그것 이상의 음란물은 이미 1960~70 년대에도 시중에 많이 돌아다녔다는 것을 마교수가 모르고, 즐거운 사라라는 소설을 쓴 것 같다는 것이다. 60~70년대에 청계천 주변에 가면 길에 펴 놓고 파는 책중에 그런 것이 많았다. 작자도 전혀 이름이 없는 책이라서 즉 제도권 밖에 있는 책이랄까?벌레먹은 장미, 서리맞은 국화, 요철인생 등,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는지 모르지만, 마광수 교수같이 공부 잘하는 천재적인 학생은 1960~70년 당시 그런 음란한 책을 읽지 않아서 몰랐는지 모르지만,다시 말하면 마광수 교수가 중고 시절에 즉 60~70년대에 그런 음란서적을 읽었었다면 즐거운 사라 같은 소설을 쓰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결코 즐거운 사라 의 내용이 새삼스런 음란적인 내용은 아니었던 것인데, 제도권 교수라는 엘리트가 떠벌리니, 사회적인 괘씸죄에 걸렸다고나 할까?
   덕유산     2017-09-09 오전 12:31
학문과 예술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무한한 것은 아니다. 저도 문학을 중히 여기는 시인이지만 마교수 같은 울타리를 벗어난 글을 쓰지는 않는다. 학문과 예술은 그 시대 그 장소의 울타리에서 무한한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지 절대적인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공산독재를 찬양하고 미화하는 자유는 허용되지 않는것과 같이 사회의 선량한 풍속과 안녕질서를 파괴하는 자유는 헌법이 금하고 있다. 마교수는 개인적 사정이야 어떻하든 울타리를 벗어난 양(羊)이기 때문에 옥고를 치른 불행한 저명인사였다. 안타깝다.
   白丁     2017-09-08 오후 11:31
剝製가 된 天才...
   소월하인     2017-09-08 오후 8:13
외설작가 마광수는 좌파인줄 알고 비난했는데... 돌아가시고 나서 여러사람이 평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인간적인 분이 었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꿋꿋하게 작가에 세계를 걸어가신 분이네요. 죄송합니다. 마교수님을 좌파의 인기위주의 싸구려 작가로 인식한 것이...부디 천상에서는 평안하소서..
   무학산     2017-09-08 오후 7:31
아래에 계신 love님의 말씀이 우리의 가슴을 때립니다
.....허무로다......가는 자여 가는 자여. 저 언덕으로 가는 자여. 저 언덕을 넘은 자여 행복있으라
   love     2017-09-08 오후 5:56
마광수 교수가 그간 느꼈을 외로움, 억울함 그런 감정을 제3자인 우리가 어떻게 다 이해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知性人이라면 외롭고,괴롭고, 힘들어도 당당히 자신의 信念을 위해 꿋꿋히 살았어야 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의 사회 지도층이라는 인간들이 僞善과 貪慾을 숨긴채 한점 부끄럼도 없이 오히려 떵떵거리며 잘 나가는 걸 보면서 馬교수의 여린 感受性이 못견뎌낸게 아닐까? 우리사회의 僞善과 假飾이 그를 他殺한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삼가 故人의 冥福을 빌며, 이승의 孤獨과 辛苦에서 벗어나 永遠한 安息을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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